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66화 (66/242)

던전 사냥꾼 66화

드보롱이 과장되게 손뼉을 쳤다.

“백작 랜달프 브뤼시엘 님! 놀랍군요. 단번에 10만 포인트를 높여 30만 포인트가 나왔습니다. 더 안 계십니까?”

삽시간에 주변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었다. 1년 차 마계 옥션에서 내가 누구보다 많은 포인트를 보유했고, 알맹이만 골라서 가져간 걸 마족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마계 옥션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래서 우연의 산물이라 여겼다. 처음부터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은 채 모아 둔 것이라고.

번식종을 들이지 않으면 마계 옥션에서 이득을 본대도 결국은 손해다. 내가 백만이 넘는 포인트를 보유한 것을 비웃는 마족도 있었다.

그런데 2년 차의 마계 옥션에서마저 똑같은 행동을 보인다?

이건 확실히 고민해 볼 법하다.

물론 이번에도 1년 내내 포인트를 모았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면 최상급의 마수를 가지고 있는 게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30만 포인트를 지른 저의…….

저게 전부는 아닐 테지만 앞으로 무엇이 나올 줄 알고 아낌없이 지른단 말인가. 이제 고작 첫 번째 경매 물품일 따름이다

마족들의 머리가 바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허세’다!

보유한 포인트는 많아 봤자 백만 안팎일 터.

처음부터 통 크게 30만 포인트를 소비해 준다면 경쟁자 한 명이 줄어드는 셈이다. 아스트랄 코드는 제법 탐이 나는 아이템이지만 목숨 걸고 구해야 할 수준은 아니었다.

“축하드립니다! 아스트랄 코드가 랜달프 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아이템은 경매가 끝난 직후 던전으로 이동됩니다.”

드보롱이 끝을 맺었다.

정령들이 튀어나와 아스트랄 코드가 담긴 상자를 옮겼다.

나는 느긋하게 무대 위를 바라봤다.

이어 드보롱이 음흉하게 웃더니 다음 물품을 소개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두 번째 경매 물품 또한 손님 분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다르한의 검’을 아십니까? 2만 년 전 마계를 공포로 물들였던 피의 포식자 다르한! 그의 검은 피를 먹는다 하지요. 정령들이 어렵게 구한 그 검,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탁!

그때였다.

넓은 홀, 막 드보롱의 말이 끝나고 정적이 찾아오려는 찰나 내가 크게 허벅지를 때렸다.

별거 아닌 행동이지만 한 차례 모두의 이목이 쏠리게 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다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을 올려 팔짱을 꼈다.

곧 어둠의 정령들이 낑낑거리며 2미터 남짓 길이의 거대한 검을 가져왔다.

붉은 빛이 서린 다르한의 검. 목록에서 본 바가 있고, 기억에도 남아 있다. 그래도 숨겨진 옵션이 있을 수 있으니 심안을 열었다.

이름- 다르한의 검(U)

설명: 피의 포식자 다르한의 애검. 사용자는 자연스럽게 피를 갈구하게 된다.

* 흡수된 피의 양에 따라 힘 1~5 증가.

* 지능이 낮고 오래 사용할수록 사용자의 혼이 검에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숨겨진 옵션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인다.

전생에서 이 검을 구입한 마족은 정확히 11년 차가 되던 그날 검의 망령이 되었다.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다가 전장에서 스러졌다.

지능이라도 높았다면 모르겠지만 사용자는 마족 중에서도 최하위에 랭크된, 별 볼 일 없는 자였다. 그것도 지능과 마력이 심히 낮은 육체파였으니 망령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곧 드보롱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시작가는 15만 포인트! 지금 기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다르한의 검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무구지요.”

“15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백작 랜달프 님! 랜달프 님이 참여하신 물품 중 대박 아닌 게 없었지요!”

“17만.”

“후작 델라트 님! 17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18만.”

“다시 백작 랜달프 님!”

“20만.”

“후작 그로기 님! 대단한 열기입니다!”

“25만.”

“오오! 더 붙지 마라! 백작 랜달프 님께서 25만 포인트를 부르셨습니다.”

나는 슬쩍 다리를 떨었다. 아주 미묘한 떨림이었지만 웬만한 마족들은 그 행동을 잡아냈다.

“27만.”

“후작 그로기 님! 치열합니다. 이 승부의 승자는 누가 될지 저 드보롱은 감히 예상을 못하겠군요!”

슬쩍 고개를 돌려 대공 우파의 진영을 바라보자 그곳에 선 그로기가 저열하기 짝이 없는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발적인 행동. 더 없느냐 물어보는 듯한 얼굴.

다르한의 검이 내게 꼭 필요한 물품이라 생각하는 듯싶었다.

나는 검의 이름이 나온 즉시 무릎을 치고 조급한 행동을 보였다. 그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제대로 낚았군.’

의도대로다.

애석하게도 내게는 에픽 등급의 세트 아이템 ‘분노’가 있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힘 7을 올려 주는 데다 페널티가 있긴 했지만 스킬도 사용 가능하게 해 주는, 보배로운 검이다.

고작 다르한의 검 따위에 매달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애꿎은 그로기만 낚여 나갔을 뿐.

나는 여기서 달리는 것을 멈췄다.

수 초의 시간이 더 지나자 드보롱이 마감을 외쳤다.

“27만 포인트에 다르한의 검이 후작 그로기 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로기는 여전히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입가를 비집고 비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막았다.

숨겨진 옵션이 뭔지 모르는 그로기는 후에 검의 망령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였다. 그로기의 지능은 64. 상당히 낮은 편에 속했으니까.

스스로 자멸의 길에 들어선지도 모르고 저런 태도라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이로써 마족들은 내가 가진 포인트의 보유량이 많지 않다고 여길 터였다. 기껏해야 50만 안팎 수준으로 생각할 것이었다. 아스트랄 코드에서 30만을 부른 건 정말 ‘허세’였다고 확정 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어서 세 번째 물품을 소개합니다. 저주의 대지에 존재하는, 멸종된 마수 ‘저주받은 설인’을 정령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사로잡았습니다. 저주받은 설인은 한때 설인의 왕이라 추앙받던 콘테고놈의 자손이지요. 저희가 내보일 상품은 새끼지만 성체가 된다면 능히 최상급의 격까지 갖출 수 있으리라 자신합니다.”

잠시 후 철창 안에 갇힌 저주받은 설인의 새끼가 모습을 드러냈다.

1미터 남짓의 몸집, 오랑우탄과 비슷한 형태지만 조금 더 근육이 붙고 인상이 강하다. 보통의 설인이 흰색의 털을 가졌다면 저주받은 설인은 검은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다.

만물상점에서는 팔지 않는 종.

멸종했다 전해지기에 마계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심안을 열었다.

이름: 저주받은 설인

능력치 :

힘 33 지능 17

민첩 29 체력 41 마력 26

잠재력(146/329)

특이 사항: 저주받은 설인의 새끼입니다.

스킬: 없음

잠재력을 보아 성체가 되어도 상급 2Lv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최상급이 되리라는 말은 결국 드보롱의 과대광고였다.

이 사실을 아는 마족이 아예 없진 않을 것이다. 저주받은 설인이 거의 멸종되었다고는 하지만 오랜 시간을 살아온 마족이라면 알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르는 마족이 압도적으로 많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만약 파벌 내에 아는 마족이 없다면 바가지를 제대로 뒤집어쓰게 될 것이었다. 최상급이란 말에 흔들려 입찰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나로선 시작가가 기대될 따름이었다.

“시작가는 20만 포인트! 결코 비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최상급의 격을 갖추게 된다면 수백만 포인트로도 쉽사리 구할 수 없습니다.”

20만 포인트!

제대로 바가지다.

드보롱의 장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누군가가 먼저 손을 들기를 기다렸다.

파벌 내에서 마족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확실하느냐.’고 묻는 그 눈빛에 대다수의 마족이 고개를 저었다. 상대의 상태창과 잠재력을 볼 수 있는 건 모두 심안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확인할 수 없는 그들로서는 확신을 내릴 수 없는 상황.

“20만.”

순간, 누군가가 입찰을 시도했다.

“후작 그로기 님! 현명하고 고명한 선택이십니다.”

그로기였다.

27만 포인트로 다르한의 검을 샀음에도 아직 여력이 있다는 게 놀랍다. 어쩌면 작년의 일을 겪고 1년 내내 포인트를 모은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파가 직접 명했거나,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자처하여 모았거나…….

대공 우파의 파벌에는 저주받은 설인에 대해 아는 마족이 없는 듯싶었다.

“21만.”

“백작 랜달프 님! 최상급의 마수를 이미 가지셨으면서 욕심이 많으시군요!”

내가 참가하는 건 필연이었다.

드보롱의 말이 끝나자 그로기가 나를 노려봤다.

“22만!”

올라가는 수치가 줄어든 걸 보면 확 지를 수는 없는 본새다.

나는 이쯤에서 빠르게 백기를 들었다.

“후작 그로기 님! 22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입찰하는 분이 안 계신다면 저주받은 설인은 후작 그로기 님에게 양도됩니다!”

그러길 10여 초.

입찰자는 아무도 없었다.

“저주받은 설인이 후작 그로기 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드보롱이 박수를 쳤다.

나도 마음 같아선 함께 박수를 치고 싶었다.

말 한마디로 2만 포인트를 더 소진시킨 것이다.

‘다량의 포인트 보유자 한 명은 제쳤군.’

다르한의 검과 저주받은 설인. 둘 다 합쳐 50만에 이르는 포인트다. 마족들의 평균 포인트가 33, 34만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치였다.

50만 이상의 포인트를 보유한 마족은 많아야 10명 내외. 그중 한 명을, 그것도 우파 휘하의 마족을 떨쳐 냈으니 앞으로의 일이 더욱 간단해질 듯했다.

그 이후로 순식간에 경매 물품 일곱 개가 더 지나갔다.

그간 내가 구매한 물품은 없었다. 아스트랄 코드가 전부였다. 좋아 봐야 다르한의 검 정도였으니 크게 욕심낼 필요가 없었던 탓이다.

허나 꾸준히 입찰을 시도하며 ‘척’을 하긴 했다.

이곳에 모인 모두가 적이다. 드보롱조차 쉬이 믿을 수 없다. 적을 속이고 자원을 낭비하게 만드는 건 가장 기초적인 병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느낌도 있었다. 나를 간 보고 재려는 움직임. 유독 내가 손을 든 품목에 상위 입찰하려는 자들이 존재했다. 대공 우파와 그 휘하의 마족들이다.

‘역으로 바람잡이를 투입했구나.’

작년의 복수인가?

그다지 큰 움직임은 없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국 누가 더 연기를 잘하느냐, 전략을 잘 짜느냐의 대결이었다.

지금까진 내가 이겼다. 그러나 내가 욕심낼 만한 것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할 터. 앞으로의 일까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1년 차 때를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에는 내가 무척이나 유리한 자리에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마족들이 마계 옥션의 존재를 알았고, 그 중요성을 실감했다. 죄다 관찰 스킬을 배워 온 걸 보면 알 수 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방심은 금물이었다.

“11번째 경매 물품은 모든 손님분의 눈이 휘둥그레지시리라 장담합니다. ‘다섯 여신상’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시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아주 깊은 지저에서 발견했습니다. 다섯 여신상 중 하나, ‘풍요의 여신상’입니다!”

풍요의 여신상!

던전을 운영하는 마족에게 있어선 탐이 날 수밖에 없는 물건이다.

나 또한 기다리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심안을 발동시켰다.

이름- 풍요의 여신상(Epic)

설명: 제작자 미상. 알 수 없는 힘이 깃든 다섯 개의 여신상 중 하나. 풍요의 여신상을 놓은 자리에는 수많은 생명이 잉태된다고 전해진다.

* 여신상이 놓인 주변의 생명체 중 한 가지 종에게 ‘여신의 축복’을 부여한다. 축복을 받은 종은 번식률이 크게 증가하며 특이체 발현 확률이 소폭 올라간다.

세계수의 하위 호환이라 할 수 있는 아이템.

대신 세계수가 ‘자연종’의 마수에게만 큰 효과를 발휘한다면 풍요의 여신상은 딱히 조건이 없다는 게 장점이었다.

에픽 등급 이상의 아이템은 심안을 사용하더라도 숨겨진 옵션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풍요의 여신상에 한해선 나도 다른 마족들과 같은 수준의 지식으로 경매에 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게는 600만을 훌쩍 넘기는 압도적인 포인트가 있었다.

더불어서 다른 마족들이 가진 한계 포인트도 알아낼 좋은 기회였다.

관찰 스킬을 사용해 풍요의 여신상을 확인한 마족들이 열기를 띠었다.

등급도 등급이지만 ‘여신의 축복’은 던전의 운영에 커다란 이득을 가져다준다. 누구라도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었다.

바람잡이조차 필요 없었다. 모두가 손을 들고 입찰을 부르짖을 것일진대 바람잡이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허나, 승자는 나다.’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본격적인 쟁탈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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