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16화
100만!
시작가가 높다. 평균 포인트 보유치에 근접하는 수치였다.
그러나 하이엔달의 이름이 붙어 있다면 그만한 값어치는 있다. 검의 주인 하이엔달. 홀로 존재한 마족이며 그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는 게 없지만 적어도 검을 다루는 데 있어선 독보적인 달인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100만.”
“오오! 조금의 고민도 없으시군요. 아리엘 디아블로 님께서 100만 포인트를 부르셨습니다.”
아리엘 디아블로의 눈이 빛났다. 그녀는 모든 무기를 다루는 자, 웨폰 마스터다. 비전 검술마저 익힐 수 있는 아이템이니 눈독을 들이는 게 당연했다.
병장기술에 있어서 그녀의 욕심은 남달랐고, 강한 집착 또한 있었다. 모든 마족이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쉽사리 ‘도전장’을 내밀 수가 없었다.
도전장…… 그래, 도전장이다.
그냥 무기였다면 조금은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유일무이한 비전 검술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진정한 달인은 무기를 따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녀의 손에 쥐어진 무기는 하나같이 대단한 파괴력을 선보이곤 했다. 수많은 병장기술을 습득하고 익혔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하이엔달의 비전 검술 달빛 낙하가 추가된다면 그녀의 실력은 한 단계 진일보할 게 자명하였다. 전생에서 그 모습을 직접 본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검술의 가치를 알아본 아리엘은 흥분한 상태였다. 기다란 염소의 뿔이 더욱 길어지며 마력을 개방시키는 중이었다.
“110만.”
하여, 나는 작게 입을 열었다.
순간 회장의 분위기가 냉랭하게 굳어 버렸다. 아리엘의 싸늘한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경매의 입찰은 기본적으로 모두에게 평등하다. 그것을 대우이니 도전이니 하며 눈치 보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얻고 싶은 게 있다면 얻으면 그만이다.
작년, 재작년과는 비교도 안 될 포인트를 보유한 나다.
아리엘 디아블로가 어느 정도의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 봤자 한계는 명확할 터.
드보롱이 고개를 크게 주억였다.
“110만 포인트! 랜달프 브뤼시엘 님, 정말 마성이 강한 남자이시군요.”
“120만.”
“아아, 아리엘 님! 치열한 접전이 예상됩니다.”
하이엔달의 목걸이가 어지간히 탐이 난 모양이다. 나는 잠시 한 박자 쉬며 주변 마족들의 동태를 살폈다. 시작가 100만. 적어도 공작 이상의 마족만 참여 가능했다. 그들 정도라면 천사의 침공 이벤트가 일어났을 때 막대한 포인트를 벌어들였을 것이었으므로.
일단 우파 진영은 조용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즉석에서 이용할 수 있는 전력.
고로, 강한 마수다.
비전 검술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탐을 내는 휘하 마족도 있긴 했지만 우파가 억제시키고 있는 듯했다.
오쿨루스도, 판데모니엄도 따로 노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적당히 눌러 줘야겠군.’
아리엘만 눌러 주면 적이 없다는 뜻.
다른 마족의 간을 보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으니 적당히 눌러 줄 필요가 있었다.
치열?
글쎄.
“150만.”
“……이번에도 작년과 같은 일이 벌어질지요? 랜달프 님께서 150만 포인트를 부르셨습니다!”
작년, 경매의 옥션 대부분을 내가 독식했다.
그리고 올해도 그럴 작정이다.
아리엘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그럴 수밖에. 130만의 평균 포인트. 그중 30만을 내가 올려 버렸다. 실질적인 평균치는 100만에 근접한다.
아무리 대공이라도 150만 이상은 없거나 아주 부담스러울 것이었다.
“150만 나왔습니다. 정말 아무도 안 계십니까?”
드보롱이 조심스럽게 회장을 살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하이엔달의 목걸이가 랜달프 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낙찰된 물품은…… 아시죠?”
경매가 끝난 직후 균열을 통해 던전으로 이동된다.
드보롱이 장난기가 가득 담긴 윙크를 내게 날렸다.
나는 가만히 팔짱을 꼈다.
다음 경매 물품도 눈길을 잡아끌기엔 충분했다.
“조금 특이한 리치를 소개하겠습니다. 보통의 리치는 ‘죽음’을 연상시키는데요. 희한하게도 ‘생명’을 야기하는 리치가 있더군요. 리치, ‘가파람’입니다.”
철창도 필요 없다.
위풍당당하게 하얀색의 로브를 걸치며 걸어오는 리치.
신선한 피부를 덧씌웠는지 썩은 내는 나지 않지만 모든 동작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놀라운 부분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연구를 계속하게 해 줄 수 있는 마족을 찾는다. 내 1년 연구 비용은 포인트로 환산하면 대충 300만쯤 된다. 나를 원조하던 놈이 파산해서 어쩔 수 없이 어둠의 정령과 계약을 한 것이다. 이곳이라면 내 연구에 도움이 될 자들이 많다고 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하는군요?”
드보롱이 받아쳤다.
이건 조금 특이하다.
아니, 특이한 정도를 넘어섰다.
직접 자신을 어필하는 마수라니?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일진대.’
실은 드보롱의 쪽지를 받은 다음부터 계속해서 드는 의문이다.
분명히 들어 본 이름인데 잡힐 듯 말 듯 떠오르지 않았다.
“생명을 연구한다? 두루뭉술하군. 제대로 말해 봐라.”
우파가 말했다. 그러자 가파람이 하얀색의 로브 속에서 유리병 안에 든, 태아 형태의 무언가를 꺼냈다.
“직접 제조한 호문쿨루스다. 비록 실패작이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는 생각한다. 내 목표는 마도와 생명공학의 신이라 불리던 ‘델라이시스’를 넘어서서 보다 완벽한 호문쿨루스를 창조해 내는 것이다.”
호문쿨루스.
무결점의 완벽한 생명체.
델라이시스라 불리던, 인간인지 마족인지 타락한 천족인지 애매한, 하지만 그쪽 분야에선 더 이상 적수가 없던 이가 만들어 낸 지고의 마수였다.
성체가 되기까지 고작 한 달. 이후 주변의 모든 걸 습득하는 데 3개월이면 충분하다. 문제는 수명이 극도로 짧아서 3년 이내에 사망한다는 것.
보다 완벽한 호문쿨루스라면 이 수명의 최대치를 늘리겠다는 뜻이었다. 허나 그 문제를 해결한 이는 아직까지 없었다.
“허무맹랑하군.”
판데모니엄이 말했다.
그는 주문에 통달한 마족이었고, 마도와도 긴밀하게 닿아 있었다.
진정으로 완벽한 호문쿨루스의 완성에 회의적이기도 했다.
이에 가파람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지? 마도에는 끝이 없다. 호문쿨루스도 지나가는 과정에 불과하다면 내가 밟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일을 하는 데 몇 년을 쏟아부었느냐?”
판데모니엄이 썩은 미소를 지은 채 묻자 가파람이 답했다.
“올해로 360년을 맞이하는군.”
“740년. 두 배 조금 넘는군. 내가 호문쿨루스를 연구한 시간이.”
그러고 보면 대공 중 나이가 가장 많은 게 판데모니엄이다. 그런 인상이 없기는 하지만 전대 마왕이 존재했을 당시부터 있었다고 하니 쉽사리 나이를 예상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불가능했으니 나도 불가능할 것이다? 웃기지 마라!”
“그냥 불가능의 영역이다. 간단하게 말해 볼까? 1과 1을 더하면 2이지. 여기에 다른 걸 보태서 3을 만들면 이미 그것은 문제 자체에서 벗어나 버린다. 줄여도 마찬가지다. 전혀 다른 게 나타난다는 거다. 이미 호문쿨루스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완성되어 있다. 단지 수명이 극도로 짧을 뿐이야.”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가파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문쿨루스…… 가파람. 특수 이벤트.’
떠오른 것이다. 가파람에 대한 기억이 말이다.
전생의 일이었다. 최후의 전쟁에 들어가기 전 느닷없이 떠오른 특수 이벤트. 가파람이 완성형 호문쿨루스 한 기와 키메라 군단을 대동한 채 나타났다.
그리고 공작의 던전 하나가 박살 났다.
최후의 전쟁으로 다가갈수록 마족들이 지닌 역량, 전력은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었건만 그중에서도 특출 난 힘을 지닌 공작의 던전을 공략해 버렸다.
이어 파벌 마족들의 무수한 공격을 받고 죽기는 했지만 가파람은 웃었다. ‘연구는 완성되었다. 확인은 끝났다.’고 웃으면서 최후를 맞이했다.
당시 확인한 호문쿨루스도 대단하였다. 호문쿨루스는 특성상 모든 걸 빠르게 익히며 빠르게 강해진다. 그래서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고, 한계가 있었다. 한데 가파람이 대동한 호문쿨루스는 그 한계를 가볍게 넘겨 버렸다. 최상급 4Lv의 마수 마룡과 일전을 벌인 것이다!
‘연구는 완성되었다.’
가파람을 바라본다.
잔뜩 열이 난 기색.
주변 마족들의 반응도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본래는 마계 옥션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할 이. 급격한 포인트의 증가로 마수들을 모으다가 우연히 걸린 듯싶었다.
“성공할 것이다. 단초는 모두 마련되었다! 연구만 계속하면 돼!”
버럭버럭 외쳐 봤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호문쿨루스라…….”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마수지.”
“1년에 300만 포인트를 버릴 수는 없지 않나. 그만한 포인트를 벌어들이는 자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 다른 건 논외로 치더라도 ‘1년에 300만 포인트의 연구비’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초기에만 그 정도가 필요하다. 공방을 만들고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1년에 100만이어도 충분해!”
가파람은 절실했다. 목소리도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았다. 100만 포인트. 땅을 파서 나오는 수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평범한 마족이라면 1년 내내 아껴야 겨우 모을 수 있었다.
쉬쉬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그 찰나, 내가 입을 열었다.
“드보롱.”
“예, 예? 랜달프 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래서, 시작가는?”
“아아, 0입니다. 능력치 자체는 평범한 리치와 다를 바가 없는지라…… 특별히 준비를 해 봤습니다만.”
“망할 마족 나부랭이들! 너희는 내 연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티끌만큼도 알지 못해! 알지 못하는 것은 죄다! 이 죄악스러운 놈들아!”
“……인기는 없을 것 같군요.”
드보롱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닥치세요, 가파람. 운명에 맡긴다고 저희와 약조를 하셨을 겁니다. 낙찰되면 그대의 의지는 순전히 손님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젠장!”
가파람은 입맛을 쓰게 다시며 발을 굴렀다.
어쨌건 계약을 했다면 그의 의지는 상관이 없었다. 그저 운이 좋아 연구를 지속시켜 줄 마족을 만나는 게 그가 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잠시 소란이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그럼 계속해서 경매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소개는 이미 끝났고, 시작가도 제가 말한 대로 0! 없습니다. 입맛에 맞게 불러 주시면 되겠습니다.”
아무리 막 나간대도 리치다. 상점에서 사자면 28만 포인트가 들어가는.
“1,000.”
“그럼 나는 5,000포인트 정도 부르지.”
“5만!”
“10만. 그 이상은 별 효율이 없을 것 같군. 어차피 문제를 일으킬 게 뻔해.”
그러나 10만 이후로는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
마계 옥션. 싸게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기회. 누구나 상점에서 살 수 있고, 성격 나빠 보이는 리치를 비싼 값에 구할 마족은 없었다.
호문쿨루스 이야기는 아예 안중 밖이었다. 그런 연구를 지속시켜 줄 여력이 있는 마족도 거의 없거니와, 낭비가 될 가능성이 큰 일이니 리치로서 부려 먹겠단 마음만 있었다.
가파람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몸이 떨리며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자신의 연구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게 어지간히 분한 것 같았다.
“10만 포인트까지 나왔습니다. 더 안 계십니까?”
드보롱마저도 기대를 완전히 접은 모습이다.
가파람이 마지막 악을 썼다.
“내 연구는 반드시 완성된다! 완성된 호문쿨루스는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리라! 어찌 그것을 모른단 말인가?”
“제대로 미쳤군. 드보롱, 입찰을 취소하고 싶다만 가능한가?”
“죄송하지만 불가능합니다.”
조롱과 멸시.
가파람의 연구는 전혀 인정을 받지 못했다.
드보롱은 이마를 짚으며 빨리 경매를 종결시키려 했다.
“그럼 10만에…….”
“50만.”
“……랜달프 님, 제가 잘못 들었습니까?”
“50만이라 했다, 드보롱.”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드보롱은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그의 입장에선 무엇이든 비싸게 팔리면 득이 되었다.
가파람이 드보롱을 쳐다보자 드보롱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를 충당할 포인트의 소유자임을 알려 준 것이다. 그제야 가파람의 표정에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손해가 뻔할 짓을 하는군.”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서…… 도통 모를 놈이야.”
물론 마족들의 반응은 전혀 반대였다.
“50만 포인트에 리치 ‘가파람’이 낙찰되었습니다! 랜달프 님, 축하합니다.”
가파람이 내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후 고개를 들고, 다른 마족들을 바라보며 ‘선언’했다.
“무지한 놈들! 후회하게 해 주마! 내 연구는 반드시 완성된다! 그때 가서 눈독 들여 봤자 늦었다!”
“끌고 가!!”
천하의 드보롱이 반말로 소리를 내지를 정도다. 이어 어둠의 정령들이 나와 가파람을 억지로 끌고 갔다. 끌려가는 가파람의 표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잠시의 정적.
여태껏 나온 마수 중 임펙트 면에선 가장 확실하다 할 수 있겠다.
안 좋은 쪽으로.
“……흠흠, 다음 경매 물품을 바로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혹시 ‘영혼의 계곡’을 아십니까? 그곳에 내려오는 전설. 저희가 한 번 확인해 봤습니다. 찾았습니다. ‘영혼 나비’를 말입니다.”
그래도 경매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