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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27화 (127/242)

던전 사냥꾼 127화

마고는 천천히 그림자를 주시했다. 현인의 눈이라 칭송받는, 그 아름다운 눈이 그림자의 실태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정상적인 상태로군.’

어둠의 정령들이 계약을 제대로 못한 탓에 마고는 간혹 발작을 일으켰다. 최상급 마수를 잡아내는 노하우가 없어서 생긴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직접 나서서 상대를 해 줘야 했다.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 지칠 때까지 어울려 주면 얌전해졌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보다 침착하다. 외눈을 움직여 콘테고놈의 그림자를 하나도 빠짐없이 읽고 있었다.

휘이잉!

이어서 마고의 옆에 돌풍이 생겨났다. 그리고 모습을 감췄다.

바람에 섞여 돌아다니는 게 마고의 습성이다. 그 고유 스킬과 상태창을 떠올린 나는 만족스럽게 웃어 보였다.

이름: 마고

능력치 :

힘 89 지능 93

민첩 92 체력 68 마력 93

잠재력(435/446)

특이 사항: 종속의 계약이 불안정합니다.

스킬: 오롯한 태풍(Epic), 현인의 눈(Epic), 바람 밟기(Epic)

최상급 2레벨의 마수다운, 경악스러운 상태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체력이 낮은 게 흠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고가 다시 나타난 곳은 콘테고놈의 배후였다. 외눈이 파랗게 빛나는 와중 콘테고놈의 그림자 정중앙을 손으로 찔러 넣었다.

푸욱!

―크아아아!

타쉬말을 압박하던 콘테고놈이 비명을 내질렀다. 처음으로 유효한 공격에 성공한 것이다.

마고는 콘테고놈의 진체를 파악할 수 있는 스킬 ‘현인의 눈(Epic)’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잡지 못한 걸 잡아낸 걸 보면 어째서 마고의 씨가 말랐는지 알 것 같았다.

마고의 눈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콘테고놈으로선 불의의 일격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고가 콘테고놈의 그림자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진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놈들이……!

그림자에서 나타난 것은, 형용할 수 없으리만큼 끔찍한 형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살덩이. 눈은 녹았고, 코는 주저앉았으며 정상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곤 입 밖에 없다.

6, 7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크기에다가 이족보행을 하고 있지만 저것을 과연 정상적인 생명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모든 형체를 잃었다고 했나.’

과연. 기억을 잃고 본연의 모습마저 잊었다면 저런 식의 모습을 할 것 같긴 했다. 고름 같은 게 피부를 타고 뚝뚝 떨어져 내렸으며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쉴 새 없이 몸 이곳저곳에서 기포가 터졌다.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다.

급히 콘테고놈이 그림자를 입었다. 흉측한 겉모습이 감춰지고 어둠에 잠겼다. 그러나 아까와 다른 점은, 분명하게 형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간테스.”

이를 확인하고자 기간테스를 불러 세웠다.

“적! 이긴다!”

쿵! 쿵!

기세등등하게 기간테스가 움직였다. 드워킹이 직접 만든 거대한 몽둥이를 붕붕 휘둘러 댔다. 안 그래도 무기를 사용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기간테스다. 여태껏 나설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내 생기자 흥분한 듯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순간 가속’이 붙어 있는 익셉셔널 유니크 등급의 무기이니 동작이 커서 생기는 단점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었다. 그것을 기간테스도 알았고, 빨리 확인해 보고 싶은 심정도 당연했다.

콰앙!

몽둥이를 내리치며 가속했다. 기간테스는 무지막지한 괴력의 소유자다. 그냥 쳐도 바닥에 울림이 일어나건만 가속까지 했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충격은 크지 않은 듯싶었다. 그림자를 두른 콘테고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히 그림자 갑옷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다 죽여 버리겠다!

이윽고 콘테고놈이 그림자를 활짝 펼쳤다. 그림자 내에 숨어 있던 본체가 찰나의 시간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뿐이다. 본체는 다시 숨었고, 도리어 그림자가 기간테스를 집어삼켰다.

“컥! 막힌다! 숨! 놔랏!”

전신을 옭아맨 그림자는 도통 떨어지지 않았다.

그림자는 천천히 기간테스를 잠식해 갔다. 그림자에 맞닿은 기간테스의 전신이 어둠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어서 빠져나와라! ‘허무’에 물든다!”

쿠르릉!

타쉬말이 어둠의 우레를 내리꽂았지만 상성이 좋지 않았다. 같은 어둠 속성의 마력이니 효과가 반감됐고, 그림자 자체의 방어력도 뛰어났다.

마고도 분발하고는 있었지만 콘테고놈의 본체를 상대하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관 자리를 찾으러 왔나? 랜달프 브뤼시엘.”

천천히 마수들을 대동하며 내려오는 오쿨루스를 맞이해야 했다.

버그 베어, 마계 옥션에서 구매한 데스 나이트 30기, 다크 워리어 등등 상급의 마수가 거의 1백에 달한다.

잔뜩 뿔이 난 상급 4Lv의 엔트 킹, 거기다 다수의 기간틱 엔트까지 더하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놈의 재수 없어 보이는 상판은 여전하였다.

“오쿨루스. 네놈, 무엇을 소환한 거지?”

“신이 되지 못한 자들이 갇히는 감옥. 허무에서 그를 불러왔지.”

여전히 허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대관절 그곳이 어디란 말인가. 눈살을 찌푸리자 오쿨루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나저나 내 던전의 위치는 어떻게 알아낸 것이냐?”

“알 것 없다.”

“하긴, 굳이 물을 필요는 없겠지. 너 역시 허무에 물들면 고분고분 내 말을 따르게 될 테니.”

그의 눈이 기간테스에게 향했다.

조금씩 그림자에 물들어 가던 기간테스가 머지않아 반항을 멈췄다. 전신을 새까맣게 물들인 그림자가 기간테스의 정수리에 흘러들어 가자…… 기간테스의 눈빛이 변했다.

적대적인 눈동자는 여전했으나 그 대상이 뒤바뀌었다. 나와, 내 휘하 마수들을 바라보며 대뜸 돌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든다는 게 저런 거였나?”

“크흐흐흐, 맞다. 허무에 물들면 그 존재는 그림자에 종속되지. 랜달프 브뤼시엘, 네가 그토록 자랑하던 최상급 마수들이 모두 물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내가 보기엔 1시간도 채 안 걸릴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럼 그 전에 네놈을 죽여야겠군.”

“말처럼 쉬울까? 네가 선을 넘어서 사냥꾼의 칭호를 얻었듯이, 나도 포식자가 되었다. 사냥꾼과 포식자의 대결이라! 상상만으로도 떨리는군. 전처럼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거다.”

금기를 깼다는 걸 자랑스럽게 말한다.

답이 없는 놈이었다. 미칠 것이면 곱게 미칠 것이지 대공이 저 무슨 추태란 말인가. 더 해괴한 꼴을 보이기 전에 조속히 죽여야겠다.

분노와 황제의 검을 꽉 쥐었다. 달빛은 충분히 충전해 뒀다. 하이엔달의 스킬 ‘달빛 낙하’도 거의 내 것으로 만들어 두었다. 하이엔달 본연의 그것과 비교하지는 못하겠지만 충분하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명령을.”

마수를 대표해 크리슬리가 앞장섰다.

그녀는 주먹만 한 붉은색 보석을 손에 쥐고 있었다.

후우웅.

후우우웅.

보석에서 거대한 울림이 지속적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상자에서 나온 물건이며 현재 크리슬리에게 귀속되어 있는 그것!

“봉인을 풀어라.”

“명을 따릅니다.”

꿀꺽!

지체 없이 크리슬리가 붉은색의 보석을 삼켰다.

스으윽.

스으으윽!

죽음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수백에 달하는 쉐이드가 생성되었다.

해골 병사들이 바닥을 뚫고 튀어나왔으며 죽음 지팡이는 이내 커다란 까마귀가 되었다.

‘죽음의 왕, 가낙의 정수.’

알 수 없는 상자에서 튀어나온 아이템의 이름이다.

아무래도 크리슬리가 죽음 지팡이를 소유하고 있고, 네크로맨서의 기질이 강하여 그와 연관된 아이템이 나온 것 같았다.

죽음의 왕, 가낙. 네크로맨서의 정점이라 불린 이. 그의 힘이 고스란히 담긴 정수를 삼키면 한시적으로 그의 힘을 가질 수 있었다.

“크리슬리. 기간테스를 막고, 적의 씨를 말리도록.”

“예.”

“크라스라. 마수 부대의 활용은 너에게 맡기겠다.”

“맡겨 주십시오.”

“나는…… 놈의 목을 따러 가겠다.”

역할 분담은 끝났다.

고개를 돌려 오쿨루스를 바라봤다.

오쿨루스는 이미 자연화를 끝마친 상태였고, 얼굴 전체에 여유로움이 서려 있었다.

전과 전혀 다른 태도.

자신감, 오만함. 그런 감정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끝을 보자, 오쿨루스.”

“바라던 바다, 랜달프 브뤼시엘!”

쿠르르릉.

마수의 군단이 서로 부딪혔다.

그 선봉에서 나는 오쿨루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달빛 낙하!

충전한 달빛을 소모하여 검에 달빛이 서리게 만드는 스킬.

검이 지닌 파괴력 자체를 늘려 주며 적을 혼란시킨다.

다크 소드 스킬과는 찰떡궁합이었다.

“한층 더 강해졌구나! 흐하하하!”

“시끄럽군.”

오쿨루스는 여전히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휘하 마족들도 던전을 빠져나와 이곳으로 향하고 있을 터. 시간만 끌면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 저것은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여 생기는 여유였다. 잘린 오른팔에선 나뭇가지가 돋아나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바닥을 뚫고 튀어나오는 무수한 가지들. 그리고 그 가지 하나하나가 오쿨루스와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 분신술과 다르지 않은 셈.

그렇게 생겨난 분신이 둘이었다. 그 둘은 오쿨루스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파괴력을 선사하고 있었다.

“보아라! 내가 포식한 마족은 저처럼 나와 똑같은 생김새의 분신이 된다! 랜달프 브뤼시엘, 너 또한 저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음을 영광으로 여겨라!”

3 대 1.

하나라면 쉽다.

둘은 비슷하다.

하지만 셋은…… 조금 벅차다.

심지어 저 두 분신은 오쿨루스의 스킬도 똑같이 사용했다.

그나마 다른 점이라면 무한히 재생하진 못한다는 것.

다크 소드에 당한 상처는 재생되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자연화한 오쿨루스는 다른 부위를 늘려서 대체하는 게 가능했다. 분신은 그것을 못한다.

요컨대 분신부터 처리하는 것이 승리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뇌신!”

비록 분신은 아니지만 나도 강력한 원군은 있었다.

크롸아앙!

보주의 근처에서 현현하여 공격을 막아 주던 뇌신이 내 부름과 함께 몸집을 부풀렸다. 이내 거대한 번개의 용이 된 뇌신이 오쿨루스의 본체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사이 나는 분신들을 상대했다.

촤앙!

검과 기다랗게 솟아난 줄기가 부딪힌다. 강화가 되었는지 잘라 내진 못했다. 허나 전체를 강화시킬 순 없는 노릇. 즉시 몸을 틀어 황제의 검으로 분신의 옆구리를 노렸다.

쩌어엉!

그러나 내 검이 두 개이듯 분신도 둘이었다. 둘은 서로를 보완하며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하이엔달의 검술이 보다 완벽했다면…….’

살짝 아쉽다.

실전에서만 다져진 기초 검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을 죽이는 건 가능하지만 조금 더 복합적으로 몇 수 앞까지 나아갈 순 없었다.

만약 하이엔달의 검술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면 일이 보다 쉬워졌을 것이었다. 지금은 그러지 않았고, 그래서 조금 힘겹다.

‘쉽지 않군.’

상황은 막상막하였다.

마수들의 대결은 내가 조금 우위에 있었다.

허나 오쿨루스와 콘테고놈이라는 변수가 굉장히 크다.

타쉬말은 상처투성이였고, 마고는 버티기 급급하다. 그나마 허무에 물든 기간테스를 크리슬리가 제대로 상대해 주고 있었다.

만약 저기서 하나가 더 물들 경우…… 이 전세는 역전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시간.’

부족한데, 마음처럼 빨리 끝낼 순 없을 것 같다.

허나 문제는 또 있었다. 오쿨루스의 휘하 마족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마저 합류하면 내 승률은 한없이 0에 가까워진다.

‘어쩔 수 없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심호흡을 했다.

쓰기 싫었지만 쓸 수밖에 없을 듯싶었다.

7대 죄악 세 개를 모으자 생겨난 스킬.

기존의 스킬마저 흡수한 이것은, 나조차 그 활용을 알지 못한다. 설명이라고 있는 것도 ‘주의’라는 짧은 단어뿐.

하지만 이제는 이 방법뿐이었다.

표정을 굳히며 나는 작게 입을 열었다.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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