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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42화 (42/242)

던전 사냥꾼 42화

“아, 그러니까 벗으면 되는군요. 벗으면…….”

한참이나 그 의미를 곱씹던 유은혜가 깜짝 놀라 물러섰다. 직후 양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에요, 공대장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나는 네 몸에 관심이 없다.”

사실대로 말했다.

유은혜가 인간 기준에선 아름답다고 하나 크리슬리에 비할 바는 아니다. 몸매 역시 마찬가지고. 병색이 짙을 때조차 우월한 몸매를 보이던 크리슬리였다.

물론 미의 기준은 다르다. 둘이 가진 매력 또한 판이하다지만 굳이 억지로 손을 댈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하물며 나는 색을 밝히지도 않았다. 바란다면 취하겠으나 그뿐이었다.

유은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왜 벗으라는 건데요?”

“전류가 몸의 겉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장을 맞춘다는 건 그런 것이다. 겉과 안, 양쪽 모두를 신경 써야 하지.”

“그럼 계곡에 온 거는요?”

“뇌 속성의 마력이 풍부하더군. 네 전류 스킬이 더 극대화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이제 됐나?”

“되긴 했는데요. 설마 속옷까지 벗어야 하나요?”

“속옷은 됐다. 전류가 흐르는 방향만 살펴보면 그만이니.”

굳이 전체를 볼 필요는 없었다. 신체가 3분의 2 정도만 드러난다면 충분히 방향을 살피고 파장을 맞춰 볼 수 있었다.

유은혜가 그제야 의심의 눈초리를 풀었다. 가슴을 가린 손도 내려놓았다.

“에이, 다짜고짜 벗으라고 하셔서 놀랐잖아요.”

“내가 네 몸에 욕정을 느낄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마라.”

“헐…… 그건 좀 경우가 다릅니다, 공대장님?”

“시답잖은 농담은 되었다.”

‘농담이 아닌데…….’라고 작게 중얼거린 유은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주 비수가 사정없이 허파를 쑤시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공대장이 까라면 까야 하는 존재가 대원이란 존재인 것을!

유은혜는 힐끗 나를 쳐다보다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는 행위를 몇 번 반복하더니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후드티를 아래서부터 말아 올렸다.

곧 매끈한 나신이 드러났다.

살짝 갈비뼈가 비칠 정도로 마른, 바비 인형에서 가슴만 없는 그런 몸매였다.

흰색의 속옷 한 장만 달랑 남아 어쩐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지만 이내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아예 당당하게 양손을 허리에 얹은 유은혜였다.

“흠흠, 감상평을 들어 볼까요?”

“가슴이 많이 아쉽군.”

“……그거 굉장히 미안하네요! 가슴이 작아서 죄송합니다! 제가 아주 죽일 년입니다! 그래도 조금은 돌려서 말해 줄 줄 알았는데!”

유은혜가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우는 척을 했다.

나는 그런 유은혜의 등을 발로 밀었다.

풍덩!

“어푸! 어푸! 이,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계곡물에 빠진 유은혜가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나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시끄럽다. 네 몸이나 살펴봐라.”

“네? 헉!”

지지지직!

계곡을 타고 흐르는 강력한 전류!

유은혜의 몸에 흐르는 전류와 계곡에 잠재하던 뇌 속성의 마력이 한데 어우러져 광범위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어, 어떡하죠? 이걸 어쩌면 좋아!”

크게 당황한 유은혜가 몸을 들썩이며 방황했다.

“정신 사나우니 가만히 앉아 있어라.”

“들어오지 마세요! 아, 안 돼요, 공대장님! 이거 장난 아니라니까요! 아무리 공대장님이라도…….”

나는 뇌신공을 운용하며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그리고 아무런 영향도 없다는 듯 유은혜에게 다가갔다.

유은혜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무덤덤하게 말했다.

“말했을 텐데. 전격 스킬을 익혔다고.”

“그, 그랬죠? 대단하시네요, 공대장님…….”

“지금부터 파장을 맞추는 작업에 들어간다. 가만히 눈을 감고 네 스킬에 집중해.”

“충성, 명 받들겠습니다.”

순식간에 긴장이 풀렸는지 유은혜가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다.

나는 눈을 감은 유은혜의 배 위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흑!”

“조용히.”

유은혜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가만히 뇌신공으로 쌓아 올린 전력 중 일부를 유은혜의 몸에 흘려 넣었다.

뇌신이 깨어 있다면 알아서 해 줄 테지만 지금 녀석은 배 터지게 마력을 먹고 잠에 빠진 상태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수작업으로 행해야 할 듯싶었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겠군.’

전류 스킬이 폭주한 탓일까? 유은혜의 몸을 도는 전류의 방향이 또렷이 보인다.

나는 전류의 방향이 엇나간 것들을 바로잡았다. 한쪽으로 순환해야 정상인데 마구잡이로 돌고 있었다.

패시브 스킬이라지만 아예 조절할 수 없는 건 바로 이 방향들이 엇나간 탓이다.

이것만 바로잡아 줘도 어느 정도 조절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수도꼭지를 상상해라. 비틀기에 따라 방출되는 물의 양이 적어지기도, 많아지기도 하는 것처럼 네가 가진 스킬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지금부터 비트는 느낌을 알려 줄 테니 제대로 기억하고 느끼도록.”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는 유은혜에게 전류를 움직이는 느낌을 전해 주었다.

전류를 조절하게 만드는 시기를 더욱 당겨 줄 방법이었다.

아예 모르는 것과 조금이라도 아는 것의 차이는 천지 차이. 이후의 성취는 오로지 유은혜에게 달려 있었다.

‘스킬 등급이 오를 수도 있겠지.’

유은혜는 번개 정령의 가호를 받았다.

스킬을 변화시키거나 등급을 올리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

나는 내심 기대하며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 * *

“흔히들 공격하는 이의 어깨를 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무기를 휘두르기 직전엔 어깨가 움직이는 법이지. 하지만 더욱 확실한 건 상대의 눈을 보면 된다. 그 미묘한 차이를 인지할 수 있다면 승리는 너의 것이다.”

“상대가 공격과 방어를 전환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파악하라. 치고 빠지기가 더욱 수월해진다.”

“연계, 너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연계다. 하나하나가 형편없기에 몰아쳐야 그나마 강자를 상대할 수 있다.”

크라스라의 명강의였다.

이후 크라스라는 모든 대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각자가 사용하는 무기를 진단했다.

“너는 손이 크나 팔이 짧다. 바스타드 소드와 같이 두꺼운 검이 어울린다.”

“손목의 유연함이 부족하군. 활잡이에겐 치명적인 약점이지. 차라리 쇠뇌를 드는 게 어떤가?”

“……음유 시인이 왜 단도를 들고 있는 거냐? 호신용? 차라리 하프를 들고 상대를 가격해라. 그게 더 낫겠다.”

마법에 관한 지식이 얕아서 유은혜와 이지혜를 지적하는 건 넘어갔다.

다음 날 대장장이들이 도착하여 신체의 치수 등을 재더니 맞춤 무기 제작에 들어갔다. 무기는 정확히 3일 후 도착했고, 그 즉시 크라스라와의 무자비한 대련이 마련되었다.

“다 같이 덤비도록. 특별히 너희의 수준에 맞춰서 움직여 주겠다. 하지만 조건은 동일하다. 내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훈련에서 제외시켜 주마!”

하기 싫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훈련의 연속이었고, 거기서 해방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게다가 수준을 낮춰 준다면 가능성이 아예 0은 아니었다.

모두가 두 눈을 활활 불태우며 무기를 들었다.

퍽! 퍼억!

하지만 여전히 가죽 터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모두가 아프고 지쳐서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으면 크라스라는 대련의 품평을 뱉고는 하였다.

“내 수를 읽는 건 좋았다. 그러나 너무 빠르게 반응했다! 그러면 적이 판단할 시간을 주게 된다.”

“김춘원, 넌 그냥 답이 없다. 총체적 난국이다. 마스터에게 폐를 끼칠 바엔 빠른 자살을 추천한다.”

“마법사들은 왜 동료를 믿지 못하는가! 그들이 훌륭한 방패막이 역할을 제대로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마법을 구사해야 하지 않나. 그야 믿지 못할 법하지만 조금 더 믿어 보도록.”

다음 날, 그다음 날, 그다다음 날에도 대련은 계속됐다.

결국 한참을 얻어터진 신입 대원들이 열을 냈다.

“이건 사기다! 이게 어떻게 우리랑 비슷한 수준이란 거냐!”

“우리가 동네북이냐!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고!”

“으헤헤! 으헤헤헤!”

김춘원은 반쯤 실성해 버렸다.

유독 크라스라가 김춘원을 힘들게 굴린 것도 한몫해서 정신이 정상과 점점 멀어졌다.

자다가도 크라스라의 ‘크’ 자만 들리면 경기를 일으키며 일어날 수준이니 두말해 무엇 하랴.

물론 김춘원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배우고 있는 건 바로 강자를 상대하는 법.

고된 게 당연했다.

그렇게 크라스라가 단원들을 몰아붙이고 사라지면 그다음은 랜달프 브뤼시엘 공대장의 차례였다.

“전기 마사지 시간이군.”

단원들의 안색이 하얘졌다.

대련이나 단련이 죽을 만큼 힘들긴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 전기 마사지라는 것은 달랐다.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의 고통!

두 가지가 공존하는, 전기 마사지가 아니라 지옥 마사지라 부르는 그것.

가장 먼저 타깃이 된 건 운이 나쁘게도 김춘원이었다.

“마음 편히 가져라.”

위대한 공대장의 입에서 가장 끔찍한 말이 나왔다.

마음 편히 저세상으로 가라는 건가?

김춘원이 본능적인 두려움에 몸을 돌려 뛰었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크라스라가 그를 낚아채 다시 돌려보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김춘원이 포기해야 했다.

사실 전기 마사지 자체는 별 게 없다.

등에 손을 댄 채 전력을 흘려 넣어 몸의 근육을 풀어 주는 게 전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에 찾아오는, 고통으로 얼룩진 시간이었다.

“끄르르르르!”

가뜩이나 상태가 좋지 않았던 김춘원의 입에 게거품이 물렸다.

공대장이 의아함에 입을 열었다.

“평소보다 적게 흘렸는데, 뭔가 이상하군.”

하지만 의아함은 순식간에 끝났다.

“다음.”

누구 하나 나서는 이 없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김춘원의 모습이 자신들의 미래라고 생각하니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새장 속의 새, 실험실의 생쥐다. 도망갈 구멍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딱 한 명.

그들과 전혀 사정이 다른 이가 있긴 있었다.

바로 유은혜였다.

“아, 시원해!”

유독 그녀만은 전기 마사지에서 자유로웠다.

전격계 스킬 때문이리라고 예측만 하고 있었다.

모두가 부러움 반, 시기 반, 질투 반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럴 때면 유은혜는 어색하게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주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 * *

오늘은 훈련의 마지막 날.

모두의 기분이 들떠 있었다. 지옥과 같은 일상에서 드디어 해방된다 생각하니 마냥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성장치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심안을 열어 상태창을 살피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유은혜를 바라봤다.

이름: 유은혜

직업: 용사(번개의 마법사)

칭호:

* 번개를 10번 맞은(R, 마력+4)

능력치 :

힘 28 지능 56

민첩 26 체력 25 마력 55(+4)

잠재력(190(+4)/423)

특이 사항: 번개 정령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수없이 번개를 맞은 탓에 임맥(任脈)과 독맥(督脈), 생사현관(生死玄關)이 강제 타통된 상태입니다.

스킬: 라이트닝 볼트(Ex N), 전력 강화(R, Passive)

[전후 비교]

힘 20 지 44 민 15 체 14 마 49 잠재력(138(+4)/423)

힘 28 지 56 민 26 체 25 마 59 잠재력(190(+4)/423)

고작 수개월.

처음 상태창을 떠올렸을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게다가 라이트닝 볼트의 등급이 반 단계 상승하고, 전류 스킬이 전력 강화 스킬로 변화하며 등급이 올랐다.

특히 전력 강화의 경우 전격계 스킬의 효율을 증대시켜 주는, 매우 꿀 같은 패시브였다.

고개를 돌려 이번엔 이지혜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 역시 상당한 성장세를 보였다.

이름: 이지혜

직업: 용사(물의 마법사)

칭호: 없음

능력치 :

힘 24 지능 44

민첩 23 체력 29 마력 48

잠재력(168/277)

특이 사항 :

스킬: 워터 스피어(N)

[전후 비교]

힘 22 지 41 민 18 체 26 마 35 잠재력(142/277)

힘 24 지 44 민 23 체 29 마 48 잠재력(168/277)

던전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꽤 가파르다. 잠재력 자체가 낮은지라 성장 폭이 크지 않아야 정상임을 고려하면 훌륭하기 그지없었다.

그 외 네 명의 신입 대원들도 고작 3주 만에 나름 만족스러운 능력치의 성장을 보였다. 적으면 3, 많으면 8 정도까지 신체적 능력치가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능력치의 상승만이 이뤄진 게 아니다. 무기를 사용할 때의 기교와 강자를 상대할 줄 아는 기초를 익혔다. 전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들 모두 눈빛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울며 도망가던 3주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얼추 준비가 된 것 같군.’

랭킹전, 천명회!

드디어 완벽하게 구색이 갖춰졌다.

‘명단에 적힌 놈들을 제대로 손봐줘야겠지.’

천명회에서 땅따먹기를 하려 했던 자들.

데빌 헌터를 음해하는 데 앞장 선 놈들.

당연히 잊지 않았다.

그 모두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김용우가 건네준 바가 있었다.

랭킹전이라는 묘수가 없었다면 단번에 쓸어버렸을 것이지만…….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손을 봐줄까?

그 기대만으로도 며칠 후에 있을 랭킹전이 매우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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