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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40화 (40/242)

던전 사냥꾼 40화

나와 김용우의 오디션장 난입으로 분위기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찬물을 제대로 끼얹은 느낌.

열댓 명의 가입 희망자들과 다섯 명 심사 위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특히 심사 위원들.

그들은 TV나 개인 방송국에도 몇 번이나 출현한 적이 있는 천명회의 간판스타들이었다. 지나가듯 본 게 전부이지만 반응을 살펴보니 내 등장이 썩 달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심사 위원의 배정 역시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았다.

이래서 정치판이란 단어를 사용한 건가?

확실한 건 길드 내에서 김용우의 입지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이었다.

“흠흠! 천명회 길드 마스터 김용우입니다. 갑자기 찾아와서 많이 당황하셨죠?”

두어 차례 헛기침을 내뱉은 김용우가 넉살 좋게 미소 지었다.

“길드 마스터!”

“와, 진짜 김용우 길마네.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야.”

심사 위원들과 달리 참가자들의 경우엔 신기한 듯 김용우를 바라봤다.

길드 내에서의 입지가 좋지 않더라도 그는 여전히 천명회의 길드 마스터였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

이어 김용우가 나를 소개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제가 아닙니다. 주인공은 바로 이분,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대장 랜달프 브뤼시엘 님!”

김용우가 손을 뻗어 나를 가리키더니 이어서 말했다.

“1층을 공략할 때 참여한 12인 중 한 명이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우신, 대단한 실력자이시죠. 오크 두 마리를 혼자서 막아낸 건 길드에서도 유명한 일화! 특별 심사 위원으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분입니다.”

“잠깐만요, 길드 마스터. 사전에 공지 받은 내용엔 특별 심사 위원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만?”

심사 위원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이제 백을 넘어가는 길드 내에서 심사 위원으로 뽑혔다는 건 영향력이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후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신입 길원들은 모두 심사 위원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은연중 따를 수밖에 없는 탓이다.

한데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앉히겠다고?

그것도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대장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거의 휴지 상태였던 데빌 헌터 공격대의 이름을 길드 마스터가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다시 부활시키고 정식으로 발표하겠다는 뜻.

그야 죽은 줄 알았던 공대장이 돌아왔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현재 길드의 상황을 생각하면 악수(惡手)를 두는 것이라고밖엔 생각되지 않았다.

공대장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나 숫자 앞에는 장사 없는 법.

길드 마스터의 후광을 등이 입었다 해도 부족하다. 한 달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그는 좌초하는 나무배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김용우는 넉살 좋게 웃었다.

그라고 돌아가는 분위기를 모를까.

말하자면 데빌 헌터 공격대는 김용우의 마지막 도박 카드인 셈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몇 달 뒤에 열릴 총회의에서 길드 마스터 자리를 박탈당할 판국이다. 아무런 저항 없이 내려오기엔 지금까지 쌓아 온 게 너무나도 억울했다.

“오늘 막 결정된 사안이니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데 있어서 다섯 명으로 진행하는 것보단 여섯 명이 낫지 않겠습니까?”

심사 위원들의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제대로 평가를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길드 마스터?”

“천만에요. 하지만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대장은 우리 길드 내에서 제일가는 실력자 아닙니까? 자격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대체 언제 적 얘기를…….”

심사 위원들은 비웃음을 흘렸다.

그중 1층을 공략할 때 함께 참여한 공격대원은 없었다.

하나둘 레어 등급의 스킬을 보유한 길드원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상, 예전의 특혜는 말도 안 된다고 판단하는 게 그들이었다.

공대장 개인이 공격대원을 뽑을 수 있고, 데빌 헌터 공격대에 참가한 대원들은 길드의 영향에서조차 자유롭다. 그런 주제에 길드의 혜택은 모조리 받는다.

실제로 데빌 헌터의 특혜 역시 공대장이 보유한 레어 등급 스킬 때문이라고 대부분의 길드원이 인지하고 있었다.

이에 김용우가 슬쩍 나를 쳐다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는 심사 위원분들은 1층을 공략할 때 공격대에 참가하지 못했으니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우선 제 권한으로 랜달프 공대장을 특별 심사 위원으로 참석시키겠습니다. 이후 자격을 묻는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 자리란 건?”

평상시라면 결사반대를 외쳤겠지만 데빌 헌터 공격대에 관한 사항이다.

길드원들 대다수가 반발심을 가졌던 이름. 들어 볼 가치는 있었다.

“대회를 열까요? 일단 여덟 명 정도로 구성된 공격대가 서로 치고받는 겁니다. 거기서 데빌 헌터 공격대가 유지되느냐, 사라지느냐를 판가름해 봅시다. 반대로 우승한 공격대와 공대장에겐 기존에 데빌 헌터 공격대에 주었던 특혜를 그대로 계승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이참에 랭킹제를 도입하고 길드 내에서 급수를 나누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어찌 생각하시는지?”

이왕 일을 벌일 거면 크게 벌려라!

그게 김용우의 인생 지론이었다.

어차피 길드는 사분오열됐고, 그렇다면 아예 본격화해 보자는 이야기다.

나는 김용우의 의도를 알아채곤 혀를 찼다.

랭킹제의 도입이라?

이런 쪽으론 머리가 제법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내가 우승만 한다면 단번에 힘의 추가 김용우 쪽으로 기운다.

경직된 길드 내의 분위기도 살릴 수 있는 데다가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절호의 수였다.

거기다가 급수가 나뉜다면 현재 편성된 힘의 균형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급수만큼 직관적으로 강함을 보여 주는 척도는 어지간해선 없었으니.

요는, 내가 우승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도박이었다.

‘도박거리조차도 되지 않는 일이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대회를 열 거면 개인전을 열어도 충분하다.

여덟 명으로 편성한 건 잡음을 없애기 위함일 것이다.

김용우 딴에는 나 혼자서도 여덟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으리라 계산한 것이겠지. 그 역시 과소평가였지만 납득해 줄 수 있는 범위였다.

‘이곳에서 임시 대원을 뽑아야겠어.’

그리고 심사 위원으로 참여해서 나머지 인원을 뽑으라는 뜻이었다.

길드 내에서 나를 따를 자는 거의 없을 테니 이곳에서 뽑을 신입들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이지혜와 유은혜, 크라스라를 더해도 네 명. 하지만 크라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다. 밀어붙여야 그나마 크라스라 한 명을 더 추가할 수 있으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판을 벌려만 줘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용케 여기까지 계획했다.

‘김용우에게 조금만 더 사교성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사실 일이 이렇게 된 것도 김용우의 사교성이 부족해서다. 확실하게 자신의 편이라 할 사람들을 만들어 놨다면 이 지경에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너무 나만 바라본 탓이었다.

콩깍지라 하던가?

“정식으로 공지할 건가요?”

심사 위원 한 명이 묻자 김용우가 긍정했다.

“당연하죠. 내일 아침 긴급회의를 열고 결정되는 대로 할 생각입니다. 그냥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당연히 이 이야기를 따로 누군가에게 전해도 상관없고요.”

이 다섯 명의 심사 위원은 각자 닿아 있는 선이 존재했다. 이들에게만 말해도 길드원 전부가 알게 될 터.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죠.”

“이의 없습니다.”

다섯 심사 위원 모두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가지 일이 일단락되었고, 김용우는 정식으로 다시 나를 소개했다.

“특별 심사 위원,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대장 랜달프 브뤼시엘 님입니다. 자, 박수로 맞아 줍시다!”

짝짝짝!

김용우가 제일 먼저 손뼉을 쳤고, 심사 위원들이 마지못해 따랐다.

길드 모집에 참여한 희망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가만히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분위기에 편승해 박수를 쳤다.

“랜달프 브뤼시엘이다. 잘 부탁하마.”

내가 던진 첫 마디는 아주 묵직하기 그지없었다.

* * *

363번.

걸걸한 욕쟁이 칭호를 가진 남자.

나는 참가자들의 상태가 표기된 파일첩을 받고 옆에 따로 마련된 의자에 대충 앉아 심안을 열었다.

이름: 김춘원

직업: 용사(음유 시인)

칭호 :

* 걸걸한 욕쟁이(R, 마력+4)

능력치 :

힘 24 지능 33

민첩 35 체력 36 마력 38(+4)

잠재력(166/325)

특이 사항: 없음

스킬: 고성방가(N), 사기 저하(Ex N)

“방금 날린 욕설은 사기 저하 스킬인가?”

363번, 김춘원이 화들짝 놀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 예. 그렇습니다. 스킬입니다. 결코 비방하려는 의도가…….”

“고성방가 스킬은 뭐지?”

“노래입니다만…….”

직업이 음유 시인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번 불러 봐라.”

유일하게 나만이 그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다른 심사 위원은 이미 김춘원에 대한 기대를 접은 상태였다.

은연중 그런 분위기를 느꼈기에 김춘원이 자신 있게 가성을 끌어 올렸다.

“흠흠! 서울 하늘~ 하늘 아래서! 내 꿈도 가까이 온, 켁, 다!”

일순간 목소리가 갈렸다.

목소리도 어찌나 큰지 몇몇 사람은 아예 귀를 틀어막았다.

다섯 심사 위원이 한숨을 내쉬거나 이마를 짚었다.

더 볼 것도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이내 채점이 시작됐고, 나는 김춘원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스킬 활용도 만점, 능력치 신뢰도 만점, 인물평 만점!

기타 등등 사항에 전부 만점을 주고선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지극히 주관적인 점수표였다.

원래라면 떨어져야 할 363번이 이로 인해 붙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게 내가 바라는 바였다.

나는 떨어질 만한 이들만 골라 만점을 주고 끌어들일 작정이었다.

합격하거든 받은 점수가 공개되니 나를 따르지 않고선 못 배길 것이었다.

어차피 여덟 명이란 숫자는 구실.

대충 맞추기만 하면 된다.

솔직히, 크라스라 한 명만 있어도 충분하니까.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나름 색다른 재미가 있군.’

인간들의 재롱을 보며 점수를 매긴다.

생각을 바꾸니 이것도 제법 재밌는 오락거리다.

나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지극히 주관적인 점수를 적었다.

* * *

천명회 1층 게시판에 한 장의 게시물이 붙었다.

빼곡한 글자뿐이었지만 모든 길드원의 시선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바로 대회와 관련된 전단이었기 때문이다.

대회 이름, 천명회!

그야말로 천명회의 명운을 건 한판 승부가 정확히 한 달 뒤 시민 공원에서 벌어질 것이란 이야기였다.

참가 자격과 참가 인원, 주의 사항 등이 적혀 있었고, 동시에 승자에게 주어질 특혜와 랭킹제의 도입, 급을 나눠 길드를 운영할 거란 파란 가득한 내용들 또한 적혀 있었다.

급히 소집된 회의에서 즉석으로 발언된 안건이지만 물 흐르듯 가볍게 통과되었다. 오디션장에서 김용우가 발언한 내용을 회의장에 참석한 모두가 이미 알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다섯 심사 위원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어찌 보면 안건이 통과된 건 당연했다.

길드가 커질수록 실력을 뽐내고 싶은 이들이 많아졌다. 던전에 가는 것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갈증이 있었다.

당연히 은근하게 바라던 기회였다.

자신의 실력이 저평가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 이제 막 길드에 들어와 기회를 얻지 못한 신입들, 입지를 넓히길 바라는 길드원들 모두가 동참했다.

게다가 눈엣가시 같았던 데빌 헌터도 참가한다니 더욱 투지를 불태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일주일가량이 지났을 즈음.

천명회에 소속된 길드원 모두가 대회 이야기로 뜨거웠다.

하지만 게시물을 본 이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여덟 명? 그러면 우리가 최강이네. 다 기존 멤버들뿐이잖아.”

“이번에 회유한 신입 두 명이 무서운 실력자지. 이건 뭐, 게임이 안 되겠어.”

“김태환 리더, 이참에 공대장으로 활약하시죠? 지옥 훈련을 함께한 저희라면 우승은 따 놓은 당상 아닙니까?”

그리고 그중 누구도 데빌 헌터의 활약을 기대하는 이는 없었다.

길드 하우스 입구에서 신규 길드원 세 명을 쓰러트린 크라스라라는 흑인과 공대장 랜달프가 있긴 했지만 나머지 여섯이 모두 어중이떠중이였다.

레어 등급 스킬의 보유자와 실력 있는 각성자가 합세한다면 두 명 정도는 충분히 어찌할 수 있다는 게 사람들의 계산이었다.

떨거지 풋내기 여섯은 애초에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그런 막장 구성으로 뭔가 일을 낼 수 있으리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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