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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23화 (123/242)

던전 사냥꾼 123화

침을 꼴깍 삼킨다. 검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웬 문이 나타나더니 거기로 끌려간 기억까지는 나는데, 그다음 보이는 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광경이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스터? 다 어디 있어요? 이히를 놀리면 못 써요……?”

쥐 죽은 듯이 작게 말하며 분홍색의 수풀 뒤로 몸을 숨겼다. 마스터는커녕 주변에 존재하는 생명체라곤 저 분홍색 유니콘이 전부였다.

히힝~

혓바닥을 내밀고, 귀도 쫑긋 세운 게 어쩐지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풀을 뜯어 먹다가 혓바닥을 씹어서 뒤집히는 등 아무리 봐도 ‘정신병’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저 정신병자 유니콘한테 걸리면 이히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이, 일단 여기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는 거야. 마스터께서 말씀하셨잖니. 어…… 호랑이 굴에 들어가면 잡아먹힌다? 아, 아냐. 이게 아닌데. 뭐였지?”

공황 상태에 빠졌다. 홀로 여러 가지 생각을 이어 가며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분홍색 유니콘은 제자리에서 가만히만 있었다.

심지어 쿠키 모양 태양도 저물지를 않았다.

“앞으로 딱 백만 세어 보자. 그러면 저 유니콘도 지쳐서 다른 곳으로 가겠지. 일, 이, 삼…… 구십구…… 일, 이, 삼…….”

구십구까지 세기를 수백 번 반복할 즈음 드디어 유니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히힝~!

오줌이다. 사방 천지에 오줌을 마구 갈겨 대는 것이다. 마치 분수가 터지듯 번져서 자기 몸에도 마구 묻었다.

“역시 저 유니콘은 제정신이 아니야. 그런데 마스터보다 크구나. 그래도 마스터는 커다란 무기가 두 개잖아. 이제 세 개로 늘어났다구. 전체적으로 보면 마스터의 승리야, 이히히.”

불뚝 튀어나온 한 부위를 비교하며 이히가 작게 손뼉을 쳤다. 마스터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강한 관심을 보이는 이히였다.

그러나 즐거운 시간도 잠시.

알 수 없는 장소에서 알 수 없는 유니콘과 대치하는 이히는 빠르게 지쳐 갔다.

어느 순간 피로가 몰려들었고, 이히는 깜빡 눈을 감고 말았다.

“히잉. 마스터, 보고 싶어요. 이히가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 이히를 버리지 마세요…… 음냐.”

긁적긁적 배를 긁으며 이히가 잠꼬대를 남발했다.

꿈속에서 이히는 던전 마스터와 손을 잡고 꽃밭을 달리고 있었다.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둘의 사이는 무척이나 괜찮아 보였다.

“마스터. 이히는요, 사실은요, 마스터를 좋아해요!”

작은 꽃다발을 예쁘게 만들어서 마스터에게 건넸다. 그러자 꽃다발을 건네받은 마스터가 미소 지으며 이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다. 이히, 처음 보는 그 순간부터 너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꼈다.”

“아……! 마스터와 이히의 이어짐은 태초부터 결정된 것이에요!”

“신조차 우리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는 없다. 내가 마왕이 되거든 이히, 오로지 너만이 내 옆자리에 어울린다 할 수 있다. 영원히 내 옆에 있어 다오. 내 손이 닿는 곳에 너의 머리가 있다면, 이히 너의 그 아름다운 머릿결을 쓰다듬을 수 있다면 나는 언제나 행복할 것이다.”

“이히두요. 마스터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이히히, 앞으로 이히를 꾸짖으면 안 돼요!”

“그럼. 당연하다마다. 정원을 늘려 주마. 꿀벌들도 마음껏 괴롭혀라.”

“이히히!”

“그뿐이냐? 매일 열 번씩 칭찬해 주겠다.”

“이히히히!”

“머리는 백 번씩 쓰다듬어 주고.”

“이히히히히!”

행복하다.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길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저, 그런데 마스터? 왜 계속 이히의 뺨을 혓바닥으로 핥으세요?”

“…….”

“마스터? 어, 왜 얼굴이 갑자기 분홍색이…….”

“아, 안 돼!”

허리를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싱그러운 꽃밭도, 사랑을 속삭이던 마스터도 근처에 없었다.

“헉, 헉, 꿈이구나. 다행이다. 마스터의 얼굴은 분홍색으로 변하지 않았던 거야.”

어찌나 놀랐는지 식은땀이 다 났다.

손등으로 땀을 닦았다.

“뭐지? 왜 이렇게 끈적거려?”

허나 땀만 닦았다고 하기엔 질척거리는 액체가 묻어나왔다.

인상을 찌푸리며 고민을 이어 나갈 바로 그 찰나.

후웅.

옆에서 느껴지는 거친 숨소리.

동시에 무언가가 이히의 뺨을 핥고 지나갔다.

“…….”

슬쩍 눈을 돌려 상대를 확인한 이히는 바짝 얼어붙었다.

히힝~

분홍색의 유니콘이 혓바닥을 반쯤 내밀고 머리를 사정없이 흔들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

히힝~

헤드뱅잉!

유니콘의 머리가 사정없이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혐오스러운 수준이었다. 절로 콧물과 눈물이 삐져나왔다.

“히잉…….”

히힝~!

날개가 침으로 젖어서일까?

펴지지 않았다. 날지도 못한다.

하는 수 없이 이히는 앙증맞은 두 발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분홍색 유니콘이 차분하게 따랐다.

“따라오지 마! 이히는 맛없어!”

이히는 필사적이었다. 뒤뚱대며 분홍색 수풀을 마구 헤쳤다. 그러길 수십 분. 지치기 시작한 이히의 표정이 점점 굳어 갔다.

“이대로는 안 돼. 저 변태 유니콘한테 잡아먹힐 거야.”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유니콘이 시야에 없다는 것이었다. 머지않아 따라잡힐 게 분명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었다.

주변을 빠르게 훑던 이히가 한 장소에 시선을 옮겼다.

“저기서 몸을 숨기고 있자.”

언덕의 아래. 사각지대에 작은 동굴이 있었다. 언뜻 보면 보이지 않아서 몸을 숨기기엔 적당한 장소일 듯싶었다.

빠르게 달려 나간 이히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휘유~ 힘들다. 이히는 이제 걸을 힘도 없어요.”

동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열심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발을 주물렀다. 이 정도로 뛰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 보니 처음인 것 같기도 했다.

날아가면 될 걸 굳이 뛸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조금의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이히는 동굴 안쪽을 바라봤다.

“이상하게 생긴 동굴이네. 버섯이 엄청 많아.”

분홍색 버섯들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았다.

그래도 생김새는 모두 제각각이어서, 이히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혹시 모르니까 안으로 더 들어가야겠어. 이히의 안전은 이히 스스로 지켜야 해.”

끙차!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이히가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버섯의 종류도 많아지고 크기가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30분가량을 더 걷자 커다란 공터가 나타났다.

공터의 중심부에는 다른 버섯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버섯이 자리하고 있었다.

“와~ 엄청 크다. 대왕 버섯이야, 이히히.”

슬쩍 다가가 톡톡 밑부분을 두드려 보았다.

말캉말캉한 게 부드럽다. 재미가 들린 이히가 끊임없이 버섯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쿠우웅.

머지않아 동굴이 흔들렸다.

대왕 버섯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에구머니나!”

화들짝 놀란 이히는 재빨리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대왕 버섯의 중심부에 눈과 길쭉한 입이 생긴 걸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감히 어떤 바보 같은 요정이 우리 버섯 나라를 침범했느냐. 나 버섯왕 머쉬룸이 용서하지 않겠노라!”

“버섯버섯.”

“침입자다, 버섯.”

“죽여라, 버섯.”

주변의 버섯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졸지에 갇혀 버린 이히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히한테 왜 그러세요?”

대왕 버섯이 말했다.

“흥, 침입자 주제에 말이 많다! 죽어라!”

“버섯버섯.”

“죽여라, 버섯.”

조그만 버섯들이 사방을 에워쌌다.

이히가 양손을 모아 간절히 빌었다.

“사, 살려 주세요.”

“버섯버섯!”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마스터…….”

이히는 눈을 꾹 감아 버렸다.

마스터와 꽃밭을 거니는 건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는다지만 마지막으로 그 얼굴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

그때였다.

히이힝~!

백마 탄 왕자.

아니, 백마가 나타났다.

유니콘!

뿔을 내세워 버섯들을 학살하며 빠르게 이히의 앞에 섰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이히는 눈을 떴고, 곧 유니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변태 유니콘?”

히힝~

“설마 이히를 구해 주러 온 거니?”

히힝!

“아!”

이히는 감동했다.

정신병자에 변태라고 여긴 유니콘이 자신을 구하고자 동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히가 착각했어. 너 정말 착한 유니콘이구나?”

히힝!

“그럼 이히를 동굴 밖으로 보내 줄래?”

히힝.

“안 된다고?  이히가 이 버섯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말이야?”

히힝!

“이히는 약한데…….”

히힝~

“이히라면 할 수 있다고? 아, 알았어. 한번 해 볼게.”

요정 기사의 검을 들었다.

이후 심호흡을 한 이히는 마스터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검을 들고 적을 학살하는 멋진 자태.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그 움직임들!

“얍!”

당찬 외침과 함께 이히가 검을 휘둘렀다.

“미안합니다.”

버섯은 약했다.

버섯왕 머쉬룸도 크기만 클 뿐이었다.

버섯 몇을 처리하고 머쉬룸의 몸에 검을 찌르자 그가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사과를 해 온 것이다.

“그대는 전설의 요정이시군요. 요정 기사의 검을 들고 계시다니…….”

“전설의 요정? 그게 뭐야?”

이히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머쉬룸이 이어서 말했다.

“예, 우리 버섯 왕국과 쿠키 왕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입니다. 요정 기사의 검을 든 요정이 나타나 분홍 여왕으로부터 분홍빛이 된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이지요.”

“분홍 여왕으로부터 세계를 구해? 이히는 그런 거창한 일 못해.”

“그, 그런 소리 마십시오. 요정님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십니다! 분홍 여왕에게 잡혀서 평범한 버섯과 쿠키가 되어 버린 동료를 생각하면 정말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못하는 건 못해. 그것보다 이히를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 주지 않을래? 마스터에게 말하면 이런 문제는 가볍게 해결해 주실 거야.”

머쉬룸이 눈을 깜빡였다.

“원래 있는 세계, 말입니까? 아, 역시 전설대로 요정님은 별세계에서 오신 분이군요. 그 문제도 분홍 여왕이 답을 알고 있을 겁니다.”

이히는 턱을 쓸었다. 마스터가 고민할 때의 습관처럼. 그러나 그런다고 마스터와 같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냥 해 본 거다.

“이히에게 가능한 일일까?”

“지금으로선 힘들겠지요. 하지만 버섯 왕국과 쿠키 왕국에 전해지는 전설의 무구를 착용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전설의 유니콘까지 있지 않습니까! 승리는 확실합니다.”

히힝~

유니콘은 여전히 머리를 흔드는 중이었다.

솔직히, 더럽다. 침도 튀겼다. 착한 녀석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별개의 일이다. 비위가 좋은 이히도 저 모습을 계속해서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애써 외면한 이히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쿠키 왕국은 또 뭐야?”

머쉬룸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사이가 별로지만 예전에는 자주 어울리던 우리의 형제국이었습니다. 분홍 여왕에게 대항한 쿠키왕이 태양이 된 뒤로 그들은 모든 외교를 끊었지요. 매일 하염없이 태양만 바라보는 게 그들의 일과입니다. 부디, 우리와 그들을 구제해 주십시오.”

“버섯버섯.”

“제발! 버섯!”

수천, 수만의 버섯들이 일제히 울었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서 이히마저 마음이 동할 정도였다.

거기다가 왕이 태양이 되었다니. 그것을 하루 종일 바라만 보고 있는 게 일상이라니.

마치 이히 본인의 이야기 같다. 매일 마스터를 바라만 보는 이히 자신이 투영되었다.

검을 휘두르는 감촉도 좋았고, 버섯들을 물리치며 자신감도 붙었다.

‘전설’이라고 띄워 주기까지 하니 아주 분기탱천할 기세였다.

“분홍 여왕을 물리쳐야 이히가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지? 알았어. 이히한테 맡겨!”

가슴을 두드리며 이히가 자신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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