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18화
유일한 최상급 2Lv의 마수. 내년, 혹은 내후년까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적어도 1년 이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다. 나는 자리를 보다 굳건하게 지켜야만 했다. 오쿨루스의 작전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정보가 넘어간 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도리어 여기서 주춤하며 나 자신을 숨기려 들면 먹기 좋은 먹잇감으로 보일 따름이다.
“600만.”
“랜달프 님, 지지 않겠다! 이럴 수가. 믿기지 않는군요. 달리는 단위가 다릅니다.”
“700만.”
“미쳤군요, 정말 미쳤습니다! 마고의 울음소리가 마치 천상의 하모니처럼 들립니다. 과연 끝은 어디일지요?”
이로써 오쿨루스는 애당초 1,200만의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걸 알렸다. 나는 눈썹을 찡그리며 고민했다. 천만금의 가치가 있다고는 하나, 이대로 천만을 넘길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800만.”
“아아, 마고의 진정한 값어치를 생각하면 타당한 가격입니다만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전율입니다. 랜달프 님께서 800만을 부르셨습니다!”
이후 정적이 흘렀다. 모든 마족이 갖은 감정을 갖고 오쿨루스와 나를 바라봤다. 경악, 의문, 시기, 짜증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눈빛을 통해 드러났다.
그럴 수밖에.
평균 130만.
내가 올려 버린 30만을 제외하면 고작 100만.
경매는 개개인이 참여하는 것이고 많아 봤자 수백만이 한계라고 여겼다. 그것이 상식이니까. 그들 또한 2년간 던전을 경영해 보았으니 현실적인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포인트라는 게 의외로 모으기 어려움을 말이다.
그런데, 상식이 절찬리 깨지는 중이었다. 이미 반쯤은 박살 났다.
어떻게?
가장 먼저 드는 의심이다.
그러나 답이 도출될 리 없다. 나는 미래의 일을 알고 있고 그를 토대 삼아 여러 일을 벌였기에 가능했다. 하여 지난 2년간 내가 독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오쿨루스.
“크하하하하!”
그가 크게 웃었다.
배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오쿨루스의 성격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 그는 감정의 표현을 확실히 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특히 다른 마족들 앞에선 목석마냥 행동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거리낌이 없다.
여봐란듯이 몸을 들썩이며 크게 움직였다.
“역시! 랜달프 브뤼시엘! 네놈도 ‘선’을 넘었구나! 일전에 보인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어! 크하하하하!”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뭐라는 건지.
선?
처음 듣는 소리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 대해 정의하고 판단하는 그 기분, 정말 별로였다. 그 누군가가 하물며 대공임에야.
그러거나 말거나 오쿨루스는 계속해서 짖었다.
“네놈이 알려 주지 않았더냐! 이 ‘게임’에 불가능은 없다고! 하룻강아지였던 놈이 말도 안 되는 성장을 보였지. 그것은 네놈이 ‘선’을 넘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오쿨루스,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할 거라면 혼자 벽을 보고 대화하라. 더는 못 들어 주겠군.”
드보롱에게 고갯짓을 했다.
하지만 드보롱조차 오쿨루스의 말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 듯 반응하지 않았다.
대공, 공작, 이하 모든 마족이 오쿨루스를 집중하고 있었다.
“마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순간 힘이 약해졌음을 느꼈다. 나는 그것을 단순히 제약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어…… 점차 힘을 회복해 가며 ‘선’을 넘은 지금은 알 것 같다. 약화는 도약을 위한 준비였다. 나는 강해졌고, 더욱 강해질 것이며 종국에는 진화하리라. 마왕을 넘어선 무언가의 존재로!”
아주 열변을 토했다.
나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마족 전부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녕 궁금하지 않은 건가? 어디까지 가능할지 어떠한 존재로 거듭날지 말이다! 왜 그대들은 인간 따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거냐. 이건 지구라는 행성을 멸망시키기 위한, 그런 단순한 일이 아님을 왜 못 알아보는 것인가!”
“오쿨루스…… 네 녀석, 미쳤구나?”
아리엘.
그녀가 싸늘하게 말했다.
마왕의 적자. 오로지 마왕에 모든 무게를 건 대공.
한데 그것을 ‘단순한 일’로 치부했다.
확실히 오쿨루스의 발언은 도를 넘었다.
“본래라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에게 득 될 일은 결코 하지 않는 게 우리이니 말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아쉽다. 홀로 독보하며 진화하거든 결국 종으로서의 기능은 불가능하지. 모든 걸 초월했대도 그것을 ‘종’으로 규정할 순 없다. 그래서 나는 그대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은 거다. 랜달프 브뤼시엘은 이 기회를 먼저 접했지만 감췄지. 본디 약자였고, 강해진 지금은 거리낄 게 없이 충동적이야. 강한 자존심, 자존감…… 속이 깊은 척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다. 기회를 독식하기엔 너무 어려. 너무 약했고…… 근본 자체가 약하다면 어느 정도 선까지 강해질 순 있겠지만 진화는 불가능하지. 하지만 마계를 4등분 하여 수백 년간 주름잡았던 우리 ‘대공’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는가!”
구구절절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나는 부족하고, 대공들은 충분하다는 것.
진정한 적대적 선언이다.
자연스럽게 인상이 구겨졌다.
“선이 뭔가 했더니 휘하 마족 전부와 혼을 일체화시켰군. 오쿨루스, 진정 미쳐 버린 건가?”
그리고 그때 판데모니엄이 나섰다.
주술과 마도에 정통한 늙은 괴물.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계속해서 마력의 흐름이 바뀌는 게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하! 마족이 자연을 다룬다 할 때부터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끝내 자멸의 길로 들어섰구나.”
휘하에 존재하는 열두 마족. 그들과 혼을 동화시켰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휘하 마족들의 포인트도 함께 사용이 가능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는 결국 파멸을 불러온다. 혼을 동화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했고,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마계에서조차 금지된 일 중에서 선두를 달리는 그런 위험도를 내포했다.
그러나 오쿨루스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싶었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진화의 시작이다. 모두와 이어진 지금 나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됐다. 혼의 불안정함은 내 ‘자연화’ 스킬로 조금씩 회복할 수 있지. 물론 이 방법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여러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요컨대, 상식을 깨고 행동하라는 의미다, 판데모니엄.”
판데모니엄이 쯧, 혀를 찼다. 더는 말이 통하지 않을 걸 깨달아서다. 무엇보다 다른 대공을 걱정할 정도로 그의 아량이 크지는 않았다.
다른 대공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혼의 연결, 동화. 그것이 가져다주는 위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정신 나간 짓거리로 ‘진화’를 운운하는 오쿨루스가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막대한 포인트를 보유한 것은 굉장하나, 그게 전부다.
“그래, 인정하기 싫겠지.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선’을 넘는 자만이 이 게임에서 승리하고 모든 것을 거머쥘 자격을 얻게 될 것이란 사실을! 부디…… 사냥꾼에게 사냥당하기 전에 깨달았으면 좋겠군. 최후에서 맞이하는 게 그대들이길 바랄 따름이다.”
사냥꾼은 나를 일컫는 말이다.
내 칭호까지 확인을 한 게 분명했다.
이어서 오쿨루스가 등을 돌렸다. 그를 따라 마치 하나처럼 열둘의 휘하 마족들이 움직였다.
끼이익!
쿵!
문이 닫히며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오쿨루스는 다섯 개의 물건을 낙찰하고 경매를 기권한 것이었다.
나는 가만히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래는 우파를 먼저 제거하려 하였으나…….’
계획이란 항시 변하는 법.
우파도 나중에 가면 귀찮아질 게 분명하여 우선순위에 둔 것에 불과했다. 우파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진흙탕 싸움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 싹을 자르고 줄기를 거둬낼 작정이었다.
한데, 더 귀찮아질 것 같은 놈이 나타났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잔혹한 사령관과 함께할 그때 모든 걸 쏟아부어 모험을 걸어 볼 것을 그랬다.
나도 무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서 쉬쉬했지만 그 일이 이렇게 날아올 줄은.
곰곰이 방법을 떠올려 봤다.
다른 마족과 던전을 집어삼켜 힘을 키운 뒤 오쿨루스를 친다?
우파를 상대할 땐 그럴 수 있다. 그가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쿨루스는 나를 안다. 나도 잘 모르는 나에 대한 기준을 세우기도 했다.
당연히 그런 지지부진한 방법을 사용할 순 없었다.
그러니…….
‘오쿨루스. 너는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
우선, 놈부터 제거해야겠다.
경매는 속행됐다.
결과적으로 마고는 내 손아귀에 떨어지게 되었다.
남은 포인트는 1,100만가량.
본래 사려고 한 아이템들이 있었으나 나는 생각을 바꿨다.
전체적인 전력의 보강에 힘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정말로 오쿨루스가 12명의 마족과 혼을 동화시켰다면 한 곳만 처리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한 곳을 처리하면 순식간에 집결하여 내 뒤를 노릴 수도 있었다.
한 번에 목을 따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오쿨루스를 포함한 열세 마족을 동시에 상대키엔 아직 힘이 부족했다.
‘본체를 처리하면 문제가 생길 테지. 알아서 동화된 그들 모두가 자멸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오쿨루스만 죽인다.
그가 본체인 건 확실했고, 본체에 문제가 생기면 분신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운이 좋으면 오쿨루스를 죽인 순간 나머지 열두 마족이 자멸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번 경매는 그것을 위한 사전작업이다.
원래의 계획은 보다 멀리 보고 힘을 기르는데 적당한 아이템을 선택할 셈이었지만…….
“드워킹! 철을 다루는데 가장 완벽한 존재라고 일컬어지는 드워프의 최종 형태입니다. 드워킹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금속을 알고 다룰 수 있다고 하지요! 시작가는 60만입니다!”
“60만.”
“후작 아나스타샤 님!”
“70만.”
“대공 우파 님!”
“80만.”
“아아, 또다시 랜달프 님! 그의 끝은 어디인가!”
내가 나서자 다시금 분위기가 죽었다. 바람잡이도 한두 번이지 알맹이만 골라서 쏙쏙 빠지는데 힘이 빠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 결과는 드보롱의 입을 통해 나타났다.
“80만 포인트에 드워킹이 낙찰되었습니다. 랜달프 님, 축하드립니다!”
근원의 나무를 활용해 무구를 만들려거든 드워킹이 필수 불가결이었다. 스테인을 제외하면 나머지 드워프들의 실력은 고만고만했다.
전체적인 질적 향상을 위해서라도 드워킹이 필요했다.
드워킹이 만든 장비를 엘프, 혹은 무기를 사용하는 마수들에게 착용시키면 그 즉시 전력의 향상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드워킹은 80만 포인트 이상의 값어치가 있었다.
이후 몇 가지 아이템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대신 바람잡이 역할은 쉬지 않았다.
경매에 참여한 목적이 바뀌었대도, 최종 목표가 모든 마족인 이상 이런 작은 방해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이윽고 19번째 경매 물품이 나왔다.
“자, 다음 경매 물품을 소개하겠습니다. 작년 마계 옥션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었지요. M1과 M2를 말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철판같이 생겨서 그 진정한 값어치를 깨닫지 못한 분이 많으셨는데요, 오로지 구매자님만이 그 효용을 몸소 겪어 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겉으로 보기에도 훌륭합니다. M3입니다!”
처억, 처억.
느릿한 발소리.
곧 붉은색 전신 갑주와 기다란 랜스를 착용한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