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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9화 (19/242)

던전 사냥꾼 19화

* * *

길드 하우스 3층의 가장 넓은 홀.

그곳이 바로 데빌 헌터 공격대에 주어진 공간이었다.

고작 세 명이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넓은 곳이지만 앞으로 한 명씩 채워 나갈 예정이었고, 최종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좁은 감이 있었다.

가구를 들이지 않아 텅 빈 홀에 들어온 나는 안에서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 매니저로 들어온 물의 마법사 이지혜와, 이번에 새롭게 영입한 신입 유은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대치 중이었다.

잔뜩 굳은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그제야 내 존재를 확인한 이지혜가 말했다.

“공대장님. 쟤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언니, 실수였다니까요?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너는 실수로 사람을 죽이니?”

“미안해요. 그래도 안 죽었잖아요!”

참으로 의미심장한 대화다.

이지혜는 뿔이 잔뜩 났고, 유은혜는 억울한 듯했다.

나는 둘의 모습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혜의 머리카락에서 살짝 타는 냄새가 났는데, 그 이유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유은혜의 패시브 때문이로군.’

전생에서 번개의 여왕이라 불리었던 유은혜.

학생이라 봐도 무방할 법한 어려 보이는 외모, 보브컷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깜찍함과 살짝 처져 장난기 넘쳐 보이는 눈매가 인상적인 여인이었지만 그녀는 지금 모종의 패시브로 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나는 심안을 발동시켜 유은혜의 상태창을 살폈다.

이름: 유은혜

직업: 용사(번개의 마법사)

칭호:

* 번개를 10번 맞은(R, 마력+4)

능력치:

힘 20 지능 44

민첩 15 체력 14 마력 45(+4)

잠재력(138/423)

특이 사항: 번개 정령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수없이 번개를 맞은 탓에 임맥(任脈)과 독맥(督脈), 생사현관(生死玄關)이 강제 타통된 상태입니다.

스킬: 라이트닝 볼트(N), 전류(N, Passive)

참으로 괴이쩍은 상태창이었다.

잠재력은 발군이다. 이만한 잠재력의 소유자를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단비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아린이 견줄 만했지만 그보다도 뛰어났다.

문제는 특이 사항. 번개 정령의 가호를 받았다는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번개 정령의 가호 탓인지 몸 자체가 피뢰침 역할을 했다. 번개가 쳤다 하면 직격으로 얻어맞는 것이다. 그로 인해 호칭마저 생겼다.

고생은 조금 했겠지만 뭐, 나쁘지 않다. 임맥과 독맥이 뚫려서 몸 안에 노폐물도 없었다.

감히 누구도 갖지 못한 재능의 소유자라 칭할 수준이지만…….

‘저 전류라는 패시브가 문제로군.’

번개의 기운이 갈 곳을 잃고 몸 안을 방황하는 중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기운을 사방에 흩뿌리고 다녔다. 이지혜의 머리카락이 탄 것도 그 때문이리라.

“가까이 오지 마. 한 발자국만 더 오면, 확!”

이지혜가 경고했다. 머리카락을 태운 원수를 지척에 둔 채 공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극한의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유은혜는 울상을 지었다.

“언니 머릿결이 너무 아름다워서 저도 모르게 만졌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패시브가 발동한 거고요. 언니, 우리 같은 혜 자 돌림이잖아요. 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이지혜, 유은혜.

둘 다 혜로 끝나는 이름이긴 했다.

이에 실수 한 번쯤은 눈감아 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지혜는 용서해 줄 생각이 없었다.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세상에 언니 머리를 홀라당 태워 먹는 동생이 어디 있니?”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요? 아니, 농담이에요. 그렇게 정색하지 마세요. 가끔 던지는 제 농담이 재미없다는 거는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미안해요, 언니!”

“너…….”

“그만.”

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슬슬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제지한 것이다.

“감정 소모하라고 둘을 내 공격대에 편입시킨 게 아니다.”

이지혜가 타서 구불구불해진 머리카락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치만…….”

“그만하라 했을 텐데.”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데빌 헌터 공격대가 정식으로 발족된 만큼 기강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이 공격대의 장이었고, 이지혜와 유은혜는 그곳에 속한 단원일 뿐이었다.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이지혜가 입을 꾹 닫았다.

“너는 데빌 헌터 공격대의 하나뿐인 매니저다. 단원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짜는 등 대내적, 대외적인 일을 도맡는 게 너란 말이다. 시작부터 나를 실망시키려 하지 마라.”

“죄송해요.”

이지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천명회에 들어오고 그녀는 깨달은 바가 많았다.

눈앞의 남자는 이곳의 길드 마스터조차 어려워하는 사람이며 확실하게 무언가가 있는 존재라는 것!

예의가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신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있었다. 남자가 말을 하면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느낌을 준다.

처음으로 만나 본 타입의 남자였다.

그런 이가 자신에게 매니저라는 중책을 맡겼다.

시작부터 실망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

‘한 번 말했으면 충분하겠지.’

너무 강하게 잡으면 벗어나려는 게 인간이었다. 그리고 이지혜는 현명한 여인이었다. 두 번은 필요 없을 것이다. 나는 이쯤에서 타박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이후 품속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내 이지혜에게 던졌다.

“받아라. 머리카락이 문제라면 이게 해결해 줄 거다.”

이지혜가 약병을 받아 들고 눈을 깜빡였다.

“이게 뭐죠?”

“던전에서 얻은 포션이다. 코어를 갈아 넣은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지.”

“아…….”

이지혜는 한 방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단순히 코어를 갈아 넣은 포션으로는 죽은 세포까지 살릴 순 없었다.

그러나 던전에서 구한 보물 중 하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지혜가 기겁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이, 이건 받을 수 없어요. 던전에서 나온 거라면 엄청난 보물일 텐데…….”

“받을 수 없다면 버려라.”

“예?”

“버리라고 했다. 어차피 내겐 필요 없는 물건이니.”

저딴 하급 포션에 의지할 정도로 내 몸은 약하지 않다. 어지간한 공격에 상처를 입을 리도 없거니와 내 몸을 치료하려면 상급 포션이 필요했다. 이지혜는 정말 감격한 듯 살짝 눈물이 어린 시선을 내게 보냈다.

“고, 고마워요. 소중히 쓸게요.”

나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깟 머리카락이 뭐기에 조금 탔다고 저리 난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그 정도로 중요했다. 특히 찰랑찰랑한 긴 생머리를 유지하는 여인일수록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어마어마한 노력을 쏟아붓기 마련이었다.

목숨 다음으로, 어쩌면 목숨보다 중요한 게 머리카락이다. 이지혜의 태도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저, 공대장님?”

가만히 이 광경을 쳐다보던 유은혜가 말했다.

“……?”

“저는 여기서 뭘 하면 되나요? 청소? 빨래?”

“그런 걸 네가 왜 한다는 거지?”

“그야, 헤헤. 신입은 다 그런 거 아니에요?”

“할 필요 없다. 그런 건 따로 사람을 쓰면 돼.”

중요한 전력을 번외로 돌릴 생각은 없었다.

유은혜는 청소를 안 해도 좋다는 내 말에 의아한 듯이 물었다.

“그러면 뭘 하면 좋죠? 아!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제가 손맛이 기가 막혀요. 한 번 맛보시면 중독되실 걸요?”

그러다가 패시브가 발동되면 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순전히 호의에서 비롯된 말이겠지만 유은혜는 아무래도 ‘이히과’에 속한 듯싶었다.

정작 이히가 들으면 화를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만 둘 다 도찐개찐이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따위 잡일을 맡기려고 이곳에 널 데려온 줄 알았나?”

시무룩해진 유은혜가 그간 궁금했던 사항을 입에 담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제 별명이 뭔 줄 아세요? 인간 피뢰침이에요. 이래 보여도 번개 맞은 횟수로는 기네스 감이거든요. 그것도 부족해서 몸에선 찌릿찌릿 전기도 흘러요. 주변에 민폐만 끼치는 제 어디가 예뻐서 데려오셨나요? 물론 제 얼굴이 예쁘다는 거야 저도 알지만 공대장님은 그런 이유로 절 데려온 것 같지 않아서 계속 궁금했어요.”

유은혜는 잡일을 도맡아 하다가 갑자기 데빌 헌터 공격대에 포함되었다. 그게 3일 전이었다. 3일간 어째서 자신을 데려왔는지 유은혜는 계속 고민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나 보군.”

“말하자면 그래요. 가끔 얼굴 빼곤 별 볼 일 없는 여자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너는 훌륭하다. 나는 너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기대를요……?”

“그래, 천명회의 모든 이 중에 네가 제일 뛰어나니까.”

“헤헤, 비행기 그만 태우세요. 기분은 좋네요. 이런 식으로 기대를 받는 건 처음인데. 그래도 죄송해요. 아마 실망하실 거예요.”

유은혜가 간드러지게 웃었다.

어려서부터 머리가 나빴던 그녀는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아 본 적 자체가 없었다. 겁도 많고 자격지심도 가지고 있어서, 얼굴 빼면 별거 없다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다.

잊을 만하면 번개를 맞아 무당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무당은 ‘전생에 업이 많아 천벌을 받는 것입니다. 덕을 쌓으십시오.’ 하며 막대한 복채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가족과 친척들조차 자신을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각성자가 되었을 때 유은혜는 기뻐했다. 드디어 재능이라 할 만한 게 생긴 것이다. 하지만 몸에서 흐르는 전류 패시브에 그녀는 다시 절망하고 말았다.

‘심각하군.’

유은혜가 쓸모없는 이라면 절대다수의 인간은 쓰레기보다 못하다는 뜻이 된다. 아직 꽃을 개화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정신머리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굴려야겠어.’

생각이 많아서 드는 자기 비하다.

몸을 굴리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현상이었다.

게다가 유은혜는 마법사의 재질도, 전사의 재질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지능과 마력에 모든 능력치가 쏠려 있지만 훈련하기에 따라서 강인한 전사가 될 수도 있었다.

생사현관의 타통!

전생에서 스스로를 무인이라 칭하던 몇몇 강자를 상대하다가 알게 된 지식이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몸소 체험하지 않았던가.

그런 재능을 썩히는 건 아깝다. 전생에서의 유은혜는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해, 오로지 마법사로서의 능력에 올인했다.

당연히 전생과 똑같은 수순을 밟도록 놔둘 생각은 없었다. 알고도 방치하는 건 죄악이다.

번개를 타고 다니며 적의 등을 노리는 완벽한 마검사로서 유은혜를 키우리라, 내심 확정한 상태였다.

그러려면 훈련을 통해 신체 능력치를 높여야 한다. 지금의 상태는 너무 불균형이 심했다.

“따라와라. 지금부터 훈련을 시작하겠다.”

나는 홀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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