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1화
* * *
딸칵!
이른 저녁, 어두컴컴한 방. 모니터 화면만이 덩그러니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마우스를 움직이며 컴퓨터를 조작하는 중이었다.
“음.”
작은 화면만을 응시한 채 기계를 다루는 게 썩 익숙하지 않았다.
전생에선 이 컴퓨터란 물건을 몇 번 보긴 했어도 조작해 본 적이 없었다. 지난 며칠간 조금씩 익숙해져 가곤 있으나 왠지 모를 이물감이 드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툭. 툭. 투툭.
검지를 들어 키보드를 두드린다.
전형적인 독수리 타법이다.
그래도 컴퓨터를 만진 지 며칠 안 된 것치곤 빠르다. 300타 정도는 나오는 것 같았다. 바탕 화면을 가득 채운 아이콘의 쓰임새도 전부 파악해 놨다.
마치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이 컴퓨터라는 기물에 적응하고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중 하나이니 억지로라도 익혀야 했다.
‘각성자들이 공격대를 모집하거나 정보를 주고받는 카페가 있다고 했지.’
미국의 발표 이후 모든 사람이 각성자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들이 가진 힘과 초능력. 이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며 모든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각성자도 마찬가지.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절대다수의 각성자가 이 사실을 파악하고 모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많은 각성자가 가입한 카페의 이름을 김용우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는 각성자와 관련된 기사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키보드를 꾹꾹 눌러 그저 각성자 세 글자 친 것만으로도 연관 검색어가 수도 없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각성자들이 모이는 카페는 그저 검색만 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책상 위에 올려 둔 지갑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하얀 종이 위에 홈페이지 주소와 아이디, 비밀번호가 적혀 있었다.
‘여기로군.’
종이에 적힌 영어들을 주소창에 옮기자 새까만 화면이 나타났다. 유일하게 있는 것이라곤 가운데에 놓인 로그인창이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었다.
확인을 누르자 ‘랜달프 브뤼시엘 님. 접속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란 문구가 떠오르며 배경이 바뀌었다.
좌르륵 게시판이 펼쳐졌다.
‘VIP라.’
좌측 상단에 VIP 등급이 표시되어 있었다.
김용우는 단순히 아이디만 만들어 준 게 아니라 모든 게시판을 열람할 수 있는 자격마저 준 것이다.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 호의에 기가 질려 하겠지만 나는 전혀 다르다. 주면 주는 대로, 거절하지 않는 게 내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받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에게 주먹만 한 코어 한 개를 대가로 주었다. 무작위로 출현한 상위 마수를 잡고 따로 모아 놓은 코어 중 하나였다.
인간들은 이 코어에 엄청난 가치를 둔다.
확실히 순수한 마나의 결정체이긴 하다. 마족과 상위 마수는 해당 사항이 없지만 약한 마수는 상대의 코어를 흡수해 성장하기도 했다.
나는 인간 세계에서 활약할 작정이었고, 어차피 가만히 놔두면 다른 마수에게 먹히거나 던전의 마나로 환원될 것이니 따로 챙겨 둔 것이다.
‘챙겨 오길 잘했어.’
모르긴 몰라도 내가 준 코어는 지금 시점에서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실제로 내가 준 코어를 받고 김용우는 땀을 줄줄 흘렸다.
이런 걸 그냥 받을 수 없다며 그는 자신이 몰던 차와 상당한 액수의 돈을 통장에 넣어 주었다.
깨끗하게 세탁시켰다는 액수가 50억 원. 김용우는 사실 그마저도 부족하다고 했다.
하긴, 지금 각성자들 수준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구하는 수준의 코어이니 이해는 된다. 물건의 희소성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덕분에 이 집도 편히 구할 수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비밀 경매장에 매물로 넘겼다고 그랬던가?’
살짝 궁금증이 일었으나 이내 신경을 껐다.
돈이야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폐 경제는 15년쯤 뒤에 붕괴한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많군.”
다시 시선을 모니터 화면 안으로 돌렸다.
홈페이지 안에는 각종 글이 넘쳐 났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의 양이 상당해서,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데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곳에 가입한 각성자의 숫자가 꽤 되는 모양이다.
보고 싶은 글을 보려면 따로 특정 게시판을 찾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우선 기초 정보란을 찾았다.
그곳에는 이름처럼 각성자에 관한 기초적인 정보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중 몇 개는 잠겨 있었는데, 클릭하자 100점의 점수가 필요하단 팝업창이 튀어나왔다.
내가 가진 점수는 10만 점. 어지간한 정보는 열람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잠겨 있는 정보가 그다지 필요해 보이진 않았다.
제목이 ‘던전 초입 지도’였다. 던전 마스터인 내가 왜 지도를 구입한단 말인가. 던전을 나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요정 이히밖에 없었다.
나는 가장 밑에서부터 글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전부 아는 내용이거나 필요 없는 것들뿐이다.’
금세 실망하고 말았다.
딱히 영양가 있는 정보는 없었다.
각성자의 개요와 커맨드 창을 불러오는 단어들, 마수에 대한 주의 사항, 코어를 얻는 방법, 기본 퀘스트의 노하우 등. 내겐 필요 없는 정보였다.
그나마 맨 위에 나열된 ‘긴급 공지 사항’이 조금은 영양가 있었다.
「에일 스네이크가 출현 중입니다. 강한 마비 독을 지녔으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사진은 첨부 목록을 확인하십시오.」
「최근 던전 내에서 각성자에게 당한 것으로 보이는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검사 결과 내부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용사들께서는 공격대를 짜는 데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중국 상동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클릭해 주십시오.」
몬스터 웨이브는 던전 바깥으로 마수들이 튀어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공지 사항은 각성자들에게 위험한 정보를 선별적으로 개시하는 듯싶었다.
기타 자잘한 것들을 확인한 후 이번엔 ‘공격대원 모집’이라 적혀 있는 게시판을 클릭했다.
‘여기서 사람을 구하는 거였나.’
가끔 의문이 들곤 했다. 던전을 밀고 들어오는 인간의 숫자는 언제나 일정했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공격대를 구할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터넷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편리하다. 잘만 다루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기계 문명이다. 과연 불균형의 극치를 달리는 세상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자연이나 마나를 활용하는 법은 무지하면서도 도구에 대한 이해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작게 감탄하며 게시판에 오른 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체력 35의 가더입니다. 전사 한 분 모십니다.]
[마법사, 궁수 계열 두 분 모십니다. 초보자 사절.]
[마력향 잘 맡는 분?]
몇 개의 글을 제외하면 전부 ‘모집 완료’ 딱지가 붙어 있었다. 올린 시간을 보건대 길어야 10분 내로 모집이 되는 모양이었다.
‘경쟁이 엄청나군.’
그래서 그런지 모집 요건이 까다로운 게 많았다. 최소 공격대 몇 번 참가, 특정 능력치 몇 이상, 스킬 있는 사람 우대…… 그리고 거의 모든 글이 초보자를 사절하고 있었다.
초보자는 공격대에 참가하여 한 번도 던전을 탐사하지 못한 이를 가리키는 단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 역시 초보자의 분류에 들어간다.
“그래도 보내는 봐야겠지.”
작게 중얼거린 후 몇 곳에 쪽지를 보냈다.
완숙한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두드려 진정성을 담아 자신을 어필하였다.
―날 받아라. 나는 강하다. 코볼트나 고블린 따위는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지극히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쪽지다. 나 자신이 강하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상대가 깨닫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무려 세 문장이나 써서 보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은 없었다.
“흠…… 배가 부른 녀석들이군.”
새로운 글을 끊임없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들에게도 쪽지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다른 공격대 알아보세요.
―혹시 임금님이세요?
한 시간 동안 정확히 29번의 쪽지를 보내고 세 개의 답장을 받았다. 그 세 개 모두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물론 뭐가 원인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말투겠지.’
인터넷 예절이라는 게 있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얼굴을 보지 못하는 대신 서로를 높임으로써 정체성을 확립한다.
하지만 공작, 대공, 심지어 마신에게까지 말을 놓던 나다. 어렸을 적부터 거친 욕설이 난무하던 전쟁터에서 구른 덕분에 내겐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식이 살짝 결여되어 있었다.
강자를 인정하긴 하지만 말을 높이는 건 별개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번개를 맞은 듯 움찔대며 도저히 말이 나가지 않는 것이다.
천성(天性)과 후에 만들어진 인격 자체가 그런데 방법이 있을 리 없다. 300년간 굳어 버린 걸 무슨 수로 푼단 말인가?
언젠가는 적응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천명회의 공격대에 섞여 볼 걸 그랬나?’
고개를 저었다.
‘아서. 이 정도로 포기할 순 없다.’
나는 랜달프 브뤼시엘. 모두를 밟고 올라온 자다. 고작 이런 일에 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레이드라는 걸 보고 싶었다. 완전히 초보자의 시각에서 내 던전을 품평하고 싶었다. 더불어서 숨겨진 인재를 찾고픈 마음도 있었다.
전생에서 이름을 날린 용사들.
하지만 강자는 그들뿐만이 아니다.
잠재력은 아주 높으나 초창기에 죽음을 맞이한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찾고픈 건 그런 이들이었다.
때마침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체력 33의 가더입니다. 공격대원 여섯 분 모집 중입니다. 쪽지 주세요.]
8인 공격대였다. 여섯 명을 모집한다는 건 공대장인 그를 제외하곤 아직 한 명밖에 없다는 뜻. 나는 전과 마찬가지로 쪽지를 보냈다.
3분 후 답장이 도착했다.
―랜달프 님? 공격대에 참가한 경험은 있으신가요?
단순히 던전을 경험한 것이라면 당연히 있다. 많다.
하지만 공격대에 참가해 본 적은 없다. 입맛이 씁쓸해짐을 느끼며 키보드를 눌렀다.
―공격대는 처음이다.
―음, 혹시 직업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충 답했다.
―근접 계열이다.
―알겠습니다. 요즘 초보자는 잘 안 받는 추세인데, 쪽지 보내는 분들이 죄다 초보자이니 어쩔 수가 없군요. 레이드를 안 갈 수도 없고…… 내일 점심 수유역 3번 출구 방향의 ‘길 카페’에서 뵙겠습니다.
―알겠다.
―번호 남겨 둡니다. 도착하시면 문자나 전화 주세요.
웬일로 수월하게 넘어갔다.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 얇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상급 마수와 싸우는 게 마음은 편하겠군.’
단순한 쪽지를 보내는 게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한다. 잠깐 한눈팔면 모집 완료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시원하게 마수와 맞붙는 쪽이 정신 건강에는 좋을 듯싶었다.
또각, 또각.
벽에 걸린 시계에서 시간 흐르는 소리가 왜인지 크게 들려온다.
김용우에게 받은 50억 중 40억을 들여 청담동 고급 빌라에 입주했다.
모든 가구나 기기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기에 몸만 들이면 되는 상황이었다.
114평. 방 다섯 개, 욕실 세 개.
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필요한 건 전부 갖춰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모든 게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말동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이히는 던전의 영체로서 던전을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귀환석을 이용하여 마음만 먹으면 던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더라도, 그것은 적응한 뒤다.
어차피 금세 적응할 것은 분명했다. 결국은 의지의 차이 아니겠나.
나는 눈을 감았다.
오늘 저녁은 유난히 길 것 같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