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92화
마도 시대.
인간이 용을 부리고, 모든 이종족이 가장 만개했다 전해지는 시기.
그 시기에는 마족들도 함부로 중간계를 침범할 수 없었다고 한다. 워낙 많은 일이 일어났고, 수많은 천재가 이 시기에 활동하며 죽었다. 이때의 기록은 마계에도 세세하게 남겨져 있을 정도였다.
오크 대제 람. 그런 황금과 같은 시기에 오크들을 일통시켜 유일하게 대륙의 절반을 정복한 오크. 통치의 시기는 짧았으나 홀로 1천의 기사를 상대한 일화는 충분히 대단하다 할 만하였다. 능히 최상급 마수의 반열에 들어가고도 남을 초강자였다.
진족 뱀파이어 스비라…… 역시 중간계에서 활동했지만 마계에도 기록이 전해지는 이름 있는 마수로서, 고작 하룻밤 만에 한 왕국을 감염자 천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최강자라 칭해지는 마탑의 탑주들, 황금의 기사들, 천왕의 수호를 받는 성녀 등이 나서서 겨우 잡았다던가.
마계에 있을 당시 전장 속에서만 활동했던 내가 그 이름을 알고 있다면 대단한 것이다. 마계도 아닌 중간계의 존재들을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으니까.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지.’
전장이라고 하루 종일 싸우지는 않는다. 소강상태가 지속되면 친하지 않은 마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곤 하였다. 대부분이 허황되거나 말이 안 되는 것들이지만 람과 스비라는 자주 언급이 되었다.
‘하지만 리치킹 가스펠과 진마룡 아오진은 마계에서 활동한 존재들이다.’
이미 그 존재만으로도 마왕과 동격으로 취급받았던 둘.
그중 아오진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마룡이 최상급 4Lv의 판정을 받고 발록조차 5Lv이건만 진마룡은 유일하게 6Lv에 랭크되어 있었다.
만약 전성기의 아오진이 이곳 지구에 나타나거든 막을 수 있는 이가 없을 것이다.
아직 마계에서의 힘을 모두 회복하지 못한 대공들이나 공작들로는 특히 가망이 없다. 나의 승리가 확정되겠지만 업적 점수가 50,000이나 필요하다는 게 흠이다.
여태껏 제법 많은 업적을 해결했다. 전생에서 활동한 수십 년의 시간보다 더 많은 업적을 깼다. 그래도 고작 10,000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5만은 아득하다.
‘업적 점수를 더 모을 필요가 있겠어.’
하지만 불가능하다 생각하진 않았다.
이제 3년 차. 아직 3년이 전부 지나지도 않았다.
벌써 1만을 모았다. 더욱 많은 길이 생겼고, 찾지 못한 업적도 수두룩하다.
언젠가는 필히 5만 이상의 업적 점수를 모을 수 있을 터.
지금 당장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지만 마음 한편은 든든해졌다.
다음으로, 나는 스킬 목록을 살폈다.
‘쓸 만한 게 몇 개 있군.’
장비와 똑같이 최소 유니크 등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만물상점에서는 팔지 않는, 에픽 등급 이상의 스킬도 있어서 흥미가 돋았다.
다크 메테오, 천령기 등은 모두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다.
하지만 다크 소드나 숲의 방패는 눈에 익었다.
‘대공 아리엘이 사용한 어비스 소드. 그 하위 호환 격의 스킬인가?’
차분히 스킬의 설명을 읽었다.
이름- 다크 소드(Ex U)
설명: 진정한 심연 속을 들여다본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검에 ‘심연’을 덧씌워 공간을 잘라 냅니다. 또한 다크 소드는 모든 빛을 흡수합니다.
* 다크 소드에 당한 상처는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신성력에 관련해 강력한 반발을 가집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엘의 어비스 소드는 검에 ‘혼돈’을 덧씌우는 스킬이었다. 내용도 엇비슷했다. 다크 소드를 에픽 등급으로 끌어 올리면 어비스 소드가 되지 않을는지 예측하였다.
‘뇌신만으로는 부족함이 있었지.’
턱을 쓸었다.
비록 어비스 소드보다는 한 단계 낮은 스킬이라지만 내가 사용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것은 없었다. 당장 뇌신만으로는 부족함을 여기고 있었고……. 무엇보다 착용한 검인 ‘분노’를 백 퍼센트 활용할 스킬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분노에 다크 소드를 활용하면 그 시너지는 엄청날 것이다.
‘신검합일이라.’
그다음으로 눈이 간 스킬이다.
천천히 설명을 읽었다.
이름- 신검합일(Ex U, Passive)
설명: 검과 몸이 하나 되는 과정으로, 함께 호흡하고 함께 행동합니다. 검에 의지를 싣는 게 가능하니 그 주인 됨에 따라 모든 것을 멸하는 살검(殺劍)이 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살리는 활검(活劍)이 될 수도 있습니다.
* 검을 사용할 시 힘과 민첩이 3씩 상승합니다.
* 강렬한 자아를 지닌 검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설명을 읽고 드는 생각은 하나.
‘탐이 난다.’는 것.
다크 소드와 신검합일이 딱 내게 알맞았다.
나머지 스킬들은 너무 비싸거나 내 성향과는 맞지 않았다.
다음으로 [업적 관련 추가 아이템]란을 보았다.
‘천사의 알……!’
천사를 타락시키고, 타쉬말이 내 휘하에 들어오며 불가능한 천사 관련 업적을 두 개나 동시에 달성했다. 그로 인해 생긴 아이템인 듯싶었다.
그런데 이름이 심상치 않다.
천사는 알에서 태어난다. 알을 낳은 뒤 천사의 날개로 덮어 주면 일정 기간이 지나 알을 깨고 나온다. 문제는 그러기 위한 천사가 없다는 점.
‘타락 천사의 날개로도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군.’
있다면 타쉬말뿐이었다. 타락한 천사의 날개로 덮어 줘도 정상적인 천사가 태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타쉬말의 날개에선 신성력 대신 음의 마력이 절절히 넘쳐 날 것일진대…… 어쩌면 미숙아가 태어나거나 태아가 알 속에서 죽을 가능성도 있었다.
‘실험을 해 봐야겠다.’
하지만 내 두 눈엔 기대감이 넘쳐 났다.
타쉬말 하나로 만족하려 하였으나 대거의 천사를 양성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어느 마족이 천사를 던전에 배치하려 하겠는가. 거기다가 ‘근원의 나무’는 유독 천사의 시체를 양분으로 잘 빨아들였다.
두 사이에 필시 연결 고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천사를 양성함으로써 업적을 여러 개 달성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는 예상이 아닌 확신이다.
업적 점수가 절실해진 지금, 어쩌면 일반 포인트보다 업적 점수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니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구매는 잠시 뒤로 미루자.’
내가 가진 업적 점수는 11,451점.
최대한 신중히 사용할 작정이다.
나는 천사의 알 하나를 구매한 뒤 타쉬말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 * *
타쉬말은 반나절을 더 자고 일어났다.
그녀는 흰색의 하늘하늘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는데, 등에 돋은 검은색의 날개와는 무척 대비되었다.
타락 천사의 증표인 날개가 벌써 등을 가릴 정도로 자라 있었다. 거기다가 본래 있었던 날개의 숫자도 동일했다. 여섯 개. 주천사임을 대변해 주는 개수였으나, 지금은 타락 천사의 위엄만 내보일 따름이었다.
“이 알은……!”
그녀는 천사의 알을 본 즉시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품을 수 있겠나?”
“대체 이 알을 어디서 구했느냐? 천사의 알은 천계의 금지에서 따로 관리되는 것이거늘. 상급 위계의 천사들만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은 곳일진대 대체 어떻게…….”
목소리가 떨렸다.
매우 당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나조차 천사의 알을 이런 방식으로 얻을 줄 몰랐는데, 던전의 시스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타쉬말은 오죽하겠는가.
“몇몇 천사가 자신이 낳은 알을 빼돌린다는 것을 들어 본 적은 있었다. 태어날 자식의 위계를 알아보고자 몰래 감정을 맡긴다고……. 하지만 마족에게 넘길 만큼 타락한 천사라면 애당초 천계에 존재하지 못할 터. 어디서 취한 것이더냐?”
작은 적개심.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나는 아랑곳 않고 말했다.
“따로 훔친 것은 아니니 걱정 말라. 그리고 나는 두 번 말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타쉬말, 이 알을 품을 수 있겠나?”
“나, 나는 품을 수 없다. 타락한 내가 어찌 신성한 알을 품을 수 있겠느냐.”
작게 혀를 찼다.
“안타깝게 되었군.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을 운명이라니.”
“태어나지도 못한다고……?”
“그럴 수밖에. 이대로 방치된다면 이 작은 존재는 버틸 힘이 없다. 그대로 죽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 만무하지.”
천사의 알은 약간의 온기를 품고 있었다.
안에 생명이 태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방치된다면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조류과의 마수가 돌본 대도 천사가 직접 돌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타쉬말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나는 작게 웃었다.
“걱정 마라. 타락한 너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이 알은 운이 없었을 뿐이야. 흠, 와이번에게 품도록 해 봐야겠군. 운이 좋으면 태어날 수도 있을 테지.”
“어찌 신성한 천사의 알을 마수 따위가 품도록 한단 말이냐!”
이를 바드득 간 타쉬말이 내 손에서 천사의 알을 가져갔다.
“내가 품을 것이다. 이 아이는 내가 맡을 것이야.”
“괜찮겠나?”
“비록 타락했다고는 하나…… 나는 빛을 나르던 천사였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도록 만들 것이다.”
“그 알의 문제는 너에게 전임하지.”
어깨를 으쓱하곤 이어서 말했다.
“어쩌면 천사의 알 몇 개가 더 추가될 수도 있다. 그때도 부탁하마.”
“네놈! 설마 천사를 가둬 두고 강제로…….”
“그렇다면 타쉬말, 그대를 찾아와 무리하게 알을 맡겼겠나?”
설령 강제로 천사끼리 교접을 시킨대도 알을 배지는 않는다. 강제로 그러한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많은 마족이 천사를 잡았음에도 그와 관련된 무언가를 행하지 못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타쉬말의 걱정은 완벽한 기우에 불과했다.
나는 조용히 마력을 개방하며 충고했다.
“타쉬말이여, 그대는 더 이상 천사가 아니다. 그 점을 명심하라.”
“…….”
조심스럽게 천사의 알을 든 타쉬말이 입을 꾹 닫고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
던전은 그 특성상 마수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미 어느 정도 자란 상태이긴 했지만 천사의 알이 부화한 것은 타쉬말에게 맡기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놀랍게도…… 천사는 무사히 태어났다. 앙증맞은 두 개의 날개를 달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동시에 기대하던 업적도 떠올랐다.
[놀라운 업적! 최초로 던전 안에서 천사의 알을 부화시켰습니다.]
[500,000PT가 주어집니다.]
[업적 점수 1,000점이 추가됩니다.]
이제는 몇 점의 업적 점수가 추가되었는지도 함께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하여튼 평범한 천사였을 따름이지만 능력치는 매우 준수했다.
어지간한 중급 5Lv의 마수와 비견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부화가 된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다음은 숫자를 늘리는 것이었다.
나는 추가로 천사의 알 10개를 더 구매했다.
성장하며 번식 가능한 숫자가 되거든 또 다른 업적이 떠오를 터였다.
이후 나머지 점수로 다크 소드와 신검합일 스킬을 사들였다. 남은 업적 점수는 2,451.
스킬을 익힌 후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랜달프 브뤼시엘
직업: 마계 백작(던전 마스터)
칭호 :
* 던전 사냥꾼(던전 점령, 마족 사냥 시 잔여 능력치+1)
* 불굴의 전사(Ex U, 모든 능력치+2)
* 최초로 요정의 축복은 받은 자(U, 마력+6)
* 근원의 주인(Epic, 모든 능력치+3)
능력치 :
힘 80(+15) 지능 72(+5)
민첩 75(+15) 체력 80(+5) 마력 85(+11)
잠재력(392+51/500)
잔여 능력치: 4
전력량: 21GW
특이 사항: 나락 군주의 심장이 일부 각성한 상태입니다.
스킬: 만물 조합(U), 심안(Ex U), 다크 소드(Ex U), 신검합일(Ex U, Passive), 전격의 정령(Epic), 분노(Epic), 나태(Epic)
마족 사만을 잡아서 잔여 능력치가 하나 올랐다. 신검합일의 효과로 힘과 민첩이 3씩 상승했고…… 전력량도 원자력 발전소를 털어 가며 올린 바가 있었다. 그 외에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으나 절로 흐뭇해지는 상태창이었다.
‘죽음 로브도 나쁘지 않겠군.’
칠대 죄악이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목록에 없었다.
마땅히 사들일 것이라곤 크리슬리의 ‘죽음 지팡이’와 한 세트가 되는 ‘죽음 로브’뿐이었는데, 전력의 강화를 위해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일 듯했다.
‘죽음 지팡이로 언데드 제조 스킬을 익혔지. 그것만으로도 용아병을 제작할 수준이었으니 세트를 모으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죽음 로브까지 구매하자 업적 점수가 텅텅 비었다.
‘이제…….’
업적 점수는 모두 사용했지만 보유한 포인트는 많았다.
무려 1,200만 포인트!
다음 마계 옥션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대로 묵혀 두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예상되는 모든 업적을 달성해 봐야겠군.’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