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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50화 (50/242)

던전 사냥꾼 50화

인간들에게 발각당하지 않는 채로 한국을 가로질러 바다를 넘는 건 무리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마법 아이템이 존재하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가성비가 극악인 데다가 숨어서 돌아다니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처럼 얻은 S랭크.

그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였고, 즉시 나는 준비하기 시작했다.

거짓으로 점철된 한 편의 연극을!

예정은 달라졌으나 각성자의 성장을 촉진시키겠다는 이 결과만큼은 비슷해야 하지 않겠는가.

해서, 나는 데빌 헌터의 이름을 팔아 각성자를 모집하였다.

그중 적당히 잠재력이 낮고 어느 정도 살이 찐 이들만 대동한 것이다.

‘먹이.’

그래, 먹이다.

출정식을 위한…… 대량의 먹이를, ‘한국을 구하겠다!’는 미명 아래 자처하여 모이게 만들었다.

스스로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기세만 등등하다.

인간들에겐 진정한 ‘용사’의 행동처럼 보일 테지만 이 모두가 내가 만든 판이요, 각본임을 그들은 알까?

당연히 이 자리에 유은혜와 이지혜처럼 쓸모 있는 이들은 없었다. 후에 나를 돕거나 더욱 토실토실하게 살이 찔 먹이들을 지금 소모할 필요는 없으니까.

한마디로 어중이떠중이들!

이곳에 모인 각성자는 모두 잠재력의 한계치에 부딪혀 성장 가능성이 적은 이들뿐이었다.

출정식을 장식할 포인트 덩어리.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진짜 ‘최강의 용사’임을 만천하에 공표하기 위한 판이 완성된 것이다.

* * *

“한국을 지켜라!”

“우리는 용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다!”

각성자들의 기세는 이미 분기탱천한 상태였다.

1차 몬스터 웨이브 때는 넋 놓고 구경밖에 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최강의 각성자와 함께하는 자리였고, 한국을 지키겠다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게다가 상태창에 존재하는 용사라는 단어.

그것이 묘하게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미 군인들의 시체가 즐비한 전장이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몸부터 떨겠지만 각성자는 던전에서 수많은 죽음을 접해 본 존재다.

콰앙!

리치의 전매특허 스킬 ‘시체 폭발’이 사방에서 일어난다. 주변의 마력마저 증발시켜 버리는 그 강력한 스킬에 각성자와 군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쓸려 나갔다.

이어 수백의 망자(亡者)가 일어나 좀비처럼 아군을 물어뜯는다. 신체적 능력은 많이 약화되었으나 방금 전까지 함께했던 동료가 자신을 노린다는 건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나마 지능이 높은 각성자들은 금세 회복하며 하나하나 좀비의 목을 베어 갔다. 이어 가더와 근거리 딜러가 길을 뚫고 그 사이로 마법사들의 무지막지한 스킬이 퍼부어졌다.

쿠아아앙!

어스 골렘의 몸통 박치기!

지진이라 표현할 정도의 울림이 땅을 통해 전해진다.

다시 수십의 사망자가 속출했으나 각성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돌격!”

그리고 마침내, 나의 차례가 왔다.

나를 따라 100명으로 이루어진 돌격대가 부나방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보이십니까? 분투하는 용사들의 모습이!”

“아직 희망은 죽지 않았습니다. 막힘없이 전진하던 마수들이 주춤거립니다.”

모든 언론이, 모든 정규 방송을 내리고 서울특별시의 모습을 전한다.

군대는 한 발 물러난 채 대기하고 있었으며 각성자들이 나서서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는 중이었다.

수천만의 국민이 할 일을 멈춘 채 시선을 고정시켰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인터넷 방송에서도 각성자를 응원하는 채팅이 수없이 올라왔다.

집안일을 하던 주부들은 물을 잠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TV를 바라봤으며 직장에서 일을 하던 직장인들은 핸드폰을 통해서, 술집에서 시름을 달래던 이들도 술 대신 침을 삼키며 실황에 집중했다.

“아아……! 너무 끔찍합니다. 리치는 죽음마저 이용하는, 아주 악랄한 마수입니다.”

“각성자들, 아니 용사들! 힘내십시오. 모든 국민이 응원합니다.”

전황은 여전히 좋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각성자들이 나섬으로써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었던 추가 조금씩 넘어오는 거 같은 기분이 들게 하였다.

그러한 희망은 모두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보십시오! 백 명의 용사들이 마수들을 향해 크게 진격합니다!”

“가장 선두에서 진두지휘를 하는 이는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대장이라는군요!”

데빌 헌터!

그 이름이 모든 이의 귀에 들어가 각인된 순간이었다.

* * *

쿠아앙!

치열한 접전 끝에 어스 골렘 한 기가 쓰러졌다.

“우와아아!”

“골렘 한 기가 쓰러졌다!”

각성자의 유입으로 살아난 불씨가 다시 죽어 가던 그때.

벌써 절반 이상의 각성자가 바닥에 누여 붉은 피를 흘리고 있을 그때!

내가 어스 골렘을 쓰러트린 것이다.

그 순간 모든 각성자와 이 장면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진짜인 줄 아는군.’

그러한 반응에 나는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당연히 이 역시 내가 만든 각본 중 하나다. 어스 골렘은 바닥에 누워 있긴 하였으나 진짜로 힘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 던전의 마수들에게 한해서 나는 절대적인 존재다.

적당히 공격하고 되는 대로 쓰러져 있으라는 명령 정도는 가볍게 내릴 수 있었다.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다. 마력을 개방하여 ‘그리하라.’는 내 뜻을 전하기만 하면 된다.

어스 골렘 한 기가 쓰러지자 마수들이 일거에 공격을 멈췄다.

맹공을 퍼붓던 각성자들도 잠시 주춤하여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어어, 무슨 일이야?”

“그리핀이 내려온다!”

각성자 중 마수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는 관찰 계열 스킬의 소유자가 몇 있었고, 그들로 말미암아 그리핀의 이름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말마따나 하늘에서 모두의 공포가 된 마수, 그리핀이 날개를 활짝 편 채 하강하는 중이었다.

여태껏 본 피해 중 절반 이상이 저 그리핀으로 인해 일어났다.

여덟 기의 골렘보다 저 그리핀이 더욱 무섭다.

그런 존재가 갑자기 지상에 하강하니 전신에서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리핀보다 그리핀의 등에 타고 있던 한 여인이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하지만 어쩐지 차가운 표정의 여인!

바로 크리슬리였다.

그녀가 내 앞에 사뿐히 다가와 물었다.

“대단한 실력이군. 이름이 무엇이냐?”

평소와는 다른 말투.

듣는 입장에선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나름 혼을 담은 연기다.

크리슬리는 내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고자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쪽짜리 해골 가면을 착용한 상태였는데, 나와 반대로 왼쪽 얼굴을 가렸다.

이처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가 당당하게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마족들은 도리어 의심암귀에 빠지겠지.’

마족은 인간의 문명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마족에게 있어서 인간은 멸해야 하는 존재다.

자존심마저 강한 데다 무척이나 폐쇄적이다.

인간의 문화 같은 게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설령 이 모습이 방송 등의 매체를 타고 나간다고 하더라도 관심 없는 마족들은 눈길 하나 주지 않으리라.

이름이 나간 것도 아닌지라 더욱 몰라볼 것이었고, 나중에서야 희미하게 눈치챈들 확신을 가지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

아니, 움직일 수나 있을까?

이토록 당당하게 활동하면 모든 걸 확인하느라 한참의 시간을 날려 버릴 게 뻔했다.

나만큼 마족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이도 없을 테니 확실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누구보다 앞서 나가 저들이 확신을 할 때쯤이면 쉽사리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을 부풀렸을 것이었다.

오연히 서서 크리슬리와 눈을 마주 봤다.

“알 필요 없다.”

“후후, 과연 실력만 한 배짱이다. 그러나 나는 실력 있는 자를 사랑하지. 인간들은 그저 내게 밟힐 존재라고 여겼는데 그대와 같은 자가 있다니, 던전의 주인으로서 놀랍기 그지없구나. 너와 같은 존재를 각성자라고 한다지?”

번역 마법과 목소리 증폭 마법이 담긴 도구를 착용한 크리슬리의 발언은 모두의 귀에 똑똑히 틀어박혔다.

그녀의 발언이 끝나자 모두들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던전의 주인이라니!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72개의 던전.

여러 방면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나 아직 밝혀진 바가 거의 없는, 미스터리한 장소.

그곳의 주인이 직접 몸을 드러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크리슬리가 고개를 돌렸다.

“인간은 들으라.”

잔잔하게 말했으나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지능이 100에 달했고, 마력도 무척 높았다.

흔들림이라곤 없는 의젓한 자태에 모두가 집중했다.

“얼마 전 주제도 모르고 내 던전에 기어 온 인간들이 있었다. 감히 허락 없이 들어와 그 더러운 발을 내 던전에 밀어 넣어, 내가 직접 징벌을 가했노라.”

저 겉으로 보이는 말투와 성격은 살짝 대공 아리엘을 모방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대공 아리엘은 단지 그 시원한 성격만으로 많은 마족이 따랐을 정도였으므로, 인간들에게도 제법 효과가 있으리라 내다본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분개했다.

애당초 1차 몬스터 웨이브가 없었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허나 크리슬리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지. 정말 주제를 모른다면 이번에 새겨 줄 참이었다. 이 쥐꼬리만 한 나라를 아예 없애 버리는 것도 내겐 어렵지 않은 일이니라. 방금 전까진 실제로 그리하려고 하였으나.”

그녀의 말 한마디에는 힘이 있었다.

거기다가 방금 전 보여 준 마수들의 압도적인 전투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사람들은 판단했다.

지금 끌고 온 마수가 전부가 아니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인간들이여, 너희가 각성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말하자면 나의 대적자다. 나는 던전을 지배하는 마왕이며 용사는 나를 죽여야만 하는 운명 속에 있는 것이다. 내가 몰고 온 어스 골렘을 내 앞에 있는 용사가 쓰러트렸듯이 말이다!”

크리슬리의 눈이 더욱 강렬해졌다.

“나는 고고한 던전의 주인이니라. 강한 자의 도전은 좋아하지. 용사들의 성장력은 실로 범상치 않다. 강자가 생긴다는 건 내게도 무척이나 즐거운 일. 앞으로도 그들은 더욱 강해질 터……. 하지만 약하디 약한 평범한 인간들 따위가 내 던전에 발을 들이미는 건 참을 수 없다.”

쿵! 쿵!

그르윽! 그르르!

그녀의 기분을 대변해 주듯 모든 마수가 분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한 발 물러나 전방에서 쏟아지는 살기를 맞으며 주먹을 꽉 쥔 채 긴장하였다.

그러기를 30초.

크리슬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여, 나는 오로지 용사에게만 던전의 출입을 허한다. 나는 그들이 강해져 언젠가 내 무료함을 달래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노라.”

그때였다.

잠자코 지켜보던 각성자 한 명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잠깐! 그럼 몬스터 웨이브는 어떻게 된 거냐! 가만히 지켜볼 생각이었다면 마수들을 왜 던전 바깥으로 빠져나오게 한 거냐고!”

크리슬리가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답했다.

“나는 던전의 주인이지 마수의 주인이 아니다. 모든 마수가 나의 통제 아래에 있는 것은 아니니라. 그러니 이 나라를, 가족을, 친구를 지키고 싶다면, 용사들이여! 더욱 노력하여 강해져야 할 것이다. 내 통제를 벗어난 마수들이 조금씩 던전을 빠져나오기 시작할 것인즉.”

적당한 떡밥이었다.

7층은 드워프들의 마을로써 인간들에게 접근할 텐데 던전 내의 모든 마수가 던전 마스터에게 귀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 일단 칼부림부터 일어날 터였다.

크리슬리가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희의 목숨은 내 눈앞에 있는 이자가 살렸느니라. 용사라고 하나, 던전 안에 잠든 수천 기의 골렘 중 고작 한 기도 쓰러트리지도 못할 수준이었다면 기대를 접고 이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것을!”

이 역시 거짓말이다.

인간들이 헛된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상급의 골렘은 여기 나온 여덟 기가 전부다.

진짜로 수천 기나 있었다면 진즉에 지구 전체를 밀어 버렸을 것이다.

크리슬리가 잔뜩 힘을 주어 말했다.

“인간들이여, 용사들이여! 내게 도달하라. 그날, 세계의 진실을 알려 주마.”

이야기가 끝나고 마수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던전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이왕 나온 김에 다른 던전을 봐야겠다.’며 크리슬리가 귀환을 거부한 것이다.

또한 ‘허튼수작을 벌이면 던전에 잠든 내 휘하의 마수들을 풀어 버리겠다.’는 강압적인 명령조에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행렬을 가만히 바라만 보아야 했다.

대신 건드리지 않으면 얌전히 지나가 주겠다는 약속 아닌 약속도 한지라, 모두가 눈뜬장님이 되어 그 행렬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었다.

굴종.

암묵적인 패배의 선언이었다.

던전은 사람들에게 밝혀진 바가 거의 없는 미지의 장소다.

그곳에서 튀어나온 마수들도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해괴한 생명체들이었다.

다른 나라, 적국이었다면 끝까지 항쟁했을 것이지만 던전의 존재는 감히 역량을 측정하는 게 불가능한 곳이었다.

던전 자체를 파괴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화기가 무력화된다는 걸 재차 확인도 했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21세기, 전쟁은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야만 일어난다.

하지만 던전과 마수는 그런 이해관계조차 성립이 되지 않았다.

인간이 대적 불가능한 압도적인 힘을 보았으니 결국 천재지변처럼 여겨 버렸다.

피해가 크지만 언젠가는 지나가는, 그런 천재지변.

그러나 사람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비록 군대가 패하고 서울특별시가 궤멸 직전까지 갔지만…….

던전의 주인이 직접 언급한 운명의 대적자.

용사라는 마지막 카드가 그들에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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