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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00화 (100/242)

던전 사냥꾼 100화

스킬 분노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영향인가?

조급해졌다.

전투가 끝났으니 길게 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무엇보다…… 오쿨루스와의 싸움은 내가 가진 힘을 어느 정도 공개함으로써 원만하게 끝났다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이미 얽히고 전장에 들어선 이상 그 길뿐이 없었다고는 하더라도, 오쿨루스에게 한정하여 나만의 무기 한 자루가 사라진 셈이다.

필시 나를 재고 판단하려고 들 터. 두둑이 대비한 뒤 노림수를 만들 것이 분명했다. 대공끼리의 연합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게 그나마 위안점이다.

오쿨루스는 그들과 아예 접점이 없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어중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게 오쿨루스였다.

허나, 커다란 정보를 얻었다는 말이 못내 걸린다. 물론 허세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상대가 상대이니 어떤 행동을 보일지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았다.

‘각성의 단초가 제대로 된 것이어야 한다.’

리스크를 져 가며 잔혹한 사령관을 구했다. 각성의 단초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목을 따 버릴 각오였다.

그 기세를 느꼈는지 막시움도 긴장했다. 표정을 굳히며 가만히 자신의 검집을 내밀었다.

“황제 폐하께서 제게 하사하신 바로 이 검입니다.”

나는 검집을 쥐었다.

동시에 심안을 열어, 검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이름- 황제의 검(Epic, Ego)

설명: 그림자 황제가 애용하던 검. 철 중의 철이라 전해지는 마르타늄으로 제조되고 고도의 마법, 술식, 주술 등이 합쳐지며 강렬한 에고(Ego)를 탄생시켰다.

* 파괴 불가. 위엄이 크게 상승한다. 10년에 한 차례 ‘황제의 군세’ 사용 가능.

* 검의 정령이 인정한 자가 아니면 사용 불가능.

설명을 읽어 봐도 각성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에고 소드라는 점이 눈에 띄고, 황제의 군세라는 게 궁금하긴 하지만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이 검의 무엇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막시움이 설명했다.

“검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습니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검. 인정한 자가 아니면 손도 댈 수 없지만 황제 폐하라면 어련히 마음을 열 것입니다.”

“검의 정령이라…….”

“황제 폐하께서 영면이 들기 전 그 검을 제게 맡기셨습니다. 다시 돌아오거든 돌려 달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검이 있다면 불완전한 자신이 완전해질 수 있다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각성의 단초라고 하였던가.

나는 즉석에서 검을 뽑았다.

황금으로 빛나는 찬란한 검이 자태를 드러냈다.

지이잉-!

검을 쥐자 진동을 일으켰다. 몸을 떨어 대며 나를 거부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신검합일(Ex U, Passive)이 발동하였습니다. ‘황제의 검’에 깃든 자아가 사용자에게 굴복합니다.]

신검합일로 말미암아 검이 얌전해졌다.

진동을 멈추고 요조숙녀처럼 손에 착 달라붙었다.

마치 예전부터 사용하던 검인 양, 익숙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딱히 에고가 내게 말을 걸어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원래 이런 건가?’

에고 소드. 마계에도 있긴 했지만 그 숫자가 매우 적다. 나는 만져 본 적도 없었다. 하여 검의 에고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알지 못한다.

휘두르고 손가락으로 두드려 보았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아, 역시……! 검의 인정을 받으셨군요! 믿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서 막시움이 감탄을 내뱉었다. 감동한 듯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나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이제 무엇을 하면 되지?”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저 검이 인도한다는 것밖에는……. 사실 저도 손을 대는 것만 허락받았을 뿐입니다.”

“도움이 안 되는군.”

“죄, 죄송합니다.”

막시움이 크게 고개를 숙였다.

쯧, 작게 혀를 찼다.

단초는 단초인데, 이게 내게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모르겠다. 일단 에픽 등급의 검을 한 자루 얻었다는 점은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애매한 점이 많다는 것.

어쨌든 그림자 황제가 이 검에 무언가를 남겼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황제의 군세.’

검에 달려 있는 스킬. 10년에 한 차례라는 큰 제약이 걸려 있었지만 그만큼 파괴력도 남다르리라 생각하고 상세한 설명을 읽었다.

이름- 황제의 군세(???)

설명: 지저의 창고에 존재하는 10만의 ‘혼령 기병’을 불러옵니다. 혼령 기병은 육체가 없고 전신 갑주로 이루어진 병종으로서 사용자를 따라 적을 섬멸합니다. 90일 뒤 그들은 본래 있었던 장소로 돌아갑니다.

이곳에 모인 해골 병사와 막시움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새삼 알면 알수록 이 그림자 황제라는 자의 저력이 두려워질 수준이었다.

그때 막시움이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황제 폐하, 이제 대륙으로 돌아가 그곳에 새로운 황조를 세울 때입니다. 신 막시움이 보필하겠으니 함께 돌아가시지요.”

“그건 안 되겠군.”

애당초 그림자 황제도 아니었거니와 대륙으로 들어갈 방법도 없었다.

그러자 막시움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혹시 남겨 둔 일이 있으십니까? 이곳은 도둑들의 세상입니다. 마계는 아니지만 마계와 다를 바 없는 듯싶습니다.”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을 이루기 전까지 나는 떠날 생각이 없다.”

“무엇입니까? 제가 도울 수 없는 일입니까?”

“너는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지 않나?”

“……그렇습니다. 마력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습니다. 수십 일 후 저희는 본래 있던 창고 안으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막시움이 매우 아쉬운 기색을 비쳤다.

예상했던 바다. 시스템이 그처럼 안이할 리 없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이나마 황제 폐하를 도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디 신 막시움과 병사들이 도울 수 있도록 허해 주십시오.”

막시움이 부득불 외쳤다.

남은 시간이 꽤 된다.

해골 병사가 일만가량 있었고, 사용코자 한다면 방법은 많았다.

나를 돕고자 하는 의지가 절절했으니 막 굴려도 불평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던전 하나를 바로 늘리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못하다.’

우선 우파의 휘하 마족이 관리하는 던전이어야 했는데, 벌써 둘이나 잃었으니 슬슬 눈치를 챌 때였다. 여기서 곧장 하나를 더 얻는다면 아직 중국의 던전을 채비도 못한 상태에서 역풍을 얻어맞을 가능성도 있었다.

적어도 중국의 던전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앞으로 흘러가는 형국을 살펴봐야 함이었다.

‘허나, 손해를 입히는 정도는 괜찮을 테지.’

가볍게 고개를 주억였다.

“내가 지정해 준 던전을 들쑤셔라. 치고 빠지며 확실하게 마수들을 손실시키는 것이 나를 돕는 길이다.”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차피 돌아갈 병력.

해골 병사 몇이 죽던 알 바는 아니었다.

“신 막시움, 명을 따르겠습니다.”

한 치의 의심 없이 막시움이 읊조렸다.

* * *

잔혹한 사령관 막시움과 그 군단이 등장하고 정확히 90일이 흘렀다.

그간 막시움의 군단은 인간 사냥을 멈추고 내가 지정해 준 던전을 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모두 우파 파벌의 던전이었다. 황제를 돕는다고 여겨서인지 열정이 대단했다. 최후에 남은 병력이 1천이 안 될 정도였으니 말은 다한 것이다.

벌어들인 포인트는 400만이 약간 넘었다. 도합 200만을 손해 본 셈이었지만 사태를 진전시키고 던전을 얻고, 에픽 등급의 중요한 검 하나를 손에 쥐어서 딱히 손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각성’에 대한 확증을 얻었다.

남은 시간 동안 순수 지능 2가 상승한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각성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황제의 검이 제대로 된 열쇠가 맞았다. 그저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검의 자아가 심장을 자극해 능력치를 올렸다. 서로 연결된 파장 같은 게 있는 게 아닐는지 예상할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마침내 이날이 왔다.

중국에 있는 우파 파벌의 던전 몇 곳을 들쑤시며 천 명도 안 되는 병력만을 남긴 막시움이, 이제 곧 있을 이별에 섭섭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황제 폐하…….”

“수고했다.”

“정녕 함께 가실 수 없는 것입니까?”

“말했을 것이다. 내게는 이곳에서 이루고자 하는 일이 있다고.”

막시움은 나를 황제로 여기고 있었다. 신성시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내가 태양을 달이라 한다면 막시움은 그것을 믿고자 하염없이 고민할 것이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믿어 버리리라.

거기다가 수고를 한 것도 사실이니 장단은 맞춰 주었다.

막시움의 표정이 서글프게 변했다. 잔혹한 사령관이라는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 그가 진중히 무릎을 꿇었다.

“신 막시움, 황제 폐하의 귀환을 멀리서나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남은 병사들과 막시움의 몸이 흐릿해져 갔다. 마력이 흩어지고 차원 게이트의 전송이 시작된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은 원래부터 없었다는 양 증발해 버렸다.

“…….”

넓은 황야.

그곳에 나 혼자만 남아 있었다.

오쿨루스의 팔.

나는 그것을 중국의 던전 앞에 던져 놓았다.

팔에서 싹이 돋으며 지금은 알 수 없는 꽃으로 만개한 상태였다.

‘오쿨루스, 내게서 무엇을 보고 얻었는지 모르겠다만 나 전부를 파악하진 못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너를 조금 더 알고 있지.’

자연화 스킬이 발동되고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모를 척 넘어갔다. 오쿨루스의 팔은 뿌리를 내렸고 본체와 이어졌다. 저 팔이 눈이 되어 내 던전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중국이다. 본래 사만의 던전인 곳을 내가 차지했다. 우파와 정보를 교환하지 않는 이상 그 사실을 눈치채진 못했을 것이고, 영락없이 이곳을 내 던전으로 착각할 것이었다.

다른 마족의 던전을 오쿨루스가 차지하지 않으면 던전 간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도 모를 테니 떡밥, 혹은 시간 벌이 용으로는 충분했다. 만약 오쿨루스가 움직임을 보이거든 충분히 대처 가능했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 최상층으로 이동하자 씩씩이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씩씩! 이 맹랑한 계집애! 네가 나한테 어쩜 그럴 수가 있어!”

“흥! 이히가 뭘 어쨌다고 그러니? 그리고 품위 없게 씩씩대지 좀 말아 줄래?”

어쩐지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이히가 팔짱을 낀 채 씩씩이와 대치하는 중이었다.

‘요정 간의 이동도 가능했던 모양이군.’

이동진. 단순히 육체가 있는 것만 옮기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요정도 이동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구요는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씩씩이는 과거 이히와 인연이 있다 보니 직접 소통을 요구한 듯싶었다.

“그 꽃을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너는 그것을 무참하게 짓밟았잖아.”

“어머, 이히가 그랬니? 뭐, 그럴 수도 있겠다. 고작 그런 꽃 따위에 이히가 넘어갈 리 없으니깐 말이야.”

씩씩이의 어깨가 축 처졌다.

“하지만…… 꽃을 구해 오면 씩씩이랑 만나 주겠다고 했잖아…….”

“그건 네가 이히를 너무 귀찮게 하니깐 그랬지. 설마 미련하게 그 구하기 힘들다는 걸 구해 올 줄은 몰랐는걸! 아주 이히는 소름이 확 끼쳤지 뭐니!”

“씨익씨익. 용서 안 할 거야. 두고 봐, 요정왕은 씩씩이가 될 거야!”

“이히히! 그럴 일 없거든. 마스터께선 이히한테 푹 빠졌어. 제3자는 빠져! 어디 굴러온 돌멩이 주제에 이히의 자리를 넘봐?”

“아냐, 마스터는 씩씩이한테도 기회를 준댔어!”

“아냐, 마스터는 이히한테 푹 빠지셨어!”

“아냐!”

“아냐!”

서로의 눈싸움이 시작될 무렵, 보다 못한 내가 나섰다.

“기회는 공평하게 줄 생각이다.”

“마스터!”

“마, 마스터…….”

씩씩이가 환호를 내뱉었고 이히는 찔리는 게 많은지 뜸을 들였다.

“생각보다 둘이 인연이 깊나 보군.”

“인연이 아니라 악연이야.”

“이히의 스토커예요. 혼내 주세요.”

슬금슬금 다가온 이히가 친목을 과시하듯 내 어깨에 앉아 뺨을 비볐다. 그것을 본 씩씩이의 표정이 더욱 붉어졌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나?”

“없어, 마스터.”

“이히는 있어요. 요즘 통 마스터께서 던전에 안 돌아오셨잖아요? 그래서 이히가 직접 이걸 전해 주려고 왔어요. 아니었다면 저 못생긴 애를 만나러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 즉시 씩씩이가 반발했다.

“뭐!”

“흥!”

견원지간이 따로 없었다.

씩씩이를 무시한 이히가 품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는데…… 나는 한참이나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령왕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장담합니다. 자리를 한번 만들어 보겠으니 응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드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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