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39화
‘그나저나.’
엘리베이터를 나온 순간 찔러 오는 시선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
5층은 다목적실이었고, 주로 회화의 장이 되는 장소다.
절반 정도가 익숙한 얼굴이었으나 나머지 절반은 생소했다.
지난 한 달간 인원 확충을 크게 한 모양인데…… 시선을 보내오는 이들 대개가 기존의 길드원들이었다.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그 시선 속에 적의가 섞여 있음을 눈치챘기에 크라스라가 나선 것이다. ‘다 쓸어버려도 되느냐.’고 물은 것도 김태환보단 저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김태환은 얼굴을 찌푸렸을지언정 적의를 보내진 않았다.
그렇다면.
‘충고였나?’
다른 이들을 조심하라고, 자신처럼 성장한 이들을 상대할 자신이 없으면 험한 꼴 보기 전에 떠나라는 뜻이었다.
어쩐지 말하는 태도가 부자연스럽다 싶었다. 아니라면 난데없이 신입의 이야기를 꺼내거나 레어 등급 스킬을 얻었다는 자랑 등을 할 이유가 없었다.
단순히 강자의 논리대로 생각한 게 오산이다.
그런 식으로 돌려서 말하다니…….
‘하!’
답지 않은 술책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이곳은 5층 플로어, 회화의 장.
그런데 돌아가는 꼴이 예전과 조금 다르다.
일단 몇몇 그룹으로 나뉘어 뭉쳐 있었다. 예전과는 확실히 차별된 광경이었다.
파벌.
그 두 글자가 떠올랐다.
하여간 내가 없는 한 달 동안 생각보다 많은 일이 생겼음은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길드 마스터가 사무를 처리하는 방은 중앙 좌측에 존재하고 있었다.
문 앞에 선 나는 크라스라에게 말했다.
“앞에서 대기해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김용우는 안경을 낀 채 잔뜩 쌓인 서류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누구야? 한동안은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나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말하던 김용우가 내 목소리를 듣더니 몸을 움찔하며 시선을 옮겼다. 이어 ‘어헉!’ 하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자빠졌다.
잠시 후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김용우가 안경을 책상 위로 올려놓곤 다시 나를 쳐다보고, 이내 미간을 주물러 피곤함을 호소했다.
“3일 밤낮 철야를 했더니 기가 허해졌나…….”
“데빌 헌터 공격대를 해체했더군.”
기존의 인원들밖에 모르던 그 이름이 튀어나오자 김용우는 경악했다.
“지, 진짜 랜달프 님이십니까?”
“가짜 랜달프도 있나?”
“오오, 세상에! 신이시여!”
김용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마치 진짜 신이라도 영접한 듯 여겼을지 모르는 몸짓.
“공격대를 해체한 원인이 뭐냐.”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본론을 묻자 김용우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다들 주인님이 죽은 줄 알았습니다. 무, 물론 저는 아닙니다만.”
“내 죽음이 원인이 되어 공격대가 해체됐다?”
숨길 것도 없다고 판단했는지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김용우가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공격대는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잠정적 유보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유보 상태?”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20여 일 전, 길드 인원 확충안이 나오면서부터 문제가 대두됐습니다. 데빌 헌터 공격대에 주어진 특혜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었지요.”
“계속 말해라.”
입술로 혀를 핥은 김용우가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시했습니다. 제깟 것들이 항의해 봐야 별일이 생기겠냔 안이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놔두니 어느새 불길처럼 번져 있더군요. 흔히 말하는 마녀사냥이었습니다. 평소 주인님의 행실을 거론하거나 세 명뿐인 숫자로 공격대를 논하는 게 말도 안 된다는 등의 반응이었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 김용우가 이어서 말했다.
“당시 저는 인원 확충과 안전지대 선점 건으로 바쁜 상태였습니다. 해서 적당히 놔두면 알아서 잠잠해지리라 오판을 했지요. 주인님이 돌아오신다면 이 역시 해결되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내가 돌아오지 않았지.”
크라스라와 크리슬리의 일을 해결하느라 한 달을 넘게 자리를 비웠다.
이번 일은 그사이 벌어진 것이었다.
김용우가 우울한 얼굴로 마저 이야기하였다.
“예, 시간은 더 지나갔고…… 새로운 인원이 들어오며 분위기가 훨씬 험해졌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길드원과 신입들을 회유해 발언권을 높이려는 이들도 나타났습니다. 모두 길드를 설립할 때 힘을 보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길드의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려 했지요.”
김용우의 어깨가 축 처졌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길드가 커지고 인원이 늘면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아지는 게 사실인데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습니다. 길드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이곳이 정치판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할 지경이니, 후우! 진절머리가 나서 서류 더미에 파묻힌 생활이나 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김용우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몸짓에 거짓은 없었다.
그는 스스로 학력이 안 됨을 시인한 적이 있었다.
그나마 거래를 할 줄 아는 눈과 입이 있어서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길드를 운영하는 건 처음 있는 일.
하여 잡음이 생기고 파벌이 나뉘었다. 눈치를 챘을 땐 늦었다.
어느새 정치판이 되어 버린 길드 내에서 길드 마스터의 힘은 나날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길드 하우스나 길드를 설립한 게 온전히 김용우의 힘이었다면 모르지만 모두 공동으로 설립하고 공동으로 자금을 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길드가 커질수록 욕망이 일었겠지.’
처음에는 화목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소수의 인원으로 친목하며 공격대를 짜고 던전을 공략하는 자체에 큰 의미를 뒀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천명회 길드는 대한민국 제일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건드려 볼 만했다.
아마도 전생에서 김용우가 길드 마스터의 직위를 잃게 된 것 역시 이와 비슷한 일 때문이었으리라 여겼다. 조금 더 뒤에 일어날 일이 앞으로 당겨진 것뿐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곤 물었다.
“유은혜와 이지혜는?”
김용우가 성심성의껏 설명했다.
“그대로 놔두면 제가 못 보는 사이에 험한 꼴을 당할 것 같아 집에 돌려보냈습니다. 탈퇴를 시킨 건 아니고 이 역시 보류 상태입니다. 둘 다 수습이었던지라……. 하지만 이제 주인님께서 돌아오셨으니 복귀시키겠습니다.”
“그래야 할 것이다. 하면 길드에 남은 문제는 그뿐인가?”
“예?”
“파벌을 만든 자들. 그들의 불협화음에 이 지경이 된 것 아닌가.”
“마, 맞습니다.”
분하지만 사실이었다. 김용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데빌 헌터 공격대의 부활을 알리고 내가 돌아왔음을 공지해라. 이후 문제가 되는 자들의 목록을 작성해 내게 건네면 될 것이다.”
말이 끝난 즉시 김용우의 눈빛이 변했다.
내가 말하는바, 의미를 확실하게 파악한 것이다.
적어도 김용우는 내가 다크 워리어를 잡는 걸 봤다. 오크 두 마리를 상대하는 실력 정도는 이미 초월했음을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던 차다. 그나마 힘 있는 자들은 모두 중립을 선언해 버렸다. 복잡한 일에 관여하기 싫다는 태도였다.
김용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신규 인원 모집은 어떤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지?”
숨길 것도 없었다. 김용우가 술술 답했다.
“오디션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에 각성자들이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면 오락 프로그램으로 한 번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먼저 실험해 보는 단계입니다. 흔한 음악 오디션 방송처럼 말이죠. 그런데 이건 왜……?”
김용우가 말하는 오디션의 뜻이 무엇인지는 나도 알았다.
길드 내에서 영향력 있는 이들이 주체적으로 참가할 텐데 거기에 얼굴을 내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인원 확충, 그로 인한 파벌 형성.
당연히 오디션에 그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을 것이었다.
“특별 심사관 정도면 괜찮겠군.”
“오디션 심사관으로 참가하시겠다는 겁니까?”
“불가능한가?”
김용우가 고개를 저으며 반색했다.
“아닙니다. 제 재량으로 한 명쯤은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럼 문제없겠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깜짝 쇼를 벌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 * *
본래는 데빌 헌터 공격대의 회관이었던 2층의 넓은 홀.
그곳이 지금은 오디션장으로 꾸며지고 사용되는 중이었다.
심사관 다섯이 둥그런 흰색 탁자 위에 턱을 괴이고 앉아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천명회에서 난다 긴다 하는 유명인들이었다.
이중 두 명은 TV에도 출현한 전례가 있어서 신입 모집 희망자들의 눈에 더욱 강한 열망이 피어났다.
“362번. 가지고 있는 스킬이 뭐가 있죠?”
심사관 중 한 명이 묻자 가슴에 362라 적혀 있는 명찰을 달고 있던 남자가 크게 답했다.
“노멀 등급의 멀리뛰기, 익셉셔널 노멀 등급의 안력 증가입니다! 던전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마수들의…….”
“됐어요. 멀리뛰기를 한 번 보여 줄 수 있겠어요?”
“예, 가능합니다.”
“해 보세요.”
넓게 자리 잡은 362번 남자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멀리 뛰었다.
6미터가량을 뛴 남자가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충분히 좋은 수치지만 심사관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안력 증가 스킬을 테스트해 보죠. 제가 적은 이 글씨가 보이나요?”
심사관이 아주 작게 글씨를 적었다.
가까이서 봐도 안 보일 수준이다.
362번 남자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잘 안 보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신체적 능력치가 조금 낮은 것 같군요. 스킬이 제대로 활용이 못 되는 것 같은데. 능력치 작성표에 적힌 게 거짓말은 아니겠죠?”
“아닙니다!”
“흠, 믿겠습니다. 다음 희망자분은 조금 기다려 주세요.”
심사관 다섯 명이 채점표에 숫자를 적어 넣기 시작했다.
채점에 들어간 것이다.
스킬과 스킬 활용도, 각각의 능력치에 대한 신뢰도 등을 따져서 백 점 만점으로 기입하는 게 그들이 이번에 맡은 일이었다.
여기서 뛰어난 성적을 보이는 희망자가 있다면 2차 시험으로 들어간다. 코볼트와 고블린 중 하나를 선택해 싸우는 건데, 여기서도 합격하면 수습 길드원이 된다.
그런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줘서 자신의 그룹에 끌어들이는 것도 다섯 심사관이 비밀로 맡은 역할 중 하나였다.
하지만 362번은 변변찮은 각성자였고, 당연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다음 363번. 칭호가 있군요? 걸걸한 욕쟁이?”
363번 역시 남자였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하하, 제가 욕을 자주 하다 보니…….”
“뭐가 됐든 칭호가 있다는 건 대단한 겁니다. 스킬도 특이하게 구성돼 있네요. 고성방가, 사기 저하. 무슨 효과가 있죠?”
“그냥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욕 좀 하면 마수들이 잠깐 움찔합니다. 보여드릴까요?”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어요?”
“지능이 어느 정도만 되면 별 영향 안 받습니다. 대신 낮으면 울더군요.”
“수위를 지켜서 약하게 부탁드려요.”
이곳 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놓고 걸걸한 욕을 내뱉었다간 이곳에 모인 모두가 정신적인 타격을 입을지도 몰랐다.
“흠흠!”
목을 가다듬은 363번 남자가 욕을 내뱉었다.
“야! 이 시러배잡놈거지발싸개 같은 존만한새끼야!”
“호오.”
“……?”
“한 번은 넘어갔지만 두 번째라. 대단한 자신감이군.”
363번을 비롯한 모두의 눈이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곳엔 길드 마스터 김용우와 창백한 인상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말을 꺼낸 건 남자 쪽이었는데, 시니컬한 인상과 비웃는 듯한 입매가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심사관들은 길드 마스터보다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오히려 길드 마스터는 눈에도 안 들어온다는 듯이 행동했다.
“……!!”
동시에 그들의 눈에 경악이 가득 찼다.
귀신을 만날 때도 이보다 놀라진 않으리라.
‘아, 씨. 좆된 거 같은데?’
낌새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363번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남자, 입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어디 보기만 했는가.
네 눈은 옹이구멍이냐며 거칠게 욕설을 내뱉던 이가 바로 363번이었다.
남자와 함께 있던 피부 까만 흑인이 길드원 셋을 박살 낼 땐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남자가 길드 마스터를 대동한 채 오디션장을 찾은 건 정말 의외였다.
‘저놈이 뭔데? 뭔데 그래?’
363번의 피가 급속도로 식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