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25화
‘영혼의 동화를 이루며 제대로 돌아 버린 것 같군.’
본래 오쿨루스는 중도를 지키는 입장이었다. 특출나지 않고, 모나지 않다. 한데 영혼의 동화를 이루며 극적인 성격으로 변모했다. 모든 휘하 마족의 정신과 혼이 영향을 강하게 끼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나와 같이 성장하는 유형이라면 매우 골치가 아파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나는 마족을 사냥하고 던전을 지배함으로써 잔여 능력치를 얻는다. 허나 오쿨루스는 마족을 잡아먹어서 무언가를 얻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서 끝이라면 충분히 대적 가능하지만 이다음으로 선보일 오쿨루스의 행동이 도통 짐작이 되질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 전에 부숴 버릴 필요가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갔다.
“따르라. 적을 멸할 것이다.”
* * *
중국의 던전을 빠져나와 대규모 무리의 마수 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쿨루스의 던전은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브라질에 있었고, 바다를 통해 이동해야 했다. 일전에 구매한 아일랜드 터틀 한 마리로는 어림도 없는 물량. 하여 즉시 아홉 마리를 추가로 구매하였다.
작은 섬이라 칭할 정도로 커다란 마수이니 5천에 달하는 숫자도 10마리면 충분히 나를 수 있었다.
“멈춰라! 경고한다! 더 이상 다가오면…….”
문제는 대규모 마수가 움직이자 인간들이 반응했다는 것.
무장한 인간 수천과 전차 몇 기가 길목을 막았다. 각성자 수십도 섞여 있었다.
벌써 3년 차. 마수와는 교섭이 불가능하다는 걸 인간들은 아직도 모르는 것 같았다. 저런 식으로 경고하는 것보다 먼저 선수를 치든가 빼는 게 백배는 낫다. 도리어 큰 소리는 마수들만 자극할 뿐이다.
인간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비켜설 의지는 없는 듯싶었다. 그들의 태도를 보아하니 멀지 않은 장소에 도시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귀찮군.’
혀를 찼다.
가만히 놔두면 어련히 알아서 지나갈 일.
왜 굳이 나서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지.
저 10배를 가져와도 지금 내가 다루는 마수의 군단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무참히 짓밟히는 게 그들의 운명이었다. 막아설 시간에 대피를 했다면 건물 조금 부서지는 것으로 끝났겠지만…….
여기서 들이는 시간조차 아깝다.
그리핀에게 쓸어버리라 명하려 할 그때 쿠르족의 우두머리가 움직였다.
“주인! 우리 쿠르족의 힘을 보여 주고 싶다!”
“맡기마.”
시원하게 승낙했다.
그리핀이 나서면 빠르게 정리가 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쿠르족의 전투 성향을 봐 둬서 나쁠 것도 없었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쿠르족 전사들 모두가 인페르노에 올랐다.
“히-랴!”
“학살이다!”
인페르노를 탄 100명의 쿠르족 전사들이 바닥을 박찼다.
그 크기만 3미터에 이르는 대형 말이다. 거기에 쿠르족 전사들의 몸집도 제법 되었다. 평범한 인간이 보자면 고개를 하늘 높이 치켜들어야 겨우 전신을 확인할 수준이었다.
쿵! 콰릉!
전차가 탄환을 발했다. 쿠르족이 처음 겪는 무기.
이에 쿠르족 전사 한 명이 낙마했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내 일어나 흙을 털어 냈다.
“정통으로 맞으면 좀 아프겠다!”
우스갯소리인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쿠르족 전사가 다시 인페르노에 올랐다. 그리고 이어진 행동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인페르노와 하나가 된 듯 유려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인간들의 사이에 들어섰다. 애당초 일반 총알 따위는 통하지도 않는 강인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지라, 초근접전에선 무적과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인페르노가 뿜어 대는 불길도 인간에겐 치명적이었다. 지옥불이라 불리는 그것은 인간의 전신이 가루가 될 때까지 소화되지 않았다.
“무기가 아주 좋다!”
과연 드워킹이 손수 제작한 무기답다. 근원의 뿌리로 만들어진 무기는 대개가 유니크 등급이었고, 하나같이 날카로웠다. 쿠르족의 괴력이 더해지자 탱크를 통째로 잘라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인간의 무리를 전멸시키는 데 20분이면 족했다. 도리어 오래 걸린 감이 있지만 그것은 쿠르족의 잔인성 때문이다.
죽은 시체마저 몇 번이고 토막 내서 확인하는 습성 탓에 시간이 배로 걸린 것이다.
“주인! 학살은 재밌다!”
“그래 보이는군.”
고개를 끄덕였다. 쿠르족의 피해는 없었다. 몇몇이 경상을 입은 걸 제외하면 전력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쿠르족의 진정한 강함은 강한 적 하나를 상대할 때 나타난다.’
자잘한 것보다 확실한 하나를 상대하는 데 특화된 종족.
그것이 쿠르족이었다.
그와 관련된 스킬 또한 있을 정도다.
회합(U). 하나의 적을 두고 보다 많은 쿠르족이 대치할수록 힘과 체력이 오르는 스킬!
“우리 쿠르족의 전사는 강하다!”
커다란 검을 번쩍 들고 쿠르족이 시끄럽게 떠들었다. 과시하는 태도. 이곳에 모인 마수 중 자신들이 가장 낫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는 듯이 도발적이다.
“…….”
크리슬리는 엮여 봤자 피곤해지기만 할 거라는 걸 깨닫고 무시했다. 반면 굳건한 신념 투구를 착용한 타쉬말은 따끔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흠,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구나.”
말투에 가시가 돋쳤다. 던전을 나온 직후부터 그녀는 조금 안절부절못했는데, 안에 두고 온 아기 천사들이 여간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세 쌍의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친 타쉬말은 위압감이 넘쳤다. 능력치도 상당히 회복을 한 터라 최상급 마수와 일전을 벌여도 꿀릴 게 없었다.
나는 심안을 열어서 오랜만에 타쉬말의 성장 상태를 확인했다.
이름: 타쉬말
직업: 타락 천사
칭호 :
* 어둠에 물든 빛의 천사(Epic, 지능마력+6)
* 굳건한 신념(R, 체력+3)
능력치 :
힘 77 지능 88(+6)
민첩 83 체력 79(+5) 마력 86(+8)
잠재력(413+19/471)
특이 사항: 세상에 빛을 전파하는 사품의 천사였으나 지금은 타락했습니다. 날개를 잃은 여파로 낮아진 능력치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스킬: 어둠의 전파(Epic), 수없이 쇄도하는 어둠의 창(Epic), 어둠의 우레(Epic)
[전후 비교]
힘 68 지 93 민 78 체 69 마 90 잠재력(386+12/471)
힘 77 지 94 민 83 체 84 마 94 잠재력(413+19/471)
굳건한 신념 투구. 체력 5와 마력 2를 더하면 투구 하나로 오른 능력치가 무려 7이다. 능력치 총합 자체도 430을 넘겨서, 이미 기간테스나 그리핀을 앞섰다. 이 수준이면 거의 최상급 2레벨에 가까운 강함이었다.
쿠르족 전사 1백과 그녀가 싸운다면 어떠한 결과가 도출될지 자못 궁금하긴 하였으나 지금은 그런 일을 벌일 때가 아니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바로 움직인다.”
걸어 나갔다.
오쿨루스가 눈치를 채기 전에 비수를 꽂아야 했다.
아일랜드 터틀로 이동하는 것 자체는 간단했다.
바다 깊숙한 곳에서 움직이고 자체적으로 실드 스킬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별다른 방해 없이 남아메리카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한 다리를 더 건너야 한다. 나는 페루를 통해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죄다 파괴되었군.’
군사력이 강한 나라는 아닌지라 여유 있게 통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심하다. 저항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란 도시는 전부 괴멸 상태였다.
시체 타는 냄새, 썩는 냄새가 즐비한 곳. 페루에는 던전이 없는데 이런 꼴이 난 걸 보면 오쿨루스밖에 짐작되는 이유가 없었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냄새가 지독합니다.”
크리슬리가 코를 쥐었다. 타는 냄새보다 썩는 냄새가 더 심했다. 감각이 뛰어난 그녀로선 참기 힘든 게 당연했다.
한참을 나아가다가 입을 열었다.
“인간이 하나도 안 보이는군.”
“오쿨루스가 손을 쓴 것일까요?”
“너도 그리 생각하나?”
“서두른 기색이 주변에 역력합니다. 조금이라도 포인트를 모을 생각이 아니었을지요?”
참상이 일어난 지 오래되어 보이진 않았다. 기껏해야 1, 2개월. 마계 옥션에 들어가기 전에 사달을 벌인 건 분명했다.
허나 정말 포인트 때문일까?
“아니, 포인트를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말하자 크리슬리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시체들을 보아라.”
널린 게 시체였다.
벌레에 파먹히고, 썩고, 불에 타서 훼손이 심했지만 어쨌든 시체는 많았다.
“아……! 하나같이 머리가 없군요.”
깨달음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냄새가 워낙 심해서 눈을 돌리고 있던 탓에 못 알아차리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제물이로군.”
타쉬말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 말했다.
그에 나도 동의했다.
“맞다, 타쉬말. 바로 무언가를 소환하기 위한 제물이지.”
얼마나 많은 제물을 투입한 건지 상상도 안 된다. 당장 본 것만 해도 십수 만이었다.
규모가 다르다는 걸 깨우친 크리슬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대공이 아닙니까? 그만한 위치의 존재가 제물을 바쳐서 누군가를 소환하는 건…….”
막 나가자는 거다.
자존심도 자신의 위치도 망각한 채 움직이는 것이다.
대공은 강해야 한다. 이 강하다는 기준은 그저 무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데 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자신이 몇 수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제물만 있다고 누군가가 소환되진 않는다. 관련된 방대한 지식이 있어야 겨우 가능한 게 소환이었다.
“지금 오쿨루스의 정신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아.”
“정말…… 제정신이 아닙니다.”
크리슬리는 진절머리를 쳤다.
영혼 동화.
동족 포식.
거기에 소환이라.
규모로 보건대 어중간한 녀석은 아닐 것이고…….
‘쉽지 않겠군.’
역시 가만히 둬선 안 된다.
대공이란 존재의 품격을 혼자서 다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지 않는다.
그만한 위치에 앉은 이다운 자세로 내 상대가 되어 주길 바란다.
적어도, 오쿨루스의 지금 모습은 내 바람과 거리가 멀었다.
포식자와 사냥꾼의 싸움.
주먹을 쥐었다.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질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 * *
너른 평야. 수십만에 이르는 인간의 머리통이 꼬챙이에 꿰여 있었다.
잔학의 결정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오쿨루스는 입가엔 미소가 서려 있었다.
곧 평야 전체에 수놓인 마법진이 발동했고, 산과 같이 거대한 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허무’에 있던 나를 소환했느냐?”
허무.
누구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설명하지 못하는 장소.
그곳에서 허무의 그림자가 소환되었다.
“반갑다. 내가 너를 소환한 자다.”
오쿨루스가 그림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허무의 그림자가 시선을 돌렸다.
“저 머리들은 전부 내 먹이인가?”
“그렇다. 마음껏 섭취하도록!”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양이 많아서 넘어가 주겠다.”
쿠우웅!
그림자에 불과하나 결코 평범하진 않았다. 그림자가 움직이자 주변 땅이 들썩였다. 이어 그림자가 늘어나더니 평야 전체를 집어삼켰다.
찰나의 순간.
그 많던 머리 전부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크흐흐흐!”
오쿨루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제물을 받았으니 의식은 완성된 것과 같았다.
허무와 그곳의 존재에 관해 아는 이는 손에 꼽혔다.
오쿨루스는 그중 하나였고, 그들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이제 승리는 자신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