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62화
* * *
절망 어린 아우성과 고통에 찬 신음이 도시 전역에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쉐이드가 주는 광기에 지배된 사람들이 칼을 들고 거리로 나섰으며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끔찍한 참극이 빚어졌다.
“크하하!”
“죽어! 다 죽어 버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미쳐 날뛰었다.
아이가 작은 식칼로 노인의 다리를 찌르자 그 뒤에서 성인 남성 한 명이 쇠 파이프로 아이의 머리를 내리쳤다. 여인이 그런 남성의 목을 깨물었다.
아수라장.
지옥이 있다면 이러할까?
쉐이드는 그림자에 기생하는 마수이고, 인간의 정신을 갉아먹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오로지 그 하나의 용도 때문에 중급 마수로 책정되었으니 가히 인간의 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왜, 왜 그래? 갑자기 다들 왜 그러냐구!”
하지만 쉐이드의 정신 지배가 모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력이 유독 강한 이, 혹은 일정 수준 이상의 지능을 갖춘 각성자에게는 지배력이 반감된다.
그때 그림자 죄인이 나섰다.
쩔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철구를 들었다. 그림자 죄인은 쉐이드가 진화한 형태로 어째서 그들이 ‘죄인’이라 불리고 철구를 찼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정신 지배에서 벗어나, 그림자 죄인은 철구를 통해 막강한 물리력을 선사할 수 있었다.
철구를 들어서 휘두르자 닿는 모든 게 파괴되었다. 그것을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남자에게 크게 던졌다.
족히 수백 미터 떨어진 거리임에도 조준은 정확했다.
철구와 그림자 죄인을 잇는 철쇄가 길게 늘어졌고…… 곧 쿵! 소리와 함께 남자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뭉개지고 말았다.
쾅! 콰쾅!
그것이 시발점이라도 되듯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투기 수십 대가 나타나 미사일을 갈겼다. 그러나 그림자 죄인도 엄밀히 따지자면 절반은 정신체. 마력이 담기지 않은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휘리릭!
그림자 죄인은 또 한 가지 커다란 특징이 있었다. 1초 정도의 앞을 매우 높은 확률로 예지할 수 있는 것.
철구가 높게 날아 마치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전투기를 옭아맸다. 눈으로 좇기에도 버거울 속도로 움직이던 전투기였으나 그림자 죄인은 상급의 마수다. 일반적인 인지에서 벗어난 존재였다.
“이 괴물 같은 자식들!”
전투기 조종사의 마지막 단말마였다.
싸움은 일견 격렬해 보였다.
1초 후의 예지가 높은 확률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림자 죄인이 던진 철구가 무조건 맞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리고 철구가 달린 철쇄의 유효 거리는 500미터 남짓. 그 바깥에서 공격한다면 그림자 죄인으로서도 쉽사리 대처하지 못했다.
몇 기의 전투기가 스러지자 남은 조종사들이 그 거리를 파악하곤 물러났다.
하지만 사정거리 바깥으로 물러났대도 방법이 없진 않았다.
그림자 죄인과 쉐이드는 적어도 인간이 다루는 화기를 상대하는 데 있어선 최적의 조합이었다.
모든 조종사가 그림자 죄인에게 한눈이 팔린 사이, 쉐이드가 철구의 그늘에 숨어 순식간에 전투기와의 거리를 좁혔다.
이어 정신 지배가 발동했고, 광기에 감염된 몇몇 조종사가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공은 금세 격전지로 변해 버렸다.
한 번 바뀐 흐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조종사가 혼란해하며 하늘을 방황하자 어느새 날아온 철구가 전투기를 박살 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결국 희망을 걸었던 대공에서의 공격마저 격렬했을 뿐 유효타를 먹이진 못했다. 지상 부대는 물론 한 차례 각성자 부대도 투입되었으나 쉐이드 십수 마리를 잡은 게 전부인 상황.
“아아…… 신이시어!”
정신을 부지한 이들은 무릎을 꿇으며 목이 터져라 신을 불렀다.
눈을 감고 이것이 꿈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러나 마수들이 판을 치는 이곳이 현실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렬한 ‘고통’만큼 인간을 현실로 되돌리기 좋은 수단은 없는 탓이다.
모두가 강제로 현실에 되돌려져 삶을 부르짖을 찰나.
검은색의 해골 가면을 쓴 무리가 나타났다.
* * *
광기와 분노, 절망이 피어나는 곳.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감탄을 흘렸다.
우파의 휘하 공작인 스구프 발훌라는 인간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쉐이드를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확실히 일반적인 인간에게 쉐이드만큼 효율적인 마수는 없을 것이다. 중급 마수로서는 부족하고 비싼 데다 번식조차 하지 못한다는 저평가가 지배적이라 어지간해선 안 쓰는 마수이건만 스구프는 아낌없이 구매한 것이다.
‘그림자 죄인이라…….’
거기다가 각성자를 처리할 상급 마수 두 마리도 내보냈다.
상급 3Lv의 150,000pt나 하는 고가의 마수.
이 구성만 보더라도 이번 몬스터 웨이브에 50만 포인트 이상을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각성자들을 사냥하고자 통 크게 구입한 게 분명했다. 일반적인 마수는 평범한 인간들의 화력에도 때때로 당할 때가 있으니 이것도 일종의 투자다.
적어도 내가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스구프는 쉐이드와 그림자 죄인의 조합으로 몇 년간 본전 이상의 포인트를 뽑아냈을 터였다.
하지만 막 시작도 하기 전에 계획이 파탄 난다면 스구프가 입을 피해는 막대하다. 그런 의미에서 수구프는 운이 없었다.
“쉐이드는 인간의 그림자에 기생한다. 지능이 30 이상인 자만 꾸려서 착란을 일으키는 사람의 그림자를 공격하라. 그 이하인 사람은 원거리에서 보조만 하도록.”
“저기 저 철구를 돌리는 녀석은 가만히 놔둡니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맡는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척 보아도 강렬해 보이는 두 마리다.
못해도 상급 마수이리라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너, 지금 우리 공대장님을 못 믿겠다는 거니? 에휴! 이래서 신입은.”
유은혜가 혀를 쯧쯧 찼다.
몸에 흐르는 전류가 사라지고 조금 더 직설적인 성격이 된 유은혜였다.
나는 가만히 아비규환의 장소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막는다. 움직여라!”
* * *
올해 10살이 된 에드워드는 폐허 더미 아래에 깔려 있었다.
느닷없이 시작된 부모님의 착란 증세. 갓난아기인 동생을 지키고자 급히 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숨죽인 채 있었건만 건물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상황이 정리되질 않았다. 하지만 강렬한 고통과 함께 깨어날 수 있었다.
“루니? 루니, 어디 있어?”
이제 막 돌을 맞이한 루니의 이름을 불러 봤지만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입술을 꽉 깨물며 몸을 움직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가 깔렸다. 아프진 않았다. 그래도 무서웠다. 공포가 몰려들었다. 에드워드는 고개를 내저으며 동생 루니의 행방을 찾고자 애썼다.
“제발, 루니…… 엄마랑 아빠가 무서워서 숨은 거야? 원래는 착한 분들이셔. 일을 하느라 힘들어서 잠깐 화를 내시는 거란다. 그러니 제발…….”
루니는 태어날 때부터 에드워드가 키우다시피 하였다.
부모님은 항상 바빴기에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울면 안아서 진정시켜 주는 모든 일을 에드워드가 도맡아 한 것이다.
항상 집에 혼자 남아 외로웠던 에드워드에게 루니는 두 번 다신 없을 선물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이를 돌보는 것에 짜증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에드워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루니를 향한 모든 행위가 보람차기 그지없었다.
그러다가 무너진 건물 더미 사이에서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발견했다.
“오…… 루니!”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에드워드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입을 열었다.
“조금만 기다려. 우리를 구하러 사람들이 올 거야.”
에드워드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피를 흘리는 광경이 그제야 두 눈에 들어왔다. 철구를 휘두르는 괴물도 있었다.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사방에 시체가 널렸다.
에드워드는 아직 죽음의 개념이 확고히 자리 잡히지 않았다. 그저 아파서 쓰러져 있다고만 여길 따름이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그래도 다들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근처로 군복을 입은 군인 한 명이 다가왔다. 에드워드는 손을 흔들며 외쳤다.
“이봐요! 우리를 도와줘요!”
하지만 군인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에드워드를 바라보더니 이내 총을 겨눴다.
“크흐흐…….”
“왜, 왜 그러세요? 그러지 말고 도와주세요. 저보다 루니를 먼저 빼내 주세요. 제발요. 아직 어려서 빠져나올 힘이 없단 말이에요.”
이상한 웃음소리에 아랑곳 않고 에드워드가 빌었지만 군인은 겨눈 총을 치우지 않았다. 도리어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였다.
쿠웅!
멀리서 날아온 무언가가 군인의 몸을 짓눌렀다.
햄버거처럼 꽉 압축되어 사방에 피가 흩날렸다.
에드워드는 날아온 대상을 확인하곤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철구를 든 괴물!
왜 괴물이 하늘에서 날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괴물이 바닥을 짚고 막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질긴 녀석이군.”
순간 이동도 아니고 웬 검은색 해골 가면을 쓴 남자가 돌연히 나타났다.
남자는 이상하게 생긴 검을 들었다.
촤륵!
그러곤 괴물이 아니라 철구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철구가 둘로 나뉘자 괴물이 괴성을 내지르며 조금씩 산화했다.
약 10초 후 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던 에드워드가 돌연 외쳤다.
“아! 아저씨, 저 좀 도와주세요. 아니, 제 동생 좀 도와주세요. 이름은 루니인데요, 어려서 못 빠져나오고 있어요.”
남자가 몸을 돌려 에드워드를 바라보더니 무심하게 말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예? 아아, 의사 선생님이 저보고 무통증이래요.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서 제 동생 루니를…….”
“네 동생은 죽었다.”
“예?”
에드워드도 죽었다는 뜻 자체의 의미는 알고 있었다.
다만 죽음에 관한 뚜렷한 인상이 없을 뿐이다.
남자는 그를 이해하고 다시 한번 잔인하게 설명했다.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이다. 영원히.”
* * *
그림자 죄인 두 마리를 처리하는 데 들어간 시간은 30분 정도다.
물론 전력으로 부딪치면 10분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내 능력치 총합은 410을 넘겼다. 고작해야 340 언저리의 그림자 죄인 따위가 내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다만 각성자 행세를 하느라 스스로에게 조금의 제약을 건 것뿐이다.
그림자 죄인 두 마리를 처리한 나는 내게 말을 건 남자아이를 쳐다봤다.
건물에 깔려 하반신이 완전히 뭉개진 상태였다. 처음에는 감각이 무뎌진 것인가 했지만 남자아이의 얼굴엔 전혀 고통스러운 기색이 없었다. 그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심안을 열었다.
이름: 에드워드 윈저
직업: 전사(용사)
칭호: 없음
능력치 :
힘 14 지능 34
민첩 15 체력 17 마력 32
잠재력(112/441)
특이 사항: 없음
스킬: 무통증(Ex R)
대단한 잠재력이다.
유은혜보다도 20가량 높은 이러한 잠재력을 나는 인간 중에서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란 건 아이의 이름이었다.
‘에드워드 윈저? 용사 10강 중 1인이었던 그 에드워드 윈저란 말인가?’
에드워드 윈저. 공작 살해자!
그가 10강에 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대공 판데모니엄 휘하의 공작을 무참히 죽인 것이었다. 함께한 공격대원 전원이 전멸했으나 그만은 살아남아 던전 코어마저 부서트렸고, 대번에 10강의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하지만 하반신 불수였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스킬로 극복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그의 얼굴이 앳된 남자아이에게도 많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우연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에드워드가 찔끔하며 물었다.
“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루니는 이제 막 태어났는데…….”
나는 잠시 고민했다.
보아하니 동생을 아주 아끼는 거 같은데, 방법이 아예 없진 않았다.
크리슬리를 통해 언데드로의 부활을 꾀할 수도 있고, 도플갱어의 변이 스킬을 이용해 속여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면 미래의 용사 10강 중 1인을 마음껏 요리할 수 있게 된다.
허나 진실이 드러났을 때의 여파가 상당하다.
에드워드 윈저, 감히 놓칠 수 없는 인재.
하여 나는 조금 방향을 비틀기로 결정했다.
“죽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도 찾아오는 법이지. 하지만 네 동생이 죽은 건 마수 때문이다. 방금 내가 죽인 이와 같은 녀석들이 사람들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고, 결국 네 동생이 죽게 만든 거다.”
“아…….”
에드워드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럼 이제 루니는 안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
“영원히?”
“영원히.”
“아아……!”
에드워드가 양 볼을 감싸고 비명을 내질렀다.
하늘이 동화되듯 비가 내렸다.
어둡게 깔린 먹구름은 에드워드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을 울게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조금씩 울음소리가 잦아들 즈음, 에드워드가 숨이 차서 실신하기 직전에 입을 열었다.
“복수하고 싶나? 네 동생과 네 부모님을 그렇게 만든 괴물을 똑같이 만들어 주고 싶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다면 고개를 끄덕여라. 내가 너에게 힘을 주마.”
“힘을…….”
“모든 괴물을 죽일 수 있는 강력한 힘, 타당한 복수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그런 힘! 원하지 않는가?”
“괴, 괴물을…… 죽이고 싶어요.”
에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축 늘어졌다.
기절한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데빌 헌터 공격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에드워드 윈저.”
우연히 엮인 운명의 사슬은 참으로 짓궂다.
에드워드는 알 리가 없다.
자신의 동생을, 가족을 죽인 괴물.
그 괴물의 정점에 내가 서 있음을.
그리고 오로지 나만은 예외적인 존재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