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15화
마족들의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도 들린다.
침을 꿀꺽 삼키며 마고를 손에 넣은 뒤의 일정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리라.
아직 본신의 힘조차 회복하지 못한 마족이 판을 치는 이때 최상급 2Lv의 마수는 온갖 우위를 가져오게 만드는 것이 가능한 괴물이다.
힘을 비축하며 풀 시기를 재고 있었던 마족들. 계획을 앞당기며 인간을 학살하고 몇몇 마족을 죽임으로써 균형을 무너트릴 수도 있었다.
‘우파…… 많이 조급해 보이는구나.’
눈을 돌려 대공 우파를 바라봤다.
본래는 가득 차 있어야 할 그의 옆자리가 상당히 비어 있었다.
파간 그리울리야 원래 출입을 금지받았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두 마족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내게 죽임을 당한 탓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없었다. 덕분에 대공 우파의 표정은 볼만하였다.
여유가 없는 얼굴. 주변을 향해 적대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고를 바라보는 눈에는 강한 탐욕이 서려 있었다.
“우파, 주변이 조금 초라한 것 아닌가?”
거대한 염소의 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완벽한 미를 갖춘, 마왕의 피를 정통으로 이은 마족!
대공 아리엘이 대놓고 비웃었다.
본래 그녀는 우파와 성향의 차이가 너무 커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우파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닥쳐라, 아리엘. 답지 않게 숨어서 내게 한 방 먹인 모양이다만 이대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 방 먹였다? 우파, 나는 네놈처럼 숨어서 작당을 하지는 않아.”
“과연 어떨까? 혼자서 고상한 척하는 연놈치고 제대로 된 게 없더군.”
아리엘의 표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도전은 피하지 않는 게 내 신조다.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말하라. 비록 그대의 아집과 망상이 이뤄 낸 유치한 장난극과 다를 바 없으나 우리의 달갑지 않은 관계를 끊기엔 더없이 적절한 순간이지 않겠느냐?”
“자만하지 마라, 아리엘 디아블로…….”
서로가 이빨을 내밀며 으르렁거린다.
확신 없이 먼저 물면 서로에게 뒤가 없음을 알기에 그저 간만 보는 것이다.
하지만 마고가 있다면 어떨까.
적어도 아리엘과 우파는 마고를 낙찰받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게 분명했다.
나머지 판데모니엄과 오쿨루스 진영은 둘에 비해 간절함이 부족하다. 특히 오쿨루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씨익!
나와 눈을 마주치자 오쿨루스가 크게 미소 지었다.
‘너를 알고 있다.’는 듯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유. 오쿨루스에겐 그것이 있었다.
나를 상대하고, 내 전력을 조금이나마 맛봤음에도 저런 여유를 보인다는 건…….
‘준비한 게 있군.’
당시의 그는 말했다.
팔 한쪽을 내줄 만한 큰 정보를 얻었다고.
그게 무엇일지에 따라서 내가 대처할 방향이 달라질 듯싶었다.
“오쿨루스, 팔 한쪽은 어디다가 팔아먹었지?”
“…….”
언제 웃었냐는 것처럼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돌변한 오쿨루스가 몸을 돌렸다.
“쯧쯧, 하여간 저놈은 사교성이 부족해.”
대공의 험담을 하는 자, 그는 판데모니엄이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대부분의 것을 대하기에 상대를 해 주지 않는 게 정답이긴 하다.
그러나 판데모니엄의 움직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 안 하나? 랜달프 브뤼시엘?”
“모르겠군.”
심장이 크게 뛰려는 걸 억제한다. 전생을 통틀어 판데모니엄과는 거의 접점이 없었다. 이처럼 그가 내게 말을 건 것도 처음이고, 그것은 곧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음을 뜻했다.
말마따나 판데모니엄은 격이 맞지 않으면 아예 이야기 자체를 해 주지 않는다. 자신의 파벌 마족과도 대화하는 걸 무척 귀찮아하는, 이상한 성격이었다.
‘조용히 비수를 찌르는 자.’
내가 정의한 판데모니엄은 그러한 인상이었다.
이어서 조용히 심안을 열었다.
이름: 판데모니엄
직업: 마계 대공(던전 마스터)
칭호 :
* 스펠 브레이커(Epic, 마력+10)
* 종말 예언자(Epic, 지능+10)
* 독사의 혀(Ex U, 마력+8)
능력치 :
힘 80 지능 82(+10)
민첩 91 체력 78 마력 85(+18)
잠재력(416+28/500)
특이 사항: 죽음의 정령을 잡아먹었습니다. 그가 내뱉는 말에는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스킬: 주문 파괴(Epic), 고유 결계(Epic), 죽음의 힘(Epic), 놀라운 관찰력(U)
[상대 비교]
판데모니엄
힘 80 지 92 민 91 체 78 마 103 잠재력(416+28/500)
랜달프 브뤼시엘
힘 96 지 93 민 91 체 85 마 98 잠재력(412+51/500)
능력치 총합 자체는 내가 높다.
인피니티 아머를 얻은 이후 조금이지만 꾸준히 성장을 한 덕분에 이 정도의 차이를 낼 수 있었다. 그간 힘 1, 민첩 1, 지능 2, 마력 2를 더 올린 셈이다.
하지만…… 역시 대공이라고 해야 할까? 순수 능력치가 무척이나 높았다.
그때 판데모니엄이 미간을 좁혔다.
“이 음흉한 놈, 내 무언가를 봤구나.”
침착하게 대꾸해 주었다.
“착각하는 것 아닌가?”
“내가 잘못 볼 리 없다. 모든 주문에 관해서 나보다 정통한 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 것이겠지.”
언쟁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특히 그 상대가 판데모니엄이라면 언쟁이 길어질수록 피곤해질 뿐이다. 접점이 크게 없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알다가도 모를 놈이로군. 솔직히 불어 봐라. 우파를 건드린 게 네놈이냐?”
내게 말을 건 이유가 이를 묻기 위함인 듯싶었다.
동시에 주변의 마력이 변했다.
고유 결계(Epic)가 미약하게 펼쳐진 것이다.
대화 내용이 새어 나가는 걸 차단시키는 게 목적인 듯했다.
‘주변 마족이 듣기를 원하지 않고 있군.’
정보는 힘이다. 판데모니엄은 그를 잘 알고 있다.
어째서 나라는 결과가 도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놀라운 관찰력이었다.
그러나 물어본다고 답을 해 줄 만큼 나는 친절하지 않았다.
“판데모니엄, 나는 네가 일을 벌였다고 생각했다.”
진심이 담기진 않았다. 그저 확신이 없으면 막 찌르지 말라는 의미로 한 소리였다.
하지만 판데모니엄은 꿋꿋했다.
“우파는 천성이 게으르고 모든 게 대충이지만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면 굉장히 피곤해지는 녀석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귀찮아질 게 뻔한 짓을 벌이지?”
과연…….
제대로 우파를 파악하고 있었다.
세 명의 마족을 손쉽게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우파가 제대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서다. 파간 그리울리를 제외하면 그저 그런 마족밖에 없었으니 신경을 덜 쓰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공작인 파간 그리울리가 죽은 이후로 확실히 우파 진영의 결속력이 단단해졌다. 범인을 색출하고자 날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우리에게 이유가 중요하던가?”
“흐흐. 하긴, 네놈 말이 맞다. 하지만 여전히 내 물음의 대답은 되지 않았어. 다른 대공이란 놈들은 머릿속에 든 게 많아서 너를 무시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 우파를 건드릴 녀석은 아리엘, 혹은 네놈밖에 없거든.”
“가만히 놔둬도 서로 싸우고 자멸할 텐데 내가 뭐 하러 움직이지? 애당초 혼자인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정의한 건 그대들이 아니었나?”
“이유가 중요하진 않지. 그리고…… 그 정의를 조금씩 비튼 게 네놈 자신이 아니냐? 네놈이 지난 2년간 마계 옥션에서 보인 행태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게 목적이었다면 성공했다고 전해 주마. 덕분에…… 일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어.”
고유 결계가 풀렸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판데모니엄이 자리에서 멀어졌다.
‘너무 얕보았던가?’
판데모니엄은 내심 내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정보를 우파에게 넘기진 않을 것이다. 내가 우파를 쳐 내는 건 그로서도 반가운 일. 그러니 부추기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아차 싶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어쩌면 너무 자만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내가 틈을 보였기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일 테지.
‘쉽지 않겠군.’
이번 마계 옥션.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가는 시발점이 되리란 확신이 들었다.
* * *
“반갑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마계 옥션을 찾아 주신 모든 여러분! 저 드보롱이 재차 정중히, 화사한 미소를 담아 인사드립니다.”
넓은 회장.
커튼이 젖혀지며 피에로 분장의 드보롱이 나타났다.
이윽고 숙인 고개를 든 드보롱이 회장을 훑었는데, 모두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천진난만’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르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아, 작년보다 숫자가 줄었군요. 손님이 사라지시니 진행자로서는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경매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이번 회차의 경매 물품은, 이미 보셨겠지만 보통이 아닙니다. 하나하나가 진미, 보물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지요.”
“잡담은 되었다.”
“……죄송합니다, 대공 우파 님. 그럼 곧장 진행을 해 볼까요?”
우파는 급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특정하여 노리고 있다는 게 확실시되는 상황. 벌써 다른 파벌과 힘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확실히 균형을 챙겨 와야 함이었다.
그리고 경매의 진행을 보고 싶은 건 다른 마족들도 매한가지였다. 창고에서 본 경매 물품은 작년과 비교가 안 되는 질을 유지하고 있었다.
중요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노력만 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얻을 아이템과 마수가 수두룩했다.
“여러분의 평균 포인트가 급격히 높아져서, 저희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작년과 같을 수는 없었지요. 특히 첫 번째 물품만큼은 모든 분이 눈독을 들일 것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자, 그래서 소개합니다! 무려 에픽 등급의 아이템. 하나만 착용해도 급격한 무력의 증진을 기대할 수 있는 바로 그것! ‘하이엔달의 목걸이’입니다!”
어둠의 정령들이 보석함을 내오자 드보롱은 자랑스럽게 함 안의 물건을 소개했다.
마치 달의 축소형인 듯 몽환스러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목걸이.
느껴지는 마력의 순도도 굉장히 맑았다.
‘나왔군.’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나도 익히 아는 아이템이다.
그리고 반드시 사야만 하는 목걸이였다.
본래는 아리엘 디아블로가 착용했을 그것.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가만히 심안을 열었다.
이름- 하이엔달의 목걸이(Epic)
설명: 선지자이자 검의 주인이었던 하이엔달의 목걸이. 어두운 하늘을 비춰 주는 달의 마력에 흠뻑 취한 그는 사후 달 자체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 달이 떴을 때 마력이 3 상승한다. 달빛을 모아 다루는 비기 검술 ‘달빛 낙하(Epic, Passive)’ 사용 가능.
* 마력이 90 이상이면 달빛을 모으는 속도가 빨라진다.
하이엔달의 목걸이 자체에는 크게 이렇다 할 효용이 없었다.
달이 떴을 때 마력 3이 증가한다는 옵션 자체도 썩 쓸 만하다 하기는 어려웠다.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에서조차 가능한 수치. 허나, 비기 검술이라 일컬어지는 ‘달빛 낙하’는 반드시 익힐 필요가 있었다.
비기라 이름 붙여진 것은 제약이 있지만 사용키에 따라서 등급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달빛 낙하는 한 손 검술로도, 쌍검술로도 이용이 가능한 전천후 스킬이다. 황제의 검을 얻고 쌍검술을 사용하게 된 내게는 절실히 필요한 것이었다.
마족들은 각자 가진 관찰 계열 스킬을 발동시켰다.
이후 번들거리는 눈으로 하이엔달의 목걸이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마음에 든다는 듯 드보롱이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경매 시작가는…… 100만 포인트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