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117화 (117/242)

던전 사냥꾼 117화

영혼의 계곡.

마계의 여러 금지된 장소 중 한 곳이다.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은 정령도 다를 바가 없었다. 도리어 영체에 가까울수록 큰 영향을 받는다.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고서 원정에 성공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경매에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는 방증이었다.

‘아도니스, 급해졌군.’

어둠의 정령왕. 다른 정령왕들이 보내온 첩자를 확인하곤 마음이 급해진 게 분명하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격’을 올리고자 출혈을 감수한 것이다. 그리하면 정령계의 평정쯤은 간단하게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영혼 나비라.’

작은 수정 안.

나비 형상의 검은색 무언가가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영혼의 계곡에서 유일하게 영향을 받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나비다.

“보이십니까? 이 아름다운 자태가! 영혼 나비는 외부의 해로운 마력을 감지하고 방어해 냅니다. 그렇기에 영혼의 계곡에서도 자유롭습니다. 그저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항마력을 높여 주며 누군가가 거는 상태 이상으로부터 자유를 보장하지요. 지능이 낮은 분이라면 필수로 구입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의 차이가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입히는 게 상태 이상이다. 그것을 완전하게 방어할 수 있다면 천만금을 줘도 아깝지 않다. 하지만 심안으로 확인한 결과 효과는 있으되 완전하진 않았다.

이름- 영혼 나비

설명: 영혼의 계곡을 날아다니는 희귀한 나비. 어그러짐 속에서 태어났다.

* 누군가가 거는 상태 이상으로부터 10%의 보정 효과를 가짐.

* 무기와 조합 가능.

그러나 숨겨진 옵션이 내 시선을 끌었다.

‘조합하면 효과가 계승되는 모양이군.’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지만 금지에서 구한 것치곤 조금 초라하다.

그 순간 드보롱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고작 이 나비 한 마리를 건지자고 저희가 영혼의 계곡에 발을 들이겠습니까? 놀랍게도, 계곡의 가장 낮은 곳에서 30기의 주인 없는 데스 나이트를 발견했습니다.”

상급 3Lv의 마수. 그냥 상점에서 구입하려거든 15만 포인트가 필요한 그것!

30기의 데스 나이트가 영혼 없는 몸놀림으로 말을 탄 채 걸어 나왔다.

사이한 마력이 주변으로 뻗었다. 데스 나이트는 그 특성상 다수일 때 더욱 강해진다. 30기라면 파괴력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구매한 즉시 전력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겠다.

‘애매해.’

나는 턱을 쓸었다.

문제는 영혼 나비다. 데스 나이트는 가격대가 확실하게 형성되어 있지만 영혼 나비는 얼마를 측정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저 데스 나이트만 나왔다면 100~150만 사이에 결정지어졌을 터. 그러나 영혼 나비로 인해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았다.

한마디로, 더 비싸게 팔아먹으려 수작을 부린 거다.

“경매 시작가는 50만 포인트 되겠습니다. 고민하지 마십시오. 30기의 데스 나이트라면 이루어 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아마 몇몇 손님분께선 마계에 있을 당시 다수의 데스 나이트를 다뤄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얼마나 든든했습니까? 그들을 맞이한 적들은 또 얼마나 두려웠을지요!”

“50만.”

“공작 비자츠 님께서 입찰하셨습니다. 50만!”

“70만.”

“공작 드리칼 님!”

“80만.”

“오오, 대공 우파 님께서 참전하셨습니다!”

경쟁이 과열됐다.

귀족들 사이에서 데스 나이트의 숫자는 강함의 상징이었다. 그들만큼 우직하고 강력한 기사는 또 없었고, 당연히 대군을 몰고 적을 섬멸해 본 마족도 있을 터였다.

잘 노렸다.

다수의 데스 나이트가 가져다주는 파괴력을 확실하게 어필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150만 아래라면 구입하는 게 이득이다.’

그 이상이라면 미련을 버리는 게 낫다. 영혼 나비가 탐은 나지만 큰 포인트를 들여서 구매할 가치가 있지는 않았다.

자칫 욕심을 부리다가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일단 간을 보고, 안 된다 싶으면 바람잡이 역할로 돌아서는 편이 괜찮을 것 같았다.

아직 남은 경매 물품은 많았다. 그리고 나도 포인트가 무한하진 않았다.

“100만.”

“맙소사, 랜달프 님! 벌써 세 번 연속 참가하셨습니다. 과연 이번에도 가져갈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저 드보롱은 무척이나 기대는군요!”

분위기가 다시금 싸늘해졌다. 1년 차, 2년 차…… 3년 차까지. 내 독주가 멈추지 않는 탓이다. 동시에 그들은 내게 확실히 무언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나마 오쿨루스는 어느 정도 나를 알고, 판데모니엄은 대강 추측하는 중이라지만 나머지 아리엘과 우파 파벌은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안 계십니까? 이대로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물품입니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마구 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보았다.

최상급의 마수, ‘마고’를 말이다.

데스 나이트 30기도 강하지만 마고에 비할 바는 아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만큼 포인트를 비축해 둘 필요가 있었다.

“110만.”

“휘유~ 대공 오쿨루스 님! 반갑습니다. 부디 막강한 데스 나이트들의 주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드보롱이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오쿨루스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오쿨루스는 데스 나이트를 싫어할진대?’

확신은 못하지만 오쿨루스가 데스 나이트를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연과 동화된 마족이며 죽음을 몰고 다니는 데스 나이트를 기피하는 성향이 있었다.

‘잔혹한 사령관과 싸우며 잃은 손실을 만회하려는 작정인가?’

영혼 나비 때문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았다. 그가 사용하는 스킬 ‘현안’이 심안보다 상위의 것이라고는 여길 수 없었다.

저의가 무엇인가.

그저 병력만 채울 셈이라면 욕심을 크게 부리진 않을 것이다.

“120만.”

“랜달프 님…… 도저히 끝을 알 수가 없습니다!”

“130만.”

“오쿨루스 님!”

“140만.”

“다시 랜달프 님이 앞서갑니다!”

“150만.”

“천장의 소녀상과 소년상이 웃지 않습니다. 그만한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역시 대공의 좌에 앉은 분답습니다!”

시선을 돌렸다.

오쿨루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병력만 채울 셈이 아니다. 저 눈빛, 저 표정…… 그는 내게 ‘과시’하고 있었다.

‘과시라고?’

150만 포인트면 이미 평균치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그만한 포인트를 투자해서 하고자 하는 게 고작 과시란 말인가!

마치 나를 도발하는 태도다.

그런데 가슴을 찌르는 것만 같은 묘한 감각이 들었다.

가만히 심안을 열었다. 느닷없는 견제. 오쿨루스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면 그것을 알아볼 작정이었다.

[‘심안(Ex U)’의 정보가 ‘세계의 눈(Epic)’에 의해 읽혔습니다. 방어율 20%!]

[지능 보정(93)! 하지만 상대의 마력이 너무 높습니다. 효과가 미비합니다. 방어율 23%!]

[방어에 실패했습니다.]

[주의! ‘세계의 눈(Epic)’이 ‘심안(Ex U)’을 반사합니다. ‘랜달프 브뤼시엘’의 상세 정보가 ‘오쿨루스’에게 드러납니다.]

현기증이 몰려왔다. 눈앞을 어지럽히는 무수한 숫자들.

내 몸에서도 몇몇 숫자가 튀어나왔다.

주변 마족들은 반응이 없다. 오로지 나에게만 보이는 현상인 듯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나조차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드러났다?

오쿨루스가 이빨을 보이며 미소 지었다. ‘너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표정. 동시에 “호오!” 소리를 내며 감탄을 흘린다.

‘유도당했다.’

150만을 지르며 달린 이유.

내게 보인 태도들.

모두 내가 심안을 자신에게 사용하길 바라서다.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로 인해 모든 게 변화한 만큼,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으리라고 예상을 해야 했건만!

절로 미간을 좁혔다.

‘세계의 눈. 필시 현안의 진화형 스킬일 것이다. 하지만…… 전생에선 보이지 않았던 스킬이야. 하물며 이 짧은 시간에 에픽 등급을 어떻게 만들어 낸 거지?’

강하게 쥔 주먹에선 땀이 흘렀다. 침이 말랐다.

본래 오쿨루스는 세계의 눈이란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전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부딪힌 이후 커다란 변화가 있었음이다.

하지만 여전히 비정상적이다.

고작 몇 개월 만에 유니크의 스킬을 에픽 등급으로 끌어 올리는 게 가능한 일이던가?

나 또한 몇 번의 우연이 겹쳐서 가능하지 않았던가.

마음이 급해졌다.

내 상태창을 보았다면 보다 많은 걸 알 수 있다. 많은 걸 추론해 낼 수 있었다.

“영혼 나비와 데스 나이트가 오쿨루스 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드보롱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오로지 오쿨루스만을 강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안이했군.’

세계의 눈은 상대가 사용한 스킬의 구조를 읽고 반사해 내는 게 가능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이것을 어찌 수습할 것인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준비된 자의 서약’이 대공 오쿨루스 님께 낙찰되었습니다!”

“마수 ‘고롱골’이 대공 오쿨루스 님께 낙찰되었습니다!”

“‘자츠발의 신발’이……!”

이어지는 경매.

오쿨루스의 폭주가 시작됐다.

다섯 개의 아이템을 더 거머쥐어, 10번째 경매 물품이 나왔을 때 그중 여섯 개를 낙찰받았다.

무려 500만 포인트를 사용한 것이다.

나는 언제나 효율을 중시했기에 가파람의 경우처럼 가치를 인정해 준 것이 아니라면 한도 이상의 포인트를 부르지 않았다. 바람잡이 역할을 할 때도 마지노선을 정해 두고 움직였다.

그런데…… 오쿨루스는 언제나 그 마지노선 바로 위에 단계의 가격을 불렀다.

내가 낙찰을 받으려거든 정해 둔 기준을 깰 수밖에 없는 상황.

‘오쿨루스만이 경매에 참여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또 있었다.

오쿨루스 파벌의 모든 마족이 경매에 참가하지 않고 있었다. 참가하는 이는 오로지 오쿨루스뿐이었다.

‘이상하군.’

꼭 다른 마족의 포인트를 가져와서 사용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마신이 만들어 낸 시스템은 결코 허술하지 않다.

시스템에 가장 정통한 어둠의 정령들조차 균열을 여는데 막대한 위험과 손해를 감수한다지 않나.

포인트 거래 역시 정당한 가치의 물건만이 허락을 받는다.

‘정당한 가치의 물건…….’

그래, 따져 보면 이론상 가능은 하다.

던전의 모든 것을 휘하 마족들에게 판매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확고한 믿음 없이는 저지를 수 없는 일이었다. 만에 하나 휘하 마족 중 하나가 배신하거든 여파를 걷잡을 수 없다.

그리고 파벌 내의 모든 마족이 서로를 믿는 건 말도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불가능하다.

‘오쿨루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이냐.’

변화가 있었다. 나는 그 변화를 읽지 못했다.

12명. 오쿨루스 파벌 내의 포인트를 모두 합산해도 나보다 적다. 허나 정녕 얻고 싶은 걸 얻으려거든 나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자, 드디어 11번째 경매 물품의 등장입니다. 창고에서 모두 주목하셨으리라 장담합니다. 선녀족이라 불리기도 하고, ‘마고’라 불리기도 하는 최상급의 마수. 바람을 타고 다니며 그 눈은 억만금의 가치가 있다 전해지는 전설의 마수!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마족들의 눈이 번뜩였다.

모두가 기다리던 게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

차례를 알았던 나조차 지금만큼은 긴장이 되었다.

특히 오쿨루스를 견제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내 상태창을 읽었지만 내가 보유한 포인트의 총합만큼은 알지 못할 것이었다.

쾅! 쾅!

곧 거대한 철창이 정령들에 의해 끌려왔다. 그 안에 마고가 있었다.

마고는 몸을 뒤집으며 악을 질러 댔다.

그 모습을 확인한 드보롱이 한쪽 손을 내밀며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시작가는 130만 포인트 되겠습니다.”

“500만.”

“……오쿨루스 님?”

“부족한가?”

“아, 아닙니다. 오……쿨루스 님께서 500만 포인트를 부르셨습니다.”

드보롱이 화들짝 놀랐다. 500만이라니!

천장의 소년상과 소녀상은 웃지 않았다. 그만한 포인트를 보유했고, 질렀다.

한마디로 떨거지는 모두 꺼지라는 뜻이었다.

실제로 참가할 수 있는 마족은 없었다.

마고를 노리던 대공 우파의 경우엔 아예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우파는 안중에도 없다. 오쿨루스가 웃음을 머금은 채 나를 흘겼다.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

‘오쿨루스……!’

정녕 나와 적대할 셈인가?

내 상태창을 읽고, 내가 가진 힘을 확인했음에도?

그렇다면 상대를 잘못 골랐다.

꽈드득!

이를 갈았다.

다른 건 몰라도 마고는 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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