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52화 (52/242)

던전 사냥꾼 52화

* * *

“형편없군.”

나는 던전을 오르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원래 이렇게나 형편없는 곳이었던가?

전생에서 피부로 느낀 아돌의 던전과 지금 내가 오르는 이곳이 같은 곳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쉬웠다. 던전 마스터가 그저 마수만 소환하고 관리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여실하게 보여 주는 장면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플로어 마스터야 나도 없으니 납득은 한다지만 마수들의 지휘 체계를 잡아 줄 우두머리의 존재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방생’했다는 느낌.

고작 이 정도의 던전에 나는 한쪽 팔을 잃었나.

고작 이 정도의 던전에…….

뿌득! 이를 갈았다.

1년하고 거의 절반이 지났을 시점이다. 슬슬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시기라는 소리다.

하지만 던전의 상태를 보건대 이놈은 자각이 없다.

‘다른 마족들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을 터.’

아돌.

이 추잡스러운 놈은 던전이란 성이 주어지자 자신의 본분도 망각한 게 틀림없다.

이 따위로 던전을 놀릴 생각이라면 차라리 지금 내가 접수해 주는 게 구제요, 구원이다. 가만히 놔두면 앞으로 10년이나 버틸까? 실제로 아돌 역시 각성자들에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나마 일본은 각성자들의 성장이 많이 더딘 편이었다. 아돌이 제대로 던전과 일본을 관리하지 못한 탓에 이곳은 모든 게 늦어져 버렸다.

허나……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상,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걸 바꾸고 철저하게 따지리라.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오크 대전사 다수가 나타났습니다.”

그리핀이 낮게 날았다. 그 위에서 크리슬리가 말했다.

‘강한 마수가 본능적으로 상층을 차지한 건가? 조금씩 급이 올라가는군.’

던전 마스터가 던전을 관리 안 하면 이런 일도 일어난다.

지정해 준 장소를 마음대로 이탈하는 것이다.

강한 마수일수록 위의 층을 차지하고 싶어 했다. 이는 던전 코어 때문인데, 마력의 파장이 가장 안정된 곳이 던전 코어 주변이었다. 해서 높은 층은 주로 강한 마수에게 배정하는 게 관례적인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말했다.

“몰살하라.”

* * *

25층.

아직 오크 로드급의 상급 마수는 보이지 않았다. 오크 샤먼과 오크 대전사, 아크 고블린 같은 중급의 마수가 최고 난이도였다.

반면 내게는 상급 마수 아홉에 최상급 마수가 하나 있었다. 나 스스로도 최상급 마수와 비견되는 강자였으니 고작 중급 마수 따위로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물며 우리를 발견하곤 삼십육계를 치는 마수도 적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던전 마스터의 지배력이 강했다면 그런 광경은 나와선 안 된다. 설령 죽을지언정 침입자를 막는 게 마수의 역할이었다.

‘살려 둬선 안 되겠군.’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이후 내 던전의 마수가 될 것들이 적이 강하다고 하여 도망부터 친다면 나는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었다.

‘포인트는 얼마 안 되지만…….’

상대 던전의 마수를 잡아서 벌어들이는 포인트는 굉장히 미미했다.

고작해야 본래 구입할 때 사용한 20분의 1 수준?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단 나았다.

“취이익!”

“살, 려!”

열이 넘어가던 오크 대전사들이 졸지에 오합지졸이 되었다. 그리핀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다크 엘프들 선에서 정리가 되었고, 감히 ‘대전사’란 이름이 아깝게 놈들은 목숨부터 구걸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살육을 허락했다. 피 맛을 잔뜩 본 다크 엘프들이 목숨을 구걸한다고 살려 줄 리가 없었다.

소리 없이 웃었다.

아돌은 여러모로 한심하고 실망스럽지만 내 휘하의 마수들이 상대의 던전을 쓸어버리는 광경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나저나.’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아돌, 내가 들어온 걸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거냐?’

아돌은 모르더라도 던전 코어의 요정이 알아채고 말했을 것이다. 모를 수가 없는데 별다른 방비가 없는 걸 보면 정말 모르는 것도 같았다.

‘하는 수 없군.’

어차피 던전 코어에 근접하면 아무리 둔해 빠진 아돌이라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상당히 올라온 상태라, 지금 알아채나 조금 있다가 알아채나 모일 병력은 비슷할 터였다.

“크리슬리.”

마수를 토벌하던 크리슬리는 그 작은 소리에도 반응했다. 즉시 다가와 그리핀에서 내려왔다.

“무슨 일이신지요,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목소리 증폭 마법이 걸린 반지를 다오.”

“여기 있습니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새끼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낸 뒤 무릎을 굽히더니 양손으로 공손히 내게 넘겼다.

‘간지럽군.’

반지를 착용하며 내심 고개를 저었다. 저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라는 말 자체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전신을 간지럽게 만들었다.

“모두 귀를 막아라.”

주변의 정리가 끝나자 명했다.

곧 다크 엘프들과 크라스라, 크리슬리…… 파이록과 리치, 골렘이 귀를 막는 자세를 취했다. 굳이 안 해도 될 마수가 몇몇 껴 있는 것 같으나 그만큼 내 마력이 주는 지배력이 강하기 때문이리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며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아-돌-!!”

쿠르르르릉!

90에 달하는 모든 마력을 개방하여 외친 탓에 마치 번개가 치듯 던전 자체가 크게 울렸다.

* * *

쿠르르르릉!

던전이 흔들린다. 벌써 열이 넘는 오크와의 행위를 이어 가던 아돌도 이에 의아함을 느끼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마력은 뭐지?”

“치, 침입자라구요…….”

불안한 듯 구요가 몸을 떨며 말했다.

이미 침입자는 25층을 넘어 26층에 다다르고 있었다. 최상층까지 10층도 안 남은 상황. 침입자가 도중 길을 헤맸다면 모르겠지만 거침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속도로 보건대 남은 시간은 반나절 안팎.

지금부터 준비해도 상당히 늦다.

“내 던전에? 누가?”

“마족으로 보여요. 마수들을 끌고 왔다구요.”

“그럼 그리핀 어쩌고 하던 말도 안 되는 말이 사실이었단 말이냐?”

“그렇다구요…….”

아돌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 쓸모없는 새끼! 왜 그걸 이제야 알려 주는 거냐!”

“계, 계속 말했다구요…….”

괜한 트집 잡기였다.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말만 수백 번은 했을 것이다.

그동안 아돌은 구요를 무시한 채 행위에만 집중했다.

아돌은 여전히 찌푸린 인상으로 입을 열었다.

“침입해 온 마수의 정확한 구성을 불러 봐라. 아니, 아니지. 던전 전체를 비추는 수정구가 있었지. 그걸 가져와.”

던전 내부의 모든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특수한 수정구. 100,000이나 하는 포인트를 들여서 아돌이 산, 거의 유일하게 쓸모 있는 물건이었다.

던전 마스터라도 이 수정구 없이는 던전에 침입해 온 이들의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없었다. 내정 모드로 들어가 봤자 몇 명이 침입했는지 아는 게 전부.

그 외에는 요정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는데, 아돌은 구요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고 즉시 이 수정구를 구매한 것이었다.

구요가 낑낑거리며 커다란 수정구를 운반했다.

곧 아돌이 마력을 주입하여 침입한 상대를 확인하였다.

“……이놈은?”

“누군지 아세요?”

“어쩐지 낯이 익군.”

해골 가면을 쓴 여자와 남자, 가장 앞에서 붉은 창을 휘두르는 다크 엘프. 잠시 생각하다가 아돌이 손뼉을 쳤다.

“아아! 그때 그놈인가!”

마계 옥션!

그곳에서 판매된 크라스라와 크리슬리다.

그리고 그 둘을 산…… 랜달프 브뤼시엘.

유일하게 어느 파벌에도 들지 않았고, 자신이 모시는 대공 우파에게 미움을 받은 자.

잊을 리가 없었다.

“우파 님에게 연락할 수단이 없다는 게 아쉽군.”

대공 우파는 자신의 던전이 어디에 있는지 측근의 공작들에게만 알려 줬다. 당연히 백작 나부랭이인 아돌은 알지 못했다.

다른 마족들도 딱히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닌지라 서로 링크를 열지 않았다.

결국 침입자를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는 말인데…….

“허…… 그런데 진짜 최상급 마수인 그리핀인가? 거기다가 상급 골렘 여덟에 리치 하나라? 용케 저기까지 긁어모았군. 대단해!”

“어떡하시려구요?”

가만히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 마수들이 최상층에 들이닥치면 당장 던전 코어가 박살 날 판국이다.

구요의 불안한 기색에 아돌이 코웃음을 쳤다.

“흥, 상급의 마수라면 나도 꽤 있다. 아무리 최상급의 마수래도 숫자 자체는 우리가 훨씬 우월해.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

최상급의 마수는 마계에서도 극히 희귀하다.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 편이고, 하물며 그리핀은 최상급 마수 중에서도 가장 레벨이 낮다. 상급 마수가 다수 있으면 능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아돌이다.

아돌이 수정구를 응시했다.

랜달프 브뤼시엘…….

‘놈을 잡으면 우파 님도 나를 다르게 바라보시겠지.’

놈으로 인해 다른 대공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우파는 결코 그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자신이 랜달프 브뤼시엘을 잡아 그 목을 헌상하면 단번에 위신이 올라갈 터였다.

“구요, 상급의 마수들을 모두 소집해라. ‘오니쉬’도 데려와!”

“오, 오니쉬요? 아직 안정화가 안 됐다구요? 일을 일으키면 제어하기 힘들 텐데요.”

“내가 직접 나선다. 던전 마스터인 내 마력에 저항하진 못하겠지.”

그제야 구요가 수긍했다.

던전 마스터의 명령은 절대적.

그가 직접 나선다면 ‘오니쉬’도 제어가 될 것이었다.

아돌이 묘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비록 최상급 마수는 아니지만 내게도 히든카드가 있다. 랜달프 브뤼시엘! 내 던전에 쳐들어온 걸 후회하게 해 주마.’

랜달프 브뤼시엘과 달리 자신은 마계 옥션에서 한 푼의 포인트도 사용하지 않았다. 모은 포인트 대부분을 상급 마수를 사들이는 데 사용했고, 돌연변이라는 특수성과 자신의 특수 스킬을 이용하여 ‘오니쉬’를 만들어 내기까지 하였다.

능히 상급 마수 5Lv에 비견될 강자!

1년이 넘는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오니쉬라면 그리핀과 맞서도 전혀 꿀릴 게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 * *

‘움직이기 시작했군.’

던전 내 마수들의 행동이 달라졌다는 걸 알아챈 나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드디어 아돌이 던전 마스터로서의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기꺼워하며 더욱 진격 속도를 올렸다.

아돌과의 재회를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도중 수없이 실망했지만 이제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준다면 만족할 수 있었다. 녀석이 꽁꽁 숨겨 놓은 전력이 어느 수준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30층을 넘어섰을 때 나는 수많은 마수를 대동한 아돌과 만나게 되었다.

“이게 누구야! 랜달프 브뤼시엘 아닌가?”

마치 백년지기 친구라도 만나는 것처럼 반가워한다.

그 주변에 보이는 상급 마수의 숫자만 열에 달했다.

상급 마수 2Lv의 오크 로드가 여섯, 상급 마수 3Lv의 자이언트 트롤이 둘. 그 뒤로 수천의 오크와 수십의 트롤이 도열해 있었다.

과연 만만찮은 전력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답했다.

“용케 기억하고 있군.”

“혼자 다니는 아주 불쌍한 마족이 머리에서 잊히질 않더군! 그러지 말고 대공 우파 님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건 어떠냐? 내 특별히 언질을 해 줄 수도 있다만?”

“필요 없다. 네가 우파에게 연락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대공 우파의 성격은 뻔하다. 고작 아돌 따위에게 자신의 던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줬을 리가 없었다.

내 말이 적중했는지 아돌의 표정에 금이 갔다.

“흐!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야? 아니면 그리핀이 있어서 자신만만한 거냐?”

그리핀이 있어서 당당히 쳐들어온 건 맞았다.

적어도 대인 공격에 있어선 그리핀만 한 게 없었으니까.

아니라면 아무리 상급 마수가 많아도 저 많은 숫자를 모두 당해 낼 수 있지는 못할 것이었다.

“언제까지 떠들 셈이지?”

“걱정 마라! 하지만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내 아들 ‘오니쉬’를 소개해 주마.”

오크 로드와 자이언트 트롤을 뚫고 기묘하게 생긴 마수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 모습은 뭐랄까…… 형용할 수가 없었다.

크기는 2미터 남짓. 어깨는 자이언트 트롤처럼 넓고 얼굴은 오크보다 흉폭하다. 이마에 난 기다란 뿔과 오른쪽 등에만 난 커다란 가고일의 날개.

저런 마수를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이에 의문을 가지고 심안을 열었다.

이름: 아돌 루프

직업: 마계 백작(던전 마스터)

칭호 :

* 이상 성애자(U, 지능+6)

능력치 :

힘 69 지능 68(+7)

민첩 68 체력 61 마력 70

잠재력(336+7/500)

특이 사항: 없음

스킬: 생명 조합(U), 육체 조작(U)

[상대 비교]

아돌 루프

힘 69 지 75 민 68 체 61 마 70 잠재력(336+7/500)

랜달프 브뤼시엘

힘 88 지 66 민 76 체 82 마 90 잠재력(379+23/500)

이름: 오니쉬

능력치 :

힘 85 지능 51

민첩 78 체력 86 마력 75

잠재력(375/391)

특이 사항: 아돌 루프에 의하여 재조합된 생명체입니다. 오크 로드의 피부와 자이언트 트롤의 힘줄과 심장, 가고일의 날개, 용아병의 뼈, 유니콘의 뿔 등이 주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스킬: 순간 재생(Ex U)

[상대 비교]

오니쉬

힘 85 지 51 민 78 체 86 마 75 잠재력(375/391)

랜달프 브뤼시엘

힘 88 지 66 민 76 체 82 마 90 잠재력(379+2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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