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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95화 (95/242)

던전 사냥꾼 95화

* * *

온몸을 황금으로 치장한 잔혹한 사령관.

그의 눈은 공허했다. 다른 해골 병사들과 달리 유일하게 살집이 있고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했지만 새파란 피부는 이미 죽은 시체를 연상케 했다.

느닷없이 이쪽 세상으로 넘어왔지만 그가 할 일은 명확하다.

모든 도둑을 멸하는 것!

잔혹한 사령관은 이곳을 도둑의 소굴이라 단정 지었다. 지저의 보물 창고를 탐하는 무리들이 자신들을 이곳으로 끌고 왔다고 믿었다. 그러니 하루빨리 처단하고 돌아가야 함이었다.

벌써 십수 차례, 도둑들을 죽였다. 그들의 목을 직접 쳐 냈다.

철로 만들어진 마차를 타고 하늘을 나는 물건을 사용하고…… 심지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마법 아이템 같은 것도 있었다. 보물 창고에 없는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이들은 도둑이다. 필시 어딘가에서 훔쳤으리라.

해골 법사들을 활용해 베리어를 펼치는 한편, 군단을 여럿으로 쪼갰다. 도둑들의 화력은 상당했지만 여러 곳에 분산되면 처치 곤란하다는 걸 빠르게 파악한 덕이다. 쪼개진 병사들은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며 도둑을 처리했다.

주변이 정리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 살려……!”

촤학!

생자의 머리를 검으로 가른다. 빠르게 전진하며 도망가는 잔당을 쫓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잔혹한 사령관의 공허한 눈이 지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저건?’

거대하며 불길한 구조물. 그 크기가 하늘까지 닿아 있는 던전!

잔혹한 사령관은 자리에 멈춰 선 채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봤다.

곧 그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둠의 종자들.’

이 불길한 마력. 자신의 군단 역시 어둠에 귀속되었기는 하지만 황제 폐하를 향한 충성심 하나는 여전했다. 하지만 어둠의 종자들은 그런 게 없었다. 틈만 나면 중간계를 침범하려 들었고, 황제 폐하를 노렸다. 그 강력한 힘을 갈취하려 들었다.

‘마족은…… 죽인다.’

잔혹한 사령관의 눈에 살의가 깃들었다.

* * *

후작 아나스타샤.

대공 판데모니엄 휘하에 있던 그녀는 아직도 한국의 던전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남아 있는 마수의 숫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기회를 엿보아 이곳 던전의 주인을 기필코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최소한 공작이나 대공이 다스리는 던전이다. 이 던전의 주인만 알아낼 수 있다면 판데모니엄 님에게 승기가 기운다.”

던전의 위치와 그곳을 다스리는 주인을 안다는 건 상당한 힘이 된다. 이번 이벤트에서 있었던 일을 빌미로 압박을 할 수도 있으며 후에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사용키에 따라서 쓸 만한 검 한 자루가 더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아나스타샤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마족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저들이 자신을 감시한다고 여겼다.

‘후후, 이 던전의 주인이 밝혀지는 게 곤란해지는 모양이지?’

다수의 상급 골렘, 다수의 용아병, 리치와 천에 다다르는 중급 마수…… 범상치 않은 전력이다. 과연 누굴까? 누구기에 이만한 마수를 모으는 게 가능했던가.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었다. 쳐들어오는 각성자를 사냥하며 벌어들이는 포인트에는 한계가 있었다. 번식종을 늘리자니 상급의 마수를 구매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상급의 마수를 구매하자니 번식되는 마수의 숫자가 너무 적다.

초반에는 아무런 고민이나 판단 없이 움직였지만 지금은 그 둘의 균형을 조절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문제는 여전히 포인트다.

저만한 마수를 모두 구입하려거든 들어가는 포인트가 상당하다. 하물며 골렘이나 리치는 번식종이 아니지 않나. 족히 300만 가까운 포인트가 소비되었을 것이고, 다른 중급의 마수를 합치면 최소 600만가량이 필요할 것이었다.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에 그만한 포인트를 모았다?

딱 한 명. 그런 놈이 있긴 있었다.

‘랜달프 브뤼시엘.’

최상급 마수를 필두로 경매장의 옥석을 전부 가져간 이단아.

무슨 마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수백만 포인트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아무런 파벌에도 소속되지 않은 주제에 거침이 없었다. 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있는 것인지…….

그를 관심에 둔 대공들이 많았다. 솔직히 네 명 모두라고 보면 된다. 물론 그 관심에 담긴 속뜻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에서 그놈은 제외였다.

‘그만한 포인트를 사용하고, 던전의 마수까지 모을 수 있을 리가 없어.’

모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기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불가능한 일이었다. 운이 좋아서 다수의 업적을 깼대도 수백만이 한계다.

그러니 필시 다른 마족일 터. 적어도 자신의 파벌에 속한 마족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갔다.

“아나스타샤 님, 슬슬 움직이는 게 어떨는지요?”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와 뱀의 혓바닥, 뱀의 하체, 하지만 그것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인간인 상급 4Lv의 마수, 메두사가 말했다.

“너도 그 용사인지 뭔지 하는 놈들을 죽이고 싶은 것이냐?”

다름이 아니라 이번 이벤트로 만족하지 못한 소수의 마족이 한국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마수를 소모했고, 따로 움직인 탓에 각개격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웃었다.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다.

용사, 그리고 인간.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은 확실히 범상치 않다. 상급의 고레벨 마수가 없다면 마냥 인간을 ‘학살’하는 건 힘들다. 천족을 사냥하며 그 상급의 마수를 잃은 마족들이 암만 달려들어 봤자 피해만 더 커질 따름이다.

괜히 마신이 이런 게임을 제안했겠나. 인간들은 인간들 나름대로 버텨 낼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앞으로 몇 년이 한계다.’

마계에서 있었던 모든 힘을 되찾고 마수들을 늘린다. 지금 당장은 멸망을 논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든 힘을 갖춘 순간, 인간들은 감히 저항하지 못하리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회복하는 단계였기에 유예 기간을 준 것에 불과했다. 다른 파벌의 마족들도 견제해야 하니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멸망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마족들이 그것을 몰랐다. 인간들을 업신여기며 섣불리 움직이다가 피해만 입기 일쑤였다. 어찌 비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아닙니다. 어제부터 후작 델라트와 그의 휘하 마수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메두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나스타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델라트가 어제부터 묘하게 조용하다.

“어디로 간 거지?”

“자신의 던전으로 돌아간 게 아닐는지요? 그와 함께했던 마족들도 허둥대는 모습입니다.”

“허둥댄다?”

그 꼴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지만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공 오쿨루스와 후작 델라트, 그리고 그 파벌의 마족들은 어지간한 일에 허둥대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한국의 던전이 대공 오쿨루스 파벌의 것이라고 확정 짓고 있었다. 자신을 감시한다고 여긴 것도 그런 이유다.

한데…… 떠났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급한 일이 생긴 건가? 돌연 떠나야 할 정도의?’

최근 일어난 몇 가지 사건 중에 델라트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이라면…….

[잔혹한 사령관과 그의 군단이 던전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던전의 마수들이 빠르게 쓸려 나가고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잔혹한 사령관과 그의 부하들이 던전 코어를 훼손하면 던전은 기능을 잃습니다. 던전 마스터로서의 권한 또한 사라집니다.]

“이런…… 젠장.”

맞다. 이게 있었다.

돌발 퀘스트. 그저 막으라는 말만 적혀 있었고 보상도 없어서 무시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던전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델라트의 던전에도 쳐들어간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던전에 남겨 둔 병력이라고 해 봐야 얼마 되지 않았다.

방치하면 던전을 잃는다. 그야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길 터.

아나스타샤가 급히 몸을 돌렸다.

“던전으로 돌아간다. 최대한 빨리!”

* * *

던전 앞에서 대기 중이던 대부분의 마족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나는 작게 혀를 찼다.

‘잘 휘저어 주고 있는 건가.’

고작 90일.

내 명령조차 따르지 않는 이상한 용병 부대와 계약한 꼴이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일은 해 주고 있었다.

인간에서 눈을 돌려 던전을 쓸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족들도 그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던전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하지만 마냥 기쁘진 않았다.

이제 10일 차.

멸망 기여도가 벌써 0.01%에 달했다. 그전까지 내가 죽인 숫자를 포함하더라도 수십만의 인간이 살육당한 것이다. 이대로 놔뒀다간 0.1%까지 오르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았다.

‘차라리 다른 던전을 쓸다가 다 죽었으면 좋겠군.’

인간에게서 눈을 돌리고 차라리 다른 마족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게 내 쪽에선 이득이었다. 하지만 잔혹한 사령관은 그 움직임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골칫거리. 어차피 마족을 모두 잡는 게 목표인 내게 기여도는 하나도 도움 될 게 없었다.

그러니 마족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것이 가장 최적의 시나리오였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정찰조로부터 연락이 닿았습니다.”

크리슬리가 두 발자국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오로지 사만의 던전을 찾고자 나는 200여 마리에 달하는 쉐이드를 구매하고 풀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연락이 닿은 것이다.

“던전의 마수들이 폭주하고 있나?”

“예, 던전을 빠져나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다수의 마수를 발견한 듯싶습니다. 던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꽉 틀어막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마수가 매우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고개를 주억였다.

던전 마스터를 잃고 불안함을 느낀 요정이 마수를 던전 주변에 풀어놨을 터였다. 오로지 외부의 침입자를 막고자 안간 애를 쓰는 것인데, 그 영향이 마수에게 끼치지 않을 리 없었다.

“장소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크리슬리가 품속에서 수정구 하나를 꺼내 들어 조심스럽게 비췄다.

“이곳입니다.”

이어 수정구가 발현되며 한 던전의 모습이 나타났다.

던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오크도 포착할 수 있었다.

‘여기로군.’

다른 마수의 모습도 살펴본 이후 침음을 흘렸다. 아닐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사만의 던전일 확률이 아주 높았다.

몸을 돌려 1층으로 향했다.

“기동력이 빠른 마수들을 준비하라. 즉시 이동하겠다.”

200의 샤벨 타이거.

용아병과 리치.

그리고 그리핀!

준비가 완료됐다.

주인 없는 던전 하나를 치기엔 충분한 전력이다.

내가 합세하면 차고 넘치는 전력이 된다.

더불어서 던전을 차지하고 잔혹한 사령관을 한 차례 마주하려면 필요한 숫자였다.

‘일단 확인은 해 봐야 할 테지.’

쯧쯧. 혀를 차고 인상을 굳혔다.

잔혹한 사령관. 무려 업적 점수를 6,000점이나 들여서 구매했건만 기대를 배신했다. 이런 기분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텐데 그게 안 되기에 괜히 열만 올랐다.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는 건 내 성미에 안 맞다.

얼마나 대단한 놈이어서 이처럼 철없이 구는지 확인은 해 볼 심산이었다.

놈의 신상에 대해 아는 이가 나밖에 없으니 회유가 가능하다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아니 된다면 내 선에서 처리를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 전에…….’

사만의 던전을 접수하는 게 먼저다.

가만히 놔뒀다간 눈치 빠른 마족들이 탐을 낼 수도 있었다.

그나마 혼란의 시기라서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가 지나거나 적응이 되면 욕심이 드는 건 당연지사. 그러기 전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 놓을 필요가 있었다.

“출진하라.”

고개를 내저으며 일본의 던전으로 이동했다.

이후 바다에 잠수 중이던 아일랜드 터틀을 이용해 중국의 진출을 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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