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58화
가능성이 없다 하여 굳이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었다.
열심히 무언가를 이루려는 노력만큼은 칭찬을 받아 마땅했다.
그만큼 생산적으로 활동한다는 뜻이니까.
나는 턱을 쓸며 말했다.
“따로 내게 전할 소식은 없는가?”
“소식이라 하심은……?”
“얼마 전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났다고 들었다.”
두 아이가 태어났다고 크리슬리가 매우 들뜬 표정으로 이틀 전 내게 전한 바가 있었다.
마력의 파장이 영향을 줬다면 무언가 짚이는 게 있을 터. 다크 엘프라고 피해 갈 순 없었다.
줄리엄은 손뼉을 쳤다.
“아아! 쌍둥이 말이군요. 안 그래도 태아의 의식이 끝나면 그 즉시 던전 마스터께 보일 생각이었습니다. 마침 때가 되어 가니 한번 왕림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다크 엘프는 특별한 일에 반드시 의식이란 이름의 무언가를 행하곤 했다.
줄리엄은 매우 감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던전 마스터가 굳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걸 그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한 듯싶었다.
오해를 풀어 줄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보도록 하지.”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윽고 줄리엄이 지근거리의 다크 엘프에게 다른 이들을 모두 소집할 것을 부탁했다. 던전 마스터의 행차를 무시할 순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인사치레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라 내버려 두었다.
나는 줄리엄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며 숲의 모습을 살폈다.
‘세계수의 씨앗으로 만들어진 숲. 확실히 마력의 농도가 다르군.’
이 정도의 마력이라면 꼭 세계수를 틔우지 못하더라도 다크 엘프들에게 많음 도움을 주리라 확신했다. 아마 특이체도 조만간 출현하지 않을까 싶었다. 다크 엘프 하이어까지는 굉장한 욕심이고, 상급 마수인 다크 엘프 로드의 재목만 출현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었다.
10분여를 걷자 초목을 엮어 만든 작은 집이 나타났다. 이곳이 이번에 새롭게 만든 다크 엘프의 거주지다.
이히의 똥 모양 구조물이 없는 걸 보면 내가 허락한 즉시 허물어 버린 것 같았다.
“이곳입니다, 던전 마스터시여.”
거주지의 중간점.
다른 집들과 다르게 유독 큰 장소가 존재했다.
“가장 질 좋은 나무와 풀을 엮어 만든 집입니다. 저희 다크 엘프는 막 태어난 아이를 3일간 이 집에 머물게 합니다. 그 날 딴 잎으로 이슬을 받아 먹이며 대지의 축복이 깃들 수 있기를 바라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지요.”
줄리엄이 따로 설명을 하였다.
이 집은 세계수의 대용인 것 같았다. 만약 씨앗을 발아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이 집이 아니라 세계수 밑에서 3일간 의식을 치를 것이었다.
“확실히 좋아 보이는 집이군.”
“던전 마스터께서 원하신다면 최상층에 이보다 큰 집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흥미로운 제안이긴 하나, 이히가 가만히 있진 않을 것 같다.”
“……요정님께선 확실히 불만이 있으시겠군요.”
이히는 다차원 사고관의 소유자다. 이해할 수 없는 디자인을 직접 만들곤 천상의 업적인 양 여기곤 하였다.
평범한 나무집을 최상층에 올렸다간 매일 불평불만을 입 밖에 꺼낼지도 모른다.
“던전 마스터를 뵈옵니다.”
“던전 마스터를 뵈옵니다.”
내가 지나가자 근처의 다크 엘프 무리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며 의식이 치러지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봤을 땐 최소 2층은 되어 보였는데, 그냥 지붕이 높은 1층 집이었다.
커다란 나뭇잎에 감싸인 두 아이가 손과 발을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이번에 태어난 쌍둥이입니다. 한 명은 남아, 한 명은 여아지요.”
집 안에는 어른이라 할 다크 엘프가 없었다. 이로 보건대 의식이 끝나기 전까지 아무나 들어올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가만히 다가가 두 아이를 살폈다.
꺄아!
꺄르르~
마력을 개방하지 않은 상태라서 그런지 아이들도 별다른 반감 없이 나를 바라봤다.
심안을 열어 두 아이를 확인했다.
이름: 없음
직업: 없음
칭호 :
능력치 :
힘 1 지능 4
민첩 1 체력 2 마력 13
잠재력(21/384)
특이 사항: 태어나고 51시간이 지났습니다.
스킬: 없음
‘이건…….’
하지만 상태창을 보곤 가볍게 놀랐다.
두 아이는 상태창마저 판박이처럼 같았다.
그러나 내가 놀란 건 잠재력 부분이다.
이 정도면 다크 엘프 로드의 재목 아닌가.
크라스라나 크리슬리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충분히 상급 5Lv로 책정될 자질이 있었다.
물론 잠재력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도 중요한 부분임은 분명했다.
‘한국의 던전에 알맞은 번식종이 다크 엘프였나?’
아직 확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고작 두 명. 조금 더 많은 사례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이 다크 엘프 부족만 유독 특이한 것일 수도 있었다.
다크 엘프 하이어를 한 명이나마 배출했고, 진마룡마저 그 핏줄에 눈독을 들였기에 교배를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 크리슬리라는 걸출한 천재도 태어나지 않았던가.
‘그저 좋은 피를 가진 이유일지도 모르지.’
가끔 있다.
몰락 부족이지만 좋은 피가 유전되어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는 특이체를 배출하는 경우가.
이 부족이 그러한 경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저…… 던전 마스터시여.”
줄리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줄리엄의 눈을 바라봤다.
“말하라.”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름을?”
의아함에 물었다.
누군가가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한 적 자체가 처음이었다.
줄리엄은 진지한 눈초리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던전 마스터께서 직접 이름을 하사하여 주신다면 두 아이에겐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노골적이군.”
피식 웃고 말았다.
줄리엄의 의도가 뻔히 읽힌 탓이다.
크리슬리를 받아들인 이후로 그는 더욱 내 마음에 들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워낙에 노골적이라 얼굴을 붉힐 법도 하건만 줄리엄은 안면 몰수의 대가였다.
나도 이런 자가 싫진 않다.
능력 없는 자가 이런 식으로 기회를 노린다면 머리부터 떼어 내겠으나 줄리엄은 능력이 있는 부류다. 적어도 하나를 시키면 둘은 해결할 줄 알았다.
물론 내 허용 범위는 딱 여기까지다.
성과를 보이고, 적당히 보상을 바라는 정도.
그 이상을 바라본다면 후일을 장담해 줄 수가 없다.
그런 미묘한 기색을 느꼈는지 줄리엄이 급히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
“오, 오해이십니다, 던전 마스터시여. 저와 다른 다크 엘프 모두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충실한 종, 충실한 노예지요. 제가 바라는 것은 그저 부족의 평안과 크리슬리의 행복일 뿐입니다. 그리고 던전에 와 처음 태어나는 아이들이 주인님께 이름을 하사받는다면 그것은 저희 부족에게 있어서 매우 영광된 일이라 생각했을 따름입니다. 결코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태도가 극적이다.
이름을 지어 달라는 게 마냥 기회를 노리고 한 말은 아닌 듯싶었다. 일종의 습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아주 그럴 의도가 없진 않았겠지만…….
내심 혀를 차곤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척!
줄리엄은 굽혔던 무릎을 즉시 폈다.
나는 그에게 이어서 말했다.
“남아는 로이, 여아는 로제라 짓도록.”
침을 꼴깍 삼키며 줄리엄이 물었다.
“뜻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잠시 침묵했다.
노이로제(Neurosis)에서 따왔다고 하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줄리엄의 걱정이 신경 과민증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격했기에 붙여 본 이름이다.
한 번 개 취급을 하며 크게 벌을 준 영향인 듯했으나, 나를 어렵게 여긴다는 게 나쁘지는 않은 일인지라 가볍게 넘어갔다.
“용감하고 훌륭하다는 뜻이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두 아이의 이름은 로이와 로제가 될 것입니다.”
이름을 지어 줬다는 게 중요하지 뜻이 중요하진 않았다.
두 아이가 나를 보곤 방그레 미소 지었다. 던전의 특성상 빠르게 성장할 테고, 몇 년이면 어엿한 다크 엘프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잠재력을 모두 채우면 족히 수십만 포인트를 공짜로 먹는 것과 같았다. 앞으로 훌륭히 나를 위해 싸워 줄 재원이 미워 보일 리 없다. 두 아이의 뺨을 한 차례 톡톡 건드리곤 몸을 돌렸다.
“던전 마스터시여, 오늘을 기념하여 축제를 열 생각입니다. 참여해 주신다면 모두가 영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되었다.”
줄리엄이 약간 아쉬운 눈초리를 보였으나 두 번 권하진 않았다.
내가 반복해서 말하는 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드워프들을 살펴봐야겠군.’
집을 빠져나가 7층으로 향했다.
* * *
애석하지만 드워프들 역시 별다른 점은 없었다.
그들은 열심히 머지않아 찾아올 인간 각성자들을 위해 집을 짓고 있었다.
공방을 만들고 여관을 세웠다. 따로 도구점 따위를 짓는 걸 보아선 제대로 해 볼 작정인 듯싶었다. 과연 인간 각성자들을 쉬이 속여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계획대로만 된다면 앞으로의 일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마수가 인간 각성자에게 퀘스트를 부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각성자는 매번 갱신되는 정규 퀘스트와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비정규 퀘스트를 깨며 스킬, 아이템, 능력치 등을 올린다.
나는 이 ‘비정규’란 점에 주목했다.
특정 장소에 도착하거나 특정 인물, 혹은 짐승에게 우연히 얻는 것.
어쩌면 마수가 인간 각성자에게 퀘스트를 주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지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게 가능하다면…… 더욱 많은 각성자를 던전에 유치함과 동시에 각성자들을 앞에서 뒤에서 완벽히 조종하는 게 가능해진다.
각성자들에게 있어서 퀘스트는 깨야 하는 것이다. 퀘스트로 정식 등록이 될 경우 그들은 오로지 보상 하나만을 위해 선악을 크게 구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말 그대로 ‘내 입맛’에 따라 각성자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뜻.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여전히 번식종이로군.’
모든 게 순조롭다.
그러나 한 가지.
던전의 마력 파장과 맞는 번식종을 찾는 게 문제다.
‘시간은 나의 편이다.’
그래도 조급하게 굴지 않기로 했다.
시간을 되돌아온 나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이 고민하는 시간조차 결국은 내게 득이 될 것이라고!
나는 던전의 모든 마수를 아주 세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일본의 던전에 존재하는 마수들과 비교하며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였다.
굉장히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는 작업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결과, 한국 던전에서의 특이점 한 가지를 찾을 수 있었다.
‘짐승 계열의 마수가 더욱 활발하군. 미묘하게 잠재력도 높다. 번식의 속도 역시 상당하지.’
일본의 던전과 대비되는 점이다.
수백 가지의 표본을 살폈으니 틀림없었다.
‘식육 박쥐가 유독 던전의 1층에 기승을 부렸던 게 설명이 돼.’
식육 박쥐의 이상 증식을 견제하고자 천적인 에일 스네이크를 풀었지 않았나.
그러나 단지 번식 속도만으로는 던전에 알맞은 번식종이라 할 수 없었다.
수많은 기준 중 하나일 뿐.
짐승 계열의 마수와 파장이 어울린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다음 스텝을 밟을 차례였다.
‘미노타우로스, 메머돈, 샤벨 타이거, 다크 베어.’
무려 네 종의 번식종을 던전에 추가하기로 결심을 내린 것이다.
각자 특성이 뚜렷한 종이었으니 보다 확실하게 구분이 될 터였다.
미노타우로스는 소, 메머돈은 코끼리, 샤벨 타이거는 호랑이, 다크 베어는 곰이다. 그리고 모두 중급 3Lv의 마수다.
막대한 지출이었지만 필요한 과정이었다. 어차피 이 마수들이 번식하면 자연스럽게 비용 절감이 된다. 따지고 보면 투자이지 손해는 아니었다.
그렇게 막 네 가지의 마수를 던전에 추가했을 때였다.
[대단한 업적! 최초로 15종 이상의 번식종을 한 던전 내에 ‘적절히 번식 가능한 숫자’만큼 풀어놓았습니다.]
[600,000pt가 지급됩니다.]
확실히, 손해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