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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57화 (57/242)

던전 사냥꾼 57화

한국, 일본, 그리고 세계가 놀랐다.

던전에서 마수가 빠져나와 다른 던전으로 이동한 전례는 없었다. 입은 피해도 천문학적이거니와 리치가 포함된 마수 군단은 빈혈이 날 정도로 강력했다.

뿐만인가.

항거 불가능한 적.

던전의 주인이라 스스로를 칭하던,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귀가 긴 여인!

그녀의 출현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많은 이가 던전의 최상층에 기거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긴 했다. 신, 지저 세계의 왕, 외계인, 갖가지 추론이 지금껏 오가고 있었다. 그곳에 도달하면 인간은 한계를 뛰어넘어 ‘진리’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있었으니 최상층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실물이 직접 나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바다.

모두가 던전의 주인이 남긴 메시지에 집중했다.

‘최상층에 오르라. 그러면 세계의 진실을 알려 주겠다.’라는 그 말.

진실이 무엇일지에 대해 세계의 석학들이 분석하고 연구했지만 뜬구름 잡는 것 이상이 아니었다.

이후 이틀이 더 흐르자 더욱 놀랄 만한 광경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연출되었다.

마력의 파동.

그리고 빛의 장벽.

한국과 일본에선 특히 난리가 났다.

“세상이 끝날 징조.”

“그분을 받들라!”

끝끝내 종말이 도래했다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갔다.

일반인조차 강렬한 마력의 파동을 느끼고 격렬하게 두근대는 심장을 움켜잡아야만 했다. 마력에 친숙한 각성자들은 그 이후 3일 밤낮을 못 잤을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두 던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모두들 궁금해했지만 진실을 밝힐 힘이 인간에겐 없었다.

그러자 곳곳에서 던전의 주인을 ‘신’으로 경배하는 집단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미지의 영역에 대해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따르려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사이 일본은 한국에 책임을 물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한국의 던전에서 마수가 출현하여 일본에 도달한 것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천문학적인 피해액을 한국이 변제하길 바랐는데, 당장 한국도 복구에 여념이 없는지라 모르쇠로 일관하였다.

결국 일본은 불안한 국내의 민심을 돌리기 위해 ‘한국이 나쁘다’는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두 나라의 국제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몇 개월이 더 지나자 아픔은 조금 가셨지만 여전히 국민 여론은 우울한 상태였다. 수천이 하룻밤 사이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범죄가 늘고 국내 생산율이 급감했다.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

한국의 수뇌부가 선택한 건 각성자들이었다.

* * *

“좌측 방향 150미터 지점 오크 떼 출현!”

“가더들 앞으로! 근접 딜러는 원호, 원거리 딜러는 스킬 준비!”

“힐러를 너무 믿지 마라!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 해! 그렇다고 대열을 크게 흐트러트리면 안 된다!”

한국 던전 4층.

백에 다다르는 각성자가 각자 무기를 들고 오크 떼를 맞이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한참 뒤에나 공략했을 4층이지만 국내의 분위기 쇄신과 각성자의 빠른 성장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압도적인 마수 군단을 본 각성자들은 극한의 두려움과 온몸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

‘용사’는 성장하는 존재.

언젠가는 저런 마수와 던전의 주인조차 뛰어넘을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새겨진 탓이다.

하여 5대 길드가 모두 모여 레이드 부대를 편성했다. 그 숫자는 정확히 120! 각 길드에서 24명씩 차출했고, 4층까지 오며 20명가량이 죽었지만 4층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4층은 오크가 너무 많았다. 보이는 마수라곤 죄다 오크였다.

그동안 각성자도 많은 성장을 이뤄 최정예라면 능히 오크와 1:1의 결전을 벌일 수 있었다.

이곳에 모인 100여 명의 각성자는 모두 최정예.

소수의 오크는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적어도 20, 많으면 백까지 무리 지어 다니는 오크는 각성자들로서도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치도록 많은 물량이 대관절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저기 5층으로 가는 길목이 있다! 이번 위기만 넘기면 우리는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셈이다!”

“앞으로!”

그래도 오크를 상대하면 능력치가 오르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이하 층에서보다 훨씬 빠른 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여기서 올린 능력치와 경험을 토대로 5층에 올라서면 더욱 성장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취이익!

나타난 오크의 숫자는 80가량.

각성자들의 눈에 각오가 서렸다.

* * *

“언니. 느낌이 좋지 않아요.”

“괜찮아. 여기까지 잘 돌파했잖니?”

“이럴 때 공대장님이 계셨어야 하는데. 대체 어딜 가신 거람?”

5층으로 가는 계단의 와중.

유은혜가 투덜거리자 이지혜도 동의한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을 비롯하여 데빌 헌터 공격대도 이 레이드 부대에 포함되어 있었다.

“언니, 우리 공대장님이요. 2차 몬스터 웨이브를 막으시곤…… 어딜 가신 걸까요?”

던전의 주인이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대장을 ‘최강의 각성자’로 인정한 그날.

그는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

이에 한국에선 한바탕 혼란이 일어났는데, 여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지혜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워낙 홍길동 같은 분이시잖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시겠지.”

“그때도 저희는 내팽개치시더니. 분해요, 아주.”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을 때 유은혜와 이지혜는 공격대에 포함시켜 주지 않았다. 분개했지만 절대적인 공대장의 명인지라 발만 동동 굴렸다.

“우리가 아직 부족해서 아니겠어?”

“헤헹! 이제 길드 내에서 저를 당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손에 뽑는다구요?”

합숙 이후 유은혜의 성장은 눈이 부셨다.

스킬의 변화를 겪고 더욱 열심히 훈련에 매진한 덕이다.

“그래, 너 잘났다.”

이지혜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물 흐르듯 각성자 전원은 5층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유은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라고 별로 다를 건 없네요.”

“던전이 한 번에 바뀌겠니? 최상층까지 이런 어두침침한 동굴 형태일걸.”

선두에 선 미스릴 길드의 공격대장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이 앞은 질척거리는 진흙이 많다. 이동하는 데 모두 조심…….”

쿠우웅.

그때였다.

진흙 지대라고 여긴 그것이 합쳐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진흙이 뭉쳐 이내 머드 골렘의 형태를 갖췄다.

모두가 할 말을 잃고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쿵!

쿠웅!

여기저기서 다른 머드 골렘들이 출현했다.

그 옆으로 꼭두각시 인형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자 각성자들은 급히 정신을 차렸다.

“전투 준비! 대열을 유지하라!”

결국 100여 명의 각성자는 후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숫자는 적었지만 오크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마수가 강했다. 물론 그럼에도 머드 골렘과 꼭두각시 인형만 있었다면 어찌 돌파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중에서 나타난 하피에 의해 그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더 깊숙이 들어갔다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몰리리라 판단.

후퇴를 결정한 것이다.

던전을 빠져나왔을 때 그들의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그러나 4층에서 발견한 마법 무구와 아이템들은 확실히 3층에서 구한 것보다 질이 좋았다. 5층은 ‘좌절의 장소’가 되었지만 아예 희망의 불씨가 꺼진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5층에 무슨 마수가 있는지 파악이 되었으니 공략 방법을 정하고 조금 더 성장하면 충분히 정복할 수 있으리라 내다보았다.

동료의 죽음을 발판 삼아, 각성자들의 눈에 더욱 강렬한 의지가 서렸다.

* * *

샤-샤-!

나는 가만히 나가 새끼의 목을 잡아 올렸다.

하반신은 뱀이고 상반신은 인간과 비슷한 이 종족은 강력한 맹독을 품고 있어서 이렇게 만지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샤-!

이제 3개월 된 나가 새끼가 몸을 이리저리 틀어 댔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기다란 혓바닥을 놀려 나를 공격하려고 들었다.

그 옆에는 수 마리의 나가 새끼들이 있었고, 모두 비슷한 성장의 정도를 보였다.

“아직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군.”

나는 턱을 쓸었다.

한국의 던전에 맞는 번식종을 찾겠다며 여러 마수를 들였지만 아직 큰 성과는 없었다. 이 나가의 새끼도 한 마리에 7,500포인트나 하지만 성장하면서 눈에 띄는 점을 보여 주진 못했다.

파이록의 유충과 같이 크면서 대다수가 죽는 것은 성체에 비해 싸다. 그러나 나가의 새끼는 성체와 포인트가 똑같았다.

오로지 성장하면서 마력의 파장이 무슨 효과를 가져다줄지 파악하고자 새끼 10마리를 구입한 것이다. 성체도 20마리나 구입했으니…… 이제 새로 태어날 나가의 새끼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을 듯했다.

나는 목을 쥐었던 새끼를 풀어 주곤 다음 층으로 이동했다.

나가가 있는 곳은 12층.

13층은 웨어 울프가 번식종으로 선택된 곳이었다.

보랏빛의 털을 휘날리는 2미터 크기의 거대한 늑대.

이족보행이 가능한 데다 사자의 갈기와 같이 털이 곧게 뻗어 있었다. 나가나 다크 엘프와 똑같은 중급 마수 3Lv이었지만 공격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다.

깨갱!

내가 나타나자 막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웨어 울프들이 귀를 내렸다. 나는 웨어 울프의 보금자리를 찾아가 이번에 태어난 새끼 웨어 울프를 번쩍 들었다.

웨어 울프는 모성애가 강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내가 나서니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고만 있을 따름이다.

“음…… 아직은 모르겠군.”

보금자리에는 세 마리의 새끼가 있었다.

모두 일단 돌연변이는 아닌 듯했다. 일반적인 웨어 울프였고, 성장 속도도 비슷했다. 역시 눈에 띌 수준은 아닌지라 입맛을 다셨다.

고개를 내젓곤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14층.

리저드맨과 트롤이 번식종으로 선택된 층.

두 종족은 매우 사이가 나빠 붙여만 놓으면 싸우기 일쑤다.

굳이 이 두 종족을 한 층에 몰아넣은 것은 투쟁으로 인해 보다 강한 ‘종’이 태어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아직 두 종은 번식을 하기 전이라 숫자가 매우 적었다. 내 보유 포인트도 무한은 아니었기에 30마리씩 넣는 게 한계였다.

‘확실히 경쟁종이 있으면 번식의 속도가 1.5배 이상은 올라간다. 문제는 그만큼 죽는다는 거지만.’

이곳 역시 특이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바라서일까?

매일같이 이처럼 돌아보며 확인하고 있으나 던전의 마력 파장과 일치하는 번식종을 구분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가, 웨어 울프, 리저드맨, 트롤 중 마력 파장과 맞는 번식종이 없을 수도 있었다.

혀를 찬 뒤 다크 엘프들이 모여 사는 15층으로 이동했다.

세계수의 씨앗을 심어 하루아침에 15층은 광활한 숲이 되어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마력을 개방했다.

“던전 마스터를 뵙습니다!”

곧 다크 엘프의 족장 줄리엄이 달려 나와 예를 갖췄다.

그 뒤로 몇몇 다크 엘프가 도열했다.

“나머지는 어딜 갔지?”

보이는 숫자가 매우 적다.

이에 의아함을 느끼며 묻자 줄리엄이 답하였다.

“7층 드워프들이 집으로 사용할 목재를 옮기고 있습니다. 나머지 인원은 세계수의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울 수 있도록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중입니다.”

“쉽지 않을 것이다. 세계수의 씨앗은 숲을 만들어 주지만 정작 세계수를 잉태하지 못하고 대부분이 죽으니까.”

전생에서 던전에 세계수를 띄운 마족은 한 명뿐이었다.

대공 오쿨루스.

그의 던전은 오로지 세계수 하나로 난공불락이 되었다.

마수들의 성장 속도나 번식률이 크게 올랐고, 세계수를 호위하는 대지의 정령이 자연 생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수의 잎사귀는 가지고만 있어도 몸의 치유 속도를 높여 준다. 뿌리는 유니크 등급의 무구가 될 정도로 뛰어난 재료였다.

무엇보다 세계수가 있으면 자연종의 마수에게서 돌연변이, 특이체가 생길 가능성이 대폭 올라간다. 알아서 천혜의 요새가 완성되는 것이다.

오쿨루스는 세계수를 어찌 틔웠는지에 대해 휘하의 공작들에게마저 함구했다. 그 뒤로 많은 이들이 도전했으나 족족 실패하고 말았다.

나라고 그 방법을 알 리가 없다.

‘운이 좋으면 틔우겠지.’

기대가 많으면 실망도 큰 법.

나는 처음부터 세계수에 관해선 관심을 접어 버렸다.

“반드시 세계수가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줄리엄의 어조는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다크 엘프도 결국은 엘프다.

그들이 직접 세계수를 띄운다면 그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마계에 존재하는 세계수는 고작 둘이 전부였다. 하지만 강력한 다크 엘프만이 그곳에 사는 걸 허락받을 수 있었고, 이들은 그 장소에 들어가는 걸 거부당한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크리슬리가 더욱 보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어쨌거나…… 15층에 세계수가 생길 경우 그들은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터.

그 열망만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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