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25화
* * *
코볼트와 고블린 우두머리들.
처음엔 아홉이었으나 지금은 고작 다섯뿐이었다.
전쟁 중 넷이 죽어 나간 것이다. 1,700에 달하던 부대의 숫자도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그만큼 전쟁이 격렬했다.
물론 그런 것치곤 각성자 대부분을 내가 혼자 맡았으나 약속은 약속.
나는 우두머리들의 공을 따져 높은 순서대로 다수의 암컷을 안겨 줬다.
막 소환되어 겁에 질린 코볼트와 고블린 암컷들이 몸을 떨었지만 우두머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해진 숫자를 자신의 부대에 집어넣었다.
“키엑! 던전 마스터! 고맙다!”
“숫자 늘린다! 강한 코볼트 만든다!”
“내가 제일 열심히 할 거다. 이제 혼자 안 해도 된다!”
저 마지막 놈은 아직도 살아 있었나 보군.
나는 그들을 보내며 벌어들인 포인트를 확인했다.
[포인트 잔여: 1,174,357]
허공에 뜬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나는 기분 좋게 턱을 쓸었다. 마계 옥션이 열리기 전에 백만 포인트쯤 모으고 싶었는데 이번 일로 인해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
‘광고의 힘이란 말이지…….’
솔직히 외국인 각성자가 이리도 몰려올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바다. 단순히 양식하는 각성자들의 성장 촉진을 위해서 보물을 풀어놓고 대대적으로 알렸을 따름이었다.
한데, 국내보다 국외에서 이처럼 열렬한 반응을 보내올 줄이야.
예상외의 선물은 언제나 기쁜 법이었다.
나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조금 더 투자를 늘려 볼까?’
확실히 구미가 당긴다.
지금 시점에서 백만 포인트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아니, 지금 시점에서 뿐만이 아니라 전생을 통틀어서도 무시하지 못할 포인트 액수다.
감히 최상급 마수 그리핀을 소환할 수도 있는 정도. 물론 그리핀은 최상급 마수 중 가장 레벨이 낮지만 입에서 뿜어 대는 불꽃과 번개는 재앙이라 칭할 만한 힘을 가졌다.
각성자 수준이 낮은 현시점에 그런 걸 풀어놓으면 수만, 수십만의 인간이 몰살당할 것이다. 작은 국가 하나쯤은 괴멸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백만 포인트를 ‘잔여’로 가지고 있는 마족은 없을 터였다. 마계 옥션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낙점한 크라스라 외에도 생각 난 것을 몇 개나 구할 수 있을 듯싶었다. 그렇다면 던전을 다지는 데 조금 더 포인트를 사용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간 던전에 퍼트려 놓은 보물이 4만 포인트. 이걸 10만 포인트까지 늘려서…… 천명회 외의 길드에서도 숨겨진 아이템을 발견하게 만들어야겠지. 천명회가 앞질러 가는 걸 두고 보진 않을 테니 분명히 의도적으로 일을 크게 만들 거야.’
다른 네 개의 거대 길드도 정규 공격대를 모집하며 던전을 공략할 구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김용우를 통해 접한 적이 있었다.
그들이 끼어들어 판을 넓혀 주면 최종적인 이득은 내가 얻는다.
그 와중 보물에 눈이 멀어 죽어 나가는 국내 각성자들의 숫자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단물은 최대한 빨리, 많이 뽑아 먹어야 했다.
감수하는 희생이었다.
‘다른 마족들이 눈치채기 전에…… 그들이 내 던전을 판단하고 따라 하기 전에, 내가 다 먹어 치워야 한다.’
72개의 던전은 마족의 특성에 따라 모두 다르다.
지금은 초창기였고, 아직은 경계하는 기색이 강할 것이었다.
포인트의 중요성을 조금씩 깨달아 가며 각성자를 키울 필요성을 느낄 터.
그 롤모델은 내 던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그 전에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최대화한다.
나는 호화찬란한 오색의 보물들로 각성자들을 유혹하는 계획을 짰다.
단순히 아이템뿐만이 아니라 진짜 금은보화를 곳곳에 배치할 생각이었다.
“아휴~ 힘들어! 머리통 숫자 세느라 죽는 줄 알았네.”
이히가 이마를 훔쳐 나지도 않은 땀을 닦았다.
나는 전쟁이 끝난 직후 이히에게 우두머리들이 가져온 각성자의 머리통 숫자를 세는 임무를 맡겼다.
덕분에 이히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숫자가 맞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시켰기 때문이다.
아마 저 말도 내가 들으라고 하는 말을 테다.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이히, 정원을 꾸미고 있다고 했나?”
찔끔!
이히가 흠칫했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정원을 꾸미던 이히의 행동을 본인에게 들을 수 있었다. 가만히 넘어가면 자기 세상인 양 행동할 것이니 한 번은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이, 이히는 그게 좋다고 판단해서……. 요, 요즘 세상이 어느 때인데요. 던전도 아름답고 화사하게 꾸며야 한다고 이히는 생각해요. 우중충한 던전은 우아한 던전 마스터의 품격에 맞지 않아요! 던전 마스터는 대단한 분이시니까 던전도 대단하게 보여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이히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최대한 소신 있게 말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너를 나무라려는 게 아니다.”
“……엣, 정말요? 정말 안 혼낼 거예요?”
이히의 눈이 커졌다. 움츠렸던 날개도 다시 파닥이기 시작했다.
죄를 감추고자 큰 소리를 내던 방금 전과는 전혀 딴판이다.
참 알기 쉬운 반응이었다.
이런 이히지만 코볼트나 고블린의 우두머리보다는 나았다.
비슷한 급수일 줄 알았는데 이히가 훨씬 똑똑했다.
그 점은 지금 생각해도 의외지만 잠시 머릿속 구석으로 집어넣고, 나는 헛기침을 한 차례 내뱉었다.
“흠! 그 정원에 마수가 들어오지 않도록 만들 수 있나?”
“그럼요. 안전지대 설정 말이죠? 넓지는 않겠지만 이히가 설정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어렵게 꾸민 정원을 나쁜 마수들이 들어와서 망가트리면 슬플 테니까요.”
안전지대 설정이라.
그런 게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은 있지만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제는 필요할 듯했다.
각성자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장소. 던전에서 생활하며 강해지도록 유도할 수 있는, 훌륭한 기반이었다.
포인트의 여유도 있겠다, 본격적으로 던전의 내실을 다질 때가 왔다.
“우선 네가 만들었다는 정원을 봐야겠다.”
“네? 아, 아직 완성 못했어요.”
“아니다. 일단 보고 나서 말하자.”
“힝…….”
이히가 고개를 돌려 울상을 지었다.
굉장히 자신 없어 하는 태도다.
그러나 나는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다.
뻔히 바라보자 반쯤 포기한 듯 이히의 어깨에 힘이 빠졌다.
“알겠어요. 따라오세요, 던전 마스터. 기대는 마시고요.”
“그래.”
딱히 기대하진 않았다.
이히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조금은 기대해 주셔도 좋은데.’라며 중얼거렸다. 당연히 못 들은 척 외면하였다.
나는 이히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실 3층도 걸어서 이동하기엔 넓다.
어지간하면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는 편이 좋았다.
던전의 각 층에는 던전 마스터가 이동할 수 있도록 이동 마법진이 새겨진 장소가 있었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던전 마스터와 던전 코어의 정령만이 볼 수 있었는데, 이동 마법진이 없다면 어마어마하게 넓은 던전을 발로 이동해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육안으로 보이는 던전과 실제 던전의 크기 차이는 수 배에서 수십 배에 달한다. 내 던전이 북한산에 자리 잡았다지만 그 크기만 보고 들어왔다가 큰코다친 인간이 많았지.’
육안으로 보이는 던전의 크기도 굉장했다.
면적 21㎢, 높이 4,733미터.
면적만으로 어지간한 대도시만 하였고, 오세아니아 동북방에 있는 나우루 공화국과 같은 넓이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4,700미터면 백두산보다 약 두 배 높다.
그런데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컸다.
이만한 곳을 걸어 다닌다니, 미친 짓이다.
실제로 보이는 것만 믿고 들어왔다가 안에서 굶어 죽는 각성자도 있었다. 던전 안에선 현대 문명의 기기가 대부분 먹통이기에 조난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슈욱-!
요란한 문양이 새겨진 이동 마법진 위에 올라서자 붉은빛이 사방을 감쌌다.
곧 주변의 광경이 달라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히가 원하는 장소로 이동된 것이다.
까앙-!
까앙-!
도착하자마자 귓가를 간질이는 망치 소리.
‘……이건 어마어마하군.’
이내 보이는 광경에 나조차 압도되고 말았다.
먼저, 다섯 드워프가 열심히 망치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히는 던전의 환경을 조성할 권한이 있었고, 그 권한을 다른 이에게 나눠 줄 수도 있었다. 특히 건물을 짓는다거나 하는 건 이히 혼자서는 매우 벅찬 일이기에 지금처럼 드워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정원의 외견이다.
이건 정원이라기 보단 이상한 구축물이라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았다.
언뜻 보면 궁전 같기도 한데, 마치 똥처럼…….
아니, 똥 모양이 맞았다.
정원이라기에 풀밭에 오두막집 하나를 생각한 내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엇, 누님 오셨네?”
“뭐? 누님이 오셨다고? 어디!”
“웬 남자랑 같이 있는데?”
이히가 드워프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걸 허락한 모양이다. 이히가 나타나자마자 다섯 드워프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왔다.
‘누님?’
하지만 호칭이 이상하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히의 기고만장해진 표정을 보곤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너희들! 이히가 시킨 일 열심히 했어, 안 했어?”
“했습니다!”
일렬로 늘어선 드워프가 동시에 답했다.
이히는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았다.
허리에 양손을 얹고 말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완성이 안 됐어?”
“시간이…….”
“자재가…….”
“어허. 변명은! 없으면 만들어야지! 자는 시간도 줄이고, 밥 먹는 시간도 아끼고, 씻는 시간도 없애고 일 하라고 분명히 이히가 말 했어, 안 했어?”
이 정도면 인간들 사이에서 불리는 악덕 업주 저리 가라다.
드워프들이 울상을 지었다.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누님.”
“살려 주십시오. 오늘 한 끼도 못 먹었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죽을 겁니다.”
그러자 이히가 엄포를 놓았다.
“니들이 아직 고생을 덜했구나? 최근 오크 애들 먹이가 부족해서 고민 중이었는데 안 되겠어. 너희 오크 밥이 될 테야?”
“그, 그건…….”
드워프 일동은 여전히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어지간해선 물집이 안 잡히는 드워프의 손에 물집이 잡힌 걸 보면 진짜 열심히 한 것 같았다.
“이히, 그만해라.”
나조차 이렇게 말할 정도다.
다른 사람을 부릴 때의 이히는 굉장히 엄격한 것 같았다.
이히가 손뼉을 쳤다.
“아, 애들아 빨리 인사 드려! 이분이 바로 던전 마스터셔. 너희들의 진짜 주인님이지! 이히를 대하는 것보다 더 깍듯하게! 알지?”
“헉! 던전 마스터!”
“깍듯하게. 무슨 뜻인지 몰라? 니들 진짜 혼나 볼래?”
“주, 주인님!”
드워프 다섯이 대뜸 무릎을 꿇고 땅에 이마를 박았다.
나는 이 광경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드워프들은 얼마나 시달림을 당했는지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고, 이히를 무슨 괴물 바라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일어나라.”
“아닙니다! 어찌 저희 같은 것들이 감히 던전 마스터와 눈을 맞추겠습니까?”
“너희들이 일어나도 내 눈을 맞출 수는 없다. 일어나라.”
“그, 그것도 그렇군요.”
드워프는 작다. 요정보다는 크지만 내 배꼽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이 일어나도 나와 같은 선상에서 눈을 맞추는 일은 없었다.
내심 납득한 드워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내 눈을 보며 움찔했다.
나는 작게 혀를 차고 말했다.
“지금 너희가 만들고 있는 게 뭐지?”
가운데에 선, 대표 드워프가 입을 열었다.
“던전 마스터께서 쉬실 휴양처라고 누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모양은 똥이지만 휴양처라는 것 같았다.
이 디자인을 구상한 게 이히라는 것쯤은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혹시 이히에게 신체가 존재했다면 뇌를 한 번쯤은 구경해 보고 싶었다.
주름이 있나, 없나…….
“완공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드워프가 슬쩍 이히의 눈치를 보았다.
“자, 자재만 있다면 5일이면 충분합니다.”
“상당히 빠르군.”
“무언가를 만드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확실히 자부심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건물을 절반 정도 축소시켜서 우선 다섯 개 정도를 층마다 하나씩 설치하고 싶다. 기한은 한 달. 필요한 드워프의 숫자와 자재를 이히에게 말해라. 지금처럼 혹사시키지 않는 선에서 일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 두마.”
“저, 정말입니까?”
“하루 세끼의 식사와 1시간에 10분씩 쉬는 시간을 주겠다. 그리고 앞으로 최소 6시간은 취침할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랬다간 드워프들이 먼저 죽어 나갈 것 같았다.
이것도 굉장히 짜게 주는 거지만 지금 이들의 몰골은 이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소한 생명을 유지하려면 필요한 발언이었다.
“오오! 던전 마스터시여! 내 주인님이시어!”
“믿습니다. 진정 믿습니다!”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거짓이 아닌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
무릎을 꿇으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히를 쳐다봤다.
‘얼마나 못살게 굴었기에 이 정도이냐?’하고 묻는 내 눈빛에 이히는 고개를 돌려 모르는 척 콧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