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81화
근원의 나무를 체크하고, 던전의 내부 사항을 살피며 일본의 던전 또한 확인하려니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특히 일본 던전에 보물을 늘어놓은 게 효과가 있었는지 최근 포인트 수입이 늘어나는 중이었다. 한 달 평균 4만 정도에 달했던 것이 벌써 5만 5천으로 올라갔으니 가시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은 일본에도 많았던 것이다.
일본 던전의 요정인 구요는 누군가가 시키기보다 혼자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다. 포인트 허용량을 늘려 주자 가장 먼저 ‘미로’를 만들었다. 벽을 세우고 여러 갈래의 길을 트니 보물을 숨겨 두기가 훨씬 간단했다. 이히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었다.
‘여전히 고블린이 득세하는군.’
던전 내정을 통해 마수의 현황을 한눈에 파악했다. 고블린의 숫자만 여섯 자리를 넘겼고, 변이체 발생 확률이 0.03%쯤 되었다. 만 마리가 태어나면 그중 세 마리는 변이체라는 것이다.
챔피언 고블린, 아크 고블린 등등으로 나뉘었는데…… 이 통계는 제법 쓸모가 있을 듯싶었다.
근원의 나무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면 ‘샤벨 타이거’의 특이체 발생률이 어디까지 오를지 자못 기대가 되었다.
‘샤벨 타이거의 상위종이 아직 없다는 게 아쉽지만.’
쯧! 작게 혀를 찼다.
고블린에 비해 샤벨 타이거는 숫자를 대폭 늘릴 수가 없었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번식률 자체의 자릿수가 달랐다. 최하급의 고블린은 25PT면 구입할 수 있는 반면에 샤벨 타이거는 5,200PT를 호가한다. 고블린은 한 번에 열 마리를 넘게 낳는 경우도 많았지만 샤벨 타이거는 기껏해야 한 마리에서 대여섯 마리가 한계였다.
여러모로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500,000PT를 더 투자하마. 바란다면 활용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겠다.”
“정말요? 기쁘다구요!”
구요가 팔짝팔짝 뛰었다.
안 그래도 던전이 양도된 뒤 거의 관심을 못 받았는지라 구요도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한데 50만 포인트나 사용할 권한이 주어진다면 머릿속에만 있었던 일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앞으로는 더욱 동등한 기회를 부여할 셈이다. 이히와 구요, 그리고 앞으로 늘어날 요정들에게도 똑같이 말이다.”
“구요도 잘할 수 있다구요.”
구요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이히에게 자잘한 실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지금 당장은 구요가 더욱 믿음직했다. 물론 순간의 판단보다는 긴 시간을 두고 지켜볼 작정이었다. 이히나 구요는 서로 장단점이 달랐으므로.
나는 눈을 빛냈다.
‘힘을 더욱 키워야 한다.’
한 마족이 가지기엔 강대한 힘, 그러나 한 파벌을 상대하기엔 부족한 전력. 지금의 내 상황이 그랬다. 비축하고 단번에 터트리며 선두로 나서는 게 계획인 만큼 손실 없이 힘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현재로선 순조롭기 그지없었다. 이대로 몇 년만 더 있으면 모든 파벌이 무시하지 못할 군단이 완성될 것임은 자명했다.
나만의 군단이라!
상상만으로도 통쾌하다.
그렇기에 조금은 마음을 놓고 있었다.
지난 2년, 나를 위협할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은연중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그들’이 내려오며 내 인식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특수 이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이벤트, ‘천사 사냥’이 개시됩니다.]
[지구의 일곱 곳에 차원 게이트가 생성됩니다. 게이트를 통해 나타난 천사는 본능적으로 던전을 공격할 것입니다. 천사의 공격은 던전의 베리어와 상극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베리어가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베리어가 부서지면 던전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지니 필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이벤트 보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천사 하쉬말 1人- 5,000,000PT
역천사 3人- 1,000,000PT
능천사 10人- 300,000PT
권천사 50人- 100,000PT
천사 1,850人- 5,000PT
보다 많은 천사를 사냥하십시오. 천사로부터 던전과 던전 코어를 지키십시오. 던전 코어가 천사에게 넘어가면 그 구역은 ‘신성 대지’로 선포됩니다. 신성 대지에선 모든 마족과 마수의 힘이 감소되는 반면 천사의 공능이 상승합니다.]
[그럼, 사용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느닷없이 떠오른 장문의 메시지창.
동시에 하늘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조차도 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천사라고?’
표정이 와락 구겨진다.
주먹을 불끈 쥐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균열이 일어난 곳은 한국의 하늘이었다. 지구에 나타난 일곱 곳 중 한 곳으로 선택된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벌써부터 천사의 등장이라니, 무언가가 어긋났다.
게다가 차원 게이트가 한국에 나타난 것 역시 이해되지 않았다.
‘앞으로 20년은 더 있어야 시작될 일이었을진대…….’
전생에서도 천사가 나타난 적은 있었다. 전쟁이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 지구의 절반 이상이 황폐화되고 마족도 스물 안팎이 남았을 때였다.
거르고 걸러진 강자들. 휘하에도 쨍쨍한 마수가 즐비했다. 하여 차원 게이트를 열고 나타난 천사들도 아주 쉽게 격파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보너스 이벤트’였던 셈.
30년 차에 대천사와 치천사가 하강하며 공작 두 명이 소멸하긴 했지만 그것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선 한 차례도 차원 게이트가 열린 적이 없다.
‘달라졌다.’
무엇이?
미래가.
어째서?
‘나…… 때문인가?’
여전히 굳은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그도 그럴 게, 고작 2년 차다.
작은 행동 하나가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친다지만 내가 한 것이라 봤자 몇 가지가 되지도 않는다. 도저히 미래가 급변한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던전의 정상에 올라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잠시 후 차원 게이트, 온갖 보석으로 치장된 압도적인 크기의 ‘천계의 문’이 열리며 무더기로 천사가 쏟아져 나왔다.
* * *
천계의 문이 열리며 나타난 천사들.
그 숫자만 기백에 달했다.
순백의 날개와 천사임을 상징하는 머리 위의 ‘빛나는 고리’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천사들은 하늘 위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조금은 당황한 기색을 비추며 쉽사리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마치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떨어진 듯 신중히 사방을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천계의 문은 천사를 토해 낸 뒤 감쪽같이 사라졌다.
“저게 뭐야?”
“천사?”
길을 가던 사람들도, 일을 하던 사람들도, 차를 모는 이들 모두가 하늘 위의 천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렬한 빛을 쏘아 내며 나타났는지라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내 몇몇 천사가 손을 들었다. 손 위로 은색의 구가 생성되었는데, 그 구에서 빛이 쏘아지며 거대한 포물선을 그렸다.
그 모습이 꼭 레이더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레이더가 맞았다.
무언가를 탐지한 천사들이 대거 이동했다.
천사들이 향하는 방향은 북한산. 한국의 ‘던전’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 * *
미간을 찌푸린다.
‘어떡한다.’
천사의 무리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신성력.
제아무리 거리가 떨어졌대도 내가 포착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나는 던전의 외벽에 올라, 가만히 천사들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주천사 하쉬말.’
메시지창에 떠올랐던 문구를 기억해 낸다.
하쉬말.
사품 천사이며 신의 주권을 퍼트리는 자.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천사가 아니다. 전생에서도 수많은 마족과 마수가 하쉬말에 의해 고통당했다. 그녀가 쏘아 내는 강렬한 신성의 빛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눈 부셨으며 순식간에 전투 불능의 천사를 ‘회복’시켜 전황을 여러 번 뒤집은 전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거대한 하나의 신성력은 주천사 하쉬말이 분명했다.
일곱 개의 게이트 중 하필 한국에 떨어질 줄이야.
‘싸워야 하는가?’
나의 던전을 공격하니 그야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선까지 보여 주며 임할 것인가.’였다.
주변국 던전의 주인들이 강렬한 신성력을 감지하고 찾아올 게 뻔한 상황이었다. 진정으로 위기가 되는 게 그 것이다.
마족들은 내가 한국에 있다는 걸 모른다. 알면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우파라면 전력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것이고, 다른 대공이었다면 견제 혹은 압박을 시도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위치는 내 절대적인 안전막이다.
지금 시점에서 들켰다간 성장하는 데 큰 제약이 걸린다. 전면전을 각오할 상황까지 몰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적어도 내가 나서거나 기간테스를 보일 순 없었다. 마계 옥션에서 이미 드러난 전력이기 때문이다. 크라스라나 크리슬리도 웬만해선 뒤에 있는 편이 안전할 것이었다.
그리핀도 마찬가지다. 최상급의 마수를 지녔다면 나를 떠올리거나 신흥 강자로 여기고 견제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니 숨기는 편이 좋긴 하였다.
‘우선…….’
3킬로 안팎.
천사들이 던전과 떨어진 거리다.
‘시간을 끈다.’
이미 일어난 일.
피할 수 없다면 모든 이가 극에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일의 전후 사정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은 판이 아니었다.
일발 역전, 혹은 제대로 상승세를 탈 수도 있는 아주 큰 판이었다.
반대로 한 발자국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 역시 존재하는, 명운을 건 한판 승부였다.
그러니…… 나 혼자 진행할 순 없었다.
고개를 주억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법 주머니에서 정사각형의 철판 두 개를 꺼낸다. 아무런 특색도 없는 은색의 철판.
나는 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를 낸 후 그것을 두 개의 철판에 묻혔다.
지이잉-
동시에 은색 철판이 피를 흡수하며 빛나기 시작했다.
[자동 골렘 ‘M1‘, ‘M2’가 기동됩니다.]
[‘M1‘, ‘M2’는 수만 년 전 제조된, 마도의 정수가 집약된 최강의 골렘입니다. 마왕 ‘훔’의 숨결과 핏줄, 심장 등이 일부 이식되어 있습니다.]
철판이 펼쳐지며 이내 갑옷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은빛의 전신 갑주를 입은 기사 두 명이 곧 그 자리에 나타났다. 크기는 1미터 80센티, 나와 비슷한 크기에다 랜스를 든 최강의 골렘이었다.
사실 외견은 일반적인 골렘과 거리가 멀지만 주인의 말을 그대로 충실히 따른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나태, 대지룡의 사체, 풍요의 여신상, 아스트랄 코드, 현자의 비약, 태양의 미소, 달의 눈물 외에 마계 옥션에서 건진 다섯 개의 물건 중 하나.
나는 자세한 스펙의 확인을 위해 심안을 열었다.
이름: M1, M2
능력치 :
힘 87 지능 0
민첩 86 체력 84 마력 57
잠재력(314/314)
특이 사항: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자아가 필요 없기에 지능이 한없이 0에 수렴합니다. 하지만 주인의 명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수행하는 최강의 골렘입니다.
스킬: 폭주(U)
오로지 육탄전에 특화된 전사. 신체적 능력치만 보자면 최상급 마수와도 맞먹는, 불균형의 결정체였다. 항마력이 너무 낮아 스킬에 노출되면 피해가 크지만 어지간한 스킬이라면 여유롭게 피할 수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거기다가 폭주(U)는 유사시 적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히든카드였다. 폭주를 쓰는 순간 골렘은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적을 유린할 것이었다.
여기서 끝날 리가 없었다.
주머니에서 약병 하나를 추가로 더 꺼낸다.
‘바람의 가루’라 불리는 이것은 마찬가지로 마계 옥션에서 구한 다섯 개의 물건 중 하나이며 쓸 만한 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뿌리는 대상에게 그 양에 따라 ‘플라이(R)’ 스킬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름처럼 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나는 바람의 가루를 주저 없이 골렘에게 듬뿍 뿌렸다.
학습하진 못하나 입력된 것이라면 명령에 따라 이용하는 게 M1과 M2다.
천사를 맞이하여 충분히 선전해 줄 터였다.
[천사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던전의 베리어에 피해가 누적됩니다.]
[레어 등급의 던전은 베리어의 내구도 또한 높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피해를 받는다면 결국 소멸을 맞이할 것입니다.]
[베리어 내구도 4,999,341/5,000,000]
[베리어 내구도 4,998,871/5,000,000]
[베리어 내구도 4,998,094/5,000,000]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창.
던전 코어 위에 손을 얹은 채 전신의 마력을 개방했다.
“중급 이상의 마수는 1층으로 집결하라.”
언어는 발동어일 따름이다. 요는 내 의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던전의 등급이 오르며 추가된 나의 권능이었다.
‘주 전력은 숨긴다. 나머지 전력만으로 충분할지 모르겠으나…….’
오로지 천사만 쳐들어왔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주변국의 마족들이 한국으로 향할 것이라는 점.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시간이 필요하다.
하여 주 전력을 보일 수가 없었다.
[베리어 내구도 4,996,099/5,000,000]
베리어의 내구도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길어야 이틀이다. 이틀 이내에 베리어가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해 볼 수밖에.’
한 차례 주먹을 쥐었다 펴며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