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79화 (79/242)

던전 사냥꾼 79화

* * *

한 차례 6층 공략에 실패한 직후.

데빌 헌터 공격대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다시 한번 던전 진입에 도전했다.

값비싼 포션은 두말할 것이 없고 중급 마수 파이록의 대비책으로 ‘억!’ 소리 나는 이동 스크롤을 준비한 것이다. 고작 10미터 안팎의 이동만 가능하나, 여벌의 목숨은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5층까지는 세이브 존을 확실히 확보해 둔 덕분에 이동이 수월했다. 보통의 마수는 평소 다니는 길로만 이동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경로만 피해 다니면 크게 부딪힐 일은 생기지 않는다. 당연히 데빌 헌터 공격대는 안전한 루트 몇 개를 파악해 둔 상태였다.

루트는 돈으로도 팔 수 없는 고급 정보다.

이러한 정보는 정규 공격대를 꾸리는 데 큰 힘이 된다.

거침없이 던전을 뚫자 하루가 안 되어 6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용암 지대인 탓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당장 공격대가 파악한 6층의 마수는 이러했다.

불꽃 도마뱀, 용암 거미, 파이어 라바, 파이어 슬라임…… 그리고 파이록!

앞의 넷은 솔직히 5층의 마수에 비해 크게 강하지는 않았다. 유은혜나 에드워드급이 되면 혼자서도 맞붙는 게 가능하였다. 몇 번 부딪치며 나름의 공략법도 숙지했으니 뚫고 나가는 일만 남았다. 파이록만 제외하면 고비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언니, 조금 김빠진다. 그치?”

유은혜가 주변의 건물을 둘러보며 느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7층. 이곳은 드워프의 마을이었다.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조차 긴장하고 있었건만 결국 6층에서 파이록은 마주치지 않았다. 수월하게 7층으로 올라서자마자 공격대를 반긴 건 1미터를 겨우 넘는 크기의 ‘드워프’였다.

처음에는 잔뜩 날을 세우고 견제했으나 그들은 친절했다.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오히려 공격대를 환영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선제공격을 행할 수는 없었다.

던전에서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모두가 어안이 벙벙하고 있을 그때. 그들은 무기의 수리와 쉴 곳을 제공해 주겠다는 빌미로 공격대를 끌어들였다.

“아직 몰라. 긴장 놓지 마.”

이지혜가 창백한 얼굴로 눈을 열심히 굴렸다.

이유 없는 선의는 없다고 굳게 믿는 그녀다. 어쩌면 함정으로 이끄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몰라서 몇 명은 입구 쪽에 놔두었다.

“딱히 적의는 없어 보이는데? 언니, 그리고 드워프들이 착용한 무기들을 봐. 장난 아냐. 레어 등급이 무슨 쓰레기처럼 막 굴러다니잖아. 숫자도 우리보다 훨씬 많고…… 굳이 우리를 함정에 빠트릴 필요가 있을까?”

유은혜가 나름 조리 있게 말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드워프들의 무장 정도는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무기, 방어구,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다들 훌륭하기 그지없었다.

저것 중 하나만 가져가도 단번에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데빌 헌터 공격대에 소속된 이상 돈이 궁할 일은 없지만……. 하여간, 숫자도 거의 100에 다다르니 함정이 필요치 않을 터였다.

작은 키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떡 벌어진 어깨, 알차게 들어찬 근육만 봐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니까 말이다.

“하하. 용사 분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드워프는 다른 마수들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용사분들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앞서서 대원들을 안내하던 드워프가 호탕하게 웃었다. 확실히 적의는 없다. 주변을 지나는 드워프들도 일행을 그저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다.

이지혜가 쌍심지를 세웠다.

“의도가 뭐죠? 적의가 없다면 굳이 무장을 하고 있을 필요도 없을 텐데요?”

“이곳은 던전입니다. 마수들도 각자 생활 영역이 있고, 생존을 위해 투쟁을 합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우리는 항시 무장을 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성급해하지 마십시오. 나머지 이야기는 장로님이 모두 해 주실 겁니다.”

드워프의 설명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게 너무 많았다.

처음으로 말이 통하는 마수를 만나서일까?

어쩌면 전 세계의 모두가 모르는 ‘진실’에 근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지혜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꿋꿋이 걸어 나갔다.

“이곳입니다. 아차차. 용사분들, 만약을 대비해 무기를 받아도 되겠습니까?”

깜빡하고 있었다는 듯 드워프가 뒤이어 말했다. 그러자 이지혜는 고개를 내저었다.

“무장 해제는 있을 수 없어요.”

“그럼 전사들이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조금 불편할 텐데, 괜찮겠습니까?”

어떡해야 하는가?

대원들의 시선이 이지혜에게 집중됐다.

공격대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는 보통 그녀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었다.

“감수하죠.”

“알겠습니다.”

드워프가 눈짓하자 주변을 따르던 둘이 더 합류했다.

7층의 입구에 남겨 둔 대원이 셋. 이곳에 도착한 인원이 아홉이니 만에 하나의 일이 벌어지면 이쪽이 절대다수였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심각할 정도로 느슨한 것이거나. 하지만 이곳은 던전이었다. 후자는 결코 있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상정하고 이지혜가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대원들이 따랐다.

곧 거대한 나무 탁자 앞에서 곰방대를 피우고 있는 드워프를 발견했다.

툭!

은으로 만들어진 그릇에 재를 털어 낸 뒤 드워프가 입을 열었다.

“반갑소, 용사들이여. 내 이름은 스테인이오. 이 작은 마을의 장로직을 맡고 있지.”

모든 대원들이 탁자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스테인이 자리 잡으며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궁금한 게 많을 것이오. 웬만한 선이라면 모두 답해 드리겠소. 서로의 신뢰를 쌓으려거든 그편이 좋을 테니까.”

“1차 몬스터 웨이브 때 드워프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곳의 드워프와 관련이 있나요?”

이지혜가 날카롭게 물었다.

스테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뻔뻔하게 답했다.

“몬스터 웨이브? 그게 무엇이오?”

“마수들이 던전을 빠져나와 인간들을 공격하는 행동의 총칭이죠.”

“그런 일이 있소? 우리는 모르는 일이오. 던전을 빠져나간 적도 없고.”

사실 드워프가 던전을 빠져나간 일이 있긴 했다. 던전 마스터의 명에 따라 최하급 마수 따위를 이끌고 도시를 공격한 것이다. 1차 몬스터 웨이브 때 드워프를 보았다던 증언들도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뒤에서 지휘한 게 전부다. 우연히 목격되었을 수도 있지만 확신하진 못할 터.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이지혜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던전을 빠져나간 적이 없는데 용사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건 이상하군요.”

“이상할 게 뭐가 있겠소? 우리는 이 던전이 있는 장소가 전혀 다른 장소임을 알고 있소. 애당초 우리도 던전에 기거하던 이들은 아니라오. 그대들이 있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왔다고 할 수 있지.”

“전혀 다른 곳이라뇨?”

이지혜의 눈에 호기심이 서렸다.

“‘헤브나임’이라 불리는 대륙이오. 뭐, 말해 봤자 모를 테지만……. 우리는 어느 날, 강제적인 힘에 의해 던전으로 이송되었소. 그리고 이곳에서 강제적으로 살 것을 강요당했지. 아마도 이 던전의 최상층에 있는 ‘던전 마스터’라는 자를 죽여야 우리는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잠시 숨을 들이쉰 스테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용사의 존재를 어떻게 아느냐고 했소? 간단하오. 우리는 우리의 신에게서 계시를 받았소. 오로지 그대들만이 이 던전을 해방시킬 수 있으리라고!”

준비된 대본.

절반의 거짓과 절반의 진실을 섞는다.

거기다가 스테인의 연기력은 수준급이었다.

격정적인 몸짓까지 더해지자 이지혜조차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었다.

“신에게서 계시를 받았다니, 쉽게 믿을 수는 없는 이야기네요.”

“지금 우리와 그대들이 만난 것 자체가 기적이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현대의 세상은 기적의 연속이다. 던전의 출현부터 각성자의 등장까지, 뭐 하나 정상적인 게 없었다. 신이 등장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좋아요, 그렇다고 하죠. 하지만 다른 마수들은 뭐죠?”

“지능이 낮거나, 우리 드워프와는 다른 생각을 지닌 자들이라오. 던전은 넓소. 마수도 많지. 종류도 다양하고. 우리와 같을 수는 없지 않겠소?”

“그럼…… 적어도 이곳의 드워프는 적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된다는 건가요?”

“바로 그렇소. 우리는 그대들을 도울 용의가 있소. 물론 맹목적인 도움은 아니겠지만……. 요컨대 서로가 상생하는 길을 걷자는 것이오. 대가 없이 돕고는 싶으나 우리 사정도 여의치가 않으니.”

이지혜가 시선을 옮겨 집안 곳곳에 걸린 장비들을 바라봤다. 모두 범상치 않은 것들뿐이었다. 저것 중 몇 개만 얻을 수 있어도 충분히 해 볼 만한 장사다.

이들이 정말로 적의가 없다면 관계를 터놔서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상생, 좋은 말이네요. 바라는 게 뭐죠? 아주 괜찮은 의견이지만 보다시피 당장 내놓을 게 없네요.”

“우리가 바라는 건 그대들의 도움이요. 드워프는 숫자가 적어서 마을을 비우기가 쉽지 않소. 외부적인 일을 처리할 때마다 언제나 골치이지.”

“도움이라…… 무슨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 궁금하군요.”

“간단하오. 7층에 있는 달팽잇과 마수 ‘흑와’를 10마리만 제거해 주시오. 놈들이 내뱉는 점액은 땅을 심각할 정도로 무르게 만들지. 덕분에 땅이 움푹 꺼져서 고생한 드워프가 한둘이 아니오. 껍질도 가져다준다면 추가로 보상해 주겠소. 흑와의 껍질은 검집으로 만들면 제격이거든.”

스테인의 말이 끝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테인의 부탁’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목적- ‘흑와’ 10마리 제거 0/10

보상- 스테인과 상담하십시오.』

“어?”

“퀘스트!”

대원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설마하니 퀘스트가 떠오를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걸 ‘돌발 퀘스트’라고 부르는데, 해결하는 편이 좋다는 게 각성자들 사이에서의 정론이었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이런 돌발 퀘스트를 해결하면 능력치가 조금 더 빨리 상승한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능력치는 절대적이다. 높으면 무조건 좋다. 게다가 이런 유의 퀘스트를 해결하다 보면 ‘업적’을 얻을 가능성이 높았다. 업적 정도에 따라서 따로 칭호나 스킬을 더 얻는 경우도 많았으니…… 대원들의 눈에 불이 켜졌다.

“한번 해 보죠.”

이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와는 하급의 마수였다.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지만 검은색의 껍질이 미친 듯이 딱딱했다. 점액은 강한 산성을 띠고 있었는데, 공격적인 성향이 아니어서 사냥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대신 흑와의 주변은 마치 싱크홀처럼 움푹 꺼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 빠지면 좀처럼 올라오기가 쉽지 않은지라 거기서 조금 난항을 겪었다.

“어째 7층이 더 쉽네.”

10마리째 흑와를 사냥하고 유은혜가 중얼거렸다.

대원들도 동의했다. 5층이나 6층보다 7층이 쉬웠다.

“흐흐. 쉬어 가는 스테이지 같은 느낌인데?”

김춘원이 싱글벙글 웃었다. 음유 시인으로서 어그로를 끄는 게 그의 역할이지만 흑와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할 일 없이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게 무척이나 편한 것이다.

전투가 종료되자 이지혜가 말했다.

“수레에 싣고 이동하죠. 다시 마을로 돌아갈 차례예요.”

마을을 떠나기 전 스테인이 커다란 수레 하나를 건네준 것이다. 덕분에 수와의 껍질을 조달하는 게 간단해졌다.

대원 두 명이 흑와의 껍질을 옮기기 시작할 때 유은혜가 입을 열었다.

“언니, 드워프들이 보상으로 뭘 줄까? 전설의 검 같은 걸 주려나?”

“이런 껍질 10개에 전설의 검을 주겠니? 그냥 쓸 만한 도구 몇 개나 던져 주겠지.”

“그래도~ 첫 부탁인데. 유니크 등급 검만 줘도 좋겠다.”

“꿈은 깨라고 있는 거란다, 동생아.”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며 대원들이 수레를 끌고 이동했다. 수레 안에는 흑와의 껍질 10개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동 중 유은혜가 기지개를 켰다.

“아, 우리 공격대가 7층 공략에 성공한 게 알려지면 배 아플 사람들 꽤 있겠지?”

“그렇겠지. 드워프의 마을을 발견한 것도 빅 뉴스가 되겠고.”

“1인 공격대의 오명을 드디어 벗는 건가…….”

오명 아닌 오명이지만 이지혜는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유은혜와는 어느덧 친동생 이상으로 사이가 좋아졌다. 유은혜의 유쾌한 모습을 보니 덩달아 미소가 그려지는 이지혜였다.

위이잉-

“정지! 전방 70미터. 무언가가 다가옵니다. 숫자가 제법 많습니다.”

선두에서 전방을 살피던 대원 하나가 말했다. ‘정찰자’라는 특이한 직업의 소유자. 감이 매우 뛰어나서 도움을 받은 적이 많았다.

귀를 기울이자 위이잉- 하는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그 소리가 워낙 작아 여태껏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정찰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후방에서도 옵니다. 젠장…… 이거 못 피하겠는데요?”

전후로 갇혔다. 거리도 멀지 않다. 이지혜가 결단을 내렸다.

“전투 준비. 가더들 앞으로.”

“가더들 앞으로.”

“한 분은 전방에서 다가오는 마수들의 어그로를 끌어야 합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가더 중 한 명이 자진하여 손을 들었다.

어그로를 끌고 움직이며 후방의 대원들이 편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역할 분담이 완료되자마자 전방과 후방에서 거대한 벌떼가 나타났다.

어림잡아 100마리 이상!

그 크기만 1미터는 되어 보일 법한 괴물 벌이었다. 더듬이를 움찔거리는 게 어찌나 혐오스러운지 대원들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망할, 보너스 스테이지 아니었어?”

김춘원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괴물 벌, 킹 비의 공격은 매서웠다.

독침을 쏘아 대는 게 전부인 단순 무식한 공격이었지만 한 방만 맞아도 끝장이다. 아무리 각성자라도 저 기다란 침을 맞고 버텨 낼 재간은 없었다. 독이라도 함유되어 있다면 맞는 즉시 저세상행이었다.

“커헉!”

하지만 숫자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저항하던 대원들도 하나둘 킹 비의 희생양이 되었다. 침에 찔린 대원은 급속 마비 증상을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져 게거품을 흘렸다. 몸을 부들부들 떠는 등 여러모로 위급한 상태가 연출되었다.

‘어떡하지?’

이지혜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버리면 그 동료는 죽는다. 반대로 끝까지 싸운다 하여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악……!”

“은혜야!”

유은혜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자 이지혜가 정신을 차렸다. 급히 다가가려 했지만 중간에 킹 비가 막아섰다. 에드워드도 힘에 겨워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유은혜를 버릴 순 없었다. 이지혜가 손을 들어 워터 스피어를 날렸다. 하지만 킹 비에게 그다지 효과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도리어 킹 비가 방향을 바꿔 이지혜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킹 비의 침이 지척에 다가오자 이지혜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너희들, 이히가 적당히 하랬지! 정말 이히가 너희 때문에 못살아. 하루 종일 꿀 좀 따 봐야, 아~ 이래서 이히의 말을 들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지. 응?”

돌연 들려온 목소리.

이지혜가 슬며시 눈을 떴다.

동시에 크게 놀랐다.

에메랄드빛 머리칼을 지닌 작은 요정이 바로 앞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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