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47화
필리핀, 중국 상동, 인도, 프랑스, 그리고 한국.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순서다.
프랑스를 제외하면 처음부터 제대로 방비하지 않았다는 게 공통점이었고, 그나마 한국은 던전 근처에 군대를 주둔시켰으나 그 후의 대처가 빠르지 못했다.
결국 천 명이 넘어가는 사상자와 수 조에 이르는 재산피해를 입었으니 국민들의 원성은 대단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현 정권은 이를 무마하고자 언론을 통해 국민들이 인지하는 던전의 위험성을 축소하기 위한 프로파간다를 시도했지만 특정 집단을 제외하곤 먹혀들지 않았다.
이미 피해가 무지막지한 상황에서 던전의 위험성을 낮게 잡는다고 국민 여론이 흔들릴 리 만무했던 것이다.
하여 흐름을 바꾸고자 사단 하나를 통째로 던전에 밀어 넣었고, 청와대 지하 벙커 안보 회의실에서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해당 사단의 직속상관인 중장, 안보 회의 담당 행정관들이 모여 앉아 작전의 수행 정도를 전해 듣고 있었다.
쾅!
“이번 작전이 망하면 우리는 전부 죽는 겁니다. 잘돼야 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던전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락이 끊겼다고요? 최춘기 중장, 유선 라인을 직접 설치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대통령이 외치자 최춘기 중장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바짝 마르는 입술을 핥았다.
“각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특수 수도 방위 사단의 화력은 막강합니다. 그깟 마수들이 판을 친다고 해도 특방사의 화력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최춘기 중장! 던전을 쓸어버리는 건 당연한 겁니다. 문제는 최소한의 피해로 그걸 성사시키는 거고! 그래야 숨이라도 쉴 수 있다는 걸 정말 모르는 겁니까!”
최춘기 중장은 답답한 마음을 살짝 내보였다. 한 개 사단이 가지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건가? 하물며 던전을 처리하고자 특수하게 조직된 사단이다.
특전사와 기동 타격이 가능한 장갑차, k1a1, k2 전차 등으로 무장된 특방사는 그중에서도 최강이라 평할 만했다.
고작 마수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최신 화기를 장착한 병사들 앞에 마수는 과녁일 뿐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각하. 비록 통신이 끊겼다고 해도 통신병을 직접 들어가게 하면 됩니다. 수 시간 내에 전황이 전해질 것이고, 그것은 저희에게 매우 좋은 소식이리라 장담합니다.”
최춘기 중장은 자신했다.
질 리가 없다.
여태껏 코어에 관한 여러 정치 관계가 얽혀 던전을 놔뒀지만 이건 말하자면 퍼포먼스다.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아주 손쉽게 대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보여 주는 것이다.
던전 바깥에서 수천의 마수 무리를 일거에 초토화시켰기에 최춘기 중장은 오히려 대통령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반드시 그래야 할 겁니다. 목이 잘리기 싫으면…… 반드시!”
* * *
최춘기 중장의 희망적인 관측과는 다르게, 일선에서 활약하는 병사들의 상황은 썩 좋지가 않았다.
8천여 명이 움직이는 것이라 마수들도 쉽사리 덤벼들지는 못했지만 문제는 던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현대 과학의 산물이라 칭해지는 것들이 점차 오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무전기와 유선으로 연결한 통신기가 먹통이 되었다. 탱크나 장갑차 등이 연기를 내뿜더니 멈춰 섰고, 화기들도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사단장님, 모든 통신기가 먹통입니다. 통신병을 돌려도 던전 입구까지 5시간은 걸릴 것 같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작전대로 간다. 마수들은 총만 있어도 충분해.”
사단장은 확고한 의지로 작전 수행을 명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병사들의 얼굴에는 암담함이 서렸다.
현대 과학의 산물들이 던전 안에선 먹통이 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이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미국이 직접적으로 공표했으니 던전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 알고도 ‘진짜 그러겠느냐.’ 싶어서 작전을 수행시켰을 확률이 더 높겠다.
하지만 일개 군인들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존재다. 위에서 시키면 그대로 해야만 하는 게 그들인 이상 작게 불평 몇 마디 하는 게 고작이었다.
“에효. 관심도 없겠지, 위에선…….”
전방의 병사 한 명이 중얼거렸다. 주변의 병사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부와 권력을 쥔 이들이 던전보단 던전에서 나오는 코어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걸 군인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을 터였다.
각성자라도 포함되어 있었다면 불안함이 덜할 텐데 위에선 의도적으로 각성자를 제명시켰다.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던전을 정복하겠다는 절절한 의지마저 느껴졌지만…….
“이게 무슨 소리야?”
“땅이 울리는데?”
“정지!”
쿠우웅.
쿠우우웅.
돌연 던전이 울리며 지척에서 커다란 광음이 들려왔다.
병사들은 의아해하며 그나마 작동하는 대형 손전등과 땔감으로 겨우 만든 횃불을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돌렸고, 그 순간 끄트머리에서 달려오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그것은 커다란 말이었다.
그냥 말도 아닌, 불로 이뤄진 말!
그 위에 누군가가 타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생명체에 모두가 넋이 나갔을 무렵.
병사들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저 특이한 말 한 마리만 나왔다면 이처럼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광음을 낸 존재들을 마주한 순간, 병사들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수십 기의 거대한 골렘!
열을 맞춰 다가오는 그 광경은 압도적이란 말로도 부족했다.
그 옆으로 반짝이는 금속 인형들이 땅 위를 날 듯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첫 전투이자 대미를 장식할 전장은 그렇게 찾아들었다.
* * *
층을 나누어 마수를 배치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오로지 각성자를 위한 안배다.
차례대로 성장시켜 포인트를 얻기 위한 수단.
한데…… 그조차 할 수 없는 자들이 던전에 발을 들였다.
굳이 층을 나누어 기다려 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각성자가 아닌 이상 인간들은 던전 안에서 마수에게 대항할 수 없다.
현대 화기는 확실히 위력적이지만 그것은 던전 바깥 한정이다.
안에선 거의 모든 화기가 먹통이 되거나 오류를 범하는 탓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건가? 아니면 알고도 무시한 건가?
“마스터, 인간들은 정말 멍청해요. 이히라면 먼저 마스터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던전에 들어오는 걸 허락받았을 텐데! 물론 그 대가로 공물을 내놓고요. 이히는 공물 대신 뽀뽀 한 번이면 충분하겠지만 말이죠~ 이히히.”
나와 함께 수정구로 전투의 진행을 바라보던 이히가 말했다.
천하의 이히가 바보로 인정할 정도면 정말 답이 없다는 거다.
은근슬쩍 이히가 다가와 입술을 내미는 걸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이히의 양 볼을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맞잡고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나는 가만히 수정구를 응시했다.
* * *
“제기랄, 총구 제대로 겨눠!”
“바, 발포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스코프의 초점이 미묘하게 엇나갑니다!”
“수류탄 투척!”
“안전핀 제대로 뽑았냐? 안 터지잖아!”
“으아아악!”
아수라장!
불시에 맞은 습격에 8천의 병사가 허둥지둥거렸다.
총구를 겨누고 발포하면 총알이 미묘하게 착탄점과 멀어지는 것이다. 눈을 감고 쏘는 수준인지라 아군이 맞는 경우도 허다했다.
수류탄을 던져도 터지지 않거나 폭발의 범위가 축소되었다. 골렘에게 타격을 줘도 금세 수복해 버릴 수준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인형들은 어떤가?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그것들은 전신이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훑으면 베이고, 찌르면 뚫렸다.
사단장은 이를 갈며 말했다.
“움직이는 전차는?”
“없습니다! 엔진이 타 버려서 정비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나마 장갑차 몇 대가 움직이긴 합니다만 역시 정상은 아닙니다!”
“젠장!”
옆에서 보좌하던 사수의 말을 듣고 사단장은 이맛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총은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었다. 수류탄도 제대로 터지질 않는다. 이처럼 현대 화기가 무력화되는 것을 그는 처음 보았다.
“착검! 모두 착검하라!”
뒤늦게나마 사단장이 외쳤다.
지휘관의 우렁찬 목소리에 병사들이 겨우 정신을 다잡았다.
그 즉시 허리에 찬 대검을 착검하여 달려드는 꼭두각시 인형에게 겨눴다.
치잉!
하지만 대검의 공격력은 어디까지나 생체에게 유효하다. 각성자가 아닌 한 일반적인 인간의 근력으로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꼭두각시 인형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할 수 없었다.
스크래치를 조금 내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다.
하지만 꼭두각시 인형은 적당히 견제할 만하였다. 골렘도 크기만 컸다 뿐이지 움직임이 매우 느렸다.
진짜 문제는, 골렘의 어깨 위에 서 있던 까만 피부의 다크 엘프와 선두에서 불의 말을 탄 채 기다란 창을 휘두르는 이였다.
고작해야 40 남짓의 숫자.
그러나 도저히 대항할 수가 없었다.
어둠에 동화되어 마치 그림자처럼 이동하는 이들.
그나마 특전사들이 고군분투하긴 하였으나 역시 한계가 있었다.
그들이 배운 것은 인간을 상대하는 방법이지 마수들, 그것도 이처럼 강력한 마수와 대치했을 때를 대비한 훈련은 받은 적이 없는 것이다.
결과는 무척이나 암담하였다.
“모두 후…… 컥!”
후퇴를 내뱉으려던 사단장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목이 잘렸다.
크라스라!
그가 인페르노를 타고 단번에 거리를 좁혀 창을 휘두른 것이다.
수천의 병졸을 뚫어 버리는 돌파력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이어 일선에서 지휘를 맡은 장병들이 하나둘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다크 엘프들이 순식간에 정황을 파악하고 그들만 노린 탓이었다.
지휘 계통의 혼란!
무전조차 터지지 않으니 앞뒤가 꽉 막힌 상황.
모두의 뇌리에 ‘절망’이 내려앉은 순간이었다.
* * *
안보 회의실.
그 안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대통령이 의자에 기대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통신병에 의해 몇 시간 단위로 연락이 오갔지만 그것도 엊그제를 마지막으로 끊겼다.
아무런 연락이 닿지 않은 지 벌써 이틀이 지나갔고, 안보 회의실 안은 장례식장마냥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되었다.
“아직도…… 연락은 없습니까?”
가래 섞인 목소리로 대통령이 말했고, 최춘기 중장을 비롯한 모든 이가 입을 꾹 닫았다. 벌써 이틀이나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결과는 최악이었다.
한참이 지나 최춘기 중장이 입을 열었다.
“수색대를 보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그놈의 조금만, 조금만! 대체 그 조금이란 건 언제 되는 겁니까? 만약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면 단순히 옷을 벗는 것으로 끝나진 않을 거란 말입니다.”
대통령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최춘기 중장이 다시 입을 닫았다.
그들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뒤늦은 대처로 1,700명이란 사상자를 내고 투입한 8천 명마저 잃는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차라리 파병 형태였다면 모를까, 대한민국 내에서 일어난 일이다. 옷을 벗는 것으로 끝난다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국방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각하,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몸을 들어 검지로 책상을 계속해서 두드리던 대통령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대국민 사과로도 부족합니다. 제가 하야하는 것 외에 방법이 있겠습니까?”
“아직 결과는 모릅니다, 각하. 훌륭하게 작전을 수행하고 장병들이 돌아올 수도…….”
“모르니까 문제란 겁니다. 현 정권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 상당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역풍은 거세질 겁니다.”
대통령이 표정을 굳히며 이어서 말했다.
“좋습니다. 최대한 덮어 봅시다.”
* * *
그다음 날부터 던전과 군인들에 관련된 뉴스는 극히 제한되었다. 모든 언론과 정보기관, 단체들이 합심하여 고의적으로 정보를 은폐시켰기 때문이다.
물음이 오면 그저 기계적으로 답하며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등의 애매한 말만 늘어놓기 바빴다.
포털 사이트조차 무사하진 못했다. 게시판 글들에 대한 검열 등이 이뤄지며 알게 모르게 삭제되는 데이터의 양만 하더라도 엄청났다.
하지만 아무리 감추려 해도 처음부터 금이 가 있는 이상 차곡차곡 차오르는 물줄기를 막을 순 없는 노릇이다.
애당초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일 진행이 제대로 먹힐 리 없었다.
그사이 던전에 들어간 장병들이 돌아왔다면 모르지만 돌아오지 않았고, 마침내 한 달이 지났을 때 국민 여론은 현 정부에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각성자들이었다.
몇몇 길드가 던전 안을 수색하며 병사들이 사용했던 전차나 장갑차 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곳곳에 놓인, 뼈밖에 남지 않은 시체와 총구들은 아무리 봐도 좋은 상황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을 챙겨 갈 여유조차 없었다면 이야기는 뻔했다.
이후 며칠이 더 지나자 군복을 입은 좀비가 1층에서 간혹 출현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몰골로 던전을 배회하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군인이었다.
스프링처럼, 참을 대로 참았던 국민들은 거세게 일어났다.
처음에는 평화 시위였지만 모든 게 백일하에 드러나자 마냥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 모두가 장병들의 부모님이요, 가족이었다.
결국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하야했고, 정권 교체론이 대두되며 수많은 후보가 차기 대통령 자리에 출마했다.
미국의 언론가 존 프라하는 이 일련의 사건을 보곤 이렇게 말했다.
“지휘부의 쓸데없는 자존심과 말도 안 되는 무지가 부른 최악의 결과.”라고.
동시에 그는 ‘던전 공방록’이라 적힌 책을 발간했는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의 시작과 그 끝을 상세하게 적어 놓으며 정부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렇게 대한민국에 첫 몬스터 웨이브가 발동하고 2개월이란 시간이 지나갔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