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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48화 (48/242)

던전 사냥꾼 48화

나는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으로 6층 용암 지대를 바라봤다.

다크 엘프들과 드워프들이 온갖 정성을 쏟아 가며 키워 낸 성체의 파이록이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크기는 평균치보다 컸고, 날개가 박쥐의 것과 비슷하다는 걸 제외하면 용을 축소해 놨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모습.

3차 탈피를 모두 마친 파이록은 네 마리였다.

한 마리만 성체가 되어도 큰 수확이라 생각했건만 기대 이상의 성과라 아니 할 수 없었다.

성체의 파이록은 중급 마수 4Lv에 달한다. 인페르노보다 레벨이 하나 낮지만 거의 20,000pt급의 효율을 자랑했다.

파이록의 유충 40마리를 사는 데 48,000pt를 사용했으니 성체 네 마리면 30,000pt 이상이 남는 장사였다.

“수고했다.”

성과를 내었을 땐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줄리엄과 드워프의 족장 스테인이 무릎을 꿇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던전 마스터시여!”

“따로 원하는 게 있나? 적당한 선이라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자 줄리엄이 긴장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히 님은 이곳에 계십니까?”

“꿀을 따러 간다더군.”

“그럼…… 정원을 바꿔 주실 수 있을는지요?”

“정원?”

줄리엄은 목울대를 울리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해괴한 모양의 커다란 구조물이 저희가 있는 층에 만들어졌나이다. 요정님께선 정원이라 하셨는데 이용하자니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모습인지라…….”

이히는 줄리엄이 마음에 들어 커다란 정원을 만들어 주겠다고 공언한 바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 똥 모양의 구조물을 말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미적 감각이 뛰어난 다크 엘프의 주거지 중심에 그런 구조물이 있다면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일 터였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마.”

“감사합니다!”

“드워프는 원하는 게 없나?”

드워프가 자리한 방향을 쳐다봤다.

그중 족장 스테인이 고개를 들더니 눈을 빛냈다.

“던전 마스터시여, 던전 곳곳에서 몇 가지 특이한 광물을 발견했습니다. 그걸 파내고 정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 역시 허락하마. 허나 만들어 낸 것 중 절반은 따로 선별하여 내게 보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던전 마스터시여!”

드워프는 무언가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는 종족이다.

던전에서만 나오는 특이한 광물을 발견했다면 군침이 돌 수밖에 없었다.

그를 위해 만든 것 중 절반은 기꺼이 넘길 수 있는 게 그들이다.

‘그러고 보니 드워프를 위한 층을 따로 선별해 주지 않았군.’

나는 가만히 들뜬 얼굴로 해죽거리는 드워프들을 쳐다봤다.

여태껏 시킬 일이 많아 부려 먹긴 했지만 슬슬 그들을 위한 층 하나를 배정해 줄 차례가 아닌가 싶었다.

‘조만간 4층이 뚫리고 각성자들은 5층에 도달할 것이다. 그곳에서 한 차례 좌절을 맛본 후 6층 용암 지대를 거치면 상당한 체력이 소모되겠지.’

곰곰이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5층과 6층은 사정없이 각성자들을 괴롭힐 장소다.

그렇다면 7층에서 완급 조절을 해 줄 필요가 있었다.

‘무기를 고치고,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층. 일종의 세이브 존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일반적인 마족이라면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일.

하지만 나는 그들과 전혀 다른 노선을 걷는 존재다.

전생에서 인간들이 즐겨 하던 게임이란 것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초점에 맞춰서 활용할 줄 알았다.

이런 유연함은 오로지 내게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대가로 정보와 각성자가 죽인 마수의 사체를 얻어도 괜찮겠지. 일일이 수거하는 건 굉장히 번거로운 일. 크리슬리가 있으니 언데드로 만들면 재활용도 수월해질 터.’

더불어서 언데드 제조 스킬을 보다 빨리 높일 수 있을 것이었다.

어차피 마수의 시체는 가만히 놔두면 던전의 마력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마수에게 먹힌다. 그것을 일일이 수거하는 건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니 그 역할을 인간 각성자들에게 맡기자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생각을 정리한 후 말했다.

“드워프들은 들으라.”

드워프 무리가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경청하겠습니다.”

“너희들이 머물 장소로 7층을 허락한다. 하지만 너희의 역할은 각성자를 막는 게 아니라 그들은 돕는 것이다.”

드워프 족장 스테인이 참담한 어조로 말했다.

“……제 머리가 아둔하여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던전 마스터시여.”

“드워프는 7층에서 생활하며 인간 각성자들의 편의를 봐주어라. 지친 그들은 처음에는 의심하겠으나 곧 반색하며 너희에게 갖은 정보를 물어다 줄 것이다. 그것을 파악하라. 또한 그들의 장비를 수리하고 대신 마수의 사체를 얻어라. 이 두 가지는 필히 해야 할, 아주 중한 일이다.”

인터넷에선 구할 수 없는 조심스러운 이야기들.

내가 미처 알지 못하고, 신경 쓸 수 없었던 것들을 듣고 파악하는 게 드워프들이 가장 중시해야 할 일이었다.

단순히 사체만 얻을 생각은 없었다. 난 언제나 그 이상의 효율을 추구한다.

“얻은 시체는 크리슬리에게 가져다주면 된다. 허나, 각성자들에게 들은 정보는 엄선하여 보고서 형식으로 이히에게 제출하면 될 것이다. 그 외에…… 너희가 바라는 걸 각성자에게 얻어도 크게 상관은 않겠다.”

“인간들은 의심이 많은 종족입니다. 그들이 먼저 공격해 온다면 어쩌면 되겠습니까?”

“현재 인간들의 수준은 매우 낮다. 그리고 그들이 7층에 도달하기 전에 다수의 드워프를 충원해 주마. 숫자적으로도 밀릴 일은 없을 것이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드워프야 많아서 손해는 안 나는 마수다.

하나에 5,500pt의 값이긴 했지만 포인트만 충분하다면야 100마리라도 늘려 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성과 보고와 할 일을 배정한 나는 다시 네 마리의 파이록을 쳐다봤다.

놈들은 용암 위에 떠다니며 내게 시선을 주는 중이었다.

본능적으로 던전 마스터임을 알아보고 자연스럽게 끌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얌전한 걸로 보아 누군가의 손길을 탄 게 분명했다.

“파이록을 조련한 이는 누구냐?”

줄리엄이 답했다.

“크리슬리입니다, 던전 마스터시여.”

역시나.

아마도 내가 굳이 파이록을 유체부터 키운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미리 손을 썼을 터였다. 크리슬리는 의식을 치른 이후로 결코 내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슬리는 앞으로 오라.”

이에 다크 엘프들의 중심에 앉아 있던 크리슬리가 사뿐히 두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이히 외에 공적인 장소에서 내게 이처럼 가까이 올 수 있는 권리는 그녀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파이록 네 마리가 성체가 된 것도 기쁘지만 크리슬리의 압도적인 성장은 내게 있어서도 무엇보다 흡족한 일이었다.

특히 얼마 전 대량의 인간을 좀비로 만든 일은 충분히 대단한 공이었다. 덕분에 1차 몬스터 웨이브로 비었던 마수의 빈자리를 채우는 게 가능했다.

딱히 바라는 게 없어 놔두긴 했지만 현시점에서 가장 쓸모 있는 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크리슬리가 가장 먼저 입에 오를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이모저모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크리슬리, 지금부터 파이록을 이용해 던전의 특수한 장소를 찾을 것이다. 불의 마력이 강한 곳을 중점으로 탐색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가능하옵니다.”

크리슬리가 자신 있게 답했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좋다. 파이록을 이끌고 불의 마력이 강한 곳을 찾아라. 들어가기에 앞서 내게 먼저 보고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 * *

그로부터 3일 후.

크리슬리가 나를 찾아왔다.

“불의 마력이 가장 강한 세 곳의 장소를 찾았습니다.”

일주일을 예상하고 있었던 나는 그 빠른 처리에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다크 엘프의 발이 빠르고, 네 마리의 파이록을 수색에 이용한대도 3일은 너무나도 이른 시간이었다.

잠 한숨 자지 않고 던전을 돌아다닌 게 틀림없었다.

나는 흡족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함께 가자. 불의 마력이 가장 강렬했던 장소부터 나를 안내해다오.”

크리슬리도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었다.

“기쁜 마음으로 그리하겠나이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그동안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의’ 던전 마스터라.

의식을 치렀기 때문인가?

어쩐지 귀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던전 29층.

파이록 네 마리가 한 지점에 멈춰 서더니 갑작스럽게 광분하며 벽에 몸통을 박아 댔다.

‘뭔가 있긴 있군.’

내 마력은 90에 달한다. 주변에 흐르는 마력의 파장을 어느 정도는 꿰뚫을 수 있었다.

벽에 손을 대고 가만히 정신을 집중하자 유독 한 부분만 두께가 얇다는 걸 알아챘다.

즉시 손에 전력을 모아 그 부분을 내리쳤다.

쿠앙!

우월한 힘과 뇌신공의 위력이 더해지자 던전의 벽도 버텨 내질 못했다. 몇 차례나 반복하여 작업한 결과 곧 벽이 완전히 허물어졌고, 벽의 반대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이었다.

[훌륭한 업적! 던전 내에 존재하는 네 개의 제단 중 하나, 불의 제단을 찾았습니다.]

[네 개의 제단이 무너지면 던전을 순환하는 마력에 이상이 생깁니다. 또한 던전 외부를 지키는 베리어가 증발할 것입니다.]

[보상으로 파이어 골렘 두 기를 획득했습니다.]

벽을 넘어 반대편에 들어서자 거대한 크기의 파이어 골렘 두 기가 등신대마냥 제단을 지켜서고 있었다.

‘찾았다.’

상급 마수 3Lv에 달하는 강력한 녀석이다. 이 둘은 내게 주어진 보상이었고, 포인트로 구매하려면 170,000pt나 들어가는 보배였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나머지 제단도 찾아봐야겠어.’

나는 던전을 빠르게 잃었다. 하여 제단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전생에서 확인한 것도 다른 마족의 던전을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게 전부였다.

“파이어 골렘…….”

크리슬리가 잠시 중얼거렸다. 그녀의 뒤를 따르던 파이록도 몸을 바짝 움츠리며 두려워했다. 급이 다른 마수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리라.

“겁먹지 마라. 내 명령 없이 파이어 골렘은 움직이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무슨 장소인지요?”

“불의 제단. 던전 내, 마력의 흐름을 조정하는 곳이다.”

어쨌든 원했던 것을 얻었으니 파이어 골렘을 움직이는 일만 남았다.

내가 막 움직이려는 찰나 크리슬리가 입을 열었다.

“허공에 글자가 떠 있습니다. 보이십니까?”

“글자가?”

안력을 돋아 제단 주변을 살펴봤지만 글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크리슬리가 이런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확실히 무언가가 있긴 할 것이었다.

“던전과 관련된 내용인 것 같습니다.”

“읽어 보라.”

크리슬리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신이 떨어진 장소, 그 자리에 던전에 생겼도다. 나는 지혜의 신 미네르바. 그대와 뜻을 함께할지니…… 지혜를 얻은 자여, 내 마지막 선물을 받으라.”

크리슬리의 말이 끝난 순간 나는 표정을 굳혔다.

미네르바!

내가 회귀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구의 신 중 하나의 이름이다.

나는 그들과 거래를 한 바가 있었고, 나를 되돌려주는 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한데 그 이름이 대관절 여기서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게다가 나에겐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크리슬리에게만 보이는 문구.

‘크리슬리의 지능이 100인 것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군.’

그 외엔 딱히 짐작되는 게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제단의 위에 균열이 생겨났다.

혼돈과 마력이 아닌 신성력으로 말미암아 생긴 균열.

그곳을 뚫고 한 마리의 거대한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끼룩!

독수리의 머리를 가졌으나 크기는 비교가 안 된다.

감히 파이어 골렘과도 격이 다르다 할 수 있는 마수.

“그, 그리핀!”

크리슬리가 경악했다.

불과 번개를 다루는 최상급의 마수 그리핀……!

비록 최상급 마수 중 가장 밑에 존재한다고 하나, 상급과 최상급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허!’

나는 용감무쌍한 자태로 바닥에 앉은 그리핀을 바라봤다.

파이어 골렘보다는 조금 작지만 존재감만큼은 감히 격이 다르다 할 수 있었다.

심안을 열어 그리핀의 상태를 엿보았다.

이름: 그리핀

능력치 :

힘 88 지능 77

민첩 69 체력 84 마력 85

잠재력(403/405)

특이 사항: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키우던 애완동물. 허나 그녀가 죽은 후 마지막 부탁에 의해 랜달프 브뤼시엘을 새 주인으로 맞이하였습니다.

스킬: 불과 번개(Epic)

최상급 마수라서 그런지 능력치 총합이 400을 넘어간다.

칭호와 분노의 모든 옵션을 더한 내 능력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와 달리 그리핀은 대인 공격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 출현한다면 능히 재앙이라 칭해질 마수가 바로 그리핀이었다.

모든 마족을 통틀어, 지금 이 순간 최상급 마수를 지닌 자는 없을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상급의 마수는 마계 옥션이나 아주 특수한 이벤트로만 얻을 수 있었다.

‘혹시 다른 던전도?’

미네르바는 마지막 선물이라 하였다.

아직 세 개의 제단이 더 존재하지만 아마도 더 남은 것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다른 던전은 어떨까?

신이 떨어진 장소.

나는 그 떨어진 신들과 계약하였다.

다른 던전 역시 그런 신들이 잠든 장소이고, 모든 던전을 접수하는 게 내 역할인 이상 그들이 던전마다 무언가 선물을 하나씩 남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계획을 조금 변경해야겠군.’

뜻밖에 수확을 얻었다.

최상급 마수인 그리핀을 얻었으니 굳이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압도적인 힘을 내세워 인간들을 굴종하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키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각성자들의 빠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그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핀과 크리슬리를 이용하면 그 역시 가능할 듯싶었다.

상급의 파이어 골렘이었다면 애매한 감이 있어서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켰을 테지만…….

‘신들이여, 이런 선물이라면 내 마다하지 않겠소.’

나는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본래는 던전의 마수를 보존한 채 각성자들을 키워 마족의 던전을 칠 셈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다른 마족에게 없을 커다란 힘을 얻은 지금, 다른 던전에도 이와 비슷한 선물이 있으리라 예상되는 현재, 확인 차 근처의 던전 하나 정도는 털어먹어도 괜찮으리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는 인근 국가에 위치한 던전들을 떠올리며 그중 가장 취약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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