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61화
미국 워싱턴주 록크릭 공원(Rock Creek Park).
그곳 3.65km²에 걸쳐 형성된 거대한 던전의 입구에서 수많은 마수가 쏟아져 나왔다.
거미형 중급 2Lv의 마수 아라크네 수백과 그 거미들을 다스리는 상급 3Lv의 마수, 아라크네 퀸!
일반적인 거미와는 크기부터 달랐다.
그 한 마리, 한 마리가 2미터 이상의 위용을 자랑했으며 퀸의 경우 일반적인 아라크네보다 두 배는 컸다.
아라크네들이 탐스러운 여덟 개의 다리를 움직인 그 순간, 주변의 군인들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일어난 몬스터 웨이브는 유례없이 강력했고, 그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미국은 군대를 대거 던전 주변에 투입시킨 것이다.
한마디로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상태.
“공격 개시!”
병사들이 일제히 총을 들어 아라크네를 공격했다.
수천, 수만 발의 총알이 아라크네의 외피를 건드리곤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일반적인 하급 마수였으면 모르겠으나 아라크네는 중급의 마수다. 총알 따위는 가볍게 막아낼 단단한 외피를 가지고 있었다.
콰르릉!
땅 밑에 묻어 놓은 크레이모어가 일제히 터져 나가며 지상을 흔들었다.
하지만 총알과 달리 효과가 있었다.
키에엑!
불시의 기습. 몇 마리의 아라크네가 다리와 몸통을 잃고 주저앉았다. 이어 저격수가 저격 총을 발포하여 아라크네의 눈을 맞추곤 행동 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 그 위에 전차의 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내렸다.
아수라장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광경.
마수의 열세가 예상되는 그때.
전장의 중심부에 선 퀸이 부지런히 신경 다발을 움직이며 모든 감각 기관을 일깨웠다.
곧 퀸이 무형 무취의 명령 호르몬을 주변에 흩뿌렸다. 우왕좌왕하던 아라크네들은 일제히 퀸의 호르몬 냄새를 맡곤 발 끝마디에 존재하는 감각 기관을 통해 크레이모어의 위치를 특정해 냈다.
거침없이 지뢰를 피하며 거대한 거미들이 진격했다.
이후 실젖에서 은빛의 실을 무더기로 뿜어 댔다.
“크아아아악!”
“사, 살이! 내 살이!”
실에 닿은 모든 게 녹아내린다.
인간의 신체도, 탱크의 철갑도 가리지 않고 녹여 버리는 강한 산이 거미줄에 포함되어 있었다.
아라크네는 시속 80킬로는 될 법한 빠른 속도로 인간들을 덮쳤다. 이어 강력한 턱을 이용해 머리나 신체 부위를 물어뜯곤 내뱉었다.
앞발 역시 가공할 무기가 되었다. 인간들의 연약한 신체는 칼과 같이 날카로운 앞발에 찢겨져 나갔다.
“사격 지원 요청, 알파찰리 221 브라보델타 445 지점, 마수 200여 마리와 접전 중. 근접 항공 지원 바람.”
무전 요청이 끝난 즉시 주변에 주둔 중인 수백 기의 전투기가 날아올랐다.
전투기가 던전의 입구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분여.
퉁! 퉁! 두두두두!
전투기들이 저공으로 비행하며 기총 사격을 개시했다. 합금 철판마저 뚫어 버릴 수 있는 두꺼운 탄환이 아라크네에게 직격하였다.
여기서 다시 십수 마리의 아라크네를 저지할 수 있었고, 아라크네가 재빨리 대응하며 실을 내뿜었지만 닿지 않았다.
퀸은 여덟 개의 다리와 여덟 개의 눈알을 움직이며 하늘을 가득 채운 전투기들을 바라봤다. 키익, 키이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명령 호르몬을 방출하자 모든 아라크네가 다리를 스프링처럼 축소하는 게 아닌가?
그러곤 눈 깜빡할 사이에 뛰어올랐다. 몸길이의 족히 백 배에 달하는 가공할 점프력!
콰칭!
전투기의 위에 앉은 아라크네가 날카로운 앞다리를 놀렸다. 창을 꿰뚫으며 순식간에 조종사의 목숨을 앗아 갔다.
영국 런던(London).
모두가 잠들었을 늦은 저녁.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다.
철그럭, 철그럭.
다리 한쪽에 쇠고랑이 묶인 상급 3Lv의 마수 ‘그림자 죄인’ 두 마리가 바닥을 쓸며 움직인다.
고오오오.
그 뒤로 백여 마리의 쉐이드가 달빛을 따라 이동했다.
스위스 베른(Bern).
반파된 도심가 중심부로 수백의 짐승이 모여들었다.
헥헥헥헥…….
늑대의 다리, 사자의 몸통, 개의 얼굴을 가진 중급 3Lv의 마수 키메라!
족히 300마리는 될 법한 키메라가 불타는 도심가의 중심부에 시체를 물고 날랐다.
이어 모든 키메라가 모이자 만찬을 즐기듯 시체를 물어뜯었다.
그리스 아테네, 덴마크 코펜하겐, 페루 리마,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터키 앙카라…….
세계 각지에서 시작된 몬스터 웨이브는 재앙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수들은 인간들을 농락하며 존엄성마저 무참히 짓밟았다.
몬스터 웨이브의 강도는 나라마다 달랐고, 피해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군대와 화력을 보유한 나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생겨나자 각성자의 존재가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재앙을 마주하며 사람들은 영웅을 바랐다. 그 희망에 따라 각성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제일 강력하리라 평가된 한국에서의 2차 몬스터 웨이브.
그로 인해 데빌 헌터 공격대란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다. 특히 베일에 싸인 그곳의 공대장에 관한 관심이 지대했다.
이는 한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계의 수뇌부들은 모조리 한국을 주시하고 있었다. 던전의 주인이 출현하며 일어난 일련의 일들은 말 그대로 ‘사상 초유’였기 때문.
하지만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자 그들은 단순한 관심이 아닌 절박함을 가지고 데빌 헌터 공격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대장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이었다.
상급 마수인 골렘을 거의 홀로 쓰러트렸으니…… 지금 군대가 처리하지 못하는 마수는 상급 이상의 마수뿐이 없었고, 유일하게 상급 마수를 처리한 그에게 기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외에도 각성자라면 누가 가장 강한지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었는데, 모두가 입을 모아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대장이 최강이다.”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하여…… 지원 요청을 받은 길드 마스터 김용우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공식선상으로 데빌 헌터 공격대 자체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속내가 그렇지 않다는 걸 김용우가 모를 리 없었다.
문제는 정작 주인공이 없다는 점.
‘언제까지 시간을 지연할 순 없다고. 정부에서 들어오는 압박도 장난이 아닌데.’
요즘 김용우의 전화기는 불통이었다.
전화만 받았다 하면 억! 소리가 날 만한 인물들인지라 설렁설렁 넘어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중요한 인물들의 제안을 하나도 수락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어야만 하는 현실에 김용우도 강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벌써 새치 몇 가닥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을 정도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손톱을 아그작아그작 씹었다.
‘나 혼자 결정하기엔 사안이 너무 커. 상급 마수를 우리가 무슨 수로 잡아?’
문제는 상급 마수다.
중급 마수까진 일반적인 군대로도 어찌 대응이 가능하다. 물론 그것도 숫자가 많아지면 불가능 쪽으로 급격하게 추가 기울어지긴 하지만 상급 마수는 아예 공격이 통하질 않았다.
핵을 떨어트리지 않는 이상 퇴치 불가능한 적이라고 판명된 마수. 그러나 던전은 하나같이 그 나라의 수도에 존재했고, 핵을 떨어트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각성자들 역시 아직 준비가 덜 됐다. 상급 마수 하나를 잡으려면 정예 200여 명은 달라붙어야 겨우 어찌하지 않을까 싶을 수준이었다.
천명회 전원이 나선대도 한 마리가 한계. 그조차 50% 확률이다.
당연히 김용우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발만 동동 굴리고 있을 그때.
벌컥! 문이 열리며 꿈에도 그리던 그 님이 나타났다.
나타난 이의 얼굴을 본 김용우는 양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감을 느꼈다.
풀썩 주저앉으며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오…… 나의 주인님!”
* * *
김용우의 반응을 보곤 눈썹을 찌푸렸다.
전신에서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을 잠시나마 받은 것이다.
“지원 요청이 들어온 곳을 정확히 말해라.”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김용우가 눈을 크게 떴다.
앞뒤 다 잘라 먹은 내용이긴 했지만 빠른 눈치 덕에 알아들은 것이다.
어차피 불평불만을 해 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시간 낭비를 할 바엔 건실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도.
김용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흠. 미국과 영국, 스위스, 지금 당장 들어온 곳은 이 세 군데입니다.”
“미국, 영국, 스위스라…….”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게 입장상 제일 이득이긴 합니다.”
“선택은 내가 한다.”
내 어조는 단호했다.
슬그머니 김용우가 입을 닫았다.
‘셋 다 공작이 주둔하는 곳이로군.’
재밌는 건 미국과 영국, 스위스 모두 공작의 던전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켰다면 아주 작정을 했을 터.
2년간 나름 인간의 화력에 대해 데이터를 쌓았을 터이니 반드시 승리하리라 장담한 마수만 꺼내 놨을 게 분명했다.
‘지금 상황에서 아리엘과는 되도록 안 부딪치는 편히 좋다.’
그중 미국에서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 공작은 대공 아리엘을 따르는 마족이다.
아리엘은 전생의 인연도 인연이지만 마족들과의 유대가 유독 끈끈했다. 또한 아리엘 휘하의 마족들은 굉장히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건드리면 몬스터 웨이브를 망친 이가 누구인지 조사할 것이고, 끝내 내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었다.
드러난대도 공작 한 명쯤이야 역으로 잡아먹을 수 있지만 그러면 대공 아리엘이 눈치를 챈다. 그 즉시 나는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된다면 한창 몸집을 불려야 할 시기에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게 될 것이었다.
좋은 수는 아니다.
대공 아리엘과 연관된 마족을 공격하는 건 뒤로 미루는 게 나았다.
‘영국에 주둔하는 공작이 스구프였지. 스구프 발훌라, 대공 우파 휘하의 마족.’
대공 우파.
여러모로 엮이는 일이 많은 마족이다.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우파의 휘하 마족들은 마계 옥션에 출입을 금지당하지 않았던가? 굳이 지금 시기에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킬 필요가 없을진대.’
턱을 쓸며 고민하자 곧 답이 튀어나왔다.
‘파간 그리울리가 모든 걸 뒤집어쓰게 한 거로군. 얍삽한 우파다워.’
그날 마계 옥션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을 파간 그리울리에게 떠넘겼다면 이해가 되었다. 그로기 따위로는 일을 무마할 수 없었을 테고, 공작인 파간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결국 명령에 따라 나를 막아선 파간 그리울리만 ‘새’ 된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따라야 할 이를 착각한 그의 죄인바, 동정심은 안 들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데빌 헌터 공격대는 영국으로 간다. 지금 당장 준비하도록.”
대공 우파의 세 날개 중 일익을 담당한 파간 그리울리가 떨어졌다. 우파가 스스로 날개를 잡고 뜯어냈다.
나는 남은 두 날개 중 하나를 도려내 줄 작정이었다.
필시 던전의 주력 마수를 꺼내 놨을 것인데, 그 마수들만 처리해도 복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게 자명했다. 그리고 지금 시기에 그만한 피해를 입는다면 한참 뒤처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심히 궁금해졌다.
날개가 하나만 남았을 때 과연 우파는 날 수 있을까?
전용 비행기 하나를 전세 삼아 데빌 헌터 공격대가 한국을 떴다.
영국은 데빌 헌터 공격대가 요청을 받아들인 즉시 아예 비행기 한 대를 통째로 선물한 것이다.
그만큼 사안이 급박하다는 뜻이겠지만 내가 의뢰를 수락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리 비행기를 준비시켜 놓는 철두철미함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런던 히드로 공항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8시간 30분이었다. 보통의 속도로 날아서 걸리는 시간보다 4시간은 더 빨리 도착한 것이었다.
여기서 20킬로가량과 떨어진 곳에 던전이 존재했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뒤 데빌 헌터 공격대는 상징인 반쪽짜리 검은색 해골 가면을 착용하고 비행기를 빠져나왔다.
“환영합니다, 한국의 영웅들이여.”
비행기 밑에서 영국 대사가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나는 악수 대신 본론을 꺼냈다.
“우리가 처리해야 할 마수는 어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