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46화
* * *
탕! 타앙!
산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총기 소리.
매캐한 화약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가 사방을 메우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아!!”
두두두두두!
장갑차 안에서 육식을 즐기던 고블린들을 향해 기관총 사수 한 명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방심한 고블린 몇 마리를 죽일 수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마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군인 한 명이 전면에 나선 순간 끝난 것과 같았다.
목숨을 도외시한 채 양옆으로 고블린이 벌떼같이 덮쳐들었다.
“끄아악!”
그 뒤로는 순식간이었다.
날카로운 고블린의 이빨에 군인의 얼굴이 절반가량 뜯겨 나가고 희멀건 뇌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군인은 즉사했다. 적어도 산 채로 뜯어 먹히는 고통을 당하진 않아서 다행이라 할 수준의 처참한 광경이었다.
키에엑!
그와 동시에 굶주린 듯 쓰러진 군인의 목덜미를 뜯어 먹던 고블린의 이마가 꿰뚫렸다.
연이어 수십, 수백 발의 총알이 작열하며 고블린들은 벌집이 되었다.
시체 옆으로 총격을 가한 몇몇 군인이 나타났다.
“빌어먹을 마수 새끼들!”
역한 광경에 모습을 드러낸 군인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입가에 토사물을 덕지덕지 붙인 이도 있었다. 여기 오기까지 더한 장면도 숱하게 본 탓이다.
숫자의 열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수 군단의 공포!
북한산에 자리 잡은 주둔지 모두가 일거에 습격을 받은 듯싶었다. 무전으로 연락되는 곳이 없는 걸 보면 모두 그만한 상황 아래에 있다는 뜻이었다.
겨우 살아남은 군인들이 무기고에 있던 수류탄과 총알을 바리바리 싸 들고 응전했지만 목숨은 여벌이 없었다.
주둔지 안에서 총격전을 벌이면 벌일수록 마수들이 꼬였다. 150에 달하던 군인 중 겨우 열 정도가 살아남았다.
그들의 얼굴엔 이미 패색이 짙었다.
“중대장님, 괜찮습니까?”
“씨바! 넌 이게 괜찮은 걸로 보이냐! 부상자들 챙겨서 따라와! 바로 이동한다!”
혹시 모른다.
주변에 남은 마수가 있을지도.
겨우 열 남짓한 병력으로 오크라도 만났다간 미래가 없다.
부상병을 챙겨 막 이동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그런데 누가 그랬던가?
혹시가 ‘역시’가 된다고…….
취익, 취이익.
“씨바…….”
사전에 교육받아 익숙한 오크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중대장이 욕설을 내뱉었다.
* * *
강북구 수유동, 북한산 국립공원 근처의 세븐일레븐.
오늘도 편의점 안에서 남은 삼각 김밥을 뜯어 먹던 편돌이 김군삼은, 때마침 들어온 짧은 핫팬츠와 골이 파인 은색 블라우스 차림의 여인을 보곤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여인은 찬바람을 쌩쌩 날리며 김군삼을 무시한 채 생리대 코너로 들어갔다. 김군삼은 콧잔등을 쓸더니 내심 감탄을 내뱉었다.
‘햐! 뒤태 쥑이네.’
핫팬츠 차림 덕분인지 볼록하게 튀어나온 둔부가 유독 강조되었다. 자연스럽게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유흥 쪽 사람인가? 이 주변 방값이 싸서 그런지 이런 여자가 자주 보인단 말이야, 헤헤…….’
북한산에 던전이 생기고 주변 땅값은 크게 휘청거렸다.
마음 같아선 던전이 코앞이라 위험천만한 이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싫었지만 시급이 센지라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것이다.
한데 며칠 아르바이트를 해 보곤 생각을 바꾸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이곳은 오아시스가 될 수도 있었다.
주변에 유흥업소가 많아 그쪽 관련 사람들이 편의점 근처의 값싼 방을 얻고 이처럼 자주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여인은 ‘좋은 느낌’을 골라 계산대 위에 당당하게 올려놓았다.
그러곤 찬바람이 쌩쌩 부는 얼굴로 김군삼을 바라봤다.
‘기가 엄청 세 보이네.’
섹시하긴 하지만 너무 기가 세 보인다는 게 단점이다.
김군삼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
“흠흠! 8,800원입니다. 봉투 드릴까요?”
“그건 구경값으로 대신하죠.”
“예?”
“제 엉덩이, 계속 쳐다봤잖아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손님?”
김군삼은 당황하여 급히 해명했다.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은 이 여자가 대체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양심에 찔리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부정해야만 했다.
여인이 표독스럽게 김군삼을 노려봤다.
“CCTV 확인해 볼까요? 그쪽이 내 엉덩이 봤나, 안 봤나!”
이 여자가 엉덩이 좀 본 걸로 왜 이래?
‘그날이라 그런가?’
김군삼은 속이 타는 마음으로 막 항변의 말을 꺼내려 했지만 순간 유리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이봐요!”
“마, 마…….”
“뭐라는 거야?”
어버버. 김군삼이 몸을 떨며 검지를 들어 바깥을 가리킨다.
여인은 이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고, 곧 김군삼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
“마수!!”
둘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서 수백의 마수가 도보를 통해 이동하고 있었다.
* * *
몬스터 웨이브.
마수가 던전을 빠져나오는 현상의 총칭.
이미 여러 나라에서 몇 차례 일어난 바가 있으며 한국은 공식적으로 다섯 번째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나라였다.
그나마 던전 근처에서 주둔하던 군인들의 희생으로 상당히 많은 마수를 사전에 격퇴할 수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북한산을 내려온 마수들은 그 즉시 강북구와 은평구를 습격했다.
마수의 존재를 눈치챈 뒤 대피령이 발령됐지만 우이동, 수유동, 갈현동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이미 많은 사람이 우려하던 일이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터지면 인근 도시는 쑥대밭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예언에조차 낄 수 없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모든 언론 매체와 정부가 입을 모아 군인들을 믿으라는 둥, 마수는 던전 바깥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는 둥의 말을 아끼지 않았고, 수많은 이해관계와 재산이 묶여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막상 일이 터지자 후속으로 도착해야 할 군대의 반응이 너무나도 무뎠다.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인 서울특별시 한복판인지라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집계된 사상자가 1,732명이나 되었다.
중상자와 실종된 이를 포함하면 2천 단위가 넘어가는, 막대한 피해.
던전을 빠져나온 마수들을 격퇴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한 차례 몰아닥칠 후폭풍을 생각하니, 높으신 분들이 머리를 싸매며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 * *
‘그래서 선택한 게 던전을 치는 거였지.’
나는 느긋하게 던전 최상층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던전 코어로 홀로그램을 띄워 관람이라도 온 듯이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군대의 자존심인지 뭔지는 몰라도 각성자 한 명 대동하지 않은 채 무대포로 밀고 들어왔다. 바보천치란 말이 딱 어울리는 대처다.
던전 안은 마력의 파동이 아주 강렬하다.
마력이란 무엇인가? 본래의 모습, 근원적인 힘이다.
인간들의 손을 탄 현대 문명은 근원과는 아주 먼 모습이다. 오히려 근원을 갉아먹는 주범이라 할 수 있기에 작동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설령 작동이 되더라도 위력이 크게 반감한다.
그나마 각성자는 그 마력의 파동에서 자유로우나 현대 무기보단 파장이 맞는 무기를 사용하는 게 훨씬 효율이 좋다.
그런데 일반적인 인간으로만 구성된 군대로 던전에 쳐들어왔다?
피식 웃고 말았다.
‘일반인을 죽여 봤자 포인트를 얻지는 못하지만…….’
포인트를 주는 존재는 오직 각성자뿐이다. 다른 던전의 마족이나 마수도 주긴 하지만 인간들로만 따져 봤을 땐 그랬다.
당연히 일반인을 대량 학살하여 얻을 수 있는 건 기여도뿐이었다.
지구 멸망 기여도.
그리고 1억 명가량을 몰살하면 업적과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그보다 마족을 죽이는 길을 택했기에 기여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1억 명을 몰살시키려면 대한민국 내의 모든 이를 죽여도 부족하다. 그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다.
양식장으로 이용하는 게 백배는 낫다.
‘차라리 크리슬리에게 선물로 줘야겠군. 저 정도 물량이면 언데드로 제조해도 재미가 쏠쏠할 터.’
나는 턱을 쓸며 던전에 들어온 이들의 미래를 결정지었다.
어차피 죽으면 마수들의 밥이 될 거, 언데드 제조의 숙련도를 올리는 데 이용하는 편이 훨씬 나을 거 같았다.
재활용이라면 재활용이다.
‘하지만…… 내 던전이 무시당하는 것도 좋은 기분은 아니야.’
북한의 도발에도 가만히 있었던 군대가,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고 얼마 안 되어 쳐들어왔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나?
아주 얕잡아 보이고 있다는 거다.
저급한 마수로 구성된 5천의 군단만 상대해 봤으니 기고만장할 법하지만…….
‘던전의 주인으로서 맞이해 주지 않을 수 없겠군.’
물론 직접 나서진 않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썩 달갑지 않았다.
고작 인간들의 군대 따위에 던전의 주인이 나설 필요가 무에 있단 말인가?
격이 맞지 않는다.
각성자들이 대거 들어왔을 때랑은 전혀 다르다. 그때조차 처음에는 마수들로만 처리하게 했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크라스라와 다크 엘프들을 모이게 만들었다.
드워프는 내버려 두었다. 파이록을 돌볼 이들은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하피의 번식을 위해 5층의 수문장 역할을 맡긴 머드 골렘 20기와 꼭두각시 인형 30기를 움직였다.
쿠웅.
쿠웅.
높이 4미터, 몸무게만 2톤에 달하는 육중한 크기의 머드 골렘 20기가 일렬로 정렬하여 질서정연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굳은 진흙을 주재료로 사용하여 연금술과 마법으로 정제된 병기.
중급 마수에는 못 미치나 하급 마수 중에서는 당할 게 없는 존재였다.
그 옆, 각종 금속으로 만들어진, 인간 형태지만 전신이 무기인 꼭두각시 인형 30기가 주인의 명을 따라 1층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머드 골렘의 양쪽 어깨 위에는 다크 엘프가 한 명씩 올라서 있었다. 그들은 활과 짧은 단검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다크 엘프가 쏘아 내는 화살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며 어둠 속에서 단도를 휘두르면 죽음의 암살자가 된다.
거기다가 던전 안이라는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면 적어도 인간들을 상대로 다크 엘프는 무적이었다.
그 숫자가 40에 달했다.
모두 합쳐 백이 되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숫자였다.
“정지!”
화르륵!
불로 이루어진 말, 인페르노!
인페르노 위에 크라스라가 앉아 있었다.
마법 귀걸이를 푼 크라스라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정지를 외친 그의 눈엔 결연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내게 인페르노를 맡기셨다. 즉,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워 적을 유린하라는 것!’
던전 마스터.
그가 직접 인페르노를 빌려주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일국의 장군으로 출전해 적을 쓸어버리라는 명이다.
그러나 크라스라는 짧게나마 인간을 경험해 보았고, 그들의 무력이 형편없다는 걸 알았다. 도구를 사용한대도 이만한 병력을 이길 수 없으리란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전술? 전략?
필요도 없다.
정면 승부!
그리하여 완벽하게 깨부수겠다.
크라스라와 그의 병력이 있는 곳은 1층. 500미터 앞에 적들이 포진한 것을 정찰대를 통해 확인했다.
크라스라가 붉은색의 창을 높이 들었다.
“적들은 이 앞에 있다. 더러운 발자취를 남기는 인간들에게 철퇴를 가해야 한다. 숫자는 많으나 그들은 약자다! 우리에게 짓밟힐 운명의 소유자인 것이다!”
다크 엘프들의 눈에 반가움이 솟았다.
그들이 온 곳은 마계.
강자 독식의 세계였다.
약자는 모멸받는 게 당연한 그곳.
비록 다크 엘프들 역시 힘이 약해 계약을 하고 이곳에 도달했지만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일 기회였다.
어찌 즐겁지 않으랴!
크라스라는 창을 앞으로 내밀며 인페르노의 배를 한 차례 찼다.
이히힝!
인페르노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크라스라는 사자후를 내질렀다.
“한 놈도 남김없이 쓸어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