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3화
“와! 아이언맨 차다!”
김수환이 차를 끌고 도착하자 주변에서 함성이 터졌다.
아우디R8v10 플러스.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모는 차다. 제로백 3.6초, 550마력. 모든 남자가 바라는 꿈의 스포츠카다.
김수환의 표정에 여유가 서렸다.
속속들이 다른 차가 도착했지만 모두 아이언맨 차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제 차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비교가 안 되는군요.”
윤혁수가 멋쩍게 웃었다. 그가 부럽다는 듯 김수환을 바라봤다.
“하하, 별거 아닙니다.”
김수환의 콧대가 높아졌다.
공급이 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코어의 시세는 비싸다.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코어 하나가 백만 원에 육박한다.
미국의 발표 전에는 훨씬 비싼 가격에 암거래되었다. 팔기에 따라 열 배, 스무 배의 가격도 받았다. 그나마 지금은 시장이 안정됐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언맨 차는 2억이 넘는다. 발표 전이라면 모를까, 사냥을 하여 코어를 팔아도 족히 200개를 넘게 팔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통 공대가 8명에서 12명. 그들이 각자 자기 몫을 가져가면 남는 게 훨씬 줄어든다. 김수환은 아이언맨 차를 사고자 진짜 쉬지 않고 공대를 뛴 게 틀림없었다.
던전의 경험만은 베테랑이다.
그래서 부럽기는 했지만 내키진 않았다.
“어머. 차가 정말 좋네요.”
여성진 중 한 명이 감탄하며 다가왔다.
“하하, 감사합니다.”
김수환은 별거 아니라는 듯 담백하게 웃었다.
“실력이 정말 좋으신가 봐요.”
“공대는 꽤 많이 뛰어 봤습니다. 가끔 친구랑 둘이서 오기도 했고요.”
“둘이서 사냥이 돼요?”
“노하우가 생기니까 되더군요.”
“부럽네요. 저는 던전 한 번 돌면 1, 2주일간은 아무것도 못하겠던데.”
여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던전을 도는 이들 중에 제대로 된 이는 별로 없었다. 돈이 필요해서, 돈이 된다니까 무작정 뛰고 보는 이가 많았다.
돈 많고 앉아서 코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피 튀기는 전장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몇 번 공대를 뛰면 현실을 깨닫는다.
아, 세상에 쉬운 일 없구나. 잘못하면 진짜 죽겠구나!
길드가 존재하지만 그들은 엄격히 사람을 가려 받았다.
해서 실력 있는 각성자는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만큼 살길을 잘 안다는 것이고, 그의 뒤만 따르면 안전이 보장된다는 뜻.
안전이 확보된다면 던전은 고수입의 일자리일 뿐이다.
김수환은 확실하게 여성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인이 강한 수컷에게 끌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금세 비껴갔다.
“허, 저걸 모는 사람이 한국에 있었나?”
윤혁수가 진심으로 기꺼워했다. 그의 정면에 슈퍼 스포츠카라 평해도 하자가 될 게 없는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 차가 뭔데요?”
김수환의 차에 관심을 보이던 여인이 윤혁수에게 물었다.
“부가티 베이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 중 하나로 유명한 녀석이죠. 그만큼 가격도 괴물 같지만요. 휘유!”
부럽다는 듯 윤혁수가 휘파람을 불었다.
2015년형이다. 한국에선 판매조차 되지 않는 종이다.
나름 차 마니아인 윤혁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 아이언맨 차도 좋지만 부가티 베이론은 0이 하나 더 붙는 괴물 같은 가격으로도 유명했다. 저 차 한 대면 김수환이 모는 아이언맨 차를 10대 넘게 살 수 있다.
부가티 베이론이 그들의 가까이에 멈춰 섰다. 모두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질 찰나 문이 열리고 차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꿀꺽!
모두의 얼굴이 괴기하게 바뀌었다. 몸을 바르르 떠는 사람도 있었고, 감탄을 내뱉는 이도 있었다.
오직 김수환만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조금 늦었군.”
나타난 이는 그들도 아는 귀국 자녀, 랜달프 브뤼시엘이었다.
그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김수환의 어깨를 두 차례 두드렸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의사소통을 끝낼 수 있었다.
그는 김수환에게 말하고 있었다.
‘잘 빠지지 않았느냐.’고.
김수환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어디서 빌려 온 거요?”
“선물받은 거다.”
부가티 베이론을 선물로? 다들 믿기지 않는단 눈초리였다.
8개월간 던전을 뼈 빠지게 돌아도 부가티 베이론은 못 산다. 즉, 상당한 부자라는 거다. 부자가 왜 던전을 도는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다들 이 광경에 압도되어 더 묻지도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여성진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 마법사 이지혜가 차에 올랐다.
은근히 그녀를 노리던 남성들은 눈앞에서 대어를 놓친 낚시꾼마냥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 * *
밥을 먹은 뒤 간단한 브리핑이 끝났다.
나오는 마수래 봤자 고블린과 코볼트, 식육 박쥐, 소수의 에일 스네이크가 전부다. 몇 가지 유의 사항과 해독약 한 알씩을 받고 북한산 입구에 도착했다.
길을 걸으며 공대장 윤혁수가 설명을 늘어놓았다.
“보다시피 던전의 입구는 하나입니다. 대신 엄청나게 커요. 몬스터 웨이브 때 저 입구에서 수천 마리의 마수가 튀어나온다고 상상해 보세요. 끔찍하죠?”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때마다 상당한 피해를 야기했다. 공식화된 몬스터 웨이브는 필리핀과 중국 중동뿐이지만 수백의 사람이 죽었다.
한국에 있는 던전이라고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때 던전 안이나 입구 근처에 있다간 백 퍼센트 죽는다. 모두들 위험을 감수하고 던전에 발을 들이는 것이다.
“그래도 근처에 군인들이 쫙 깔려 있으니까 도시 쪽은 안전할 겁니다.”
“군인들이 있다면서 입구를 막지는 않는 겁니까?”
초보자인 박은택이 물었다. 던전에 오는 게 아예 처음인 그로서는 타당한 궁금증이었다.
윤혁수가 쓰게 웃었다.
“당연히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겁니다.”
“네?”
박은택이 고개를 갸웃했다.
“던전 내에서 코어를 조달할 수 있는 게 우리 각성자들뿐이지 않습니까. 오일 대신 전 세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에너지원이라는데 사람 좀 죽는 걸로 정부가 움직일 턱이 없죠. 아마 근시일 내로 코어를 활용한 자동차 같은 게 나올 걸요? 전기도 코어로 공급할 거고요. 의학계에도 대변혁이 일어날 테니…….”
코어를 가루 내어 상처에 바르면 낫는다. 병마에 든 사람도 코어 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면 조금씩 회복된다. 암이나 불치병마저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는 마나의 속성 때문이다.
마나는 근본.
원래의 형태, 건강한 상태를 찾으려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코어는 그 마나의 집합체다.
의학계에서도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 잘못하면 의사라는 직종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때문에 그들도 코어를 대량으로 구입하여 실험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공급은 한정적인데 코어의 수요가 줄지 않는 이유다.
“그렇군요.”
박은택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두에서 발길을 옮기던 윤혁수가 잠시 멈춰 섰다.
“아무튼! 저기 던전 앞에 건물 하나 보이죠? 미스릴 길드가 운영하는 숍입니다. 기본적인 무기나 공격을 막아 주는 방탄복 비슷한 걸 대여하니까 잠깐 들르도록 합시다.”
2층 크기의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긴 했다. 던전과는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진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쓸릴 장소다. 장사하는 이는 배포가 무척 큰 이가 분명했다.
숍 안으로 들어가자 윤혁수의 말처럼 무기나 방어구가 진열되어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철검 하나를 대여했다. 날이 잘 갈려 있는 게 꽤 괜찮은 무기다.
계산대에 올려놓자 안경 쓴 남자 점원이 말했다.
“처음이세요?”
“처음이다.”
“시간당 2만 원입니다. 보증금 30만 원 받고요.”
두말 않고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신분을 증명할 게 있습니까?”
“여기 있다.”
신분증을 보여 줬다. 그는 이후 몇 가지 확인 절차를 거친 뒤 검을 대여해 주었다. 생각보다 깐깐한 점원이다.
여덟 명 모두가 필요한 걸 대여한 뒤 건물 입구에 섰다. 모두 모인 장소에서 윤혁수는 나를 보고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랜달프 님? 피 튀기고 더러워질 텐데 괜찮겠어요?”
내가 대여한 건 검뿐이다. 입고 온 양복 차림은 그대로였다.
치마를 입은 여인들도 지금은 활동하기 편한 복장이었다. 상의에는 방탄복 재질의 얇은 옷을 덧대어 입었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던전 안에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갈아입는 건 귀찮다. 나는 짤막하게 답했다.
“괜찮다.”
“으음, 일단 이거 받으십시오.”
윤혁수도 크게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초보자의 만용은 자주 있는 일이다. 한 번 던전을 경험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윤혁수는 주먹만 한 크기의 등불을 나와 공격대원 모두에게 나눠 줬다.
“충전 없이 48시간 정도 주변을 밝혀줍니다. 던전 안은 깜깜하니까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럼, 이동합시다.”
건물과 던전의 입구는 500미터가량.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깝다.
마침내 여덟 명의 사람이 입구에 도착하자 윤혁수가 말했다.
“브리핑 때 포지션 설명해 드렸죠? 어그로는 제가 끕니다. 근접 계열 분들은 앞에 서시고…….”
브리핑 당시 서로의 희망 사항과 직업, 능력치 등을 고려하여 포지션을 짰다. 가장 최적화돼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구잡이로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이다.
이윽고 공격대원 전부가 던전 안에 들어섰다.
“이제부터 긴장하세요. 어디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오늘은 깊숙이 들어가지 말고 이 근처만 배회하겠습니다.”
모두들 긴장하며 사방을 살폈다.
이들은 오늘 막 급조된 공격대다. 호흡을 맞출 시간이 필요했다. 괜히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가 집단행동을 하는 마수와 마주치면 곤란하다.
정사각형의, 안이 훤히 비치는 작은 등불 안에는 촛불 대신 전구가 들어 있었다. 아주 밝지는 않았지만 주변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데는 충분했다.
너무 밝으면 마수들이 모일 가능성이 있기에 밝기를 조정한 물건이다.
“같은 초보자끼리 잘해 봐요, 형.”
바로 옆에선 박은택이 말을 걸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응수해 주었다. 생긴 것마냥 순박해 보이는 인상의 청년은, 겁을 먹은 듯 계속해서 눈알을 굴려 댔다.
“형은 안 무서워요?”
“안 무섭다.”
“으…… 정말 그래 보이네요. 저는 무서워 죽겠어요. 코볼트 되게 무섭게 생겼던데.”
“그래 봐야 코볼트일 뿐이지.”
피라미드 구조에서 가장 밑에 있는 노예 계급 마수가 코볼트다. 생긴 거야 조금 험상궂긴 했지만 몇 번 상대해 보면 어렵지 않다.
박은택은 이후로도 간간이 내게 말을 걸었다. 형, 형거리며 친근하게 대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불안을 대화로 승화시키려는 의도다.
내 짤막한 대답에도 박은택은 전혀 아랑곳 않았다.
“대기.”
돌연 윤혁수가 멈춰 섰다.
이후 바닥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무언가가 다가온다면 소리로 확인할 셈이다.
10초 정도를 그러고 있던 윤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마리가 옵니다. 제가 먼저 가서 시선을 끌 테니까 대기하세요.”
고블린이나 코볼트는 가장 먼저 적이라 인지한 상대를 집요하게 노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어그로를 끄는 가더가 먼저 공격을 가하는 게 의례적이다.
윤혁수가 달려 나가 잠시 모습을 감췄다. 남은 사람들 모두가 침을 꼴깍 삼키며 전방을 주시했다. 제아무리 베테랑이라도 목숨은 하나다.
실수 한 번으로 생명이 나가는 장소이니만큼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30초가량이 지나고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여럿이었다.
윤혁수와 두 마리의 고블린!
“전투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