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19화
‘다르군.’
M1, M2와 비교하여 비슷한 점은 거의 없었다. 색깔부터 외형까지 하물며 느껴지는 마력의 파장조차 같은 이름을 달고 나왔다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거기다가…… M3라니.
내 기억상에 없는 녀석이다. 저런 골렘이 있었다면 기억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가 동해 심안을 열었다.
이름: M3
능력치 :
힘 90 지능 0
민첩 90 체력 80 마력 80
잠재력(340/340)
특이 사항: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자아가 필요 없기에 지능이 한없이 0에 수렴합니다. 하지만 주인의 명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수행하는 최강의 골렘입니다. M1과 M2보다 더욱 개선되었습니다.
스킬: 질풍(Ex U), 연격(Ex U)
M3의 상태창을 확인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준수하다’는 것.
M1과 M2에 비해 모든 면에서 훌륭했다.
특히 질풍과 연격 스킬은 함께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충분히 최상급 마수와도 결전을 펼칠 수 있는 강자였다. 살짝 끗발이 부족하긴 하지만 마고를 얻지 못한 대공들이 눈독을 들이기엔 충분했다.
“시작가는 60만입니다!”
그저 장비를 만드는 게 전부인 드워킹은 열기가 뜨겁지 않았다. 무언가를 만들려면 그만한 재료가 들어가는 법. 나야 근원의 나무가 있어서 구매했다지만 다른 마족들은 크게 구애되지 않았다. 해서 생각보다 쉽게 얻을 수 있었다.
“60만.”
“공작 비자츠 님!”
“70만.”
“후작 가뉘슈 님!”
그러나 직접적인 전력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도 M1과 M2로 제법 재미를 봤기에 M3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80만.”
“뜨겁습니다. 굉장합니다! 백작 바하서스 님!”
가장 뜨거운 관심사였던 마고가 내게 낙찰되자 마족들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사려고자 하는 것을 사는 데 거리낌이 사라진 것이다.
물론 저 중에 바람잡이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속적으로 경매에 참여하지만 정작 낙찰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는 공작 비자츠 멘담이 좋은 예였다.
입찰이 적어지면 그제야 재미를 볼 셈이다. 그 혼자 움직일 리는 없고, 대공 우파가 사전에 지시한 것이리라.
‘다른 마족들이 탐낼 만한 것들, 초반에 가격을 띄워 후반부는 자신이 독식하겠다. 그런 의도겠지.’
마계 옥션의 특성상 앞부분에 좋은 게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중에 나오는 아이템이나 마수가 나쁘다고 할 수도 없었다. 나름 엄선한 작품들이기에 극후반에도 쓸 만한 것들이 종종 등장하곤 했다.
아마도…… 우파가 진정으로 노리는 건 후반부다. 초반의 가장 큰 이득이었던 마고의 입찰에는 아예 참여도 하지 못했으니 노선을 바꿔 아예 후반에 집중키로 한 것이다.
그러려거든 미리미리 경쟁자를 솎아 내야 함이었다. 유독 우파 진영의 마족들이 바람잡이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아주 틀린 예상은 아닐 듯싶었다.
‘전략을 확실하게 세웠군.’
다급한 줄로만 알았다. 실제로 우파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휘하 마족은 줄었고, 전력의 보강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경매가 시작된 직후부터 여유가 없는 듯 행동하며 다소 안달 나는 작태를 보였지만 이제는 그 행위들 하나하나가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연기.’
그렇다. 연기. 자신의 상황을 역으로 이용하여 주변 적을 훑어 낼 작정이다. 오쿨루스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뒤늦게야 우파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경매에 우파 파벌의 마족이 참여했지만 실제로 낙찰받은 물건은 없다. 그것을 나도 방금 전에 겨우 깨달았다.
‘오쿨루스가 괜찮은 연막이 되어 준 덕분이지.’
탁. 무릎을 때렸다.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 우파와 그의 파벌이 가려졌다. 우파에겐 큰 기회가 왔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대공들은 어떨까.
아리엘, 판데모니엄.
그들은 우파의 전략을 깨달았을까?
“90만.”
“그분이 출전하셨습니다. 백작 랜달프 님! 90만 포인트 나왔습니다.”
“100만.”
“아아, 이번엔 대공 우파님께서!”
우파는 여전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
어처구니가 없다. 대공이 직접 나서서 ‘연기’를 할 줄이야. 확실히 상황이 급변하긴 한 모양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우파의 상태는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마치 더는 상위 입찰하지 말라는 듯.
동시에 그는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반드시 상위 입찰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대개의 마족들에게 그 정도의 안목은 생겼다. 1년 차, 2년 차 때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지.’
더불어서 중립인 내가 마고를 구매했고, 오쿨루스가 금기시되는 방법으로 강해졌다. 조급해질 만했다. 그 조급함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좋은 마수나 아이템에 더욱 집착과 욕심을 부리는 게 당연해진 것이다.
“110만.”
“대공 판데모니엄까지! M3는 아주 막강한 골렘입니다. 마도에 정통하신 판데모니엄 님이시라면 M3의 천문학적 가치를 깨달으셨겠지요!”
여기서 우파가 보인 행동은 간단했다. 들릴 듯 말 듯 작게 손가락을 튕겨 낸 게 전부였다. 적당히 우파다우면서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훌륭한 연기다.
판데모니엄의 출현 이후로 사방이 정적에 휩싸였다.
110만 수준에서 결판이 나려는 징조였다.
드보롱이 막 입을 열고 마지막 선언을 하려는 그때.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120만.”
“질쏘냐. 백작 랜달프 님께서 다시금 상위 입찰하셨습니다!”
가만히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여태껏 고민 없이 빠르게 달려오기만 한 나다.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니 누군가의 머릿속에 고민이 들어찼을 것이다.
“더 안 계십니까? 3초를 새겠습니다. 더 이상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M3는 랜달프 님께 낙찰됩니다! 3, 2, 1!”
그러나 우파도 모험을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10만, 20만이라도 가격대를 올리는 수준에서 일단 만족하는 모양새다.
“축하합니다! M3가 랜달프 님께 낙찰되었습니다!”
자잘한 아이템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우파의 속셈이 뻔했고, 현재로선 나보다 그가 바람잡이에 어울렸다. 오쿨루스가 말한 ‘선을 넘은 자’의 범주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 탓에 입찰에 나서면 경매에 번지는 불길이 조금 사그라지는 감이 있었다.
나 또한 금기를 어겼다고 여겨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름 우호적이었던 아리엘마저 나를 싸늘하기 그지없는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이엔달의 목걸이를 뺏긴 걸 겸해 분노도 엿보이는 지경이다.
‘어차피 파멸할 녀석. 상대도 안 해 주겠다, 이건가?’
자멸할 놈과 경쟁을 하느니 아주 욕심이 나는 아이템이나 마수가 아닌 이상 놔두겠다는 주의인 모양이었다.
오쿨루스와 동격의 취급을 당해서 기분은 나빴지만 이 포지션은 그 나름대로 괜찮았다. 내가 할 역할을 우파가 해 주고 있었고, 여유롭게 구매할 것을 선택하면 그만이었다.
이왕지사 착각을 당해 줄 것이라면 최대한의 이득을 뽑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 탓인지 ‘천년의 낙인’과 ‘낙뢰의 보주’를 추가로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둘 다 옵션이 애매한지라 마족들에게 있어서 크게 욕심이 안 가는 물건이기도 했지만 경쟁이 예상보다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나는 지금의 포지션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아이템은 조금 특이합니다. 저 드보롱도 뭐라 할 수가 없는 그런 아이템이지요. ‘알 수 없는 상자’, 예. 바로 이것입니다.”
어둠의 정령들이 제법 큰 상자를 가지고 왔다. 볼품없다는 말이 이처럼 어울릴 수가 없는 상자였는데, 어찌 보면 관처럼 생기기도 하였다.
마계 옥션에는 걸맞지 않은 물건이다. 이에 모두가 의아해하자 드보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세기의 도둑으로 불리었던 ‘세심’을 아십니까? 500년쯤 나름의 전설을 세웠던, 그쪽 분야에선 전설적인 인물이었습니다만.”
500년 전.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판데모니엄은 그 시대의 산증인이었고, 왜인지 표정이 어그러졌다.
안 좋은 연이라도 있는 듯싶었다.
‘얼핏 들어 본 것 같군.’
도둑 세심.
혹은 모험가 세심.
마계에서 활동한 수백 년 전 마족이다.
능력 자체는 일천했지만 훔치는 기술 하나는 기가 막혔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강자도, 약자도 아닌 애매한 위치인지라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가 행한 모험들이 꽤 솔깃한 것도 사실이었다.
영혼의 계곡, 황야의 지저, 붉은 전갈의 산맥, 사자의 호수 등등…… 그가 가지 않은 곳은 없었고, 그곳에서 얻은 것들치고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실제로 확인한 이가 없어서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세심이란 이름이 나오자 관심이 갔다.
드보롱이 이어서 말했다.
“세심의 보물 창고에서 구한, 유일한 물건입니다. 휴~ ‘황야의 지저’까지 가서 어렵게 구한 것치곤 참으로 맥이 빠지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웬걸! 상당히 강력한 제약이 걸려 있더군요. 한 번 열면 양도가 불가능한, 그런 저주였습니다. 심지어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 확인도 못하더군요. 물건을 판매하는 입장에선 여간 골치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둠의 정령들이 가진 봉인술이나 봉인 해제술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저주도 마찬가지다.
한데 그들이 풀지 못해 쩔쩔맸다고 한다.
‘보통의 상자는 아니란 건가.’
문제는 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
침착하게 심안을 열었다.
만약 숨겨진 옵션이 있다면 어둠의 정령들도 알아차리지 못한 무언가를 알게 될 수도 있었다.
이름: 알 수 없는 상자
설명- 도둑 세심이 꽁꽁 감춰 둔 상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
* 한 번 열면 양도 불가. 상자와 안에 든 모든 것이 강제 귀속된다.
* 단 하나의 물건이 나오고 나머지는 상자 속에서 소멸한다.
* 사용자의 지능이 높을수록 ‘좋은 것’이 나올 확률이 올라간다.
마치 미믹을 떠올리게 하는 옵션이다.
보석이나 잡스러운 아이템 등을 몸 안에 숨겨 두는 상자형 마수.
하지만 하나만 나오고 나머지가 소멸한다는 점은 또 달랐다.
‘지능이 높을수록…….’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다. 대신 지능이 크게 관여하고 있었다.
지능이라!
내게는 크리슬리가 있다.
지능 100을 넘어 105에 다다르는 압도적인 능력치의 소유자!
충분히 도박을 걸어 볼 만한 것이다.
남은 건 가격이었다.
“……100만 포인트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이하로 판매되면 황야의 지저를 돌며 들어간 저희의 손실이 너무나도 큽니다. 물론 세심이 철두철미하게 숨긴 상자이니 보통의 물건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적어도 봉인된 무구보단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드보롱조차 크게 자신은 없는 듯했다.
그래도 팔긴 팔아야 하니 내놓는다.
손실을 만회하려면 별수가 없었다.
여는 순간 양도도 불가능해서, 어둠의 정령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계륵이었다.
허나 제아무리 봉인된 무구와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가격대가 너무 높다.
숨겨진 옵션을 볼 수 없는 마족들이라면 아예 사려는 생각을 못하는 게 현실이다. ‘단 하나’만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걸린다.
무리수임을 알지만 드보롱이 애처롭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황야의 지저를 탐사하며 그만큼 많은 정령이 죽어 나간 탓이다. 영혼의 계곡보다 위험한 곳이 그곳이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전설적인 도둑 세심이 마지막으로 남긴 상자입니다. 그의 발자취, 그가 남긴 물건은 세상 어디에도 남지 않았지요. 오로지 이 상자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정말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유일무이.
나는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세심이 남긴 물건. 거기다가 지능 105의 크리슬리도 있다.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는 있었다.
하지만 결정했다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드보롱의 애간장을 태우며 다른 마족에겐 어렵게 선택했다는 인상을 심어 줘야 했으므로.
괜히 우파가 끼어들면 골치만 아파진다.
“그가 훔쳤다고 전해지는 목록은 듣기만 해도 놀랍습니다. 그것 중 하나만 상자 안에 들어 있더라도 100만 이상의 값어치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운이 좋아 ‘죽은 산의 징표’라도 얻을 수 있다면 능히 1,000만 이상의 값어치가 있지요!”
크게 외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만 회장에 울려 퍼졌다.
고개를 내저은 드보롱이 하는 수 없이 숫자를 셌다.
“3초를 세겠습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세심의 상자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겁니다. 정령왕께서 매우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3, 2.”
“100만.”
“아아! 백작 랜달프 님! 세심이 유일하게 세상에 남긴 물건이라고 저 드보롱이 보증합니다. 부디 좋은 아이템을 획득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 입찰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내가 나선 순간, 알 수 없는 상자는 내게 낙찰되었다.
그리고…… 드보롱은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다. 딴에는 정령왕을 언급해서 내가 구입한 줄 아는 것 같았다. 서로 나쁜 관계가 아니었으니 ‘면’을 세워 줬다고 여겨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허나 그런 의도로 움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순수하고 완전하게 ‘알 수 없는 상자’에서 무엇이 나올지 기대했을 뿐이다.
‘착각은 자유지.’
딱히 그것을 지적할 생각은 없었기에 한 차례 어깨만 으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