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54화 (54/242)

던전 사냥꾼 54화

* * *

칭호가 상쇄되며 변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고개를 갸웃하곤 상태창을 띄웠다.

이름: 랜달프 브뤼시엘

직업: 마계 백작(던전 마스터)

칭호 :

* 던전 사냥꾼(던전 점령, 마족 사냥 시 잔여 능력치+1)

* 불굴의 전사(Ex U, 모든 능력치+2)

* 최초로 요정의 축복은 받은 자(U, 마력+6)

능력치 :

힘 79(+9) 지능 64(+2)

민첩 74(+2) 체력 80(+2) 마력 82(+8)

잠재력(379+23/500)

잔여 능력치: 3

전력량: 64MW

특이 사항: 나락 군주의 심장을 이식했습니다(온전한 힘을 개방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뇌신공의 변화가 진행 중입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스킬: 스킬 조합(R), 심안(Ex U), 뇌신공(???), 분노(Epic)

‘등급이…… 없다.’

이런 칭호가 있었던가?

등급이 표시되지 않은 것 자체도 놀랍지만 칭호에 달린 설명대로라면 나는 앞으로 ‘140’에 달하는 잔여 능력치를 얻을 기회가 있다는 뜻이었다.

던전 일흔 개, 마족 일흔 명!

사실상 나 혼자 모두를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기대치가 높다.

잔여 능력치란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보배.

만약 내가 500의 잠재력 한계치를 모두 채워도 잔여 능력치가 있다면 그마저 돌파할 수 있다.

하나의 순수 능력치가 90이 넘어가는 순간 고작 1의 차이가 피부로 실감될 만큼 뚜렷해진다. 100을 넘어서면 그 차이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그 100을 넘어 110, 120까지 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이상도.

‘미쳤군.’

그야말로 미친 칭호다.

그리고 내게 딱 들어맞는 칭호였다.

나는 홀로 걷는 자.

모든 마족과 던전을 먹이 삼아 정점에 서자고 다짐하지 않았나.

사냥할수록 강해진다니, 한 번에 능력치를 올려 주는 여타 다른 칭호보다 훨씬 나았다.

그에 맞춰 상태창에 잔여 능력치란 문구도 생겼다.

예전 마계 옥션에서 이스터 에그를 발견하고 얻은 잔여 능력치 1. 그리고 이번에 얻은 2가 더해져 총 3의 잔여 능력치가 그곳에 적혀 있었다.

“하하!”

크게 한 방 맞은 기분이다.

솔직히 힘이 없고 전생의 기억이 없었다면 이 칭호는 쓸모가 없다.

대해 마족을 사냥하고 던전을 점령할수록 적들의 견제 또한 심해질 것이었다.

양날의 검과 같지만 지금의 내게 던전 사냥꾼이란 칭호는 감히 레전드 등급을 줘도 아깝지 않은 보물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

오랜만에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돌을 죽였고, 던전을 얻었다. 이제 던전 안에서 얻을 부가적인 것들을 찾아볼 차례였다.

“구요, 아돌이 가지고 있었던 포인트는 총 얼마였지?”

슬쩍 내 눈치를 보던 구요가 말했다.

“사, 사천오백…… 포인트요.”

“…….”

순식간에 미소가 지워졌다.

최초 마족 사냥으로 얻은 200만 포인트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돌 이 멍청한 놈은 오니쉬를 만드느라 포인트를 버는 족족 써 버린 게 분명했다.

나는 이 중 50만 포인트 정도를 일본의 던전에 재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내정 모드로 들어가 던전의 현황을 확인했다.

마수가 전체적으로 섞여 있어서 이걸 나누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여간 마수의 총합을 따져 보니 번식 상황이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다.

고블린 4만 마리, 코볼트 1만 마리, 놀 1만 마리, 오크 4천 마리…….

“아크 고블린은 어찌 된 것이냐? 유독 숫자가 많은데. 아돌이 소환한 건가?”

아크 고블린은 중급 2Lv의 마수였다. 일반적인 고블린과 덩치는 비슷하지만 근력과 민첩이 훨씬 높다. ‘작은 포식자’라고도 불릴 만큼 가리지 않고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잡아먹는 폭군이었다.

아크 고블린의 숫자는 48. 거의 50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고 보니 이곳 최상층에 오르면서 아크 고블린을 간간이 본 것 같았다.

아돌은 오크류의 마수를 좋아했는데, 고블린의 숫자가 이처럼 압도적인 것도 의외였다.

내가 묻자 구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크 고블린은 자연 발생했다고요.”

“돌연변이로 나오는 것도 한계가 있을 터. 그런 것치곤 너무 많다.”

“그건 저도 잘 몰라요…….”

구요가 시무룩해졌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불현듯 한 가지를 떠올렸다.

‘던전의 특이성인가?’

던전마다 마력의 파장이 다르다. 그에 따라 적응을 잘하는 마수가 있었고, 그렇지 못한 마수가 있었다. 아주 후반에 그 특이성이 밝혀지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한 마족은 무척 적었다.

나조차도 고블린이 이상 증식한 걸 못 보았더라면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었다.

‘던전의 마력 파장이 고블린의 마력 파장과 잘 맞는 것일 수도 있다. 기후나 환경에 따라 번식할 수 있는 동식물이 다르듯이.’

실험해 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구요, 고블린류의 마수를 제외한 다른 마수는 모두 한곳에 몰아라.”

던전 마스터의 명령하에 코어의 요정은 마수들을 지휘, 감독하는 게 가능했다.

아주 지능이 낮은 경우라면 이동을 시키는 게 힘들지만 오크나 트롤은 적어도 회화가 통할 수준은 됐다.

물론 지능이 아주 낮다 하여 방법이 없진 않았다. 코볼트나 고블린을 지휘할 우두머리 마수를 소환하여 통제하면 간단하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분리 작업은 반드시 필요했다.

“알았어요. 저에게 주어진 첫 번째 일이니까 열심히 해 볼게요.”

구요는 살짝 자신 없어 하는 표정으로 털레털레 날개를 파닥였다. 그동안 아돌에게 당한 상처가 너무나도 큰 모양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직접 말하진 않는군.’

이히와는 조금 다른 점이었다. 자존감의 차이일까? 요정의 생리는 아는 바가 없어서 그냥 개성인가 하였다.

관심을 접고 턱을 쓸었다.

‘고블린이 생존을 위해서 아크 고블린이라는 특이체를 낳았을지도 모르지.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해 봐야겠어.’

나는 회귀했지만 모든 걸 알지는 못한다.

특히 던전과 관련해선 무지하기 그지없다.

허나 이런 도전은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던전의 생태에 직접 관여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개선시킨다. 마치 신이라도 된 기분이지 않은가. 아마 이런 감각 때문에 마족은 더욱 인간들의 세상에 관심을 끊어 버렸을 터였다.

어쨌거나…… 실험에 성공한다면 이후 한국의 던전에 적용시켜도 괜찮을 것이었다. 던전과 맞는 파장의 마수를 대거 번식시킬 수 있다면 효율적인 측면에서 이보다 좋은 게 없었다.

* * *

이후 나는 파이록을 이용해 크리슬리에게 제단을 찾도록 명하고, 일주일간 일본 던전의 내정에 집중하였다.

내정에서 가장 먼저 행한 건 마수를 층별로 분리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1층은 고블린, 2층은 코볼트, 3층은 놀, 4층은 오크, 5층은 트롤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처럼 분리시킨 이유는 종류별로 천적이 사라졌을 때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고블린의 특이 번식, 천적이 사라졌을 때의 변화.’

그중 가장 관심이 있는 건 당연히 고블린이었다.

아크 고블린이 다수 태어난 게 천적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던전의 마력 파장이 영향을 준 것인지가 궁금했다.

일단 눈에 띄는 변화는 번식률이다. 천적이 사라지자 번식률이 낮아졌다. 고작 일주일간 지켜본 것에 불과하나 내정 모드에선 그 전에 낳고 죽은 숫자를 확인할 수 있었고, 계산해 보니 무려 30%가량이 줄어든 것이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다.

또한 고블린은 난산하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았다. 한 번에 여덟 마리가량의 새끼를 친다 해도 그중 여섯 마리가 6개월을 채우기 전에 죽는다.

천적이 있으나 없으나 한국의 던전에선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며 이게 바로 자연선택인가 싶었다. 일정한 비율을 유지하려는, 보이지 않는 선택이 존재한다고 은연중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6개월 뒤에나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고…… 내가 확인한 건 난산으로 죽는 태아의 비율이었다.

‘생존율이 무척 높군.’

일주일간 태어난 고블린은 모두 537체.

그중 519체가 무사히 세상으로 나왔다.

고작 18체만 지독한 난산으로 죽었을 따름이었다.

내 던전에 한해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의 던전에서 고블린이 난산으로 죽는 비율은 거의 20%에 달했다. 만약 이곳이 한국의 던전이었다면 537체 중 100체는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죽어 나갔을 터였다.

정확한 수치를 내기엔 짧은 시간이라고 하나, 역시 차이가 너무 크다.

‘확실히 뭔가가 있다.’

이런 감은 틀린 적이 없다.

만약 일본의 던전이 고블린에게 최적화되어 있다면 한국의 던전 역시 무언가 최적화된 마수가 존재할 것이었다.

‘던전의 마력 파장은 예컨대 기후나 환경과 비슷하다. 마수가 던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천. 특이체의 발생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일본이 고블린이라면…… 어떤 번식종이 한국의 던전과 맞는지도 알아봐야겠군.’

지금까지 배치한 마수들은 예외다. 모두 던전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 주진 못했다. 다른 번식종을 더 배치해 보면서 일일이 확인을 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물론 파장이 맞는다 하여 그 마수로만 던전을 채우는 건 미련한 짓이지. 일본의 던전을 고블린으로만 채운다면 약점이 명백해지듯이…… 찾는다고 하더라도 적당히 비율을 조정할 필요는 있다.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에 불과해.’

미리 선을 그었다.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찾더라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리라고.

이런 식의 고민은 나라는 존재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준다.

하여간, 파장과 관련하여 번식종을 찾는 건 던전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아직은 가설이지만 가설이 맞을 경우 많은 포인트를 낭비하지 않아도 높은 급의 마수를 자연 발생으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불의 제단으로 짐작되는 장소를 찾았나이다.”

크리슬리가 그리핀과 파이록들을 이끌고 찾아왔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봤다.

평소에도 그리핀과 함께 다니는 걸 보면 크리슬리는 조련 쪽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왔다.

내정 모드에서 확인할 건 얼추 끝났다.

남은 거라곤 시간이 걸리는 것들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내해다오.”

* * *

모든 던전에는 네 개 속성으로 이루어진 제단이 존재한다.

이 제단은 던전 내부에 흐르는 마력에 관여하고 던전 외벽의 강력한 베리어를 유지하는 매개체이다. 만약 네 개의 제단이 모두 무너지면 던전 외벽의 베리어가 사라지며 인간들의 화기에 그대로 노출될 것이다.

그를 막고자 각 제단에는 두 마리의 상급 골렘이 지키고 있었다.

던전 마스터 외의 누군가가 다가오면 자동으로 공격하게 설정되었다.

반대로 던전 마스터가 발견할 시 그 마수를 입맛에 맞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두 마리의 상급 마수보다 나는 신들이 남긴 메시지가 궁금했다.

지능이 100에 달했을 때 보이는 허공의 문구.

왜 하필 지능인가 고민해 보았는데, 확실히 전생에서 지능 100에 도달한 마족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능력치 100을 넘긴 마족은 꽤 있었지만 지능만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신들은 내가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언젠가 지능 100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하고 발동 조건을 그렇게 정한 게 아닌가, 하는 가설을 세웠다.

물론 내가 근처에 없을 경우 이 문구는 나타나지 않는다.

크리슬리를 통해 확인해 본 사항이었다.

‘너무 쉽게 얻으면 쉽게 잃는다고 생각한 건가?’

‘선물’이라 칭했다. 발동 조건 없이 그냥 주었어도 괜찮았을 터였다. 하지만 쉽게 얻는 것은 쉽게 사용하기 마련. 그것을 염두에 둔 제한이 아니었을까?

그리핀을 선물이라고 주었을 정도다.

최상급의 마수는 레벨이 낮다 해도 ‘격’이 다른 존재.

히든카드라고 평해도 충분한 마수였다. 그것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고 판단해 나름의 조건을 걸어 둔 것이다.

지능 100이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거기까지 도달했다면 충분히 사려가 깊게 ‘선물’을 사용하리라 내다본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 역시 지능 100에 도달하진 못하였다.

오로지 크리슬리가 있기에 문구를 읽을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신이 떨어진 장소, 이곳은 우리의 무덤이며 족쇄이니라. 우리를 근원으로 되돌려줄 자여, 나는 대지의 신 게브. 그대와 뜻을 함께할지니…… 내 마지막 선물을 받으라.”

한국의 던전에는 지혜의 신 미네르바가 남긴 글귀가 있었다.

지금 크리슬리가 내뱉은 말과 유사했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미네르바는 그저 던전이 생긴 원인에 대해 말했고, 대지의 신 게브는 의미심장한 암호문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무덤이며 족쇄.

근원으로 되돌린다, 라…….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그 순간이었다.

쿠르릉!

제단의 위쪽에 균열이 생겼다.

혼돈으로 이루어진 마력이 아니라 게브의 신성력이 지근거리에서 발현된 것이다.

곧 공간을 찢어발기며 거대한 마수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기간테스!’

4미터는 되어 보일 법한 몸집.

검은색 투구와 갑주를 입은 거인족 전사.

투구 사이로 내비치는 침과 열기, 번뜩이는 붉은 눈은 최상급 마수의 위엄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핀과 같은 최상급 1Lv의 마수라고는 하나, 그 기세만큼은 그리핀을 뛰어넘었다.

나는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끼며 심안을 열었다.

이름: 기간테스

능력치 :

힘 94 지능 71

민첩 75 체력 92 마력 74

잠재력(406/414)

특이 사항: 대지의 신 게브를 최측근에서 보좌한 거인족의 흑기사입니다. 그는 매우 고귀한 자. 아무에게나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그를 얻으려면 그가 내는 시험을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스킬: 기간틱 슬래시(Epic), 대지의 품(Ex U)

기간테스.

놈은 매우 화가 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험이란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피식 웃고 말았다.

‘한판 붙어 보자 이거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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