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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28화 (28/242)

던전 사냥꾼 28화

‘역시…….’

능력치는 내가 소폭 높다. 하지만 나락 군주의 심장과 이히의 축복이 없었다면 오히려 내가 밀리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 두 개로 능력치가 40 이상 올랐기에 겨우 박빙이다. 그만큼 대공 아리엘은 빠르게 힘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나는 이미 전생의 무력을 8할가량 되찾은 상태였다. 슬슬 능력치의 상승이 적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엘은 다를 터였다. 어쩌면 500의 잠재력을 다 채울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려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 정도로 강해지는 아리엘을 내가 따라잡았고, 앞으로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아리엘에겐 없는 전생의 기억이 내겐 있었다. 나락 군주의 심장 역시 전부 개방되지 않았다.

스킬은…… 이건 어쩔 수가 없다.

마계에서 나는 철저한 육체파였다. 전생에서 포인트로 배운 스킬은 회귀하며 모두 초기화가 되어 버렸다.

허나 아리엘은 마계에서도 강력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하늘을 뒤집고 땅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졌다.

지금 보유한 스킬의 등급도 한두 단계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는 마계에서 보였던 힘을 아직 전부 회복하지 못한 상태. 스킬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나.

‘아직 어비스 소드를 익히지 않은 건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리엘의 전매특허 스킬인 어비스 소드가 보이지 않아서다.

닿는 모든 것을 0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기적인 스킬이, 지금 아리엘의 상태창에는 없었다.

‘어비스 소드를 익히기엔 능력치가 부족한 모양이군.’

납득이 됐다. 능력치를 전부 회복했다면 몰라도 지금 저 정도로는 어비스 소드를 구사할 수 없다.

아주 강력한 스킬은 그게 무엇이던 양날의 검이다. 함부로 손을 댔다간 자멸하고 만다.

대공 아리엘은 무기를 훑어보고 있었다. 웨폰 마스터라는 칭호답게 모든 무기를 다루는 데 능숙한 그녀다. 좋은 무기를 발견하면 구매하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아리엘의 전신을 다시 한번 훑었다.

마왕의 적통임을 증명하는 이마에 난, 기다란 두 개의 뿔, 엘프와 비슷한 뾰족한 귀, 조각이라도 한 것처럼 아름다운 이목구비, 흑색의 갑주가 한데 어우러져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 그것이 아리엘 디아블로였다.

“흠?”

아리엘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도 지지 않고 시선을 던졌다.

“처음 보는 마족인 듯한데. 너는 누구냐?”

나는 현재 반쪽짜리 해골 가면을 쓰고 있었다.

물론 우리 둘은 구면이다. 하지만 내가 해골 가면을 벗더라도 아리엘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허접한 마족의 얼굴 하나하나를 외우고 다니기에 그녀는 너무나도 고결한 존재였으니까.

마계에서 아리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처참하게 깨진 전적이 있었기에 차라리 기억해 주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래도 내심 쓴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랜달프 브뤼시엘.”

아리엘의 눈빛이 달라졌다.

내가 이름을 말함과 동시에 마력을 개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마력이 높을수록 상대에게 공포감을 주는 가면도 그녀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풍기는 마력의 향이 제법 쓸 만한지고. 어느 대공의 밑에 있느냐?”

이름까지 말했는데, 역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전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나를 생존력이 뛰어난 벌레라고 칭했다. 끝까지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던 걸 이미 알고 있던 바였다.

하지만 과거는 지나갔다.

앞으로 그녀의 귀에 내 이름이 쉴 새 없이 들려서 결국은 기억할 수밖에 없도록 하면 된다.

그리하여 진정한 대적자가 되리라.

네 명의 대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인이 되고 말겠다.

“누구도 내 위에 있을 수는 없다.”

내 목표는 마왕.

대공들 따위가 내 위에 있을 수는 없었다.

아리엘의 표정에 흥미로움이 떠올랐다.

“실력에 대한 자신인가, 아니면 철없는 오기인가……. 어느 쪽이던 현명하지는 않구나.”

“현명하다 하여 무조건 승리를 하는 건 아니더군.”

때로는 쇠심줄과 같은 고집과 무소와 같은 돌진력이 승리를 가져가 주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아리엘은 그러하였기에 전생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돌격, 돌격, 또 돌격하여 우파 대공의 목을 딴 게 아리엘이다.

그 사이에 현명함은 1그램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현명함을 논하다니.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아리엘이 깔깔 웃었다.

“바로 그렇다. 전사들의 싸움이란 무릇 몸을 부딪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머리를 쓰고 전략을 짜는 건 도저히 성미에 안 맞아. 그딴 건 마왕의 재목이 아니야.”

그러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여봐라, 섬기는 마족이 없다면 날 섬겨라. 그대의 생각은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 순간이었다.

[언령(U)이 발동되었습니다. 심안(U)으로 간파하는 데 성공합니다.]

[간파에 성공하여 언령의 심상 지배력이 낮아집니다. 방어율 50%]

[지능 보정 66! 방어율 85%]

[사용자가 시전자보다 마력이 높습니다. 20%의 보정 효과가 더해져 102%의 방어율에 도달합니다. 언령의 심상 지배에서 완전하게 벗어납니다.]

아리엘 디아블로의 보유 스킬 ‘언령’이 발동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령을 완전하게 무력화시켰다.

능력치 자체는 내가 조금 더 우월하다. 심안에 이런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역시 언령에 버금가는 사기 스킬이고, 마력의 우위를 가져와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아슬아슬했다.

나락 군주의 심장이 이식되어 지능이 큰 폭으로 상승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언령의 지배를 조금이라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지능이 부족하군.’

지능은 상태 이상의 저항과도 관계가 있었다.

마력이 아무리 높아도 지능이 낮으면 상태 이상과 관련하여 약점이 생긴다. 지능과 마력이 둘 다 같이 높아야만 이런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나는 차갑게 아리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절한다.”

“하하!”

그러자 아리엘이 크게 웃어 젖히곤 말을 이었다.

“한 방 먹었도다. 영락없이 오기에 찬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실력에 자신이 있는 부류였구나. 내 언령을 방어해 내다니! 그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면 목을 잘라 버리려 하였거늘.”

간을 봤다는 말이다.

역시 대공 중에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세계관이 존재했고, 그 속에서만 움직였다.

자신의 틀을 벗어나면 이런 식으로 즉시 죽이려고 한다.

지극히 마족답고, 지극히 아리엘 대공답다.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허튼 수는 그만둬라.”

이곳은 마계의 이면. 어둠의 정령왕이 다스리는 곳.

여기서 힘을 사용한다면 그와의 관계도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대공이라 하여도 그 정도 상식은 있을 터.

살짝 도발적으로 말했으나 아리엘은 오히려 귀여운 장난감을 찾았다는 눈빛이다.

“후후! 랜달프 브뤼시엘. 오냐, 오늘은 내가 물러나겠다. 이곳은 참으로 흥미로운 곳이거든. 오늘 같은 날 시비를 일으키고 싶은 마음은 없노라.”

아리엘은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전생을 통틀어, 대공 아리엘이 내 이름을 부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가까스로 살아 나가는 나를 벌레처럼 여겼고,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다. 결코 내 이름을 입에 담은 적이 없었다.

‘과거와 미래는, 달라진다. 내 손에 의해.’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확실히 옳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키히히, 엄청나게 무서운 분이십니다. 저분이 그 유명한 아리엘 디아블로 대공이시군요.”

여태껏 숨죽이고 있던 어둠의 정령이 겨우 숨을 토해 냈다.

아리엘 디아블로. 이곳에서도 그녀는 상당히 유명했으며 그 능력은 전부 개화하지 않고서도 압도적이었다. 상급의 정령이라면 압박을 느낄 만하였다.

나는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그에게 말했다.

“스킬의 등급을 올려 주는 비약은 어디 있지?”

“현자의 비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키히히, 감이 좋으시군요. 아주 뛰어난 물건입지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내가 감으로 때려 맞췄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해 주면 나는 편해서 좋았다.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

현자의 비약은 간혹 마계 옥션에 등장한 물건이다. 그 효능은 사용하기에 따라 수백만 포인트의 값어치를 충분히 하기에 나올 때마다 경쟁이 과열되었다.

그러나 나는 굳이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150만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마족은 나밖에 없을 테니까.

150만은커녕 100만도 없을 것이다.

어둠의 정령이 한 곳에 멈춰서 손가락으로 작은 물병 하나를 가리켰다.

“바로 저겁니다. 아, 손을 대진 마십시오. 마신님의 결계가 쳐져 있어요. 정당한 절차를 걸치지 않고 섣불리 손대면 소멸당할 겁니다.”

알고 있는 사항이다. 물건에는 보이지 않는 결계가 쳐져 있다. 하지만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강력한 반발력을 느낄 수 있다.

일종의 경고인데, 그 경고를 무시하고 건드리면 끝장이다.

한 번 방어력이 뛰어난 상급 마수를 이용해서 건드려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상급 마수는 그 자리에서 증발해 버렸다. 그걸 직접 본 이후 건드릴 생각을 아예 버렸다.

나는 심안을 열어 물건을 확인했다.

이름: 현자의 비약

설명- 연금술의 총체. 유니크(U) 미만 스킬의 등급을 한 단계 끌어 올린다. 유니크 등급 스킬에 사용할 경우 반 단계 위인 익셉셔널 유니크(Ex U) 등급이 된다. 그 이상의 등급에는 효과가 없다.

맞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즉시 구매하겠다.”

“키히히. 손님, 몇 포인트나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족분들께서 가지고 있는 평균 포인트가 13만에 불과하다는 걸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즉시 구매가도 그에 맞춰 정해지지요. 현자의 비약을 즉시 구매하려면 52만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차라리 경매까지 가는 편이 훨씬 더 싸게 살 수 있을걸요?”

13만 포인트라.

생각보다 엄청나게 적었다.

내가 보유한 150만 포인트가 평균치를 상승시켜서 그나마 저 정도일 것이었다.

‘경쟁도 필요 없겠군.’

어디까지나 평균값.

몇 배를 가지고 있는 마족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평균값의 10배를 넘게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52만 포인트는 부담스럽지만 생각한 바가 있었다.

‘현자의 비약은 이 자리에서 구매할 필요가 있어.’

구매 즉시 복용할 필요가 있었다. 경매가 진행될 때 구매하면 경매가 끝나기 전까지 물건을 받을 수 없으니까.

내가 등급을 올리려는 스킬은 심안.

심안은 여러모로 확인되지 않은 기능이 많았다.

아리엘의 언령을 간파한 것과 같은, 부가적인 효과 말이다.

이건 순순히 내 예상이지만 본래라면 발동된지도 몰랐어야 할 언령의 발동을 간파했듯 심안의 등급이 높아지면 봉인된 물건도 간파할 수 있지 않을까?

경매 물품 중에는 봉인된 무구 몇 개가 항상 등장했다.

하지만 비싼 데다 워낙 복불복의 성격이 강하여 구입하는 마족은 적었다.

전생에서 심안 스킬을 보유했던 임펠라 공작도 봉인된 물건의 등급을 간파할 순 없었다.

그런데 그게 심안의 등급이 낮아서 그런 거였다면?

현자의 비약은 단순히 포인트가 많다고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등장하는 족족 대공들의 차지가 되기 일쑤여서 그 휘하 공작인 임펠라는 하나도 구할 수 없었다.

대공들은 큰 공을 세운 휘하 마족에게 현자의 비약을 상으로 건네기도 하였는데, 임펠라 공작은 심안을 이용해 포인트 벌이를 했다. 눈 밖에 났으니 당연히 그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마계에서 이미 익혔던 것이라면 몰라도 스킬북으로 배운 스킬은 임의로 등급을 올리기가 무척이나 까다롭다.

심안은 유니크 등급에서 정체되어 있었을 터.

‘실험해 볼 가치는 있다.’

어차피 지능이 낮아 심안의 등급이라도 올려야 할 상황이었다.

내 취약점은 상태 이상이다. 이것만 대비할 수 있다면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나의 능력치는 아리엘 대공조차 넘어설 수준이었으므로!

그리 생각하면 큰 손해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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