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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11화 (111/242)

던전 사냥꾼 111화

유은혜가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될 따름이었다.

잠시 싸늘해진 분위기는 금세 누그러들었다. 서로가 손을 잡고 춤을 추거나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등 교류가 활발해졌다. 하지만 내 표정은 변함없이 딱딱했다.

‘인간의 파티는 내가 아는 것과 조금 다른 것 같군.’

그렇다. 여태껏 느껴 왔던 이질감. 그것은 서로가 아는 ‘파티’의 정의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현장일 줄은 전혀 몰랐다.

기본적으로 나는 인간의 파티를 참여해 본 적이 없다.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유은혜가 마음껏 나를 지도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일단 기본적인 ‘규칙’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말이다.

한데…… 그냥 춤추고 담소를 나누는 게 파티라니,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는 마계의 전장에서 태어났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그곳에서도 하급의 마족들은 어련히 잘 살아갔다.

특히 1년에 한 차례 열리는 파티는 삶의 구원이라 할 정도로 여파가 컸다.

“대장님? 어디 가세요?”

유은혜의 눈이 커졌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려 했던 길드의 마스터들도 내가 움직이자 의아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걸어가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는 청년의 앞으로 다가갔다.

한국 굴지의 기업 일성 그룹. 그곳 성 회장의 유일한 혈손이라면 오만하고 방자한 게 맞다. 세상 무서울 게 없으니 안하무인인 행동도 많이 취했을 터. 고작 5대 길드이니, 길드 마스터니 하는 사람들이 눈에 찰 리 없었다.

그저 주변에서 띄워 주는 것을 즐길 뿐이겠지. 나는 이런 녀석을 싫어한다. 마계에 있을 당시 내가 죽였던 백작 브뤼시엘도 이와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좋은 피’만 믿고 나대는 녀석. 그런 녀석이 위에 있으면 주변이 고달파진다. 아군이면 쳐 낼 것이고, 적이라면 격이 맞지 않는다며 조소를 흩뿌려 줄 것이다.

“어제 혼자서 오크를 사냥했거든. 취익거리는 게 얼마나 시끄럽던지. 멱을 따 주니까 그제야 조용해지더라고.”

“규택 씨, 정말 혼자서 오크를 사냥한 거예요? 되게 무섭게 생겼던데…… 저는 도저히 못 잡겠더군요.”

“와아~”

성규택. 그게 이름인 것 같았다. 여인들한테 둘러싸여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그런 놈들은 내 상대가 안 돼. 다음은 공격대를 꾸려서 5층을 올라 볼 생각이야. 알지? 5층이 어떤 곳인지.”

“예, 머드 골렘이나 하피가 있다고 들었어요. 데빌 헌터 공격대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요. 규택 씨, 무리는 하지 마세요.”

“뭐야? 그따위 것들 잡는 게 왜 무리야? 너 지금 나 무시하냐? 데빌 헌터 공격대가 성공한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어. 운이 좋아 이름만 유명해진 각성자들보다 내 길드의 대원들이 훨씬 강하니까.”

열등감이 폭발했다.

한마디로 데빌 헌터 공격대 역시 ‘운이 좋아서 유명해진 곳’일 따름이라는 말이었다. 괜히 입을 열었던 여인은 식은땀만 줄줄 흘렸다. 그러나 성규택의 집권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주변의 눈이 쏠린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아…….”

그리고 성규택의 주변에서 장단을 맞춰 주던 여인들은 ‘아뿔싸’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들도 각성자였고, 데빌 헌터 공격대가 가지는 위치를 잘 알았다.

그럼에도 맞장구를 쳐 준 건 그가 성규택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다.

내가 지근거리에 서자 성규택도 시선을 돌렸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뭡니…… 커헉!”

퍽!

하지만 끝맺음을 맺지는 못했다.

짧고 간결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고,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 회장이 애지중지하며 키워 온 외아들이 쌍코피를 줄줄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것이다!

그것도 성 회장의 저택에서 주최된 파티장에서 벌어졌으니 여파가 작지 않았다.

‘왜?’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쉽사리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이, 개새끼가!”

코피를 손등으로 닦아 낸 성규택이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얼굴을 붉힌 채 어느새 오른손에는 검을 쥐고 있었다.

“재미있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내가 아는 파티란…….

서로가 기량을 겨루는 핏빛의 행위이다.

1년에 하루. 그날만큼은 같은 전장에 속한 모두가 평등해진다. 위에 있는 자에게 결투를 요청해 그를 죽이면 상급자가 될 수 있었다. 만약 결투를 거부한다면 주변의 모든 마족에게 공격을 받아 싸늘한 시체가 되고 만다.

인간들이 그 정도로 악이 있다 여기진 않지만 그래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리라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어서 실망이 컸다.

그래도 직접 나서서 판을 깨자 그제야 조금은 재미가 생겼다.

“뭐? 재미있어?”

성규택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그가 언제 이런 취급을 받아 봤겠는가.

그가 내게 검을 겨눴다. 하지만 그다음 행위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빠악!

“어어?”

눈 깜짝할 사이, 성규택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왜 쓰러졌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어 강렬한 고통이 후두부에서 느껴진 뒤에야 내게 맞았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라는 의문이 잠시 눈에 맴돌았지만 성규택은 곧 완전히 정신을 놓았다.

채엥!

성규택의 근처를 배회하던 사람들, 허리춤에 검집을 차고 다니던 성규택의 길드원들이 빠르게 검을 뽑았다.

“더 이상의 폭력 행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폭력 행위라…… 용서할 수 없다면 어디 한번 막아 보아라.”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너희는 안중에도 없다는 ‘여유’가 주변에 있는 그대로 비쳤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가 강자임을 모르는 각성자는 거의 없었다. 성규택 같은 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팽배해진 긴장감.

속속들이 검을 겨누는 인원이 많아졌다.

“제아무리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격대장이라도 이 많은 인원을 상대할 수는……!”

“없다?”

나는 땅을 밟았다. 내게 검을 겨눈 각성자는 모두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했다. 숫자도 수십이 전부였다. 본신의 힘을 조금만 보여도 충분하다.

파티가 재미없다면 재미있게 만들면 되지 않겠나.

잠시 뒤 벌어진 장면에 남은 이들 모두가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십의 각성자가 단 한 명에게 무릎을 꿇었다.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도 지치지 않는 모습이다.

내가 움직이는 것을 처음 보는 이들은 하마처럼 입을 벌려 넋을 놓기에 바빴다.

“그만!!”

상황이 종결되고 머지않아 입구에서 다수의 보디가드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흰머리가 인상적인 배불뚝이 남성이 그들의 맨 앞에서 소리를 내지른 것이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각성자들과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곤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급히 보디가드 한 명을 보내 생명에 지장이 없는 걸 확인했지만 얼굴에 서린 분노는 사그라질 줄 몰랐다.

“누군데 이런 난동을 피우는 것이냐?”

하지만 즉시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현명한 판단이다.

“랜달프. 데빌 헌터 공격대의 공대장.”

턱!

멀리서 김용우가 이마를 짚는 소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 회장은 주먹을 쥐었다.

“요 근래 유명세를 조금 떨친 이름이구나. 하지만 그 이름이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제대로 해명하지 않으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보디가드들이 일사불란하게 총을 꺼내 들었다. 본래는 불법이지만 세상이 세상이었다. 알게 모르게 총기를 소지한 사람들은 많았다. 하물며 성 회장임에야 모든 보디가드가 실제 총을 소유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런 총 따위는 내게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이 파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 두지.”

“……뭐?”

“웃고 떠들 때가 아니란 뜻이다.”

척. 한 발자국 다가선다. 긴장감이 더욱 바짝 쪼여졌다.

“한국은, 세상은 시시각각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오크를 잡는 것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커다란 재앙이 곧 있으면 다가온다. 그런데 바삐 움직여야 할 자들이 이 호화스러운 저택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다. 심지어 아무도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더군. 통탄할 노릇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작게 혀를 찼다.

기자와 인터뷰를 나눈 이야기는 전국에 흘러 나갔다. 곧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것이란 사실도 전했다. 성 회장 정도의 인물이라면 듣지 못했다고,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놀고 즐기는 장소를 만들었다. 한시가 바쁜 이때 던전을 경계하며 작전을 세워야 할 모든 이를 초대했다.

회화의 장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껍데기에 불과하다. 당장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모르는 건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건가? 한국의 힘은 절벽에 다다랐다. 천사가 등장하고 마수들이 집결한 걸로도 모자라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로 출정하며 잃은 숫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앞으로 몇 달, 짧으면 며칠 뒤에 또다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다면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만약 그리되거든 수많은 인간이 죽어 나갈 게 자명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력을 가다듬어야 할 시기였다.

모두가 침묵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아는 이일수록 표정에 암담함이 서렸다. 대표적으로 길드의 마스터들이 그러했다.

나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대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 놔도 부족한 시간이다. 이따위 곳에서 희희낙락거리며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던전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징조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것을 무사히 막을 수만 있다면 불 속에라도 뛰어들 것이다. 나와 같은 각오를 가진 자들이 있을까 싶어서 참여했지만…… 실망스럽기 그지없군.”

캬오오오-!

용의 형상을 한 뇌신이 울부짖었다.

모든 이들이 그 형상에 압도되었다.

놀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번개의 용. 천사들이 출현했을 때 마수를 끔찍이 괴롭혔던 그 용의 정체가 무엇인지 논란이 많았다.

설마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가 나일 줄은 상상조차 못한 모습이다.

나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성 회장의 앞에 서서 말했다.

“비켜라. 안주하는 자에게 볼일은 없다.”

* * *

그 시각.

이히는 열심히 살덩이를 찔러 대는 중이었다.

“얘얘, 너 이히한테 뭐를 숨기고 있는 거니?”

근원의 요정으로 격이 상승하며 이히는 사물의 본질을 보다 확실하게 꿰뚫어 보는 게 가능해졌다. 그리고 살덩이와 놀던 도중 그사이 숨겨진 ‘무언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말해 보렴. 이히는 헤치지 않아요~”

꾸욱! 꾸욱!

열심히 살덩이를 눌러 대자 살덩이가 계속해서 움찔거렸다.

하지만 숨겨진 것을 내놓지는 않았다.

“흥, 너 말이야. 계속 그러면 이히한테도 다 방법이 있거든?”

강제로 배를 갈라 버려야겠다고 잔인한 다짐을 한 이히가 근원의 나무로 돌아갔다. 던전 마스터에게 의견을 구하겠다는 생각은 벌써 사라진 지 오래다.

이어 근원의 나무에게 양해를 구해, 가장 날카롭고 단단한 뿌리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말하려면 지금밖에 없어. 이히히, 안 그러면 조금 아플 거야!”

꿈틀!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알아차린 살덩이가 보다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살덩아, 네가 자초한 거야. 이히는 아무런 잘못 없어.”

이히가 날카로운 뿌리를 손에 쥐었다. 근원의 나무가 꽁꽁 숨겨 두었던 뿌리 중 하나다. 살덩이를 가르고 숨겨진 것을 빼내는 것쯤은 간단한 일이었다.

푸욱!

잔학한 미소와 함께 이히가 살덩이의 중심부에 뿌리를 꼽았다.

하지만…… 배를 가를 수는 없었다.

뿌리를 꼽은 즉시 환한 빛무리가 살덩이의 중심부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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