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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41화 (41/242)

던전 사냥꾼 41화

오디션 형식의 신입 모집이 진행된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시점.

결과 발표가 나고 바로 그다음 날, 나는 데빌 헌터의 소집을 명했다.

‘구색은 갖췄군.’

크라스라와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이 이른 아침 길드 하우스 앞에 집결했고, 나는 이번에 새롭게 들인 인물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중 네 명은 신입이다. 이번 신입 모집에 합격한 자들이었다.

발표된 지 하루 만에 이렇게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보다 빠르게 합격자 명단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미리 작업을 해 놓는 게 가능했다.

네 명 모두 내가 높은 점수를 불러 떨어지기 직전에 합격한 각성자들. 나를 따라 데빌 헌터 공격대에 소속되는 건 당연한 절차였다. 비록 임시지만 그게 어딘가.

이들로서도 나쁜 일은 아닐 터였다.

“공대장님. 유은혜와 이지혜라는 년…… 아, 아니 분들이 오시긴 하는 겁니까?”

네 명의 임시 단원 중 한 명이 말했다. 바로 김춘원이었다.

음유 시인에 걸걸한 욕쟁이 칭호를 가지고 있었던 남자.

이제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욕이 하도 입에 붙어서 지금처럼 말실수를 하려 할 때가 많았다.

“온다.”

허나 나는 짧게 답하며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유은혜와 이지혜가 도착해야 대회 참가 기준인 여덟 명이 완성된다.

구색이 갖춰지는 순간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게다가 김용우의 말에 따르면 이번 대회는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 했다. 최초로 랭킹제를 도입해 각성자들의 급을 나누는 계기가 되리란 소리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일단 위에 올라가 있을 필요가 있었다. 대한민국 최강을 자처하면 양질의 각성자를 손에 넣는 일이 보다 수월해질 것이었다.

아예 드러내고 활동을 하지는 않겠지만 타이틀은 제법 중요하다.

인간들은 겉으로 보이는 걸 중시하니까.

최강이란 타이틀, 그 하나만으로도 인간들을 부추겨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게 불가능하진 않으리라.

“공대장님!”

예상대로 말을 꺼낸 지 3분이 채 되지 않아 두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은혜와 이지혜다.

동시에 네 명의 신입이 침을 꿀꺽 삼켰다.

보브컷의 유은혜는 발랄하며 귀여움이 넘쳤고, 이지혜는 이름처럼 지적인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보기 드문 미인이니 남자들의 시선이 가는 것도 당연했다.

유은혜는 살짝 눈물을 글썽거리며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찌릿! 찌릿!

순간 느껴지는 전류.

유은혜의 패시브가 발동하고 있었다.

이제는 간지럽지도 않았다. 나 역시 뇌신공을 익혔다. 비록 뇌신은 잠든 상태이나 몸에 깃든 전력은 여전했다.

오히려 출력량 자체는 내가 압도적으로 높았기에 유은혜의 패시브가 기를 못 펴는 상황이었다.

“살아 계실 줄 알았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유은혜는 내 정장에 눈물을 닦았다.

함께 여러 번 던전을 오가며 유은혜도 나를 어려워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유일하게 패시브에 영향을 받지 않다 보니 나에 한해선 솔직한 감정을 마구 드러내곤 하였다.

“돌아오셨군요.”

이지혜도 자못 반가운 표정이었다.

그간 잠을 못 잤는지 화장으로도 미처 못 가린 다크서클이 눈에 띄었다.

“잘 지냈나?”

“덕분예요.”

“우선 자리를 옮기지.”

이로써 여덟 명 전원이 모였다.

나는 억지로 유은혜를 떼어 낸 뒤 이들을 이끌고 미리 예약한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건물 2층에 자리한 고급스러운 카페 안.

그 중심에 있는 넓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여덟 명이 자리 잡았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나 음료수, 수제 케이크 등이 놓여 있었다.

전날 예약해 오늘 하루를 통째로 빌렸는지라 카페 안에 있는 사람이라곤 카페의 오너를 비롯한 아홉이 전부였다.

오너를 제외하면 데빌 헌터 공격대의 대원만 있다고 봐도 좋았다.

“이야, 역시 공대장님! 클라쓰가 다르시네!”

김춘원이 호들갑을 떨었다.

반대로 유은혜와 이지혜, 크라스라는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고작 카페 하나를 전세 내는 것쯤은 어려운 일 측에도 끼지 않았다.

소란이 가라앉은 후 나는 차갑게 말했다.

“궁금한 점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선 말할 건, 나는 너희를 데리고 이번 랭킹전에 참가할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너희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

유은혜야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나름 훈련을 시켰는지라 논외지만 이번에 들인 신입 네 명은 떨거지 그 자체였다.

부족한 숫자를 채우려는 도구…….

한 번 사용하고 버릴 것들에게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물론 잠재력이 평균치보다 높거나, 특수한 스킬 혹은 칭호를 가진 이들만 엄선하여 고르긴 했다.

우승한다면 데빌 헌터 공격대가 대대적인 비상을 할 텐데, 지금 정식으로 공격대에 가입된 이라고 해 봤자 넷이 전부였다. 그래선 정규 공격대라 칭하기도 미안한 숫자다.

하여, 나는 신입들을 한동안 지켜보며 임시로 편입시킬 셈이었다. 대회가 끝난 이후에도 일정 기간 임시 대원으로 활동해 구색 갖추기에 이용할 체스판 위의 말들.

두각을 드러내는 이라면 정식 대원으로 채택하겠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신입들의 표정이 단번에 똥 씹은 것처럼 찌푸려졌다.

“공대장님. 말씀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섭섭합니다. 저희도 나름 한가락 한다는 각성자들인데요.”

신입들이 불만을 쏟아 냈다.

유은혜와 이지혜는 내 실력을 어느 정도 알기에 입을 닫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떨어졌겠지만 말이지.”

“…….”

신입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는 차게 웃으며 마저 이야기했다.

“허나 데빌 헌터의 이름을 단 이상 허투루 참가시킬 수는 없는 노릇. 기본적인 실력은 갖춰야 한다. 해서 내일부터 3주간 너희를 훈련시킬 것이다. 이건 확정된 사안이며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든 지금 말해라.”

카페 안은 조용했다.

“없는 모양이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며 잠시 향을 즐겼다.

전원의 참가가 결정되었으니 급할 건 없었다.

크라스라와 나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우리 둘의 실력은 인정받겠지만 데빌 헌터 공격대 전체가 인정을 받을 순 없다. 그럴 바엔 적당히 나머지 인원도 훈련을 시켜 놓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 좌중을 훑었다.

그때 이지혜와 눈이 마주쳤고, 잘됐다는 듯 그녀가 질문했다.

“공대장님, 랭킹전에 대해서 오기 전에 대충 듣기는 했는데 정확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차피 말해 줄 내용이었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입을 열었다.

“랭킹전 자체는 단순하다. 여덟 명이 모여 상대 공격대를 쓰러트리면 되지. 순위에 따라 등급을 부여받게 된다. 하지만 대국적으로 보자면 이번 랭킹전은 천명회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국내 유명 길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고, 차후 국내 각성자들의 등급을 매기는 데도 큰 영향을 줄 터.”

꿀꺽!

신입들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

랭킹전의 규모나 다른 유명 길드들이 주시한다는 이야기는 그들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무조건 이겨야겠네요.”

내가 말한 내용의 의미를 파악한 이지혜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옆에 계신 과묵한 분은 누군가요, 공대장님?”

때마침 가만히 크라스라를 지켜보던 유은혜가 물었다.

웬 피부 까만 사람이 껴 있으니 궁금할 법했다.

“너희를 훈련시킬 크라스라다. 주 무기는 창이지만 다른 병기술에도 능하지.”

“반갑다. 크라스라다.”

처음으로 크라스라가 입을 열었다.

단원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한국어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는 목소리 자체가 워낙에 미색이었기 때문이다.

다크 엘프들은 목소리가 아름다운 경우가 많았는데, 크라스라 역시 그러했던 것이다.

“와! 목소리 엄청 멋있으시다!”

유은혜가 솔직한 의견을 가감 없이 말했다.

“실력은 확실한 겁니까? 영 부실해 뵙니다만!”

하지만 목소리는 목소리고, 실력은 실력이다.

김춘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마따나 크라스라의 겉모습은 상당히 호리호리해 보였다.

이 또한 다크 엘프의 특성이었다. 격하게 운동을 해도 살이 찌지 않고, 근육도 잘 붙지를 않는다.

크라스라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욱하여 발끈할 법도 한데 목석같은 그 자세에 다른 이들이 혀를 내둘렀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건 내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저 따위 말은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김춘원 만 명이 있어도 크라스라 하나만 못하니까.

나는 이후 느긋하게 통성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금세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고, 간간이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내 귀에는 벌써부터 그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 *

강원도 춘천의 한 펜션.

뒤로는 푸른 산과 졸졸 흐르는 강이 존재하고, 앞으로는 잘 정돈된 야외 활동지가 구비된, 절호의 훈련 장소에 데빌 헌터 공격대가 도착했다.

맑은 공기와 광활한 자연의 기운에 모두가 ‘우와!’ 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여장을 풀었다. 하지만 좋은 시간은 금세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여장을 푼 뒤 활동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야외 활동지에 나온 순간, 그들의 지옥은 시작되었다.

붉은 창을 들고 신입 대원들을 맞이한 크라스라!

그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무기를 들고 덤벼라.”

“저게 뭐라는 거야?”

김춘원은 음유 시인이지만 단도를 허리춤에 착용하고 있었는데, 다른 대원들도 모두 각자의 무기를 지참한 상태였다.

“먼저 너희의 실력을 보겠다. 그리고 만약 내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있을 훈련에서 제외시켜 주겠다!”

“참나! 저거 웃기는 놈이네.”

김춘원이 단도를 꺼내 혀로 핥았다.

나이가 많지는 않으나 인상 하나는 가장 악질적이었다. 그 행동 하나로도 위압감을 가져다줬다.

물론 크라스라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흥분하지 마세요. 공대장님이 직접 지목하신 분이니 실력이 만만치 않을 거예요. 제가 먼저 마법으로 간을 볼 테니…….”

이지혜가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김춘원은 윗옷을 벗더니 광기에 찬 눈을 번들거리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건방진 새끼! 한번 죽어 봐라, 이 새끼야!”

상체 곳곳에 새겨진 칼자국들!

김춘원은 기세등등하였다.

단도를 핥는 첫 번째 퍼포먼스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몸을 보고 쫄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물며 단도를 들고 달려드는데 어느 누가 기겁하지 않을 수 있겠나.

허나, 그는 크라스라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빠악!

“케헥!”

김춘원이 달려오는 관성 그대로 떠올라 360도를 정확히 돈 후 바닥에 떨어졌다. 크라스라가 창대로 강하게 다리를 밀어 버린 것이다.

“흥분하지 말라니깐…….”

이지혜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내 크라스라가 태풍처럼 거세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준비하세요! 워터 스피어!”

촤학!

그녀의 직업은 물의 마법사.

이지혜가 지팡이를 들어 날린 워터 스피어를 크라스라가 정면에서 부숴 버렸다.

그를 기점으로 나머지 대원 세 명이 정신을 차리며 무기를 들었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빠악! 빠악! 빠악!

정확히 가죽 터지는 세 번의 소리가 울려 퍼진 뒤 서 있는 사람은 이지혜와 크라스라뿐이었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

압도적이란 말도 부족한 상황이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이지혜가 이내 싱긋 웃더니 지팡이를 내려놓으며 양손을 올렸다.

“항복.”

동시에 이 자리에 없는 한 명을 떠올리곤 혀를 잘근잘근 씹었다.

‘이 요망한 것. 이년은 어디를 간 거야?’

공대장과 함께 따로 나간 유은혜.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가 부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 이지혜를 바라보며 크라스라가 혀를 찼다.

“형편없군!”

* * *

같은 시각.

나는 유은혜와 함께 산기슭 계곡에 와 있었다.

“물이 맑아요. 공대장님, 이것 좀 보세요.”

유은혜가 계곡에 졸졸 흐르는 물을 보곤 신이 나서 재잘거렸다.

본래라면 지금쯤 신규 대원과 함께 훈련을 받고 있어야 했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판단하여 제외시킨 것이다.

바로 그녀의 패시브 스킬 ‘전류(N)’의 파장을 맞추는 일이었다.

내가 익힌 뇌신공이라면 능히 가능하리라 여겼다.

무엇보다 이 계곡은 뇌 속성의 마력이 아주 풍부한 곳이었다.

보통 3면 이상이 막힌 계곡은 번개가 칠 때 그 기운을 제대로 방사하지 못하고 품는 경우가 많았다. 높은 확률로 그러리라 예상하고 찾아왔는데 역시나 정답이었다.

계곡이 잔류한 뇌 속성 마력을 끌어모으면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듯했다.

“유은혜, 놀러 온 게 아니다.”

“헷!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저만 데리고 오신 건가요?”

장난스럽게 웃으며 유은혜가 물었다.

둘이서만 던전을 여러 차례 들어간 적도 있으니 따로 의심을 하는 기색은 없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금부터 너의 전류 스킬을 손볼 것이다.”

“제가 가진 패시브 스킬을요?”

유은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숨길 것도 없는지라 사실대로 얘기했다.

“최근 전격 스킬 하나를 익혔다. 그 스킬이라면 네가 가진 전류의 파장을 맞추는 게 가능할 것 같다. 그러면 멋대로 패시브가 발동하는 경우는 사라질 거다.”

“정말요? 그럼 이제 같은 전격 스킬 사용자네요! 아, 이럴 게 아니지.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공대장님? 무협 소설에서처럼 손목을 내밀면 되나요? 아닌데. 그럼 굳이 이런 장소에 찾아올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기쁜 표정으로 속사포마냥 말을 뱉어 내는 유은혜였다.

나는 유은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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