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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71화 (71/242)

던전 사냥꾼 71화

‘결투?’

나는 잠시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결투의 사전적인 의미를 몰라서가 아니다. 게다가 비자츠 멘담은 나 역시 익히 알고 있는 마족이었다. 대공 우파 휘하의 마족이며 공작의 계급을 가진 강자.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이를테면 박쥐 같은 놈이었다.

파간 그리울리가 우파에게 버림받았다면 비자츠 멘담은 아리엘과 우파의 싸움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에 진영을 이탈한다. 우파의 목이 아리엘로 말미암아 잘려 나간 원인의 절반은 바로 저놈의 배신 탓이다.

이후 판데모니엄 진영에 붙었다가 팽을 당하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였다. 물론 지금 시점에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권위적인 마족일 따름이지만…….

그런 놈이 내게 결투를 운운한다? 이게 헛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다지 좋은 방향은 아니라고 보았다.

“결투라니. 기사 놀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가볍게 조롱했다. 사실 마족에게 있어서 결투라는 단어만큼 어울리지 않는 게 없다.

“너의 기만 행위는 이미 한계를 넘었다. 이를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얌전히 결투를 받아들여라. 그렇지 않겠다면 겁에 질려 뒤꽁무니를 빼는 것으로 생각하마!”

비자츠 멘담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몇몇 마족이 관심을 가지고 시선을 옮겼다. 내가 피할 수 없으리라고 확신하는 눈초리. 확실히 싸움을 걸었으면 받아 주는 게 도리이긴 하다. 자칫 피한다는 인상을 남기면 지금껏 내가 쌓아 올린 일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

강자 독식, 약자 멸시.

그런 사고를 지닌 마족들이 모여 있었다.

‘예상보다 늦었군.’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인다는 건, 비자츠 멘담은 자신의 패배를 처음부터 상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를 이겨서 무언가 이득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모양인데…….

하지만 나도 내가 질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런 상황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과 달리 건드리는 마족이 없어서 조금은 아쉽던 찰나다. 그런데 또다시 우파 진영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 주겠다고 나섰다. 어찌 기껍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여유롭게 심안을 열었다.

이름: 비자츠 멘담

직업: 마계 공작(던전 마스터)

칭호 :

* 천공의 학살자(Ex U, 민첩+7)

능력치 :

힘 78 지능 73

민첩 83(+7) 체력 76 마력 66

잠재력(376+7/500)

특이 사항:

스킬: 위험 감지(U), 천공의 힘(U), 와이번 조종술(Ex U)

[상대 비교]

비자츠 멘담

힘 78 지 73 민 90 체 76 마 66 잠재력(376+7/500)

랜달프 브뤼시엘

힘 89 지 74 민 77 체 82 마 93 잠재력(392+23/500)

과거 마룡을 구매하여 조련한 공작답게 조종술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등급이 올라가면 와이번 조종술이란 이름도 바뀔 것이었다. 유일하게 나보다 높은 능력치는 민첩이었는데, 나머지는 크게 별 볼 일은 없었다.

능력치 총합도 다른 공작들과 비슷비슷하다. 383이면 거의 평균값이었다. 내가 415이니 별로 부담스럽진 않았다. 스킬 역시 그다지 눈길을 끌 만한 것은 없었다.

이쯤이면 ‘압도’라는 단어가 절로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말 그대로 질 요소가 없었다.

“결투를 받아들이지.”

어깨를 으쓱했다.

정령계에서 소란은 좋지 않지만 내가 결투를 신청한 게 아니다. 거기다가 정령왕의 의도를 짐작해 보면 결투가 진행되더라도 얼렁뚱땅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비자츠가 비웃음을 흘렸다.

“무언가 착각하는 모양이군. 하룻강아지와 범이 서로 싸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대동한 마수를 가지고 승부를 보자는 것이다, 랜달프 브뤼시엘.”

“그것도 그렇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긍정하였다.

하룻강아지의 역할을 누가 맡게 될지는 결과가 말해 줄 것이었다.

나는 가만히 비자츠의 뒤에 선 킹 와이번을 바라보았다.

5미터 남짓의 거대한 크기. 상급 5Lv의 공중 마수……. 지상의, 그것도 민첩하지 못한 기간테스로서는 최상급이라 하더라도 유리하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기간테스에게만 국한된 예측이다. 내가 대동한 기간테스는 신을 보좌하던 녀석. 같은 레벨이라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스킬의 구성도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예컨대 일반적인 기간테스는 대지의 품(Ex U) 스킬밖에 없다. 기간테스라는 종 자체가 육체적 스펙이 워낙에 사기적이라서 최상급 취급을 받을 뿐이지 다른 최상급과 비교하면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 휘하의 기간테스는 기간틱 슬래시(Epic)라 불리는 괴랄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휘두르는 순간 주변의 모든 걸 파괴시키는 능력.

하늘을 떠다니는 킹 와이번에게도 위협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터였다.

‘평범한 기간테스라면 킹 와이번으로도 승리를 점칠 수 있겠지만…….’

킹이니 퀸이니 이름이 붙는 마수는 같은 레벨에서도 조금 더 강한 경우가 많았다. 킹 와이번도 다르지 않다. 기간테스를 상대로 꺼낼 수 있는, 아주 좋은 패임에는 분명했다.

다만 내 휘하의 기간테스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일 따름이었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기간테스, 저 새대가리를 죽여라.”

“크르! 죽인다!”

쿵!

한 발자국을 내디디며 지근거리에서 기간테스가 광분했다. 기간테스는 투쟁을 좋아하고 싸움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이곳에 와서 제대로 된 활동을 못했으니 킹 와이번을 상대로 제대로 놀아 줄 수 있을 것이었다.

주변에서 아이템을 판매하던 어둠의 정령들이 급히 대피했다. 딱히 다른 제지가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마수의 대결을 암묵적으로 허락하는 분위기다.

곧 너른 장소에 나와 비자츠, 기간테스와 킹 와이번만이 남았다.

나는 가만히 팔짱을 낀 채 이어질 싸움을 가만히 응시하였다.

키에엑!

기간테스가 다가오자 킹 와이번이 거대한 날개를 펼치곤 날았다. 몽둥이가 닿지 않는 사정거리까지 순식간에 날아갔다. 거구답지 않은 날렵함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장면이 잠시 후 연출되었다.

하늘에서 날개를 접고 부리에 무게 중심을 실어 하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움직임. 비자츠의 와이번 조종술(Ex U)이 크게 영향을 주는 게 분명했다.

‘조종이란 게 저런 거였나?’

단순히 마수를 타고서 행하는 그런 조종술을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듯싶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와이번을 자기 몸처럼 다루는 스킬이었다.

이러면 1:1이 아니라 2:1이다. 기간테스는 둘의 합공을 받아 내는 셈이었다.

후웅! 지상으로 낙하하는 킹 와이번을 저지하고자 기간테스가 크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킹 와이번은 기간테스가 몽둥이를 휘두르려는 그때 살짝 날개를 펼쳐 순간적으로 감속했다. 동시에 몸 전체가 은색을 띄우며 강철처럼 단단하게 변했다.

킹 와이번이 지닌 철갑(Ex U) 스킬이다.

콰앙!

킹 와이번은 말 그대로 지상에 꽂혔다. 지상에 크레이터마냥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기간테스가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지만 피해가 아예 없을 순 없었다. 오른쪽 어깻죽지가 심하게 훼손된 것이다.

공중 마수가 이런 변칙적인 공격을 해 올 줄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죽인다! 이긴다!”

기간테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쿠르릉!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대지의 품 스킬을 발동시켰다. 주변의 땅이 일어나고 마치 벽처럼 형성되기 시작했다. 벽으로 가둬서 날지 못하게 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킹 와이번도 호락호락 당해 주진 않았다. 대지의 품이 발동되기 직전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하늘로 떠 버렸다. 기간테스가 어떠한 고유 스킬을 지녔는지 모른다면 보일 수 없는 동작이다. 몸집답지 않은 민첩함이 이번에도 나왔다.

기간테스가 스킬을 취소하고 신경질적으로 발을 굴렀다. 일방적으로 당했으니 화가 날 법하였다.

그러자 킹 와이번을 조종하는 비자츠의 얼굴에 음흉함이 서렸다.

“항복한다면 받아 줄 의향이 있다. 최상급 마수의 죽음은 나로서도 안타깝거든.”

나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고작 한 차례 공격을 성공한 걸로 기고만장하기 짝이 없다. 아직 기간테스는 지닌바 역량을 조금도 보여 주지 못했다. 그저 변칙적인 공격으로 인해 잠시 당황했을 뿐이다.

“죽인다! 이긴다!”

기간테스가 하늘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다른 누군가가 보았다면 몸부림이라고 비웃었을 행위. 그러나 나는 저게 기간틱 슬래시라는 걸 알아보았다.

일선(一線)에 대한 파괴력만큼은 절대적인 스킬!

몽둥이에 마력이 응집되며 곧 전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콰콰콰콰콰쾅!

하늘을 베어 버릴 기세였다. 공간을 뒤흔들고 막힘없이 나아간다. 제아무리 철갑 스킬을 보유한 와이번이라도 직격당한다면 뒤를 기약할 수 없을 가공한 마력의 응집이었다.

다행히 조준력이 떨어져서 피해 냈지만 심장이 쪼그라지는 순간이었다.

“저게 무슨 스킬이지?”

“…….”

하늘 위, 거대한 구름을 정확히 반 토막 낸 기간틱 슬래시를 바라보며 몇몇 마족이 웅성댔다. 그들이라고 방금 전 기간테스의 공격이 심상치 않았음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특히 대공 우파의 표정이 굳었다.

과거 자신이 사냥한 기간테스, 놈은 성체였지만 저런 스킬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대지의 품 스킬이야 기간테스 종족의 고유 스킬이니 확인한 바가 있지만 저런 무지막지한 공격 스킬을 선보이는 건 처음인 것이다.

이것은 커다란 변수였다. 기간테스는 움직임이 둔해서 공략법만 알면 필승이라 여겼다. 그 공략법이란 것도 사실 별 게 없었다. 잡히지 않고, 갇히지 않는 거다. 이는 비자츠의 조종술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저 공격 스킬은 원거리에서의 저격이 가능하다. 자칫 스치기라도 했다간 비행 능력이 크게 떨어질 것은 당연지사다.

물론 저런 스킬을 무한정 남발할 순 없을 터였다. 결국 잡히지 않고, 갇히지 않는 공략법에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추가 공략이 적힌 셈이었다.

그러나 대공 우파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기간테스는 질리지도 않고 기간틱 슬래시를 쏘아 내고 있었다. 이미 주변의 지상은 넝마가 되었으며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은 해체되지 않은 게 없었다.

저건 무한 발동 스킬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에 따라 킹 와이번의 움직임도 소극적으로 돌변했다.

우파 진영의 마족은 침조차 삼키지 않고 둘의 싸움을 지켜봤다. 당연히 이기리라 생각한 싸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여기서 비자츠가 면을 세우지 못한다면 다른 세 진영으로부터 큰 비웃음을 살 것이었다. 우파로서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키에엑!

하지만 무한정 스킬을 피해 내는 건 불가능하였다. 공격을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상황. 이미 그 자체로도 이길 가능성이 대폭 내려가는데, 결국 오른쪽 날개에 기간틱 슬래시를 직격당하고 말았다.

균형을 잃은 킹 와이번이 공중에서 잠시 비틀거렸다.

그것을 놓칠 기간테스가 아니다.

다시 한번 크게 몽둥이를 휘둘렀고…….

콰콰콰콰콰콰쾅!

킹 와이번이 정확히 둘로 갈렸다.

철푸덕!

킹 와이번의 사체가 지상에 떨어졌다. 솟구치는 피의 향연. 주변은 정적만이 가득했다.

비자츠의 표정이 새파래졌으며 우파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조금이나마 몸을 떨었다.

이에 나는 작게 말했다.

“하룻강아지.”

역할 배정이 끝났다.

결국 범은 나였다.

* * *

우파와 휘하 마족들이 자리를 떠났다. 마치 도망이라도 가는 것처럼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가만히 그 뒤를 바라보며 조소를 흘렸다.

이기리라 장담한 싸움에서 졌다. 그것도 주변의 모든 파벌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말이다. 얼마나 분통할지 나로선 상상도 되지 않는다.

어쨌거나 작년의 일과 겹쳐 적어도 대공 우파의 대적자로는 내가 떠오르게 되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졸부’에서 ‘확실하게 뭔가가 있는 졸부’로 이미지를 변경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쩌면 몇몇 마족은 ‘신경 쓰이는 강자’ 정도로 여길 수도 있겠다.

나는 마족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시금 정령왕이 남긴 물건을 찾아 나섰다. 약 30분간 하나의 물건도 빠지지 않고 전부 뒤진 결과 신경 쓰이는 아이템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심안을 통해 그 아이템의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이름- 정령왕의 레시피

설명: 정령왕이 무언가의 공식 같은 것을 적어 놓은 종이.

++ 유니크 등급 이상의 관찰 계열 스킬이 있어야 읽을 수 있다.

‘아무리 봐도 이거 같군.’

정령왕이란 이름이 달린 물건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레시피라.’

이게 선물이란 말인가?

반신반의하며 헌 종이 쪼가리를 구매하였다.

그 순간이었다.

[믿기지 않는 업적! 어둠의 정령왕이 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이 업적은 어둠의 정령왕이 ‘설정’한 것으로써 업적 점수가 추가되진 않습니다. 대신 어둠의 정령왕이 ‘설정’한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1,000,000PT가 지급됩니다.]

[‘세계수의 씨앗’을 획득했습니다.]

[마계 옥션이 종료됩니다. 강제 전이에 대비하십시오. 30, 2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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