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43화
랭킹전!
각성자들의 급을 나눌 기초 지표가 될 대회가 고작 며칠을 남겨 두고 있었다.
김용우는 이왕 일을 벌일 거 크게 놀아 보자며 모든 길드에 랭킹전과 관련된 정보를 흘리고 각성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홈페이지에 배너를 띄워 이목을 모았다.
강한 각성자의 싸움을 볼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하물며 다른 5대 길드의 경우 천명회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기에 빠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것도 모자라 김용우는 보유한 자금을 아낌없이 풀었다.
랭킹전이 벌어질 장소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시간 동안 빌리는 데 막대한 로비가 들어갔다.
입장료는 일체 무료. 유명 연예인을 초빙하고 푸짐한 상품 또한 준비했다.
뿐만인가? 산하 정보 팀을 만들어 랭킹전과 길드의 홍보에 주력했다.
그간 모은 김용우의 통장 잔액이 대폭 줄어들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김용우는 아까워하지 않았다. 길드 마스터의 자리를 보존한 채 모두의 뇌리에 박힐 수만 있다면 오히려 값싼 투자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대본 없이 치고받는 혈투인지라 공중파를 타지는 못하겠지만 개인 방송국, 신문 보도국 기자 등의 인터뷰가 쇄도하였다.
특히 각성자에 관한 소식만을 전하는 대형 케이블TV에 경기 중계권을 넘길 수 있었다. 만약 이번 대회에서 대박이 터진다면 주기적으로, 주체적으로 랭킹전을 열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듯싶었다.
이쯤 되자 가만히 지켜보려 했던 나머지 5대 길드의 엉덩이가 가려워졌다. 천명회의 입지가 크게 올라갈 것이 자명하니 배알이 꼴린다고 해야 할 것이다.
“랭킹전에 참여하고 싶다고? 그래, 해. 대신 길드마다 공격대 하나만 받을 거야. 특별히 진행해 주지. 최강의 공격대로 구성해서 오라고.”
김용우는 개의치 않았다.
볼거리가 많아지고 관객이 느는 건 김용우도 바라는 바였다.
이렇게 5대 길드 모두의 참여가 결정된 것이다.
비록 길드마다 하나의 공격대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일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각성자가 등장하고 누가 더 강한가에 대한 주제는 끊임없는 입방아에 올랐다. 게다가 그 강자라고 불리는 이 대부분이 5대 길드에 집약되어 있었다. 5대 길드 모두가 최강의 공격대를 구성해 참여한다면 결과가 어찌 될는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다.
각성자들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기대감도 유례없이 올라갔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는 이가 최강이다. 모두의 뇌리에 그런 인식이 박힌 것이다.
대회를 직접 관람하고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국내에 관심이 많은 해외 외국인 각성자들도 대거 비행기에 올랐다.
“웰컴 투 코리아!”
김용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빰바밤~
거대한 나팔 소리.
관악기를 주로 다루는 악단이 정갈한 하얀색 정장 차림새로 일렬로 모여 있었다.
장대한 하나의 연주곡을 부르며 분위기를 고취시켰다.
관악단의 차례가 끝나자 이번엔 여러 치어리더들이 경기장의 한중간에 난입했다.
짧은 치마와 배꼽이 훤히 보이는 유니폼. 반짝이는 붉은색과 파란색 수술을 들고 열렬히 흔들며 관능미 넘치는 춤을 췄다.
“휘이익!”
남자들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음은 당연지사.
64,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4만이 넘는 인원이 들이닥쳤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숫자는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었다.
치어리더들의 응원이 끝나고 다음은 초청 가수의 차례였다.
“모리! 모리!
공연대에 모습을 드러낸 초청 가수는 요즘 한창 잘나가는 유명 아이돌 그룹, 모리!
5인조 그룹에다 라이브 실력도 출중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요주의 그룹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볼거리 하나는 출중했다.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었을 즈음.
모리가 퇴장하고 김용우를 비롯한 천명회의 길드원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정확히 168명!
천명회의 모든 길드원이 참여했다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 김용우는 대회를 주최한 자로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이크를 꼬나 쥔 김용우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최초의 랭킹전을 관람해 주실 모든 신사, 숙녀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천명회 길드의 수장 노릇을 하고 있는 김용우입니다.”
형식적인 인사를 끝마친 후 김용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번 랭킹전에 참여할 천명회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스물하나의 공격대, 이 자리에는 없지만 특별 초빙된 나머지 네 개의 공격대! 앞으로 수십 분 후면 총 25개의 공격대가 경합을 벌이는 랭킹전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강자들의 향연! 과연 승리할 자는 누구일까요?”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관람객도, 출전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김용우는 씨익 웃으며 마침표를 찍었다.
“그럼 앞으로 3일간 열릴 축제를 즐겨 주시길 바라며 지루한 연설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아!”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함성!
랭킹전의 막이 올랐다.
* * *
예선.
본선에 나갈 공격대를 뽑는 경기.
천명회에서 참가한 21개의 공격대 중 절반가량이 바로 이 예선에서 떨어질 예정이었다.
특별 초빙된 네 개의 공격대는 16강부터 참가하기에 오직 11개의 공격대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불타오르는 견제의 시선을 서로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공대장님, 저희 첫 상대는 흑표범 공격대라는데요?”
대기실에서 김춘원이 대진표를 보곤 말했다.
이지혜가 그 말을 받았다.
“공격대에 포진된 이름이 만만치 않네요. 여덟 명 모두 천명회 길드를 설립할 때 있었던 멤버들이에요. 실력이 상당한 데다 마법 무구도 여럿 갖추고 있어서…… 처음부터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군요.”
“상처를 입는 게 두려운가?”
내가 묻자 이지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일정 수준의 충격량을 막아 주는 실드 아이템도 있잖아요? 창고에 잠든 물약들도 아낌없이 풀 생각인 모양이니까요. 다만 흑표범 공격대를 이겨도 저희는 계속해서 강팀만 만나게 되어 있다는 게 조금 걱정이에요.”
진짜 날이 선 검이나 도 따위의 무기를 들고 싸우는 대회다. 안전 대책을 세워 놓지 않을 리가 없었다. 거기서 채택된 게 바로 실드 아이템이었다.
대장장이와 인첸터들이 합심하여 만들어 낸 역작으로, 등급은 노멀에 불과하나 적당한 양의 충격을 흡수해 준다.
그 실드가 깨지느냐, 유지되느냐에 따라서 전투의 속행이 정해진다. 실드가 깨진 상태로 싸움에 임하면 부정 처리되어 팀이 탈락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준비한 것은 창고에 잠든 수많은 물약이었다. 던전에서 찾은 물약의 숫자는 물경 백이 넘었는데, 모두 이번 랭킹전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육체적 부담은 상당히 적어졌으나 이지혜가 걱정하는 건 대진표였다.
이겨도 계속해서 강한 공격대를 만나는 구조다.
누군가의 입김이 작용했다고밖에 느껴지지 않는 대진표였다.
“걱정할 필요 없다. 너희는 제법 쓸 만해졌으니.”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이지만 3주간의 훈련을 통해 탈피한 것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스킬의 활용이나 무기를 사용하는 기교 등은 비교도 할 수 없으리만큼 좋아졌다.
대기실 안에는 벽걸이형 TV가 걸려 있었고, 모두 그곳에서 중계되는 영상을 통해 대회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예선 첫 번째로 혈투를 벌일 이들은 ‘악바리’ 공격대와 ‘미스테이크’ 공격대였다.
그중 악바리 공격대는 김태환이 공대장으로 있는 곳이었다.
김용우가 건넨 명단 내에 김태환의 이름은 없었는데, 오히려 데빌 헌터 공격대의 입장을 조금은 비호하던 쪽이라고 한다.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말한 내용들이 진짜 충고였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뭐야? 특전사 흉내라도 내는 건가?”
김춘원이 작게 중얼거렸다. 말마따나 악바리 공격대의 대원들은 얼굴에 먹물을 묻히고 주황색의 무도복을 입고 있었다.
무도복에는 한자로 ‘必勝’이라 적혀 있었다. 필승…… 반드시 이기겠단 의지다.
동시에 랭킹전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불렸다.
“악바리 공격대는 전원이 전사 계열 직업인가 본데요? 반대로 미스테이크 공격대는 근거리 딜러와 원거리 딜러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고요.”
유은혜가 내 옆에 달라붙어 말했다.
단순히 싸움의 국면만 보자면 악바리 공격대가 불리하다.
오로지 전사밖에 없으니 도리어 틈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공격할 수 있는 방위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원거리에서 들이닥칠 공격을 막아 낼 가더도 고작해야 둘이 전부였다.
그 사항을 지적하듯 TV 중계진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이럴 수가! 악바리 공격대 전원 돌격합니다. 방패를 든 가더를 앞세우지 않는 건가요? 이건 난전으로 가겠다는 건데요!
―미련합니다. 보세요. 벌써부터 실드가 깨지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유원, 차두삼 선수 속행 불가! 아,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돌격을 멈추지 않는 악바리 공격대!
―붙었습니다. 미스테이크 공격대, 혼란에 빠집니다. 그런데 김태환 공대장의 검에서 아지랑이 같은 빛이 뿜어지는데요? 저 스킬은 뭡니까?
―마력 응집이라 하더군요. 검의 절삭력을 높이는 스킬이라 합니다. 아아! 미스테이크 공격대의 가더가 막아 보지만 역부족, 밀어붙입니다!
―결국 난전이 되었군요. 허…… 대단한 돌파력입니다.
―미스테이크 공격대의 원거리 딜러들, 같은 편에게 스킬을 날립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실책!
―이건 거의 끝났다고 봐야겠군요. 상대의 의도가 뻔한데 막지 못한 건 확실히 뼈아픕니다. 이 랭킹전, 아직은 부족한 게 많은 것도 같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흥미롭습니다.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압도감 가득한 경기가 끝나고 승자는 악바리 공격대로 결정되었다.
검투사들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 콜로세움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경기에 관객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호응했다.
“……흑표범 공격대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선 제가 사전에 조사를 끝내 놨어요. 지금부터라도 작전과 포메이션을 짜야 되지 않을까요?”
전략, 전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지혜가 제안했다.
단순히 여덟 명이 모여서 부딪치는 경기지만 그 안에 오가는 심리전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필요 없다.”
“예?”
“예선전은 나와 크라스라면 충분해.”
“공대장님, 이야기는 알겠지만 흑표범 공격대는…….”
“나는 두 번 말하는 걸 싫어한다.”
“……알겠습니다.”
이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가 본 나의 무력이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크라스라가 더욱 강하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대진표.
아주 마음에 든다.
데빌 헌터 공격대를 견제하려는 자들. 명단에 적힌 이들이 자진하여 이처럼 대진표를 조작한 거 같은데…… 아마 김용우도 그를 알기에 굳이 손을 쓰지 않았으리라.
흑표범 공격대를 박살 내며 이지혜가 바라보는 나의 인상을 확실하게 바꿔 줄 수 있을 듯했다.
“데빌 헌터 공격대! 데빌 헌터 공격대 나와 주세요! 다음 예선전이 5분 뒤에 시작합니다!”
때마침 노란색 옷을 입은 도우미 한 명이 대기실의 문을 열고 크게 외쳤다.
차례가 온 것이다.
나와 크라스라를 제외한 대원들의 눈동자에 긴장감이 서렸다.
나는 앞장서며 말했다.
“가자.”
입가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압도적인 무력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