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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34화 (34/242)

던전 사냥꾼 34화

순간 떠오르는 메시지창들.

첫 번째 공격 스킬 ‘뇌신공’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좋군.’

찌릿찌릿한 감각이 올라왔다. 뱀이 똬리를 틀고 몸을 훑는 것 같은 묘한 기분에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이어, 전신에 자리 잡은 뇌신공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치직!

정전기가 일 듯 몸 전체에 스파크가 생기며 주변을 밝히기 시작했다.

‘아직.’

여기서 끝나면 유니크 등급이 운다. 이런 스파크 정도는 유은혜도 발생시킬 수 있었다.

막 배웠다곤 하나 몇 가지 더 실험해 볼 것이 남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뇌신공.

이 녀석은 뱀이었다.

매우 민감하고, 느리지만 효율적으로 이동한다.

방해하지 않고 풀어놓자 육신이란 바닥에 배를 대고 몸을 쓸더니 혀를 날름거렸다.

내 몸은 녀석이 처음 디디는 장소. 경계하며 주변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한참을 서성이던 녀석이 안전하다고 판단된 통로를 골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끝에서 머리끝으로, 마치 길을 다지듯 통로를 넓혀 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팠는지 혈류에 돌아다니는 마력을 집어삼켰다. 배가 터지도록 삼켜 댄 이후 느릿느릿 배꼽 아래 보금자리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마치 배설하듯…… 녀석은 자신에게 맞도록 변화시킨 나의 마력을 보금자리 주변에 흩뿌려 댔다.

본래 가지고 있었던 무 속성의 마력이 뇌(雷) 속성으로 변화한 것이다.

내가 해 준 일이라곤 녀석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길을 터 준 것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살짝 걱정을 하긴 했다.

혈류에 돌아다니는 마력, 그것은 나락 군주의 심장과도 연관이 있었다.

다행히 이 뱀과 같은 녀석은 나락 군주의 심장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심장 주변으론 얼씬도 하지 않았다. 마치 무서운 무언가의 존재를 인지한 듯 몸을 떨며 일부러 멀리했다.

그래도 통로는 반듯하게 잘 닦아 놓았다. 앞으로 뇌신공을 발휘할 때 보다 효율적이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뇌신단(雷神丹)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뇌신을 느끼고 교감하는 2성을 건너뛰어 기운의 집약, 단을 형성하는 3성에 도달합니다.]

[400만 와트(4MW)에 해당하는 전력량을 신체에 품었습니다.]

뇌신.

번개의 신이 아니라 이 뱀의 이름이었던가?

나는 웃고 말았다.

참으로 거창한 이름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나는 뇌신이 잠든 장소를 관조했다.

배꼽 위에 뇌 속성의 마력이 뭉쳐 있었다.

이것이 단(丹)이었다.

‘전력량 400만 와트라.’

1성이 올라갈 때마다 전력량은 두 배로 늘어나는 것 같았다. 몸을 돌아다니는 뇌 속성의 마력과 단 안에 잠든 기운을 합치면 처음 얻었던 것의 얼추 네 배가 되었다.

단순히 길을 트고 단을 만든 게 전부임에도 이 정도다.

‘피로하군.’

마력을 변환하는 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로가 몰려오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나머지 아이템을 확인해 봐야지.’

아직 파라노말과 분노가 남았다.

이왕지사 시작한 것, 적어도 확인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법 주머니에서 반지 형태의 아이템인 파라노말을 꺼냈다.

유니크 등급의, 제법 쓸 만한 옵션이 붙어 있어서 운만 따른다면 일발 역전도 노려볼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이름- 파라노말(U)

설명: 다섯 가지 축복 중 하나를 무작위로 내려 주는 반지. 1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2, 회복, 30분간 마력+5, 강력한 매력 부여, 무한 정력 중 한 가지 축복을 하루 한 번 얻을 수 있다.

특히 모든 능력치+2와 위급한 상황에서의 회복, 마력+5는 달콤한 꿀과도 같은 축복이다. 매력 부여나 무한 정력은 조금 쓸모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다섯 개 중 세 개면 상당히 높은 확률이었다.

나는 즉시 파라노말을 왼손 검지에 꼈다.

굳이 검지에 낀 이유는 별것 없었다.

조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의 축복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검지에 착용한 것이다.

검지는 방향을 지시할 때 사용하는 손가락. 이루고자 하는 뚜렷한 목표도 있으니 파라노말을 볼 때마다 되새길 수도 있을 터였다.

굳이 그런 정신론적 이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반지의 크기가 딱 왼손 검지에 들어맞기도 했다.

“파라노말.”

네 글자를 입에 담는다.

모든 아이템의 발동 조건은 바로 그 아이템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이었다.

곧 메시지창 하나가 떠오르며 축복이 부여됐다.

[파라노말의 다섯 가지 축복 중 하나, ‘무한 정력’이 적용되었습니다.]

[하루 동안 무한한 정력을 얻게 됩니다. 이 능력이라면 정력왕의 칭호를 얻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

할 말을 잃었다.

자연스럽게 하복부에 피가 쏠렸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파라노말의 축복이 그렇게 만들었다.

‘허, 그런 칭호도 있었던가.’

나도 엄연한 남성이다. 성욕이 없다면 거짓일 것이다.

적당히 음심이 동하기는 했지만 짐승처럼 미친 듯이 욕망이 일지는 않았다.

다만…… 그런 칭호가 있다는 점이 더 신경 쓰였다.

‘후일을 기약해야겠군.’

칭호는 얻기 힘들다. 저급한 칭호라도 얻어 두면 능력치를 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후에 기회가 생기거든 이 역시 도전해 보리라 생각하며 나는 마지막 아이템 ‘분노’를 꺼냈다.

분노.

에픽 등급의 아이템.

그리고 7대 죄악 중 하나.

생긴 것조차 범상치 않았다.

먹을 칠한 것처럼 검은색으로 얼룩진 손잡이와 검신, 날카롭긴 하나 빛을 반사하지도 않았으며 시미터마냥 날의 끝이 휘어 있었다. 그렇다고 시미터도 아니고, 한쪽에만 날이 서 있는 도 역시 아니다. 1미터가량의 길이와 두꺼운 검신. 롱소드나 바스타드 소드와 같은 느낌 또한 전혀 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정체불명!

오스웬은 무슨 작정으로 이러한 생김새의 검을 만든 걸까?

나는 다시 한번 심안을 열어 설명을 읽었다.

이름- 분노(Epic, Set Item)

설명: 신들조차 반해 버린 신화적인 대장장이 오스웬의 마지막 작품. 7대 죄악을 모티브로 만들었지만 강력한 사념이 깃들어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오스웬은 미쳐 버렸다고 전해진다.

“분노하라, 순수 악이여!”

옵션: 힘+7, 7일에 한 번 에픽(Epic) 등급 스킬 ‘분노’를 사용 가능

생김새는 둘째 치고 능력치를 올려 주는 데다 스킬까지 붙어 있었다.

두 개가 동시에 붙어 있는 경우는 매우 희귀한데, 거기다가 세트 아이템이라니…… 보고 또 봐도 믿겨지지 않는 구성이었다.

나는 스킬 ‘분노’를 주시했다.

그러자 분노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스킬:

분노(Epic)- 시전자의 마력에 비례하여 힘과 민첩, 체력이 큰 폭으로 상승하며 고통을 느끼지 않는 광전사로 돌변한다. 그러나 지능이 대폭 하락한다. 상승하거나 하락한 능력치는 일주일에 걸쳐 본래대로 돌아오지만 지능이 필요 이상으로 낮을 경우 파괴 욕구에 붙잡힐 수 있으니 주의할 것.

한마디로 육체적인 능력을 비약시킨다는 뜻이었다.

걸리는 게 있다면 지능이 대폭 하락한다는 점.

일주일에 걸쳐 회복이 된다고는 해도 무슨 현상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경매장에서의 페널티로 인해 지능이 10이나 깎여 나간 상태이지 않은가.

‘내가 사용해야 발동되는 스킬에 불과하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지능이 낮다고 스스로가 가진 정신력 또한 낮아지는 게 아니었다.

주는 나였고, 지능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이다.

파괴 욕구에 붙잡힌대도 스스로의 의지가 있다면 반드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게다가 영구적인 상태 이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시간의 상태 이상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지만 이곳은 내 던전이었다.

이곳에서 누군가가 나의 목숨을 노린다? 현재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노.”

마음을 다진 후 두 글자를 입에 담았다.

동시에…….

[높은 마력 보정으로 힘과 민첩, 체력이 8씩 상승합니다.]

[지능이 20 하락합니다.]

[상태 이상 ‘분노’에 걸렸습니다. 방어율 15%. 지능이 매우 낮아 방어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기억이 끊겼다.

* * *

나는 눈을 떴다.

순간 두통이 몰려오고 눈알이 빠질 듯이 아팠다.

이를 얼마나 악물었는지 턱이 너덜너덜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목까지 아픈 걸 보아 소리도 제법 지른 것 같았다.

“음.”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머물던 최상층의 곳곳이 파괴되어 있었다.

이히가 두려움에 몸을 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이나 지났지?”

“이, 이히가 잘못했어요, 마스터. 앞으로는 잠도 줄이구요, 말도 많이 하지 않을 거구요, 마스터를 귀찮게 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 그러니까 용서해 주세요. 이히를 해치지 마세요.”

이히가 넙죽 엎드리며 눈물, 콧물을 흘렸다.

나는 표정을 굳혔다.

‘젠장, 상태 이상의 효과가 상상 이상이군. 아예 의식을 날려 버릴 줄이야…….’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불쾌하기 짝이 없다.

파괴 욕구가 인다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입안이 썼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명량하고 밝았던 이히가 겁에 질린단 말인가.

“이히,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이히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정말 이히를 안 해칠 거예요?”

“스킬을 시험하던 도중에 잠시 상태 이상에 걸렸다. 주변 경관을 이렇게 만든 건 내 의지가 아니다.”

그나마 다행히 던전 코어는 건드리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행동을 억제한 게 틀림없었다.

‘분노 스킬을 사용해 의식이 날아가도 본능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구분하는 모양이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마법 주머니에서 영원의 꽃을 꺼냈다.

“받아라. 위로는 되지 않겠지만 경매장에서 구입해 온 꽃이다. 물을 주지 않아도 시들지 않는 꽃이니 아름답게 길러다오.”

“히잉…….”

이히가 조심스럽게 날아와 내 손에 들린 영원의 꽃을 끌어안고 훌쩍였다.

영체지만 던전 코어의 요정이다. 이쯤의 물리력은 행사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말했다.

“혹시 내가 이 상황에 빠지고 며칠이 지났는지 아느냐?”

“일곱 날이 지났어요. 그리고 이히는 무서워서 던전 코어 밑으로 도망가 있었어요. 마스터가 이히를 다치게 했으면 이히는 정말 슬펐을 거예요.”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마.”

“네, 마스터.”

이히가 콧물과 눈물을 닦으면서 답했다.

나는 혀를 찼다.

분노를 너무 얕봤다.

상태 이상에 걸려도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냔 안이한 마음도 없진 않았다.

‘조금 더 신중하게.’

아예 의식이 날아가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바.

앞으로는 더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간 워낙 막힘없이 달려왔기에 이번에도 서두른 감이 있었다.

이번 일을 타산지석 삼는다면 이런 실수를 반복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역시 지능이 낮은 게 걸리는군.’

아무리 보조적인 역할이라도 너무 낮았나 보다.

나는 이마를 짚으며 상태창을 띄웠다.

이름: 랜달프 브뤼시엘

직업: 마계 백작(던전 마스터)

칭호:

* 불굴의 전사(Ex U, 모든 능력치+2)

* 최초로 요정의 축복은 받은 자(U, 마력+6)

능력치 :

힘 79(+9) 지능 64(+2)

민첩 74(+2) 체력 80(+2) 마력 82(+8)

잠재력(379+23/500)

전력량: 4MW

특이 사항: 나락 군주의 심장을 이식했습니다. (온전한 힘을 개방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스킬: 스킬 조합(R), 심안(Ex U), 뇌신공(U), 분노(Epic)

일주일이 지나 모든 능력치가 회복되어 있었다.

페널티로 떨어졌던 능력치 역시 회복되었다. 분노의 옵션으로 인해 힘도 7이 상승했으며 스킬도 생성되었다.

상태창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을 자제해야겠어.’

진짜 문제는 스킬을 발동할 당시의 상황이다.

힘과 체력, 민첩이 올랐지만 대신 지능이 떨어졌다.

누군가가 상태 이상 스킬을 사용한 게 아니라 내가 발동시킨 것이기에 심안으로 간파할 수조차 없었다.

덕분에 미친 전사가 되어 닥치는 대로 주변을 무너트렸다.

물론 그만한 페널티를 지고도 사용할 만큼 분노 스킬은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일단 스킬로 능력치가 오르는 경우는 매우 희귀했다.

거기에 육체적 능력치가 8씩 오르는 데다, 아이템 자체에서 힘을 7 올려 준다.

오직 힘만 따져 봤을 때 15가 상승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트윈 헤드 오우거급의 파괴력을 선사할 수 있었다.

육탄전에 있어선 절대적인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지능을 올려 상태 이상을 피할 수 없는 이상,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을 자제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아, 그리고요, 마스터. 다크 엘프 크라스라가 며칠 전부터 마스터를 뵙고 싶어 해요. 불러오면 죽을 거 같아서 이히가 만류했는데도 계속 요청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갑자기 생각났다 듯 영원의 꽃을 품에 안은 이히가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러오너라. 지금은 괜찮으니.”

“예. 그런데요, 마스터. 매우 피곤해 보이세요. 이히가 사실 양봉을 조금 했거든요? 맛있는 꿀을 얻을 수 있어요. 꿀물을 마시면 피곤함이 싹 날아갈 것이에요.”

피식한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나 겁에 질려 있었던 주제에 금세 태도가 바뀌었다.

내가 제정신을 되찾은 게 더욱 기쁜 모양새다.

이래서 던전 코어의 요정은 미워하려야 미워하기가 힘들다.

전생에선 워낙 독선적인 노선을 탔는지라 아예 무시했지만…….

“타 오너라.”

“예! 마스터,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히가 맛있게 섞어 드릴게요. 크라스라는 그다음에 부르고요.”

“그래.”

이내 신이 난 듯 이히가 꿀을 채취하러 갔다.

영원의 꽃은 여전히 꽉 붙들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크라스라를 떠올렸다.

‘애가 많이 탔겠군.’

조만간 크라스라가 찾아오리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내가 일주일이나 만나 주지 않았으니 어지간히 애가 탔을 것이다.

‘엘릭서를 대가로 너는 무엇을 내놓을 것이냐.’

흥미가 동했다.

아무리 크라스라와 크리슬리가 다시없을 유망주라곤 하나,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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