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67화
드보롱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말마따나 풍요의 여신상은 모두를 놀라게 할 만한 작품. 경매를 진행하는 이로서 자부심이 드는 건 당연지사다. 여태껏 허풍을 섞어 가며 포인트를 챙겼지만 풍요의 여신상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한 가지 종’에 국한되나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번식이 어렵거나 강력한 종에 이 축복을 걸면 그 기댓값은 상상 이상이다.
기본 베이스가 마수 중…… 예컨대 상급 1Lv의 ‘오우거’에게 축복을 건다고 가정해 보자.
오우거는 4만 포인트나 하는 고가의 번식종이다. 하지만 오우거는 발정기가 극히 짧아 많아야 1년에 한 번 번식하며 새끼도 고작 한두 마리씩밖에 낳지 않는다.
어느 정도 번식이 가능하게 하려면 최소한 30마리 이상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선 백만 포인트 이상을 사용해야 하는데, 효율이 좋지 못해 오우거를 쓰는 마족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축복의 ‘번식률’에 대한 정의는 단순히 한 번에 많이 낳는, 그런 게 아니다.
번식을 촉진하기 위해 발정 또한 유발한다. 발정기가 극히 짧아 번식이 쉽지 않던 오우거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니 1년에 두 번씩 새끼를 칠 수도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운이 좋아 변이체, 트윈 헤드 오우거나 비슷한 상위종이 나타난다면 단번에 수십만 포인트를 득 보는 것과 같았다.
마족들이라고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특히 셈이 빠른 마족은 눈에 불을 켜고 풍요의 여신상을 바라봤다.
이제 고작 2년 차.
지금 저것을 손에 넣으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잘하면 다른 마족보다 몇 발자국은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총력을 기울여 사수해야 할 필수 아이템이었다.
네 개의 파벌.
그리고 한 명의 중립.
70명 마족의 소리 없는 경쟁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드보롱은 양손을 활짝 펼쳤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시작가는 40만 포인트. 부디 현명한 선택하시길.”
어둠의 정령들은 마족들이 가진 평균 포인트를 44만 정도로 잡고 있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마족이 참여하리라 보고 선택한 시작가였다.
그러나…… 쉽사리 손을 드는 마족이 없다.
그럴 수밖에.
나로 인해 평균 포인트 보유량이 10만 이상 올랐다.
한 명이 포인트를 독식해 평균치가 확 올랐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듯싶었다.
당장 40만 포인트 이상을 가진 마족은 소수였고, 예상보다 훨씬 높은 시작가에 분위기가 경직되었다.
이에 드보롱도 살짝은 당황한 얼굴이다.
‘2년 차에 700만에 가까운 포인트를 쌓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전생에서 나름 많은 경험을 겪었던 나조차 우연히 얻은 게 ‘업적 퀘스트’다. 그로 인해 수백만 포인트의 이득을 봤다. 드보롱은커녕 어둠의 정령왕도, 이 모든 걸 설계한 마신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먼저 시작 테이프를 끊을 것인가?
나는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40만.”
“대공 아리엘 님!”
30여 초의 정적. 그러나 드보롱에게 있어선 수십 분처럼 길게 느껴진 시간.
모두가 입찰할 것이라고 자신한 물건이지만 좀처럼 입을 여는 이가 없자 드보롱은 잔뜩 굳어 있었다. 아리엘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전보다 밝아진 걸 보면 알 수 있다.
“45만.”
처음이 어렵지 그 이후는 쉽다.
“대공 오쿨루스 님! 단번에 5만의 격차를 벌립니다.”
“50만.”
“후작 아나스타샤 님! 엄청난 포인트를 숨겨 두고 계셨군요!”
“53만!”
“공작 디펠라 님! 53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빠르게 나아갑니다. 하지만 풍요의 여신의 값어치에 비하면 너무나 낮습니다!”
여기서 한 차례 고비가 찾아왔다.
53만.
전생에서 심안의 주인이었던 ‘30개의 입을 가진 공작 디펠라’를 마지막으로 경매장의 분위기는 찬물을 덮어씌운 듯 싸늘해졌다.
그 이상의 포인트를 가진 마족은 각 진영에서도 무척 드물었다.
흔히 말하는 비장의 카드, 숨겨 둔 한 수를 꺼내야 한다는 말인데, 만약 이후 풍요의 여신상보다 좋은 아이템이 나온다면 한계를 측정당한 파벌은 쉽사리 입찰에 나서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설혹 나선대도 확실하게 풍요의 여신상을 얻는다는 보장이 없다. 아예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을 수준의 압도적인 포인트를 보유했다면 모를까…….
“더 안 계십니까? 아무도 안 계신다면 53만 포인트에 풍요의 여신상이 공작 디펠라 님에게 낙찰됩니다!”
드보롱이 급히 나섰다.
에픽 등급의 아이템.
그 효율은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가격을 최고로 높이는 게 드보롱이 할 일이었다.
고작 53만에서 멈출 순 없었다. 어둠의 정령들이 고생하여 구한 아이템이건만 이래선 수지가 맞지 않는다.
지저에서 구했다고는 하나 그곳은 마계에서조차 금지 취급을 받는, 무저갱과 같은 장소였다. 수많은 어둠의 정령들이 소멸을 각오하고 들어가 고작 하나 구한 게 풍요의 여신상이다.
정령들이 경매에 올리는 아이템은 대개가 그런 식으로 구해진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 들어가지 못하는 곳, 들어가선 안 되는 곳…….
그런 곳에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가 수천 년, 수만 년 이상 잠든 아이템을 꺼내 오는 것이다. 당연히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 희생에 마땅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풍요의 여신상! 던전을 일구는 데 필수적인 축복이 깃든, 사용키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한 에픽 등급의 아이템입니다. 53만 포인트, 더 부르는 분이 안 계신다면 이대로 공작 디펠라 님에게 양도됩니다!”
급하긴 급한 모양이었다.
드보롱은 평소에 하지 않던 멘트를 마구 날려 댔다.
“55만.”
거기서 내가 나섰다.
1차 저지선을 무너트린 것이다.
이미 아스트랄 코드를 구매하며 30만 포인트를 사용한 전적이 있기에 드보롱과 몇몇 마족들은 제법 놀란 기색을 보였다. 천장의 소년상과 소녀상이 웃지 않는 걸 보면 55만 포인트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도합 85만 포인트…… 이미 최상위권을 달리는 보유량이다.
“백작 랜달프 님! 백작 랜달프 님께서 상위 입찰하셨습니다!”
숨통이 탁 트였는지 드보롱이 탄성을 내질렀다.
저지선이 무너지자 다시 재대결에 돌입했다.
“60만.”
“숨을 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대공 아리엘 님! 단번에 제치고 달려 나갑니다!”
대공 아리엘이 한 가지 물건에 집착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별히 좋은 무기가 아닌 이상에야 이만한 포인트를 사용할 일도 매우 드물었다.
그만큼 탐이 난다는 것이다.
대공 아리엘의 파벌이 존재하는 사이드 홀은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될 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사이드 홀 중앙에 위치한 아리엘이 살짝 불편한 기색으로 나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그녀는 1년 차의 마계 옥션에서 나를 시험한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상정한 행동이었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60만 포인트. 어쩌면 그녀가 풍요의 여신상을 구매하는 데 들이려는 마지노선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하라는 눈치다.
슬슬 나라는 존재가 제대로 눈에 박히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당연히 멈춰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61만.”
아리엘 디아블로.
마치 산양의 뿔을 연상시키는 두 개의 그것, 마왕의 적통임을 증명하는 이마의 뿔이 약간 붉게 달아올랐다.
“백작 랜달프 님! 마치 바다와 같습니다! 그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군요!”
“62만.”
“대공 아리엘 님……!”
“63만.”
“다시 백작 랜달프 님! 접전입니다!”
콰직!
아리엘이 쥐고 있던 홀의 난관에 금이 갔다.
그녀는 저돌적이고 직설적인 성격이다. 그다지 욕심이 많지는 않지만 필요 이상으로 얻고 싶은 게 있거든 마치 아이처럼 떼를 써서라도 가지려고 들었다. 우파마냥 더러운 수는 사용하지 않지만 그 탓에 휘하 마족들의 고생이 굉장했다던가?
풍요의 여신상이 어지간히 가지고 싶은 것 같았다.
허나 나도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리엘 디아블로가 고개를 돌려 휘하 마족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63만 이상의 포인트를 보유한 마족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말인즉, 그녀의 한계는 62만 포인트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휘하 마족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리엘이 한 차례 이를 갈곤 나를 노려보더니 홱! 고개를 돌렸다.
“더 안 계십니까? 안 계신다면 이대로 낙찰이 확정됩니다!”
더는 입찰하려는 마족이 없었다.
드보롱이 보일 듯 말 듯 한숨을 내쉬며 손뼉을 쳤다. 예상보다는 적었지만 나름 선방한 결과였다.
“축하합니다! 63만 포인트에 풍요의 여신상이 백작 랜달프 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아스트랄 코드, 그리고 풍요의 여신상.
지금까지의 경매 물품 중 가장 알짜배기라 생각한 두 가지를 손에 넣었다.
다른 마족들은 내가 모든 포인트를 사용했다고 판단하고 새로이 전략을 짜기 시작할 것이다. 강적 한 명이 떨어져 나가 조금은 여유롭게 경매 물품을 선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겠지.
풍요의 여신상은 놓쳤지만 대공 아리엘 파벌이 보유한 포인트의 최대치가 62만이라는 것도 알았다. 한층 마음이 놓여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모를 수밖에 없다.
내게 아직도 600만에 가까운 포인트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방심해라. 아예 나라는 존재를 잊어라. 그리고 놀라도록.’
상식이 파괴되는 순간 그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터였다. 아니,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 작정이었다. 쥐고 흔들며 공황 상태로 몰아갈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쯤이면 이미 모든 상황이 종결된 채 백기를 휘두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지금까지는 몸풀기에 불과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 * *
계속해서 나오는 물품에 나는 20만 포인트 내외로 입찰하며 적당히 간을 봤다.
마족들 역시 나를 신경 쓰는 기색은 없었다. 그저 남은 소량의 포인트로 물건을 하나라도 더 건져 보려고 발악하는 것처럼 보았을 따름이다.
그리고 15번째.
현자의 비약이 나왔다.
유니크 이하의 스킬 등급을 한 단계 올려 주는 절세의 비약. 심안의 등급을 올리고자 작년 마계 옥션에서 즉시 구매했던 아이템이었다.
시작가는 15만이었고, 가격은 순식간에 30만을 돌파했다.
모두가 눈치를 보며 쉽사리 상위 입찰을 하지 못할 그때.
“32만.”
나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결국 32만 포인트에 현자의 비약을 낙찰받았고, 마족들은 새삼스럽다는 듯 나를 흘겼다. 설마하니 더 있겠느냐는 눈빛. 벌써 125만 포인트를 사용했는데 아직도 보유한 포인트가 있을 리 없다고 확정 지은 태도. 그들은 아직 상식 ‘안’에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상식 안에 안주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18번째 경매 물품은…… 놀라지 마십시오. 대지룡의 사체입니다! 대지룡의 딱딱한 비늘과 뼈가 한 점 손상 없이 깨끗하게 남아 있는, 마치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그 자태를 지금 확인하십시오!”
경매는 빠르게 진행됐다.
마침내 18번째에 이르렀고, 드보롱의 말이 끝난 순간 마족들은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었다.
대지룡!
마룡과 마찬가지로 초월의 영역에 깊게 발을 들인 최상급 4Lv의 마수다. 하지만 일반적인 용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거대한 숲 하나의 정기를 모조리 빨아들이고 태어나는 게 대지룡인 것이다.
특수한 정령이 아주 오래된 숲에서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숲을 매개 삼아 ‘용’으로 변모한다는 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그다지 알려진 게 없는, 신비에 싸인 종이었다.
한데 대지룡의 사체라니?
무언가 연구하길 좋아하는 마족이라면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대지룡의 사체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당장 드워프에게 가져다주면 유니크 등급의 장비를 몇 개나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무언가의 재료로 사용하기엔 넘치는 소재였으니까.
잠시 후 어둠의 정령들이 거대한 수레에 대지룡의 사체를 담아 왔다.
그 크기만 20미터에 다다르는 거대한 몸집.
초록색의 광택이 살아 있는 비늘이 전신에 덮여 있었다. 공허하게 비어 버린 두 눈은 꼭 혼돈을 보는 듯했다. 그 사이의 뼈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질도 나무랄 게 없었다. 짙게 농축된 대지룡의 마력이 뼈에 그대로 담겨 있었던 것이다.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위용을 뽐냈다.
‘괜찮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소재. 욕심이 나는 물품이다.
‘언데드로 제조해도 나쁘지 않겠어.’
크리슬리를 통해 대지룡의 사체에 새롭게 생명을 부여할 수 있었다. 아직 언데드 제조 스킬의 등급과 숙련도가 부족해서 이만한 소재를 전부 살릴 순 없겠지만…… 그거야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보존 마법이 걸린 장소에 사체를 보관한 뒤 크리슬리의 언데드 제조 스킬이 능숙한 경지에 이르거든 그때 꺼내도 늦지 않았다.
운이 좋으면 언데드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최상급 2Lv의 마수 ‘본 드래곤’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
희망 사항에 불과했으나 크리슬리라면 불가능하진 않을 터다. 게다가 사체의 상태도 매우 양호하니 충분히 기대를 걸어 볼 만하다.
‘아돌의 던전에서 구했던 상급 마수의 사체들은 죄다 뭉개져 쓸 수가 없었지.’
속성별 골렘에 의해 완전히 뭉개져 버렸다. 상당히 아쉬웠던 걸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게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언데드 관련 스킬을 익힌 마족도 꽤 있었다. 그들의 눈빛이 특히 빛나기 시작했다.
“시작가는 30만! 아무리 사체라고는 하나 대지룡입니다. 그 효용에 대해서 말하자면 입이 아픕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신 구할 수 없을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맞다.
어디 가서 대지룡의 사체를 구한단 말인가.
보통의 대지룡은 죽으면 다시 숲으로 돌아간단 이야기가 있었다. 저런 식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 대지룡의 사체는, 정말 유일무이할 수도 있었다.
“30만.”
“대공 판데모니엄 님! 격에 맞는 사체이니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35만.”
“오오, 공작 디펠라 님!”
“40만.”
“이것은 반드시 얻어야지요. 후작 아나스타샤 님!”
마족들이 보유한 포인트 상황은 거의 다 까발려진 상황이었다. 더는 거칠 게 없다는 뜻. 5만씩 마구 올라가는 게 그 이유다.
적을 알고 자신을 아니, 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족들이었다.
“43만!”
“공작 디펠라 님! 사체의 괜찮은 사용법이라도 떠오른 걸까요? 하지만 40만을 넘겨서 그런지 올라가는 폭이 작아집니다. 그래도 벌써 43만을 달립니다!”
쯧!
후작 아나스타샤가 혀를 찼다.
더는 입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45만.”
“대공 우파 님! 오랜만의 참여이시군요. 45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더 안 계십니까?”
우파는 아스트랄 코드를 입찰할 때를 제외하면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다. 심지어 풍요의 여신상의 경매가 진행될 때조차 수수방관하였다.
대지룡의 사체를 우파가 왜 구매하려 하는지 나도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참가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럼…….’
나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이어서 느긋하게 좌석에 허리를 붙이고 팔짱을 낀 뒤 매우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50만.”
아스트랄 코드 30만, 풍요의 여신상 63만, 현자의 비약 32만…… 그리고 대지룡의 사체 50만.
지금까지 내가 부른 포인트 총합만 벌써 175만에 다다랐다.
드보롱마저 잠시 할 말을 잃고 나를 바라봤다.
마족들의 반응도 매한가지였다.
어찌 한 마족이 그만한 포인트를 2년 차에 보유할 수 있단 말인가!
아예 사용하지 않고 모아도 100만 언저리가 한계다. 일반적으로 던전에 들어오는 각성자를 처리하면 그 정도가 된다. 하지만 던전의 내정을 하는 데 들어가는 포인트는 상상을 초월한다. 100만을 번 데도 그것을 모두 모으는 건 불가능하다. 그럴진대 175만이라고?
“말도 안 돼!”
우파 진영의 한 마족이 경악하며 외쳤다.
그로기다.
다르한의 검을 낙찰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의기양양했던 그 표정이 온데간데없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그로기는 나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옮겨 천장을 주시했다.
보유한 포인트가 50만이 안 된다면 필시 천장의 소년과 소녀상이 비웃음을 흘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로기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천장에 매달린 소년과 소녀는 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