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9화 (9/242)

던전 사냥꾼 9화

젊음의 거리 홍대!

수많은 청춘 남녀의 꿈과 열정이 가득한 장소.

그리고 홍대 중심부에 자리 잡은 라이브 카페 아모아(Amoa)에 네 명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복장도,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풍기는 기세는 일반인과 전혀 달랐다.

좀처럼 모이기 힘든 조합처럼 보였으나 그들은 한 가지 공통사로 묶여 있다.

바로 각성자라는 것.

또한 각각 거대 길드를 이끄는 길드 마스터이자 스타터라는 점!

“여기는 여전히 파리만 날리네요. 파리를 모으려고 가게를 연 건 아닐 텐데…….”

30대 중반쯤으로 추정되는 여인이 손을 휘휘 저었다. 진짜 날아다니는 파리를 쫓아내는 것처럼 인상마저 살짝 찌푸렸다.

웨이브 진 긴 머리칼과 농염한 입술, 코 위의 애교점과 살짝 쳐진 눈매는 퇴폐미의 절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대머리의 남자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조용해서 좋잖아.”

“그럼 뭐 하러 홍대 한중간에 열었어요?”

“시끄러운 건 싫지만 젊은이들의 활기찬 에너지는 좋아하거든. 김 여사는 이런 걸 싫어하던가?”

김 여사라 불리는 여자의 이름은 김숙수였다.

김숙수는 혀를 찼다.

“뭐, 돈지랄을 싫어하는 것뿐이죠. 그나저나 왜 모이라고 한 거예요?”

“천명회.”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대강 짐작한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김용우 그 작자, 미쳐 버렸다면서요? 매일 자기가 개미라느니 헛소리를 하고 다닌다던데.”

“나를 보곤 개미 배설물이라 그러더군.”

“어머나, 배설물은 좀 심했다.”

김숙수가 킥킥대며 웃었다.

그때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던 노랑머리의 청년이 입술을 죽 내밀었다.

“아자씨, 그 인간 제정신 아닌 게 하루 이틀인가? 빨리 본론을 말해. 나 시간 없어. 공격대 짜서 던전 공략해야 한다구.”

“미스릴 길드는 휴업하고 있는 거 아니었나?”

“아자씨 정보가 느리네. 어제부터 다시 재개했어. 길드원 채워 넣느라 혼났다니까. 망할 필리핀…….”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지.”

청년이 탁자를 강하게 두드렸다.

“에이씨! 마수들이 쑥대밭으로 만든 나라 구경하겠다고 브로커까지 구해서 배 타고 들어간 걸 내가 어째? 나는 분명히 말렸어.”

잠자코 듣고 있던 김숙수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 동네는 어때? 계엄령이 선포됐다던데.”

“누님, 말도 마요. 탱크로 싹 밀어 버렸대요. 아, 그리고 던전 바깥에서 죽은 마수는 코어가 없다고 하네요? 알았어요?”

선글라스 남자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청년은 말을 높였다. 세상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청년에게 김숙수는 왜인지 어려운 상대였다.

“그래? 그거 정말 희소식이네.”

김숙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정확하게 일주일 전, 필리핀의 던전에서 대규모 마수가 뛰쳐나왔다. 추정되는 숫자는 물경 5천. 민간인과 각성자의 피해가 많았지만 며칠 뒤 본격적으로 군대가 투입되고, 정리되었다.

애당초 질을 고려하지 않은 물량 공세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마수를 죽여도 코어가 나오지 않았다. 단 하나도.

수많은 추측이 오갔고, 가장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가 코어는 마수가 던전 안에서 죽어야 발생하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즉, 던전과 코어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어찌 됐든 각성자들로서는 반가운 말이었다.

“그런데 고양이들은 왜 죽은 거야? 탱크가 쓸어버렸다며?”

“그야 뭐,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하나. 저도 잘 몰라요. 어디서 강한 마수라도 만났나 보죠. 누님, 그나저나 이 주제 그만하면 안 될까요? 동생 굉장히 꿀꿀합니다만.”

“미안해, 동생. 누나가 생각이 짧았어.”

레이드가 목숨을 담보로 하는 행위이긴 했지만 같은 길드원이 죽는 건 역시나 슬픈 일이었다.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선 던전에서 사망해도 위로비가 나오지 않았다.

각성자들에 대한 제도적 마련도 전혀 되지 않아서, 그들은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던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주제에 돈 많은 부자와 권력자들은 코어에 굉장히 열렬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길드가 담합하여 나서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각성자는 그들의 노예가 되었을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죠.”

여태껏 침묵하던 묘령의 여인이 말했다. 청년과는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지만 얼굴에선 냉기가 풍겼다. 타이트한 치마와 블라우스, 딱 봐도 ‘차도녀’ 느낌이 폴폴 풍기는 여인이었다.

“완성된 각성자를 만났다는군.”

선글라스 남자가 말하자 청년이 툴툴거렸다.

“그게 뭐야. 마왕을 물리칠 진짜 용사도 아니고.”

“규격 외의 괴물을 단독으로 처리했다는군.”

“엥? 그거 도시 전설 아냐? 아니, 던전 전설이라 해야 하나?”

김숙수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어머, 동생. 진짜 있어. 괴물.”

청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예에?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요?”

“봤으면 여기 없었겠지. 죽은 사람이 우리 모임에 어떻게 참가하겠어.”

“……본론으로.”

김숙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가 얼음 공주 아니랄까 봐. 얘, 아린. 표정 풀어. 너 그러다 내 나이 되면 얼굴에 주름 자글자글 한다?”

“이미 자글자글한 분한테 들을 이야기는 아닌 거 같네요.”

아린과 김숙수가 서로를 노려봤다.

청년은 둘 사이에서 눈치만 보다가 선글라스 남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어서 이야기를 진행해 달라는 뜻이다.

“흠…… 그 각성자로 추정되는 남자가 지금 천명회에 속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헐. 아자씨, 그럼 실존 인물이란 말?”

“김용우가 헛소리를 한 게 아니라면 그렇겠지.”

순간 넷 사이에 침묵이 찾아왔다.

규격 외의 괴물을 단독으로 처리한 자.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었다.

이들은 괴물의 존재가 단순한 전설에 불과하지 않다는 걸 안다. 모두 독자적인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에게 던전에 관련된 모든 것은 1급 기밀로 치부되었다.

그런데도 모르는 척하거나 상세한 이야기를 꺼리는 건 그만큼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필요에 의해 모였다. 어디까지나 이익을 위해서.

“규격 외를 혼자서? 말도 안 돼. 헛것을 본 거겠지.”

김숙수가 진중히 의견을 개진했다. 청년도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뒤에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괴물을 처리할 수 있는 각성자가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도 그럴 게 각성자가 나타나고 고작 8개월이 지났다. 그들이 제아무리 스타터라도,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대도 시간이 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순 없다.

“공격대를 12명으로 짜는 건 어째서이지?”

선글라스 남자가 진중히 물었다. 이번엔 얼음 공주 아린이 답했다.

“최악의 경우 한 명은 달아날 수 있죠.”

“맞다. 애당초 규격 외를 생각해서 짜여진 숫자란 말이다. 코볼트, 고블린 따위를 상대할 거면 네 명만 있어도 충분해.”

모두가 침묵했다. 선글라스 남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애당초 공격대를 12명으로 편성하는 것도 남자가 먼저 고안해 낸 방법이다.

“그리고 얼마 전, 김용우의 공격대가 전멸했다.”

세 명은 고개를 주억였다. 길드 마스터 김용우를 제외하면 11명 모두 던전 안에서 시체가 되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은 김용우가 유일했다.

공격대를 전멸 수준까지 몰아넣을 수 있는 건 규격 외뿐.

“살아서 돌아온 김용우는 정신 이상자처럼 헛소리를 지껄였지. 규격 외를 혼자 처리한 코끼리가 있다고 말이야.”

“그 작자, 정신이 나갔잖아. 굳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어.”

김숙수가 혀를 찼다. 김용우는 원래부터 나사가 몇 개 풀려 있는 인물이었다. 허언도 심하고 자신이 진짜 신이라도 되는 줄 안다. 안하무인, 후안무치는 김용우를 두고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막 나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왜?”

“최근 김용우의 태도가 달라졌다더군. 새롭게 들어온 신입 중 한 명을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던데…… 끔찍이 아끼던 부가티 베이론을 양도했을 정도면 정말 간도 쓸개도 내줄 듯이 행동하고 있다는 거겠지. 나는 그 신입이 김용우가 던전에서 만난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잠깐, 그 인간이? 그 차를? 진짜? 잠깐 빌려준 거 아니고?”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 남자가 나타난 뒤로 김용우가 부가티 베이론을 모는 걸 본 사람이 없다. 반면에 그 남자가 부가티 베이론을 모는 걸 본 사람은 꽤 되지.”

경악 어린 외침이 바로 옆에서 터졌다.

“대박! 이건 특집 감이야!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거라고!”

“……인정.”

김숙수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도 감탄을 늘어놓았다. 김용우는 자신의 돈을 쓰는 데 무척이나 인색한 사람이었다. 길드 하우스도 길드원의 사비를 털어서 장만했고, 같이 회식을 나가도 꼭 더치 페이를 고수했다.

한 달에 한 번 자장면 한 그릇 사 주면서 생색이란 생색은 전부 내는 인간 말종이 김용우일진대, 가장 아끼는 차를 줬다고?

부가티 배이론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로 알려져 있다. 베네시 헤놈GT가 더 빠르다는 의견도 있지만 하여간 대한민국에 들어오기엔 아까운 차임이 분명하다. 속도를 낼 수 있는 장소가 매우 한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김용우는 그 차를 구입하곤 그들에게 질리도록 자랑을 했었다. 마치 큰 인심 쓴다는 듯 아린에게 ‘부탁하면 태워 줄 수도 있다.’라며 되도 않는 작업 멘트를 날릴 정도였다.

진짜 내일은 해가 서쪽에 뜬 대도 이상하지 않을 듯싶었다.

선글라스 남자가 식어 버린 커피를 단박에 들이켜며 말했다.

“물론 확신할 순 없다. 가능성이 있을 뿐이지. 그리고 동일 인물이라 해도 그자가 규격 외를 처리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건 각성자가 백 명이 모여도 불가능해. 당시 김용우는 홀로 생존한 상황이었으니 진짜로 헛것을 본 것이겠지.”

“아자씨, 헛것을 본 거라면 신경 쓸 필요 없는 거 아냐?”

“아니…… 그래도 상당한 실력자임은 분명하다. 규격 외와 부딪힌 것도 사실이고.”

“에이, 어쨌거나 규격 외를 만났다는 거 아냐? 그럼 어떻게 살아 돌아와?”

“나는 그자가 모종의 레어 등급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규격 외를 따돌릴 수 있었을 거다.”

레어 등급 스킬!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이름처럼 진귀하다. 적어도 대한민국 내엔 보유한 이가 없었다. 유일하게 알려진 레어 등급 스킬의 사용자는 중국인이었다.

이곳에 있는 스타터들조차 8개월간 겨우 노멀 등급의 스킬을 익혔을 따름이다. 그나마 선글라스 남자가 익셉셔널 노멀 등급의 ‘근력 향상’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스킬은 특정한 일을 겪거나, 마수를 상대로 특정한 행위를 하거나, 아주 어려운 퀘스트를 해결하며 얻을 수 있었다.

퀘스트는 본인이 직접 찾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갱신되는 퀘스트 목록이 존재했다. 한 달에 한 번 각성자의 수준에 맞춰 갱신이 되는데, 그중 스킬을 얻을 수 있는 퀘스트는 본인의 수준보다 한두 단계 높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노가다나 운이 필요한 경우도 많아서 노하우 없이는 깨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는 천명회에 가입해 있지 않나요?”

얼음 공주 아린이 속을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다섯 개의 길드는 서로의 세력이 비슷하다. 존중해 주는 면도 없잖아 있었다. 이미 가입한 회원은 빼 가지 않는다는 게 그들 사이의 불문율이었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김용우가 혼자 떠들어 대는 말이지. 정작 같이 레이드를 간 적도 없다더군.”

“그를 누가 차지하느냐가 관건이겠군요.”

아린은 납득한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정도의 안건이라면 길드 마스터를 소집한 것도 용서가 된다.

그 옆에서 청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자씨. 역시나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왜 그걸 우리한테 알려 주는 거야? 그냥 혼자 해 먹어도 욕할 사람 없잖아? 우리가 아마추어도 아니고. 그야 배는 조금 많이 아프긴 하겠지만…….”

선글라스 남자가 콧등을 긁었다.

“나는 실패했거든. 한마디도 못해 보고 거절당했어. 까딱하면 죽을 뻔했다.”

“헤, 아자씨도 실패할 때가 있네.”

“천명회의 길드 하우스 근처에서 밥 먹는 걸 목격하곤 다가갔다만…… 날 보자마자 대뜸 ‘꺼져라, 밥맛 떨어진다.’고 하더군.”

“으음? 그 정도에 포기할 아자씨가 아닌데?”

“네가 그 남자를 안 봐서 그런다. 아마 내가 거기서 한마디 더 했으면 식당 바닥에 내 머리가 나뒹굴고 있었을 거야.”

청년의 표정이 굳었다.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그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이곳에 모인 이 중 선글라스 남자가 가장 강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남자가 얼마나 집착이 강한지 알고 있었다. 원하는 건 무슨 수를 써서든 얻어 내는 게 그였다.

한데 보자마자 패배를 인정했단다. 그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실이라면 그는 반드시 포섭해야 할 인재다.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그를 유입하는 순간 다섯 길드의 균형이 단박에 한쪽으로 쏠릴 것이다.

어쩌면 다음 층으로 올라갈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

최초로 던전 2층에 다다랐다는 타이틀은, 따질 수 없는 값어치가 있다. 그것은 ‘공인된’ 한국 최고의 길드라는 뜻이니까!

미국의 공식 발표 이후 각성자의 존재는 모든 이에게 알려졌다.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호응했으며 물밑에서 여러 움직임이 생기고 있었다.

이제 세상은 던전과 각성자들 사이로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코어는 오직 각성자만 얻을 수 있었고, 코어의 활용이 알려질수록 사람들은 그들에게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중 최강이란 타이틀은 아주 요긴하게 사용될 게 분명했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다. 레어 등급 스킬의 정보 공유. 그것 외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먼저 일어나죠. 대답은 YES예요.”

가장 셈이 빠른 아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그녀의 뺨이 묘하게 붉어져 있었다.

“오호, 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잘 들었어. 나도 예쓰야!”

그 뒤를 김숙수가 따랐고.

“흠흠! 아자씨, 따로 연락드릴게.”

가장 마지막으로 청년이 나갔다.

혼자 남게 된 선글라스 남자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끔찍한 눈빛이었지…….’

‘꺼져라, 밥맛 떨어진다.’라는 말이 무섭게 그는 자신을 노려봤다. 순간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깊은 무저갱을 엿본 것 같은 기분. 샤워하듯 땀이 흘렀었다.

그 눈빛을 재차 떠올린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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