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2화
검은색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바로 맨 뒤 왁스로 머리를 올린다.
흔히들 포마드 헤어라 칭하는 머리 스타일이다.
양복과 포마드 헤어는 완벽한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들도 깔끔한 모습에 더 호감을 느낀다지 않나.
이후 나는 지하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차를 모는 것도 이제 상당히 안정권에 들었다.
당연히 면허증도 있었다. 딱 3일 만에 땄다.
집중력은 자신 있는 분야인 데다가 기억력 또한 인간에 비하면 월등하다. 탈것은 대체로 익숙해져 있어서 차를 모는 게 어렵지 않았다.
20분가량 차를 몰자 수유역에 도착했다.
3번 출구 바로 옆에 2층짜리 카페의 이름이 약속 장소인 길 카페였다.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었기에 나는 근처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대놓았다.
카페에 들어선 순간, 수많은 이목이 몰렸다.
“연예인?”
“기럭지 봐. 짱 길어.”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대화들.
역시 깔끔한 인상은 인간의 호감을 산다.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외모 또한 부족하다 여기지 않았다.
마계에서도 비슷한 일을 몇 번 겪어 봤으니까.
오로지 강함에 모든 무게를 실은 나로서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긴 했지만 미(美)에 관한 기준은 여기나 마계나 비슷한 것 같았다.
하긴, 마계에서 남성은 잘생겨도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게 없다.
강한 여성 마족의 눈에 띄어 잠시 편하게 살 수는 있겠지만 결국 한때다. 질려서 버려지는 이들을 나는 몇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최후는 하나같이 비참했다.
반대로 아름다운 여성은 그 자체로 강한 무기가 된다.
몇몇 귀족은 자신의 하렘에 아름다운 여성들을 몰아넣고 귀중히 여겼다. 질리면 부하에게 보상으로 주면 되니 쓸모가 많았다.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냥 불연히 든 잡념이다.
나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다이얼을 눌렀다.
몇 번의 착신 음이 가자 상대가 받았다.
―여보세요?
남성의 목소리다. 나는 차분히 물었다.
“어디지?”
―누구십니까?
“랜달프다. 지금 길 카페의 1층에 있다.”
―아, 랜달프 님. 2층으로 올라오십시오.
나는 즉시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2층에서 한 남성이 손을 흔들며 반겼다.
탁자 몇 개를 이어붙인 장소에 몇몇 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 숫자가 일곱. 아무래도 내가 제일 늦은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성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공대장 윤혁수입니다.”
나는 심안을 발동하여 윤혁수의 상태창을 띄웠다.
이름: 윤혁수
직업: 용사(가더)
칭호: 없음
능력치:
힘 31 지능 25
민첩 28 체력 33 마력 27
잠재력(144/231)
특이 사항: 없음
스킬: 강타(N), 추적(N)
별거 없는 잠재력이다.
추적 스킬이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마수를 몰아와야 하는 가더의 특성상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나는 가볍게 손을 잡고 답했다.
“랜달프 브뤼시엘이다.”
“오! 혹시 귀국 자녀십니까?”
한국인이라 치기엔 지나치게 피부가 밝다. 귀국 자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신분상의 설정 또한 그랬기에 부정할 것도 없었다.
“맞다.”
“어쩐지 말투가…… 하여튼, 굉장히 잘생기셨습니다. 여대원들 얼굴 붉어진 거 보이죠?”
윤혁수가 능청스럽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여성 대원은 셋이었다. 내가 눈길을 돌리자 하나같이 시선을 피했다.
“잘 부탁한다.”
“자자, 서 있지 말고 앉읍시다.”
나는 그의 권유대로 빈자리에 앉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남성 대원들은 살짝 불편해하는 기색이었다.
복장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굳이 양복을 입은 이는 나뿐이었다.
“던전에 들어갈 건데 양복 차림으로 괜찮겠습니까?”
결국 남성 대원 한 명이 혀를 차며 말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언뜻 적의가 내비친다. 살기는 없었지만 그 시선에 질투가 느껴졌다.
나는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보는 건 여성 대원들이었다. 화장을 하고 예쁘게 꾸민 여성 대원들은 헉! 소리가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괜찮은 미인들이었다.
이런 질투라면 상대할 가치도 없다.
공기가 이상해지자 공대장 윤혁수가 나섰다.
“하하, 옷이야 갈아입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여기 여성 대원들도 모두 치마 차림인데요. 그러지 말고 자기소개나 합시다. 저는 공대장 윤혁수입니다. 직업은 게시판에 써 놨다시피 가더고요. 어그로는 기가 막히게 잘 끄니 걱정하지 마시고, 만나서 반갑습니다.”
윤혁수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에 앉은, 처음부터 실실 웃고 있던 남자가 다음 말을 받았다.
“부대장 김인필입니다. 직업은 사령술사. 코볼트나 고블린의 시체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와, 그런 직업도 있어요?”
다들 놀랐다는 듯 김인필을 쳐다봤다. 사령술사라는 직업은 각성자가 모이는 홈페이지에서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 본업이 장의사라서 그런지 이런 직업이 생긴 것 같습니다.”
장례에 필요한 일을 맡아 하는 게 장의사다. 특수한 조건을 만족해서 직업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각성자의 상태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확실히 사령술사는 희귀한 직업이다.
용사인 주제에 시체를 다루는 사령술사라니. 나조차 흥미가 동했다. 즉시 김인필의 상태창을 엿보았다.
이름: 김인필
직업: 용사(사령술사)
칭호:
* 시체를 다루는 자(Ex N, 마력+2)
능력치:
힘 16 지능 33
민첩 13 체력 14 마력 45(+2)
잠재력(121/275)
특이 사항: 없음
스킬: 시체 조종술(N)
지나치게 균등하지 않은 능력치다. 육체적인 능력은 최악에 가까웠지만 지능과 마력이 무척 높았다.
마력이 높다 하여 좋은 게 아니다. 모든 싸움은 지구력이 동반돼야 한다. 강한 마법을 익혀도 한두 발 사용하면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고루고루 높은 게 좋다.
한데, 사령술사라는 직업은 다소 생소했다.
정령을 부리는 정령사나 짐승의 수호자 같은 특수한 직업을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시체를 다루는 사령술사는 처음이다.
그 능력은 마수나 마족에 한없이 가까웠다. 실제로 그런 능력을 지닌 마수나 마족도 있었다.
물론 직업은 거창하나 능력은 보잘것없다. 기껏해야 고블린, 코볼트 몇 마리 움직이는 게 전부일 것이다.
‘칭호라.’
칭찬할 게 그나마 하나 더 있긴 했다.
칭호.
등급은 보잘것없었지만 칭호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얻기 힘든지 아는 나다. 익셉셔널 노말 등급의 칭호를 얻은 건 칭찬해 줄만 했다.
“대단하시네요!”
여성진이 눈을 빛냈다.
장의사라는 직업은 별로지만 사령술사는 탐이 난다.
던전은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꿈의 보고다. 그만큼 위험이 따르기에 강한 이와 안면을 터서 나쁠 건 없는 것이다.
“하핫. 별거 아닙니다.”
김인필이 웃었다. 왜소한 체구와 다르게 호쾌한 웃음이다.
소란이 멎자 이번엔 그 옆에 앉은 이가 자신을 소개했다.
“이지혜예요. 물 계열 스킬을 사용하는 마법사고요. 잘 부탁드려요.”
“김수환. 전삽니다. 잘해 봅시다.”
“박은택…… 저기, 시프입니다.”
짤막한 자기소개가 이어지고 마침내 내 순번이 왔다.
모두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나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랜달프 브뤼시엘. 근접 계열 직업이다.”
다른 이보다 한 소절은 더 짧은 자기소개였다. 게다가 직업마저 확실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책을 잡는 이는 없었다.
자신의 정보를 공개하기 꺼려 하는 인물도 많았다. 나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근접 계열이면 힘이나 체력 수치가 제법 되겠군요. 이 둘 중에 30포인트가 넘는 능력치가 있습니까?”
윤혁수가 물었다.
함께하는 레이드이다 보니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해 줄 필요는 있었다.
나는 긍정했다.
“둘 다 30포인트를 넘는다.”
“오오, 든든합니다.”
윤혁수는 재차 일어나 나머지 일곱 명의 대원들에게 말했다.
“다시 한번 소개합니다. 공대장 윤혁수입니다. 던전은 오늘 저녁에 들어갈 예정이고, 그 전에 가볍게 브리핑을 하죠. 랜달프 님과 박은택 님이 초보자시니 자세하게 들어가겠습니다.”
“하, 초보자요? 그것도 둘이나? 12인 공격대도 아니고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걱정 마세요. 저 어그로 잘 끕니다. 농담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엔 들어간다고 자부하니 경험자 분들께서 공격만 잘해 주시면 문제없습니다.”
“양복을 입고 왔기에 엄청난 고수인 줄 알았습니다만. 이거 참, 공대장님만 믿어야겠네요.”
딴죽을 걸던 남자 김수환은 다시 나를 쳐다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우위에 설 조건이 갖춰지자 강자인 양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윤혁수는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김수환이 저러는 이유를 그도 알고는 있었다. 본래 남자란 슬프기 그지없는 동물이다. 외적 조건이 뛰어난 이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그다지 좋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30분이면 끝나는 브리핑보단 분위기를 완화하는 데 신경 써야 할 것 같았다.
“여러분, 우리 그러지 말고 밥부터 먹으러 갈까요? 제가 기가 막히게 잘하는 한식집을 압니다. 브리핑은 거기서 해도 되겠군요. 특별히 제가 쏘겠습니다.”
“와! 공대장님 멋져요!”
특히 여성진이 열렬히 환호했다.
지금은 점심시간.
그들도 배가 고픈 참이다. 지루한 브리핑보단 밥이 좋았다.
뜻대로 되어 간다고 생각한 윤혁수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혹시 차 가져오신 분 계십니까? 제 차 안이 조금 더러워서 한 명밖에 못 태울 거 같아서요.”
남자 전원이 손을 들었다. 네 대. 차는 충분했다.
“그러면 일단 각자 차를 끌고 이 앞 사거리에서 모입시다.”
잠시 해산이었다. 나를 제외한 남자들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은근히 서로를 견제하는 기색도 있었다. 보이지 않는 대결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여성진은 재미있다는 듯 키득대며 자신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천천히 그들의 상태창을 확인하며 걸었다.
‘다 쭉정이인가.’
모두의 상태창을 확인하고 실망감이 늘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기본 레이드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쓸 만한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이들과 잠시나마 어울리며 교감한다면 얻는 게 아예 없진 않을 터였다. 부딪치기도 하겠지만 바라는 바다. 나는 아예 밑바닥부터 샅샅이 훑고 지나갈 작정이었다.
그러다 보면 던전에 필요한 것도 알게 될 터.
지금의 나는 조금 더 인간을, 용사라는 족속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천명회는 논외다. 그들이 김용우의 영향을 받는 이상 그들은 나를 알게 모르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레이드도 이미 틀이 갖춰져 있기에 건질 게 없었다.
정형화된 레이드는 전생에서도 질리게 봐 왔으니까.
“……?”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내 앞에 돌연 차 한 대가 섰다.
위가 뚫린 스포츠카. 세련된 외양이 제법 고가일 듯하다.
운전석엔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타고 있었다.
길 카페에서 본 남자 중 한 명이다.
이름은 김수환. 사사건건 시비조로 분위기를 망친 남자였다.
“잘 빠졌죠?”
남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먼저 갑니다. 천천히 와요. 아니면 아예 안 와도 좋고.”
자기 할 말을 전부 끝낸 남자가 액셀을 밟았다.
부웅!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요란한 파란색의 스포츠카가 떠났다.
“음…….”
나는 잠시 그가 던진 말의 의미를 해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허영심. 차 자랑이군.’
요컨대, 자신의 차를 보고 기가 죽었으면 그냥 오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차종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가 몰고 있는 차가 뭔지는 안다.
‘좋은 탈것을 자랑하는 건 마족도 마찬가지지.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꽤 비슷한 사고방식일 수도 있겠어.’
12공작 중 한 명은 순수 마룡을 부린다. 마룡을 타고 전장에 나선다.
마룡의 입김에서 쏟아지는 브레스에 수백의 마족이 녹아나기도 했다. 그런 것을 탄다면 즉시 전력의 강화로 나타난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만큼은 정말 부러웠다.
어깨를 으쓱한 나는 유료 주차장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