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49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던전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중국과 일본이다. 특히 중국은 던전이 다섯 개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땅이 워낙 넓어서이지 거리상으로는 특별히 가깝다고 할 수 없었다.
족히 수천 킬로를 가야 하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바다 건너 일본으로 진출하는 게 나았다.
‘일본의 던전은 대공 우파의 휘하 마족이 있는 곳이지. 이름이…… 아돌이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처음으로 칠 던전이기에 보다 신중히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대공 우파의 휘하라면 일단 절반은 합격이다.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파는 그다지 휘하 마족들을 신경 쓰진 않았다.
오히려 전쟁이 본격화된 극후반에 스스로 휘하 마족을 죽이고 포인트와 던전을 손에 넣어 막대한 잇속을 챙기던, 아주 이기적인 녀석이다.
마족이 마족을 죽이면 상대가 가진 던전을 얻을 수 있으며 잔여 포인트마저 흡수하는 게 가능한 탓이다.
뿐만 아니라 그 던전에서 얻는 포인트 수익마저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었다.
5년 후에나 밝혀질 정보지만 대공 우파의 만행을 끔찍이 여긴 대공 아리엘이 정면으로 부숴 버렸다. 물론 그 과정이 치열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약 나머지 두 대공들, 그러니까 판데모니엄과 오쿨루스가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어부지리를 노린 전략에 둘 다 파멸을 맞이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여간에…….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우파가 아돌 백작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공작급이라면 모를까 흔하디흔한 백작의 위치를 신경 써 줄 정도로 대공 우파는 아량이 넓지 못했다.
‘아돌 백작을 죽여야겠군.’
목표가 정해졌다.
‘던전을 늘리면 최소 2년간 마계 옥션의 옥석들은 전부 챙길 수 있을 터. 본래는 예정에 없었지만 괜찮겠지.’
제단을 통해 얻은 극소수의 상급 마수와 다른 마수들을 더해도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다른 마족은 경매에 참여할 포인트를 모으지 못한 대신 던전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나는 반대로 던전 강화를 뒤로 미룬 채 마계 옥션에 올인했으니…….
아돌을 쳐 낸다 하여도 손해가 막심했을 것이다.
비록 새로운 던전을 얻는다고는 하나 상급 마수들과 크라스라, 크리슬리를 잃으면 그것을 복구하는 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최상급 마수 그리핀이 더해졌으니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대인 공격에 특화된 그리핀이라면 아돌의 던전을 공략하는 데 무척이나 큰 힘이 되어 줄 게 자명했다.
‘놈의 던전은 전생에서 한번 탐사해 본 적이 있다.’
워낙 거리가 가까운지라 던전을 잃고 가장 먼저 향한 게 일본이었다.
던전의 구성은 모조리 꿰고 있었다.
‘확실히…… 아주 역겨운 놈이었던 걸로 기억나는군.’
대공 우파의 휘하 마족 중에 정상적인 마족은 극히 적었다. 아돌도 마찬가지였다.
오크나 코볼트, 놀 등의 저급한 마수들과 교합하는 것이 놈의 취미였다. 오크에게 이상한 속옷을 입히고 흥분하는 이상 성애자. 마수들이 돌연변이를 낳으면 그것을 또 좋다고 키우는, 전혀 이해되지 않을 기행을 선보였다.
한데 그것조차 부모의 정 같은 게 아니라 특이한 마수와의 교합을 바라는 아주 욕정 가득한, 뒤틀린 마음이었다는 게 문제다.
그 모습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진다.
같은 마족이라 취급하기도 싫은 놈.
그게 아돌 백작이었다.
‘던전에는 특히 오크류의 마수가 많을 것이다. 그리핀은 천적이라 봐도 무방해.’
적당히 전생의 기억을 되살렸다.
나머지 제단의 상급 마수들을 얻은 뒤 한동안 모은 포인트로 몇몇 상급 마수를 더 소환하면 충분히 아돌 백작의 던전을 밀어 버릴 수 있을 듯했다.
바다를 건너 일본까지 도달하는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어차피 머지않은 미래에 하려 했던 일.’
예정은 변경되었으나 궁극적인 목적만큼은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들뜬 눈빛으로 아돌 백작의 던전을 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 * *
파이어, 아이스, 어스, 윈드 골렘.
그로부터 두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을 더 들여 제단을 찾은 결과 모든 속성의 상급 골렘을 두 기씩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시간 동안 25만 포인트를 더 모아 나는 대략 41만 포인트를 보유하게 되었고, 고민 없이 상급 마수 2Lv의 ‘아일랜드 터틀’을 구매했다.
지상에선 골렘보다 살짝 작은 몸집이지만 물에 들어가면 작은 섬만 하게 커지는, 특이한 마수.
크기와 방어력 말곤 별 볼게 없는지라 11만 포인트면 충분했다.
하지만 능히 마수들을 옮길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잔여 30만 포인트를 어디다가 사용할지 고민하다가 리치를 구매하기로 결정하였다.
상급 마수 4Lv에 달하는 리치는 그리핀과 더불어 대량 학살을 할 때 상당히 어울리는 존재였다.
‘리치…… 시체를 이용한 스킬은 상당히 파격적이지.’
리치는 시체가 많을수록 힘을 발휘한다.
시체를 폭발시키거나 죽은 이를 잠시나마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자잘한 스킬을 많이 구사하는, 쓸모 많은 마수였다.
그렇게 나는 모든 구성을 끝냈다.
아돌 백작의 던전을 칠 마수의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크라스라와 크리슬리.
다크 엘프 40명.
파이록 네 마리.
네 가지 속성의 상급 골렘을 두 기씩, 총 여덟 기.
리치 한 구.
그리핀 한 마리!
드워프들은 7층에 마을을 만드느라 바쁠 것이니 제외시켰다. 아일랜드 터틀도 이동 수단에 불과할 뿐이니 뺐다. 어차피 둘 다 던전 공략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던전을 칠 때는 우르르 몰려가는 것보다 이처럼 정예로 구성해 움직이는 게 나았다. 이 정도면 한국이란 나라의 절반쯤은 괴멸시킬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리핀이 없으면 그 기대치가 확 낮아지긴 하겠지만 마수의 구성을 정한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쿵!
가장 먼저 던전을 빠져나온 건 여덟 기의 골렘이다.
족히 10미터는 되어 보일 법한 어마어마한 거구.
활활 타오르는 파이어 골렘과 녹지 않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아이스 골렘.
특상의 흙을 뭉쳐 놓은 듯한 어스 골렘, 전신이 돌풍으로 이루어진 윈드 골렘.
그 뒤를 이어 검은색 망토를 뒤집어쓴 리치와 박쥐의 날개를 제외하면 드래곤의 축소판인 파이록 네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고, 다크 엘프 40명을 이끄는 크라스라가 인페르노를 탄 채 용감무쌍한 자태를 뽐냈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거대한 새 그리핀이 크리슬리를 태운 채 나타나니, 던전 근처를 엄중히 지키던 군인들의 턱이 나가 버릴 정도로 벌어졌다.
1차 몬스터 웨이브 때 보인 조잡한 마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본능의 아우성이 모두에게 자리 잡았다.
“……공격합니까?”
보조 사수들의 물음에도 지휘 계통의 군인들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공격한다면 당연히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1차 몬스터 웨이브 때 톡톡히 당한 터라 던전 근처는 삼엄한 방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마수라면 코웃음 치겠지만 저 존재들은 감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 순간 누군가가 돌연히 외쳤다.
“리, 리치입니다. 프랑스에서 수백의 각성자와 수천의 군인을 몰살시켰다는 그 리치 말입니다!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는데, 확실합니다.”
“뭐? 리치?”
“미친…… 프랑스 ‘악몽의 날’이라고 불리게 만든 몬스터 웨이브?”
“전술핵을 수도 없이 때려 박아서 잡았다던데…….”
군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한 존재의 정체가 리치임을 알았으니 모두들 식겁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
거기서 출현한 마수 중 하나가 리치였다.
프랑스의 경우 처음부터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수백의 각성자와 수천의 군인이 죽었다.
다른 마수들은 어찌어찌 처리할 수 있었으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리치였다. 리치는 시체를 이용해 스킬을 구사했고, 모든 공격에 면역이었다.
결국 피눈물을 머금으며 전술핵을 수도 없이 때려 박아 억지로 잡았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가십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공격합니까?”
“기다려 봐. 생각 중인 거 안 보여!”
쉽사리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공격하자니 자신이 없고, 공격하지 않자니 저 괴랄한 마수들을 도시로 보내게 된다.
1차 몬스터 웨이브 때와는 비교가 안 될 피해가 일어날 것이었다.
그것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젠장, 발포 준비!”
“발포 준비!”
전차가 고개를 돌려 던전을 빠져나온 거대 마수들을 조준했다.
“지원 요청해! 우리가 할 일은 시간을 끄는 거다!”
모두의 눈에 결연함이 서렸다.
이곳에 모인 병력이라면 1차 몬스터 웨이브 때 나왔던 마수 정도야 충분히 막겠지만 리치가 포함된 웨이브는 솔직히 자신이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저 시간을 끄는 거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전시 체제였고, 주한 미군이 작전에 동원되었다. 지원 요청을 하고 시간만 끈다면 미군의 지원이 있을 것이다.
쾅! 콰콰쾅!
곧 신호와 함께 모든 화력이 마수들에게 집중되었다.
“가엾은 인간들…….”
하지만 총대장 역할을 맡은 크리슬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조잡한 공격 따위는 상급 이상의 마수들에게 거의 타격을 줄 수 없었다.
크리슬리가 그리핀의 등을 가볍게 때렸다. 그러자 그리폰이 고개를 훽! 돌리더니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기세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후우웅!
화아아아아악!
에픽 등급의 스킬, 불과 번개!
감히 마룡의 브레스와 필적할 만한 광역 스킬이 그리폰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동시에 불과 번개에 닿은 주변 모든 경관이 사라지며 탱크마저 증발해 버렸다.
스킬의 사용이 끝난 이후는 더욱 가관이었다.
쑥대밭, 초토화란 말이 와닿을 정도의 광경!
“흐아아아……!”
살아남은 군인들은 결국 자리에 주저앉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든든하기 그지없었던 아군 병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하체만 남은 시체, 깊게 파인 바닥…… 인간은 이길 수 없는 천재지변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이것이 최상급 마수, 그리핀의 위용이다.
고작 한 차례의 공격이었지만 전의를 상실시키기엔 충분했다.
* * *
서울특별시에 비상이 걸렸다.
급히 대피령이 발동되고 수십 대의 전투기가 하늘을 갈랐다.
수많은 전차와 장갑차가 움직였으나 실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몇몇 방송국의 방송용 헬기가 날며 목숨을 건 방송을 진행했지만 기자들은 결국 ‘종말’이란 단어를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마수들이 몰려옵니다. 대한민국의 용감한 군인들이 맞서 보지만…… 마수가 너무 강력합니다.”
“이대로 대한민국은 종말을 맞이하는 것일까요?”
“미군의 도움이 언제 도착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부디 병사들의 선전을 바라고 또 바랍니다.”
모든 국민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중계되는 TV 화면 등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만히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리핀의 스킬 불과 번개가 닿으면 모든 것이 증발했고, 골렘의 압도적인 전투력은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다크 엘프의 기동력, 파이록은 전투기를 상대로 도리어 선전하고 있었다.
유리해 보이는 점이라곤 하나도 없는 상황.
은연중 모두가 마수의 진격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때.
“아! 각성자들입니다. 각성자들이 나타났습니다!”
헬기 안에서 실황을 중계하던 기자가 외쳤다.
급히 카메라가 돌아갔다.
곧 마수들을 향해 달려오는 일련의 무리가 렌즈에 담겼다.
* * *
‘드디어 막이 올랐군.’
나는 미소 지었다.
나를 중심으로 한, 그 숫자만 수백에 다다르는 각성자 무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