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20화
“……여기는 던전 아닌가요?”
사자의 입처럼 거대한 입구를 바라보며 유은혜가 말했다.
“던전이 아니면 뭐로 보이지?”
그거야 당연히 던전이다.
유은혜는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저희, 두 명이잖아요.”
“실력자들은 2인 공대도 뛰곤 한다더군.”
“고, 공대장님은 실력자가 맞을지도 모르지만 전 아니라구요? 던전도 몇 번 들어가 본 적 없는데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런가? 걱정 마라. 이제부터 많이 들어가게 될 거다.”
유은혜가 울먹였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제,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 미우면 말로 하시지…….”
“아니, 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고백으로도 들릴 법한 말이었다.
“그럼 왜 저를 사지로…….”
“여기서 죽을 건가? 말리진 않겠지만 아쉽긴 하겠군.”
“서, 설마, 진짜 훈련하러 온 거예요? 던전에?”
“그래.”
“세상에.”
2인 공대라니!
유은혜는 절망했다.
최정상급 실력자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으로 2인 공대는 무리다. 필시 짐만 될 것이다.
“안에선 마법을 쓰지 마라. 오로지 검으로만 처리해야 한다.”
“네? 제가 든 이 검이, 제가 사용할 검이었어요? 공대장님이 아니라?”
유은혜는 현재 롱소드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짐을 맡긴 건가 했더니 자신이 사용할 무기란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맞다. 네가 사용할 검이다.”
확인 사살이었다.
유은혜의 몸이 휘청였다.
그렇게 유은혜가 소리 없이 울고 있을 때 나는 잠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보았다.
마족이 수련의 방에서 본래의 강함을 빠르게 회복하듯이, 각성자들도 마수를 잡으면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거나 퀘스트를 깨도 마수를 잡는 만큼의 성장 속도는 나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경험치 같은 게 있는 건 아닐는지 의심할 뿐이다.
심안의 등급이 올라가면 보일 수도 있었다. 잠재력이 개방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잡느냐에 따라서 오르는 능력치가 달랐다. 검을 들고 몸을 사용해서 마수를 잡으면 신체와 관련된 능력치가 높은 확률로 오른다.
‘능력치는 골고루 올리는 게 제일 좋지.’
지능 100, 마력 100, 나머지는 30 정도의 마법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분명히 엄청난 한 방을 선사할 순 있을 테지만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터져 나갈 것이다. 능력에 비해 작은 마법만 연달아서 사용해야 하는 제약이 붙는다.
마법이란 마냥 사용하기 편한 능력이 아니었다. 양날의 검. 기적과 같은 힘을 일으킬 수 있지만 그 반동은 온전히 사용자의 몫이었다.
“으…… 결국 들어와 버렸어.”
나를 따라 던전에 입성한 유은혜가 중얼거렸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시작부터 너무 겁을 먹는 것도 좋지 않다 판단하여 나는 입을 열었다.
“걱정 마라. 너를 이런 곳에서 죽게 할 생각은 없으니.”
진심이었다.
유은혜는 세계 레벨의 유망주다. 잘만 키우면 전생에서 가장 강한 인간 10명의 레벨로도 끌어 올릴 수 있을 수준이었다.
적어도 마계 공작과 맞바꾸는 것이라면 모를까, 내 던전에서 내가 초대한 이를 죽게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공대장님만 믿겠습니다.”
유은혜의 눈빛에 생존에 대한 열망이 떠올랐다.
나는 피식 웃었다.
오크 두 마리를 상대하여 던전의 2층에서 활약한 내 이야기는 길드 내에서도 유명했다. 고블린이나 코볼트 따위는 우습게 처리할 능력의 소유자라고 정평이 나 있었다. 유은혜도 그를 알기에 더는 말하지 않고 따라오는 것일 테다.
“마침 코볼트 두 마리가 오는군.”
“헉.”
“싸울 준비를 해라. 재차 말하지만 마법은 사용하면 안 된다.”
“해, 해 보겠습니다.”
말투가 바뀌었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방증이다.
유은혜는 몇 차례 던전을 온 적이 있다고 했다. 마수를 죽이는 데 큰 저항은 없다는 뜻이었고, 어차피 지능 능력치가 높아서 어지간한 패닉도 금세 회복한다. 발을 들인 이상 쉽사리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
유은혜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자신도 쓸모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좋은 현상이다. 만약 여기서 겁을 먹고 계속 움츠렸다면 실망을 금치 못했을 터. 최소한 싸울 의지는 있다는 게 중요했다.
“왔다.”
나는 흘러가듯 작게 말을 이었다.
“내가 코볼트를 상대하는 걸 잘 봐라.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유은혜, 너의 몫이다.”
“네, 넵.”
키에엑!
멀리서 사냥감의 냄새를 맡은 코볼트 두 마리가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내가 손을 뻗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스르르 검이 나타났다.
2만 포인트를 사용하여 구입한, 공간 마법이 새겨진 레어 등급의 검. 초보자 보호 기간 동안 상위의 마수를 처리하려고 하나 장만한 무기였다.
외양은 평범한 롱소드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상당히 날카롭게 벼려져 있어서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었다.
한 손으로 가볍게 검을 든 나는 달려오는 코볼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코볼트의 근력은 너와 비슷하나 머리가 나쁘다. 직선적인 공격밖에 못해. 고블린과 마찬가지로 손톱과 이빨만 조심하면 된다.”
유은혜에게 보여 줄 동작이었다. 평소처럼 움직이면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하지 못할 테니 최대한 천천히 보여 주는 게 중요했다.
키익!
가슴팍에 겨우 닿는 크기의 코볼트. 위치가 낮아서 검으로 상대하기에는 조금 까다롭지만 머리가 나쁜 종족인지라 조금만 요령이 붙으면 누구라도 이길 수 있었다.
툭!
바닥을 찼다. 먼지가 피어올랐다.
이에 두 마리의 코볼트가 잠시 멈칫했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코볼트 한 마리의 이마 한 중간을 꿰뚫었다.
“거기다가 지독한 근시다. 태생적으로 놈들은 눈이 안 좋지. 이렇게 먼지를 피우면 잠깐이나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사이 내가 한 것처럼 머리를 한 방에 꿰뚫으면 가장 좋고, 그러지 못했다면 목을 잘라 내라.”
이마에 박힌 검을 뺌과 동시에 목을 잘랐다. 코볼트 한 마리가 완벽하게 처리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네 차례다.”
키에에엑!
남은 한 마리가 더욱 광분했다. 두 눈이 시뻘겋게 변했으며 쉴 새 없이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어디를 보나 분노하는 모양새였다.
꿀꺽.
유은혜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려는 걸 겨우 붙들었다.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한 마리를 처리했을 뿐이지 딱히 어그로를 끌지는 않았다. 코볼트는 당연히 더 가까이 있는 생명체를 노릴 것이었다.
‘너를 죽게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맹목적인 보호자가 될 생각도 없다.’
유은혜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지 않는 한 나서지 않을 셈이었다. 혼자서 처리해야 그만큼 빠르게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극한까지 몰아넣어야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벽은 누군가가 같이 넘어 주는 게 아니다. 혼자서 넘어야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유은혜는 지금 첫 번째 벽과 마주한 상태였다.
“흐읍!”
숨을 크게 들이쉰 유은혜는 내가 했던 것처럼 발을 굴렀다. 이어 사방에 먼지가 피어올랐다.
코볼트가 멈칫했다. 그래 봤자 고작 0.5초 정도뿐이 안 되는 시간이지만 유은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퍽!
하지만 얕다. 검은 고작 코볼트의 가죽을 뚫었을 뿐이다. 급하게 검을 빼낸 유은혜가 목을 노렸다.
그 찰나, 코볼트가 손을 올렸다. 공격 자세를 잡으려고 그런 거겠지만 덕분에 목을 지킬 수 있었다.
대신 들어 올린 팔이 날아갔다.
“아!”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 막히자 유은혜는 안타까운 음성을 토했다. 목을 노렸는데 팔을 잘랐다. 이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마침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러나 검을 놓지는 않았다.
‘아냐.’
높은 지능 덕분인지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질 수 있었다. 하물며 뒤에는 든든한 원군도 있었다.
유은혜는 코볼트를 바라봤다.
코볼트도 한쪽 팔이 날아가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눈에 띄게 행동이 굼떠졌다. 그 상태를 보고 유은혜는 희망을 가졌다.
‘다시!’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근력이 부족하여 가죽밖에 뚫지 못한다면 내리치면 된다. 모든 힘을 가장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행동이 내리치기였다.
퍽! 퍽!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고기 다지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비틀던 코볼트의 비명이 곧 잠잠해졌다.
“하악. 하악……!”
터엉-!
유은혜가 검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바닥에 반쯤 주저앉아 거친 숨을 내몰았다. 고작 2, 3분 남짓을 싸웠을 뿐인데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코볼트의 사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잘했다.”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목을 날리려는 두 번째 공격이 막혔을 때 나는 그녀가 포기할 줄 알았다. 막힐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데, 유은혜는 그 위기를 스스로 극복했다. 벽을 넘어선 게 아니라 부쉈다. 어찌 만족하지 않을 수 있으랴.
미리 준비해 온 손수건을 꺼내 유은혜의 얼굴에 묻은 핏물을 제거했다. 이후 포션을 이용해 다친 상처를 말끔히 치료해 주었다.
전류 패시브가 발동하여 내 몸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따가울 텐데도 자신의 상처를 전혀 깨닫지 못한 듯 유은혜는 멀뚱히 내 행위를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 제가 제대로 한 게 맞나요, 공대장님?”
“그래. 훌륭했다.”
“아……!”
처음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혼자서 해냈다. 그 고취감에 유은혜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어느 공대에서도 이만한 활약을 한 적은 없었다. 그놈의 패시브 탓에 공대원들은 그녀를 떼어 놓고 행동하기 일쑤였다. 모든 사냥이 끝나고 코어를 나눌 때면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무려 혼자서 코볼트를 처리하지 않았나.
지금의 감각을 잃지 않고자 유은혜는 노력했다.
할 수 있다는, 일어설 수 있다는 이 감각은 그간 패배주의로 살았던 유은혜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해도 좋다.”
내가 말했다. 첫날은 이쯤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생각보다 잘 따라와 줘서 흐뭇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유은혜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에요. 아직 더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정말 괜찮겠나?”
“예.”
“너의 의지가 그렇다면 말리지 않으마.”
무엇보다 중요한 게 의지였다. 스스로 하겠다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나쁘지 않아.’
전생의 유은혜는 겁이 많았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몸을 뺐다. 안전 지향적인 행동이 몸에 배어 있었다.
허나 지금의 유은혜는 다르다. 조심스러움이 몸에 배기 전에 전사의 피를 일깨웠다. 방향만 잘 설정해 주면 훌륭하게 자라리라.
‘번개를 부리며 몸을 사리지 않는 진정한 마검사로 만들어 주지.’
나는 더욱 눈을 빛내며 유은혜를 바라봤다.
시간은 많았고, 포션도 충분하다.
의지를 확인했으니 달릴 일만 남았다.
이제부터는 다소 강행군이 되겠지만 잘 따라오리라고 믿었다.
번개의 여왕!
전생에선 번개를 다루는 대마법사로 이름이 높았지만 이번 생에서 그녀는 번개의 마검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