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20화
경매의 양상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우파는 후반부를 독식했고, 판데모니엄은 남들이 크게 욕심내지 않는 자잘한 아이템이나 마수를 노렸으며 아리엘은 스킬북 위주의 구매 전략을 세웠다.
그리고 나는…….
나는 내가 구매하고자 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어차피 장기가 아닌 단기로 보고 구매를 한 것이라, 1년 차와 2년 차만큼의 파괴력을 선보일 수는 없었다. 옥석보단 당장 이득이 되는 구성 위주로 손을 댄 탓이다.
그래서 이번 경매에선 딱히 승리자라 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다들 비슷하게 가져갔고, 그나마 내가 우위에 있는 점이라면 ‘마고’ 정도였다.
우선 마수의 총 구매 목록은 아래와 같다.
쿠르족의 전사들, 나가 퀸과 크라켄 다섯, 인페르노 100여 마리.
여기에 기존에 사들인 리치 가파람과 마고, 드워킹까지 더하면 심심찮은 전력의 상승이 기대되었다.
뿐만인가.
아이템도 다수 건질 수 있었다.
‘괜찮군.’
구매한 아이템의 상세 정보를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이름: 용갑주(Ex U)
설명- 용의 기운이 강하게 서린 전신 갑옷. 용의 피를 이은 자가 착용한다면 훌륭한 본연의 힘을 모두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전해진다.
* 힘+3, 용의 피를 이은 자가 착용 시 ‘공포’ 효과.
* 용과 관련된 스킬 강화.
이름: 굳건한 신념(Ex U)
설명- 최강의 여전사 ‘알도린’이 사용한 투박한 투구. 평생 투구로 얼굴을 가린 채 살아온 여전사지만 그녀가 지킨 절개와 신념은 모두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 체력+2, 마력+2, 여자만 착용 가능.
* 신념이 강한 자가 착용 시 귀속 효과.
* 귀속 시 칭호 ‘굳건한 신념(R, 체력+3)’ 추가.
이름: 요정 기사의 검(봉인)
설명- 봉인된 무기. ‘격’에 맞는 요정만이 사용할 수 있다.
* 봉인이 풀리기 전까진 알 수 없음.
* 격에 맞는 요정이 착용 시 ‘요정의 가호’가 더욱 강력해짐.
이름: 쌍둥이의 정신 교감(Ex U)
설명- 어느 쌍둥이의 일기장. 둘은 태어나서부터 서로 떨어져 있어도 교감하는 게 가능했다. 대화를 나누고 정신적인 문제와 성장을 함께 겪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를 익히는 데 있어서 그들은 항상 두 배 빨랐다.
* 쌍둥이만 익히는 게 가능한 스킬북. 서로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 위급한 상황일 때 생명력 공유 가능.
이 네 개는 주인이 따로 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먼저 산 천년의 낙인과 낙뢰의 보주는 내게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었다.
여기까지 사용한 포인트가 대략 2,000만.
그리고 딱 2,000만의 포인트를 사용했을 그때 메시지창 하나가 나타났다.
[믿기지 않는 업적! 최초로 마계 옥션에서 2,000만 이상의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
[1,500,000PT를 획득했습니다.]
[업적 점수 1,000점이 추가됩니다.]
보유 자금 200만이 순식간에 350만으로 늘어난 것이다.
여유가 생기자 살짝 고민이 들었다.
경매는 후반부를 달리는 중이었다.
우파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내게 즉시 필요한 경매 물품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왕지사 여유가 생겼으니 우파의 전력 회복을 막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마족 셋을 잡아서 겨우 깎아 놓은 힘이다. 타깃을 오쿨루스로 옮겼다지만 우파는 바로 그다음 상대였다. 여기서 어느 정도 회복을 하게끔 기회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포인트를 탈탈 털어서 우파를 방해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공작 비자츠 멘담이 목에 핏줄을 세웠다.
“랜달프 브뤼시엘!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이냐!”
술수라.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혀를 차며 가볍게 말했다.
“오쿨루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선’을 넘었다고.”
그래, 나는 선을 넘었다. 마족을 사냥하고, 인간의 틈바구니에 스며들었으니까.
괜히 사냥꾼이란 칭호를 거머쥐고 있겠는가.
오쿨루스와 동격으로 취급받기는 싫지만 시간이 지나면 풀릴 오해다. 그리고 오해가 풀리는 순간 나라는 존재는 그들보다 한 발자국 앞서 있게 될 것이었다.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더는 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모두가 적당히 만족은 했지만 완전하게 만족하지 못한 3회 차의 경매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경매는 끝났다. 그러나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나는 회장의 뒤편에서 드보롱을 만났다.
“어쩐 일이십니까?”
“7대 죄악이 보이질 않더군.”
지난 1, 2회 차의 경매에서 7대 죄악을 얻었다. 나는 그 모두를 아도니스가 관리하는 중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드보롱이 고개를 주억였다.
“7대 죄악은 정령왕께서도 매우 소중히 하시는 물건입니다. 함부로 내놓을 수는 없다고 판단하셨겠지요.”
“그게 아니겠지. 계약을 하자는 것이 아닌가?”
일전에 보았을 때 아도니스는 계약을 청했다. 나는 그것을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했고, 그 결과가 이런 식으로 나타났음이 분명했다.
내가 적나라하게 말을 꺼내자 드보롱의 표정이 굳었다.
“비약이십니다. 조금 더 기다리시면 천천히 한 가지씩 공개를 하실 겁니다.”
“한 번 큰 힘을 맛본 자는 참을성이 사라지는 법이지. 매번 주던 것을 안 주면 더욱 성질이 나는 법이고 말이야.”
“어쩔 수가 없군요. 정 그러시다면 따로 ‘번외 거래’를 추진해 보겠습니다만…… 200만 정도면 기꺼이 한 가지 물건을 넘기실 겁니다.”
허, 이제는 간을 본다.
말 그대로 나를 길들이려는 움직임이다. 순한 양으로 만들어서 아도니스가 주는 먹이를 얌전히 받아먹게끔 만들겠다는 심보다.
그 끝은 결국 계약으로 묶이게 될 터.
7대 죄악을 인질 삼아 나왔으니 본래라면 조급함을 느낄 만한 일이었다. 나는 7대 죄악이 가져다주는 황홀한 힘을 맛본 뒤이기 때문이다. 힘은 마약과 같아서, 쉽게 끊어 낼 수가 없었다.
“200만 포인트라. 아쉽게도 가지고 있는 수치가 그보다 적군.”
“그 이하로는 힘듭니다.
“그럼 이건 어떤가? 잠재력의 한계치를 늘릴 수 있는 방법. 그것을 알고 있고, 그 수단까지 가지고 있다면?”
하지만 내게도 비장의 무기가 없지는 않았다.
근원의 정수!
순수한 잠재력 한계치를 1 늘려 주는 아이템이었다.
아도니스라면 넘어오지 않을 수 없는 유혹이다. 그는 단 1의 수치라도 한계를 돌파해 강해지고자 하였다. 아이템이나 칭호, 스킬의 도움을 받는 건 한계에 달해 있었기에 이 방법이 무척이나 고팠다.
어쩔 수 없이 포인트에 목을 매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그리고 이 한계 돌파라는 게, 고작 1의 수치라고 해서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한계 자체를 뛰어넘었다는 그 감각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한계가 1이라도 넓혀지면 노력에 따라서 조금 더 발전의 여지가 있었다.
과연 드보롱의 얼굴색이 달라졌다.
당연히 내가 고개를 숙이리라 생각한 일. 한데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제대로 명치를 가격했으니 정신이 번쩍 들 만도 했다.
“저를 놀리는 건 아니겠지요? 포인트를 이용한다거나 하는…….”
“잠재력 한계치 1을 올려 주는 정수를 가지고 있다. 아마 아도니스라면 그 이름을 알 것이다. 근원의 정수 말이다.”
“……!”
아예 흙빛이 되었다. 피에로 분장이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제대로 노림수가 들어갔음에 나는 여유롭게 입가를 비틀었다.
“기색을 보아하니 너도 아는 모양이군.”
“시, 신들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정수 아닙니까? 아니, 근원의 나무는 천계에만 한 그루 존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천사가 우리를 공격한 일은 너도 익히 알겠지. 그때 우연히 하나를 얻었다.”
근원의 나무가 던전에 있음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숨겨야 하는 최상급의 비밀이었다.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 드보롱이 입을 열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우리도 7대 죄악 전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나머지를 정수 하나에 넘기는 건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전체는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조금 실망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세트 아이템을 가지고 간을 봤다는 것이니.
하지만 크게 급하지 않았다. 7대 죄악을 대체할 방법이 있다는 걸 인피니티 아머를 통해 알게 된 탓이다.
“나도 당장 근원의 정수를 교환할 생각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그 찰나였다.
―마스터, 큰일 났어요. 이히한테 씩씩이가 구조를 요청하고 있어요! 마수들이 쳐들어왔대요. 막기 힘들 거래요!
“생각은?”
뒷말을 삼키자 드보롱이 참다못해 물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작게 저었다.
“이 이야기는 뒤로 미루지. 지금 마계 옥션을 떠난 마족이 있나?”
“아아, 대공 오쿨루스 님과 그 휘하 마족들이 정령계를 떠났긴 했습니다만.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마계 옥션이 있는 날은 모든 마족들이 활동을 멈춘다. 당연히 마수들만 따로 움직일 리도 없었다. 미리 명령을 내려놓을 수도 있겠지만 자잘한 것도 아니고 던전 하나를 공격하는 일이라면 누군가에게 맡길 리도 만무했다.
하물며 막기 힘든 숫자의 마수가 움직였다.
중국의 던전이 크게 성장하진 못한 상태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구조는 갖췄다.
즉, 누군가가 대군을 이끌고 본격적인 침략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오쿨루스……!’
있다면 오쿨루스뿐이었다.
내가 마계 옥션에 참가하고 있을 이 시간에 허점을 노리고 들어왔다. 이히의 통신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전생에선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포인트 백만에 다다르는 차원 알림 마법을 설치하기도 했다. 마계 옥션이 있는 날은 서로 불가침을 하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기도 했고. 하지만 3년 차에 그런 것을 설치할 일은 없었다.
불현듯 들어온 건 아닐 터…….
‘미리 나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나?’
으드득!
이를 갈았다.
어쩐지 회장에서 한 연설은 대놓고 나를 저격하고 있었다.
내 존재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도 함께하지 않았던가.
일종의 ‘선전포고’였던 것이다.
과연 오쿨루스. 종잡을 수 없는 놈이었다.
“먼저 가 보겠다.”
“그럼 따로 연락을 드릴까요?”
“그래 주면 고맙겠군.”
등을 돌리고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 * *
균열이 열렸다.
최상층으로 돌아오자 이히가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맞이했다.
“큰일 났어요! 큰일 났어요! 이대로 있다간 씩씩이의 던전이 허물어질 거예요!”
“허둥대지 마라. 그보다…… 상황은 어떻지?”
“중급 마수 2천여 마리, 상급 마수 50마리 정도가 쳐들어온 모양이에요. 이히가 계산을 해 봤는데요, 씩씩이 혼자선 절대로 못 막을 것 같애요. 거의 다 뚫렸기도 하고요.”
총력까진 아니다. 그래도 상당한 숫자임은 분명했다.
그래도 던전 코어가 부서지면 모든 게 부질없었다. 그 전에 움직여서 막아야 했다.
“크리슬리는?”
“안 그래도 불러왔어요. 이제 도착할 거예요.”
“이야기는 전했나?”
“어느 정도는요. 이히가 해도 될 만큼의 말만 했어요.”
“잘했다.”
“이히히…… 앗, 웃을 때가 아닌데!”
입가가 풀어지려는 걸 억지로 억제한 이히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때마침 크리슬리가 몇몇 마수를 대동한 채 다가오는 중이었다.
미리 사태를 파악하고 강하고 기동력 좋은 마수 위주로 선별해 온 것이었다.
마계 옥션에서 구매한 것은 시간이 지나야 들어온다. 우선 지금 가진 마수들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크라스라, 기간테스와 백치호, 흑치호, 샤벨 타이거 다수!
리치 한 구, 상급의 골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던전 마스터를 뵙습니다.”
마수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허나 그 시간조차 아까웠다.
“일어나라. 지금 즉시 움직일 것이다. 이히! 공간 이동진을 열도록.”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이히가 눈을 감았다. 곧 던전 코어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위잉-!
던전 코어가 크게 흔들렸다. 강렬한 공명음과 함께 이동진이 생성되었다.
그러나 한 번에 모두 이동할 순 없었다.
“크리슬리, 샤벨 타이거 무리를 이끌고 따로 이동하라. 중국 던전의 위치는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뒤를 막아라. 한 놈도 빠져나갈 수 없게 하라. 우리의 목표는 놈들의 전멸이다!”
“명을 따릅니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나는 고개를 돌려 정렬한 마수들을 바라봤다.
“나머지는 이동진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그 순간부터 적들의 피로 몸을 적실 것이다. 따르라!”
아스러지게 주먹을 쥐었다.
오쿨루스!
이런 식으로 내게 대적을 해 온단 말이렷다.
허나, 나도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끝을 보고자 한다면 좋다.
피하지 않으리라.
내 살을 취하고자 한다면 네놈은 뼈를 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