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45화
던전 6층.
나는 내정 모드로 들어가 그곳의 지형 변경을 시도했다.
5층까지는 마수들의 생태가 조성되어 있지만 아직 6층은 텅텅 빈 상태.
내가 바라는 것을 얻으려거든 그곳을 개간하여 특수한 마수를 길러 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형 변경 자체에도 포인트가 들어간다.
나는 10만 포인트가량을 들여, 6층의 상당한 면적을 선택하고 ‘용암 지대’로 변경했다.
쿠르릉!
던전이 흔들리며 6층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먼저 땅이 갈라지고 틈이 생겼다. 그 틈 사이로 30미터 정도의 간헐적인 화산이 튀어나왔다. 다섯 개 정도가 그런 식으로 생성되더니, 화산은 이내 분출구에서 꾸역꾸역 용암을 토해 냈다.
지정한 면적 내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용암 지대가 완성된 것이다.
당연히 여기서 끝날 리가 없다.
나는 하급 마수 3Lv로 지정된 ‘파이록의 유충’을 용암 지대에 풀었다.
파이록의 유충은 한 마리에 1,200PT나 하는 마수.
오크의 약 1.7배나 비싼 게 고작 손바닥 크기의 유충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40마리나 구매했다. 구매하는 손길에 망설임이 없었다.
‘이 중에 성체가 되는 게 한 마리라도 있어야 한다.’
파이록은 유충일 땐 용암 안에서 살다가 성체가 되면 용암 바깥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다.
지금은 비록 붉은 기가 감도는 애벌레의 모습이나, 세 번의 탈피 과정을 거쳐 성체가 되면 용의 꼬리와 박쥐의 날개를 지닌 크기 1미터가량의 중급 마수가 된다.
하지만 만물상점에서도 성체가 된 파이록은 팔지 않았다.
유충에서 성체가 되기까지 세 번의 탈피 과정을 겪으며 99%가 죽어 나가는 탓이다.
아주 엄중한 관리를 받을 필요가 있었고, 해서 다크 엘프와 드워프를 소집한 것이었다.
‘불과 관련된 마력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마수.’
성체가 된 파이록은 불의 마력이 담긴 돌을 먹고 산다. 용암이 고갈된 화산암을 뜻하는 것인데, 본능적으로 불의 마력을 느끼고 찾아갈 수 있었다.
내가 파이록의 유충을 구입한 건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이히가 나를 바라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마스터, 파이록의 유충은 키우기 매우 힘든 마수예요. 그야 성체가 되면 중급 마수 중에서도 아주 강한 축에 들겠지만 이히가 볼 땐 수지가 안 맞는 장사예요. 이미 구입하긴 했지만요.”
“나도 안다.”
“만물상점에서 성체를 팔지 않기 때문인가요? 그야 궁금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이히가 성체가 된 파이록의 생김새를 그려 드릴게요. 딱 한 번 본 적 있는데 무척 귀여웠거든요.”
이히의 그림 실력은 그다지 믿을 게 되지 못했다.
게다가 이히의 말처럼 궁금해서 키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파이록의 성체로 내가 행하려는 건 따로 있었다.
‘던전의 마력을 유지하는 네 가지 속성의 제단. 그중 불의 제단을 찾는다.’
이 역시 전생에서 얻은 정보 중 하나였다.
던전에는 네 가지 속성을 지닌 제단이 숨겨진 채 존재하고, 제단을 발견하면 그곳을 지키는 강력한 상급 마수를 얻을 수 있었다.
파이록은 그 제단을 찾는 일에 사용된다.
여태까지 제단을 내버려 둔 건 발견해도 딱히 쓸데가 없으리라 여겨서다.
업적을 안 준다는 건 전생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상급 마수를 풀어놓은들 인간들의 대량 학살 외에 내게 가져다주는 이득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각성자들의 정점에 섰다.
몬스터 웨이브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때 각성자들을 선동하여 그것을 막아낸다면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굳이 정점의 자리가 아니더라도 가능은 할 테지만 그래선 임펙트가 부족하다. 몬스터 웨이브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여 한 번으로 확실한 효과를 봐야 했다.
이제 정점의 자리에 섰으니…… 몬스터 웨이브는 각성자 외의 민간인들에게도 강렬한 인식을 새기며 확고한 일인자의 자리를 다지는 절호의 기회가 되어 줄 터였다.
무엇보다.
‘이 나라의 사람들과 지도부들은 심각할 정도로 안전 불감증에 걸려 있지. 던전이 생기고 마수란 존재가 파악됐음에도 미적지근한 움직임만 보이고 있어. 그 인식을 깨부순다.’
대한민국.
국민들 대다수가 안전 불감증에 걸려 있었다.
던전과 북한에 관련된 이슈는 끊임없이 나오지만 대처가 느리다.
실질적인 위협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나라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나라의 지도부들은 던전을 선전 도구로 이용하곤 하였다. 전생에서 숱하게 겪어 봤으니 확실하다.
‘각성자들이 더욱 필사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럴 만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그리고…… 나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된다면 다른 마족의 던전을 칠 때 커다란 힘이 되어 줄 터.’
미래까지 내다본 선택이었다.
게다가 각성자들이 살신성인하여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낼 경우 그들의 사회적 지휘가 상향되고 각성자들도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더욱 필사적으로 강해지려 노력할 것이었다.
반대급부로 특권 의식을 가진 채 그것을 행하려는 각성자도 생기겠으나 적당한 부패는 오히려 원동력이 된다. 심하게 썩는다면 내가 도려낼 수도 있었다.
이유는 또 있다.
이번 기회에 크리슬리의 데뷔전도 시킬 예정이었다.
나는 그녀를 표면적 던전 마스터로 내세울 작정이었으므로.
일거십득의 계획!
이 정도면 제단의 마수를 사용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포인트도 부족하니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사용하겠는가.
“마스터?”
내가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자 이히가 의아해하며 말을 걸었다.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히, 다크 엘프와 드워프는 모두 모였나?”
“아까 전부 모였어요. 이히가 불러올까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자 이히가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빠르게 날아갔다.
“던전 마스터를 뵙습니다!”
“던전 마스터를 뵙습니다!”
다크 엘프 50과 드워프 20.
그들이 자로 잰 듯 나뉘어 내게 무릎을 꿇었다.
다크 엘프의 무리 중에는 크리슬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욱 살이 올라 보다 완성된 미(美)를 뿜어 대고 있었다. 미의 여신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수준에 나조차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웬만한 여인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나이건만 절로 욕정의 끄트머리가 고개를 들려 할 정도이니…….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심안을 열었다.
한 달간의 성과를 보고 싶었다.
이름: 크리슬리
직업: 없음
칭호:
* 진마룡의 피를 잇는 자(Epic, 지능마력+6)
* 달의 가호를 받는 자(Ex U, 마력+8)
능력치 :
힘 26 지능 94(+6)
민첩 28 체력 32 마력 55(+18)
잠재력(235+24/478)
특이 사항: 진마룡 아오진과 다크 엘프 하이어 쉴라의 피를 이어 그 성장의 끝을 알 수가 없습니다.
스킬: 시체 조종술(R), 언데드 제조(U)
[전후 비교]
힘 23 지 100 민 21 체 27 마 60 잠재력(211+20/478)
힘 26 지 100 민 28 체 32 마 73 잠재력(235+24/478)
마력 4가 추가로 붙은 건 ‘죽음 지팡이’의 옵션이었다.
건강을 회복하자 능력치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허나 나는 스킬의 시체 조종술이 레어 등급으로 변모한 걸 보고 크게 놀랐다.
고작 한 달.
노멀 등급이었던 시체 조종술을 레어 등급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허.’
이게 지능 100의 위력인가?
믿겨지지 않는 스킬의 성장 속도였다.
몇 개월이 더 지나면 시체 조종술을 유니크 등급으로 끌어 올리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았다. 언데드 제조도 마찬가지다.
하여간 내 휘하의 종이 성장한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열었다.
“그대 중 대군을 지휘해 본 경험자가 있나?”
두 명이 손을 들었다.
다크 엘프 줄리엄과 드워프 스테인.
둘 다 마을을 이끄는 지도자적 존재였다.
“둘뿐인가?”
“대군을 바라보는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던전 마스터시여.”
줄리엄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500명 이상만 되어도 좋다.”
“그렇다면 두 명이 더 있나이다.”
다크 엘프에 셋.
나는 시선을 옮겼다.
“드워프는?”
“한 명이 더 있습니다.”
“총 다섯인가. 얼추 맞겠군.”
몬스터 웨이브라고 마구잡이로 마수를 풀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을 지휘하며 이끌 존재들이 필요했다.
“너희 다섯은 세 걸음 앞으로 나오라. 크리슬리는 특별히 두 걸음까지 허용한다.”
크리슬리를 비롯한 다섯이 주춤 몸을 들어 내 명에 따랐다.
다크 엘프와 드워프는 세 걸음, 크리슬리는 두 걸음 떨어져 있었다.
“앞으로 일주일 후 1차 몬스터 웨이브에 나설 것이다. 오크나 코볼트, 놀 따위로 5천의 숫자가 구성될 것이며 마수들을 지휘해 인간들을 혼란케 하라.”
“던전 마스터시여, 1차라 하시면?”
적절할 때 줄리엄이 궁금증을 물었다.
“1차 몬스터 웨이브는 인간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크리슬리를 제외한 너희 다섯만 나서라. 마수들은 모두 잃어도 좋으나 각 지휘자는 무사히 복귀하도록. 이후 두 달 후 2차 몬스터 웨이브에 나간다. 그때의 총지휘자는 크리슬리가 맡는다. 또한 출격하는 마수들의 질도 달라질 것이다.”
1차는 맛보기다.
나는 주먹을 꽉 쥐며 이어서 말했다.
“시간이 촉박하다. 우선 각 지휘자에게 천 마리의 마수를 배정하겠다. 일주일간 기초라도 잡을 수 있게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이후 던전을 나가 인간들을 유린하라!”
“명을 받듭니다.”
“명을 받듭니다!”
크리슬리를 포함한 여섯의 지휘자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나머지 다크 엘프들과 드워프들은 따로 할 일이 있다. 6층 용암 지대에 파이록의 유충이란 마수를 풀어놨으니 잘 성장토록 너희가 돌봐라. 배를 내민 채 용암 위로 떠오르는 파이록의 유충을 지상에 건져 30분만 쉬게 하면 충분하다. 용암에도 녹지 않는 채를 만들고, 근처에 그대들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짓도록.”
나는 빠르게 역할을 분담시켰다.
1차 웨이브가 있기까지 앞으로 일주일!
준비하려면 바삐 움직여야 했다.
* * *
3층과 4층에 존재하는 오크 500여 마리.
코볼트와 고블린 4,500여 마리.
추가로 하피 20마리와, 코볼트와 고블린 사이에서 태어난 각 챔피언 10마리가 이번 1차 웨이브에 투입될 마수로 지정되었다.
능히 인간들의 군대 정도는 격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핵이 없는 나라. 탱크와 전투기가 대거 투입되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일반 보병으로 마수들을 상대하기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현대식 병기로 무장해도 그들이 인간인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군 앞에선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쿵! 쿵!
던전을 울리는 마수들의 발소리.
마수 대군이 던전 1층에 질서정연하게 정렬했다.
나는 가만히 오른손을 들어, 천천히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출정하라.”
“출정하라!”
쿵! 쿵!
다섯 지휘관을 필두로 5천에 달하는 마수 대군이 던전을 빠져나갔다.
* * *
북한산 근처 미르 부대 주군지.
던전에서 마수가 튀어나올 때를 대비하여 배치된 군인들이었다.
민간인이 쉽게 찾을 수 없는 장소에 자리를 잡고, 던전 입구를 관찰하는 게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마수가 던전을 빠져나온 일은 없었다.
기강이 태만해져 그저 형식적으로 순찰을 도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지휘부는 도시에서 들여온 오락거리로 화투를 치거나 카드 게임을 하는 등 던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5땡입니다.”
“미안, 나 땡잡이야.”
본래는 작전 회의를 할 때 사용되어야 할 탁자 위가 화투판이 되어 있었다. 돈을 탕진한 이는 옆에서 손가락만 빨며 구경하고 있었고, 마지막까지 남은 이는 겨우 둘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 난 듯싶었다.
땡잡이에 돈을 잃은 군인이 울상을 지었다.
“중대장님, 너무하시지 말입니다. 조금만 봐주면서 하셔도 되잖습니까. 에휴! 오늘도 저희 소대 애들 치킨 사 주긴 그른 것 같습니다.”
중대장이라 불린 남자가 쯧쯧 혀를 찼다.
“새끼야, 네가 애들 치킨 사 줄 생각이나 있었냐? 돈 따면 요 앞에 정 마담 불러서 노는 거 모르는 새끼가 없구만.”
그때였다.
화투판에서 막 돈을 쓸어 담고 있을 때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있었다.
중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들어올 때 노크하라고…….”
“중대장님! 크, 큰일 났습니다! 몬스터 웨이브입니다!”
중대장은 코웃음을 쳤다.
“제가 뭐래는 거냐?”
“꿈이라도 꿨나 봅니다.”
“저 친구, 기가 좀 허했지 말입니다.”
다른 군인들이 이어서 왁자지껄 웃어 댔다.
터엉!
하지만 연이어 다른 순찰조가 문을 박차고 들이닥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모, 몬스터 웨이브입니다!”
“추정 숫자 4천 이상! 마수들이 던전을 빠져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