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30화 (30/242)

던전 사냥꾼 30화

“20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더 없으면 이대로 크라스라는 랜달프 님에게 낙찰됩니다!”

드보롱이 재촉하자 마족들의 인상이 바뀌었다.

동시에 그들은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20만 포인트가 있는 마족이 없지는 않았다.

각 진영마다 한두 명씩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중요한 말이다.

크라스라보다 뛰어난 물건이 나온다면 포인트가 많은 마족을 투입하여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포인트를 몰아주고 싶어도 마신이 만든 시스템에 의거해 정당한 교환밖에 성립되지 않았다.

요컨대 필요 없는 물건을 넘기고 많은 포인트를 받는다거나 하는 행위는 불법으로 간주되어 페널티를 받는다.

양측의 포인트가 몇십 퍼센트 깎여 나간다든가, 몇 년간 포인트 거래 불가가 된다든가 하는, 아주 막강한 페널티였다.

결국 네 진영 모두 지켜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나왔다.

경매는 이제 막 시작했을 따름이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크라스라보다 좋은 물건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시작이 저 정도라면 분명히 그럴 것이었다.

드보롱이 가장 뛰어난 걸 처음에 선보인다 했지만 그건 ‘겉’에 지나지 않는다. 마수야 포인트만 있다면 구할 수 있는 것이나 그들이 바라는 건 포인트를 가지고도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아이템, 혹은 스킬이었다.

‘제법 냉정하게 나왔군.’

객관적인 시선에서 판가름하자면 저들의 선택이 옳다. 많은 포인트를 보유한 마족은 최대한 아끼는 게 경매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비결이다.

‘냉정하게 나왔지만…….’

나는 입이 비틀리려는 걸 가까스로 막았다.

마족도, 정령도, 그 누구도 모르고 있다.

진정한 가치는 크라스라가 아니라 크리슬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이때만큼 심안의 존재를 기꺼워한 적이 없었다. 마음 같아선 한바탕 크게 웃어 버리고 싶었다.

병약한 겉모습에 속아 진정한 가치를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방의 상태창을 볼 수 있는 건 내가 알기로 심안밖에 없다. 나 역시 심안이 없었다면 크리슬리의 진정한 값어치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전생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건 그 전에 죽어서겠지.’

더불어서 크라스라가 인간을 증오했던 이유도 예상이 갔다.

마치 길 가다가 에픽 등급의 아이템을 주운 기분이었다.

크라스라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배기는 그의 여동생, 크리슬리였다.

‘보물의 가치는 그걸 알아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크리슬리는 최고의 보물이었다. 비록 먼지를 타고 빛이 바래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잠재된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것을 내가 알아보았으니 전생에서처럼 허무하게 부서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손을 거쳐 세공된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요동쳤다.

나는 다시 한번 심안을 열어 크리슬리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크리슬리

직업: 없음

칭호:

* 진마룡의 피를 잇는 자(Epic, 지능마력+6)

능력치 :

힘 19 지능 94(+6)

민첩 21 체력 10(-9) 마력 28(+6)

잠재력(172+3/478)

특이 사항: 진마룡의 강대한 힘을 이었으나 동시에 구음절맥(九陰切脈)이라 칭해지는 빙룡의 저주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스킬: 없음

미쳤다.

이 한마디밖에 할 수 없는 잠재력과 지능이었다.

크라스라는 단순히 용의 피를 가진 자라는 칭호였지만 크리슬리는 진마룡의 피를 이었다. 등급도 다르다. 애당초 진짜는 크리슬리였다.

특히 지능의 경우 ‘초월자의 벽’이라 불리는 100에 도달했다.

100!

경악스러운 수치다.

순수 능력치는 80부터 10단위로 올리기가 까다로워지는데, 90부터는 1 올리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다. 그래서 더욱 칭호나 아이템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고.

게다가 90부턴 1이 올라갈 때마다 능력의 체감이 달라진다.

칭호의 효과로 100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순수 능력치마저 무려 94에 달했다.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모든 상태 이상에 있어서 면역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에픽 등급의 상태 이상 스킬과 100이 넘는 마력의 소유자가 있지 않은 이상, 상태 이상 부분에서만큼은 무적이라 불릴 정도였다.

뿐만인가?

지능은 마법의 캐스팅 속도, 스킬의 반발력, 스킬의 숙련도와도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었다.

등급과 위력이 강한 스킬일수록 발동 시간이 길거나 몸에 가해지는 페널티가 많지만 지능이 높으면 이 역시 무마시킬 수 있었다.

또한 무슨 스킬을 배우던 엄청난 속도로 등급을 올려 버릴 것이다. 그것이 설혹 스킬북으로 배운 스킬이라 하더라도, 노멀 스킬조차 하나밖에 없는 유니크 등급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지능 100의 위력이다.

어찌 보면 지능만큼 만능인 능력치가 없었다.

하지만 지능은 타고나거나 특수한 혈통을 이어받거나, 나처럼 나락 군주의 심장 같은 아이템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올리기가 매우 까다롭다.

크리슬리는 적어도 위 세 가지 사항 중 두 가지에 부합할 터. 그랬기에 지능 100이라는 경이로는 능력치가 완성된 것이겠지.

‘문제는 체력이군.’

체력이 1이다.

빙룡의 저주로 –9가 된 탓이다.

이건 죽지 못해 살아 있다고 봐야 한다.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텐데 그 견고한 정신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창백한 혈색과 스스로는 일어서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짝짝!

30여 초의 여유를 둔 뒤 드보롱이 손뼉을 쳤다.

아무도 손을 드는 이가 없었다. 최종 낙찰이 결정되었다.

“크라스라가 20만 포인트에 랜달프 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물품은 경매가 끝나면 자동으로 던전으로 이동됩니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본래는 대공 우파에게 갔어야 할 크라스라와 크리슬리가 내게 왔다. 아마도 오쿨루스가 제안한 10만 포인트보다 조금 더 불러서 둘을 가져갔겠지만 과연 20만 포인트는 무리인 모양이었다.

‘일단 가장 큰 고비는 넘었어.’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어둠의 정령들이 나타나 크라스라와 크리슬리가 담긴 철창을 다시 옮겼다.

이제 무엇이 나올까?

여유롭게 감상하며 드보롱에게서 시선을 옮기자 이번에는 건틀렛 하나가 작은 함 위에 담긴 채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경매 물품은 바로 ‘빛나는 건틀렛’! 근접전을 선호하는 분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상대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게 만드는 강렬한 반짝거림! 단단함은 이루 말할 데 없으며 사용자에 따라 일기당천의 힘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감히 방금 전 소개한 경매품과 비견될 최고의 아이템. 시작가는 10,000포인트입니다!”

드보롱의 말만 듣자면 빛나는 건틀렛은 적어도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어야 했다. 하지만 심안을 열은 결과 나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름- 빛나는 건틀렛(Rare)

설명: 수천, 수만 번 갈고닦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건틀렛. 무척이나 단단하다.

‘사기꾼.’

수완가, 장사치.

그리고 사기꾼.

드보롱에 대한 내 평가다.

확실히 빛나는 건틀렛은 이름처럼 반짝였다. 단단하다는 설명이 따로 붙을 정도로 강도가 높긴 할 것이다. 아주 강한 사용자가 착용하면 그야 무구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드보롱은 말했다. 방금 전 소개한 경매품과 비견된다고.

비견되긴 하되 필시 크라스라가 아니라 크리슬리 쪽이었다. 이름을 호명하지 않은 걸 보면 확실하다.

그것도 모자라서 등급도 따로 말하지 않은 채 대뜸 높은 경매가를 잡아 버렸다. 이러면 듣는 입장에선 ‘좋은 아이템이구나!’ 하고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다.

아이템 감정 스킬이 있다면 모를까, 이 시점에서 그걸 배운 이는 없을 것이다.

레어 등급에다가 5만 포인트나 하는 스킬북.

20포인트에 불과한 아이템 감정 스크롤을 사용하면 되는 걸 굳이 5만 포인트나 들여서 스킬을 배우려 하지는 않을 테니.

만에 하나 있다손 쳐도 자기 진영 쪽에만 이야기를 흘리고 입을 꾹 닫을 게 분명하다. 남은 세 명의 대공과 그들의 진영이 한 방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드보롱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은근히 빠져나갈 구멍도 마련해 놓는 치밀함마저 있었다.

자연스럽게 혀가 내둘러졌다.

“1만.”

“이번에도 대공 아리엘 님께서 시작하셨습니다. 1만 포인트!”

“2만.”

“쉬지 않고 달리시는군요. 백작 랜달프 브뤼시엘 님! 2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어깨를 으쓱했다.

‘기꺼이 바람잡이가 되어 주지.’

드보롱의 의도를 알았으니 장단을 맞춰 줄 생각이었다.

이런 식으로 상대의 포인트를 소모시킬 수 있다면 바람잡이 정도는 되어 줄 수 있었다.

“3만.”

“대공 우파 님! 자 더 없습니까? 없으면 이대로 낙찰됩니다.”

“4만.”

“다시 한번 백작 랜달프 님! 안목이 역시 탁월하십니다.”

탁월하긴…….

입에 발린 소리를 잘도 한다.

“5만!”

“질 수 없다, 대공 우파 님! 5만 포인트까지 나왔습니다!”

짜증이 가득 섞인 대공 우파의 목소리였다. 이후의 입찰자는 아무도 없었고, 5만 포인트에 잡템 하나가 대공 우파에게 낙찰되었다.

“5만 포인트에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건틀렛은 경매가 끝난 직후 던전으로 이동됩니다.”

나는 가볍게 실소를 터트렸다.

잡템 중의 잡템.

빛나는 건틀렛의 위치는 그 정도였다.

그것을 5만 포인트나 들여서 구매했다.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있으랴!

이어진 경매도 그런 식이었다. 나는 바람을 잡았고, 마족들은 바가지를 쓴 채 아이템을 구입했다. 이쯤 되자 드보롱도 내 의도를 눈치챈 것 같았다.

드보롱의 눈빛이 한없이 나긋해졌다. 다른 마족을 볼 때와 나를 볼 때의 차이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눈에 띄어 그의 머릿속에 내 이름이 새겨지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경매는 일곱 번이 더 지나갔고, 마침내 열 번째 경매 물품이 등장했다.

“이번 경매품은 조금 특별합니다. 봉인된 단도! 저희도 봉인을 풀면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랜덤 아이템입니다. 마치 복권과 같지만 성공만 한다면 감히 에픽 등급의 무구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시작가 5만 포인트 되겠습니다.”

원하던 물건 중 하나가 나왔다.

잘 빠진 매끈한 단도 한 자루가 등장한 순간, 나는 심안을 열었다.

[봉인된 무기입니다. 봉인의 등급이 매우 높아 억지로 심안을 발동시킬 경우 페널티가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페널티…….

그게 무엇이든 한 번쯤은 경험해 볼 일이었다.

게다가 저런 문구가 떴다는 건, 봉인된 무구의 등급과 설명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내 도박은 반쯤 성공했다.

나머지 반은 페널티를 확인한 뒤 알 수 있을 터였다.

나는 경고창을 무시하며 다시 한번 심안을 열었다.

이름- 울부짖는 단도(Ex R)

설명: 밴시의 한이 유독 강하게 서린 단도. 착용한 이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 하루 세 번 레어 등급 스킬 ‘가속’ 사용 가능

[봉인의 등급이 매우 높아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72시간 동안 힘이 –10 저하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