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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6화 (16/242)

던전 사냥꾼 16화

촤악!

김수환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

사방으로 피가 튀겼다. 이지혜의 얼굴은 피를 흠뻑 뒤집어썼다.

서 있던 자세 그대로 이지혜의 몸이 경직됐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지만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여태껏 초보자라 여겼던 이의 손속과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눈을 크게 뜬 채 목이 잘려 나간 김수환과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 이지혜를 놔두고, 나는 김수환이 왔던 길을 돌아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숨어 있을 작정이냐? 나와라.”

짝짝짝!

동시에 어둠 속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죽었다는 공대장과 부대장이 그곳에서 나타났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건 진짜 미소다.

지금의 상황이 재밌고 만족스러워서 흘리는,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부대장이자 사령술사인 김인필.

그가 진짜 배후였다.

판을 짜고 계획을 실행한 사람.

김수환의 시체를 조종하여 기만책을 쓴 사람이 바로 그였다.

사령술사 김인필의 스킬 숙련도로는 고블린 한두 마리 움직이는 게 한계라고 생각했지만 시체 한 구를 나름 유연하게 움직이는 걸 보아, 높은 마력 능력치가 보완 효과를 낸 것 같았다.

‘고블린을 어수룩하게 조종한 것도 의도됐다는 소리.’

김인필은 시체 조종술을 이용해서 고블린 한 마리를 움직인 적이 있었다.

움직임이 뻣뻣하여 별 도움이 안 된다 싶었는데 그게 모두 의도된 장면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을 기만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선 거기까지 계산하지 못할 것이다.

하!

이런 인간이 존재할 줄이야.

인간보다는 마족이 어울리는 놈이다.

누구도 받지 않는 초보자를 둘이나 받고, 던전 깊숙한 곳까지 살살 구슬려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쉬는 시간이 거의 없이 강행군을 시켰으며 그로도 모자라 대량의 마수를 이끌고 공격대를 분산시켰다.

정상도 아닌데 철두철미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이후 김인필이 찾아오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저 코어의 독점을 바란다면 이런 계획까지 세울 필요가 없으니까.

피에 굶주린 게 분명했다. 나 역시 사냥감의 범주에 넣고 있을 게 확실했다.

하여,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불순한 의도로 접근하여 내게 검을 빼 들었으니 이는 결코 용서하지 못할 대죄.

본래라면 단박에 찾아가서 머리를 분리시켰을 것이었으나, 이지혜가 마음에 들었기에 여유를 갖기로 했다.

‘덕분에 재미있는 구경을 했지.’

며칠 기다린 보상은 충분히 받았다.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내 짙은 미소를 본 김인필이 고개를 갸웃했다.

“시체 냄새가 진동을 하니 모를 수가 없더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냄새뿐만이 아니다. 딱딱한 표정과 높낮이가 이상한 목소리. 그 외에도 증거는 많았다.

이지혜가 정상이고 던전이 밝았다면 그녀도 처음부터 김수환이 시체임을 알아봤을 것이다.

“대단한 정신력이군요. 이쯤이면 구분을 못해야 정상입니다만.”

김인필은 진정으로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수가 드글드글한 동굴에서 몇 날 며칠 고립되어 있다면 정신이 나가거나 몸져눕는 게 정상이다. 인간의 기준에선 내가 비정상인 게 맞다.

인간의 기준에선 말이다.

“왜, 왜 이런 짓을 한 거죠……?”

돌연 정신을 차린 이지혜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음성엔 당혹스러움과 경악이 가득했다.

김인필은 양팔을 활짝 펼쳤다.

“던전은 정말 멋진 곳입니다. 이곳에선 사람이 죽어도 가볍게 묻히지요. 시체조차 어지간하면 남지 않습니다. 한 번 걸린 것 같긴 합니다마는, 공인된 살인 장소란 말입니다.”

각성자들이 모이는 홈페이지.

그곳 공지 사항에 언급된 범인이 김인필과 윤혁수인 모양이었다.

이지혜는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단단히 미쳤어. 단지 살인을 하려고 이런 일을 계획했단 말인가요?”

“살인만이 아닙니다.”

그가 품속에서 고풍스러운 수첩 하나를 꺼냈다.

“일기를 써야 하거든요. 기록이 늘면 늘수록 스킬의 숙련도와 마력이 오릅니다. 제가 각성할 때 일기장도 이처럼 변해 버렸더군요.”

각성자에겐 각자 파장이 맞는 무기가 존재한다. 김인필의 일기장은 그의 광기가 가장 많이 묻어난 물건. 과연 그런 의미에서 파장이 맞는 무기임은 틀림없었다.

일기의 내용은 안 봐도 뻔하다.

게다가 일기와 함께 각성했다면 그 전에도 내용을 썼다는 이야기다.

“살인자……!”

“하하! 맞습니다. 사실 전 장의사가 아닙니다. 각성하기 전까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대신 인천 쪽에서 나름 유명했어요. 살아 있는 사람의 눈알을, 비명을 내지르며 살려 달라고 비는 사람의 눈알을 모으는 게 제 취미거든요.”

인천에서 한창 시끄럽던 일이다. ‘눈이 파인 시체’가 다수 발견된 것이다.

뉴스에다 신문의 대미를 장식한 연쇄 살인마가 이곳에 있었다.

이지혜는 아예 귀를 막아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인필은 말을 이었다.

“이 친구도 마찬가지로 유명인입니다. 여자를 강간하고 목을 꺾어서 죽이는 미친놈이죠! 당연히 마음이 잘 맞아서 의기투합했고요. 추적 스킬로 여러분의 뒤를 쫓은 것도 윤혁수 이 친구입니다. 정말이지 쫓는 내내 여러분이 죽었을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으휴! 다행이에요, 다행.”

이제 보니 추적 스킬을 마수를 쫓는 데 쓰는 게 아니라 사람을 쫓는 데 쓰고 있었다.

윤혁수가 이빨을 드러내며 헤죽였다.

이 모든 게 공격대를 짜는 순간부터 계획된 일이라는 뜻이다.

“초보자를 받은 이유가 있었군.”

“그렇지요! 아니라면 초보자를 두 명이나 받겠습니까?”

“윤혁수가 사라졌을 때 애원한 것도 연기였고 말이야.”

“아, 그거요? 김수환을 확실하게 끌어들이려면 마수를 조금 모아 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던전 경험이 많다는 이야기는, 자기 목숨을 미친 듯이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윤혁수 이 친구가 안 돌아올 땐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저희도 목숨 걸고 한 계획이니 용서해 주시지요?

“이야기는 그게 전부인가?”

“후후! 설마 저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거나…… 그런 희망을 품었다면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찌걱. 찌걱찌걱.

괴이한 소리와 함께 김수환의 목이 다시 붙었다.

이내 김수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시체 썩는 냄새를 풍기면서.

“자! 2 대 3입니다. 하물며 한 명은 지치지도 않아요. 그쪽은 체력이 없지만 저희는 쌩쌩합니다. 그냥 얌전히 있었으면 괴롭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요.”

“쓸데없이 말이 많은 놈이군.”

내게 쓸데가 있는 말을 한다면 아무리 길어도 들어 줄 용의가 있다.

혹은 내게 도움이 되는 녀석이라면 농담에 어울려 줄 여유도 있다.

하지만 쓸모도 없는데 쓸데없이 말까지 많은 놈은 싫다.

그러나 당장 움직이진 않는다.

녀석은 내가 낸 시험을 통과한 이지혜의 상이다. 물론 나 혼자 내고 나 혼자 통과시킨 거지만 내가 만족하였으니 상관없었다.

이지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마침 이지혜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네가 선택해라. 저놈들을 죽일지, 살릴지. 죽인다면 어떻게 죽일지. 산다면 어떻게 살아 있어야 할지.”

“랜달프 씨, 그게 무슨?”

“선택해.”

이지혜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까 합격 운운할 때부터 그녀는 내 기세가 아예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김수환의 목을 단번에 베어 버리는 실력을 똑똑히 보았을 터.

그리고 어차피 그녀가 걸 수 있는 카드는 나밖에 없었다.

마지막 발악. 이지혜는 쥐어짜 내듯 말했다.

“……한 명은 죽여요. 아주 잔인하게. 한 명은 살려요. 던전을 빠져나가야 하니까.”

“누가 죽고, 누가 살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한 명은 살려요.”

“좋다, 김인필을 죽이지. 윤혁수는, 흠.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해 보마.”

“부, 부탁해요. 제발.”

나는 작게 실소했다. 그 부탁을 들어주는 건 내게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우리 둘의 대화를 듣고 김인필과 윤혁수는 뭐가 웃긴지 끅끅거렸다.

“브라보! 당신들 정말 걸작이야! 최고라고!”

김인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존댓말을 포기한 김인필이 이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부가티 베이론은 내가 받아 가지. 네 녀석이 몰기에는 너무 아까운 차니까. 아,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할 거야. 그래야 더 재밌……!”

촤륵!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그의 앞에 서 있던 김수환의 몸이 일자로 갈리며 두 개로 나뉘어 버린 것은.

그리고 나는 피가 튀기도 전에 김인필의 눈앞에 당도했다.

“우선 그 세 치 혀를 잘라야겠다.”

추훅!

검이 그대로 김인필의 입에 박혔다.

“끄으읍!”

“산 채로 눈알을 뽑는 게 재미있다지?”

내 근력은 칭호의 보너스 능력치를 합치면 무려 78포인트. 현 인간의 시점에선 상상할 수 없는 괴력을 낼 수 있다.

나는 손으로 김인필의 눈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끄어어억!”

까무러치는 고통에 김인필의 입에서 게거품이 흘렀다.

광기가 넘치는 광경. 살인에 익숙한 윤혁수도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은 눈알을 마저 파낸 나는 싱겁다는 듯이 말했다.

“재미없나 보군. 하긴, 나도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대로 김인필이 고통에 몸부림치게 놔뒀다.

고문을 하는 취미는 없지만 이지혜는 아주 잔인하게 죽이라고 말했다. 이대로 김인필은 서서히 죽음에 가까워지며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절명할 것이었다.

아니면 마수들에게 산 채로 먹히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김수환은 사령술사인 김인필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다시 목이 잘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손에 묻은 피를 대충 김인필의 옷에 닦은 뒤 김인필의 일기장을 강탈했다.

심안으로 살핀 결과 김인필이 갖고 있기에는 굉장히 아까운 아이템으로 판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기장을 품 안에 넣은 후 고개를 돌렸다.

이제 남은 한 명을 처리할 시간이었다.

채엥!

내 시선이 닿기 무섭게 윤혁수가 검을 떨어뜨렸다.

이후 양손을 번쩍 들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시시한 녀석이군.”

이 녀석은 김인필보다 싱겁다.

흥미가 싹 가셨다.

나는 김인필의 입에서 검을 뽑아, 내장 기관을 피해 윤혁수의 배를 정확히 찔렀다.

“끄, 끄아악!”

윤혁수도 몸을 숙인 채 검에 찔린 부위를 움켜잡고 신음을 흘렸다.

“으으으으…….”

이윽고 윤혁수는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항복한 자신을 왜 공격하냐는 눈빛이다.

이지혜의 입장에선 기도 안 찰 노릇이지만 인간이건 마족이건 본인에 한해선 한없이 이기적으로 변하는 법이었다. 아무리 살인자라도 자기 목숨은 아까워했다.

내가 윤혁수의 두 눈을 주시하자 윤혁수가 급히 눈을 깔았다.

나는 목소리를 낮게 낮추곤 말했다.

“안내해라. 늦으면 출혈 과다로 죽겠지만 검을 뽑지 않으면 1시간은 살 수 있을 거다.”

윤혁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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