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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사냥꾼-128화 (128/242)

던전 사냥꾼 128화

[‘타락(Ex Epic)’을 정말 사용하시겠습니까?]

재차 묻는 건 처음이다. 그러나 내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사용한다. 그러려고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타락을…….]

“타락!”

채엥!

오쿨루스의 분신이 틈을 노리고 찔러 온다. 그것을 막으며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마족 ‘랜달프 브뤼시엘’이 ‘타락(Ex Epic)’을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시스템의 보호 권한을 벗어납니다. 록이 해제되었습니다.]

[타락의 효과가 끝나기 전까지 모든 시스템의 기능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보호 권한’을 벗어난 마족은 천계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됩니다.]

[주의하십시오.]

[주의…….]

무수하게 떠오르는 메시지창.

하나같이 말하는 건 ‘주의’하라는 것뿐.

시스템의 보호 권한을 벗어났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타락이 발동된 즉시 나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막혀 있던 게 뻥 뚫리는 기분.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마에 두 개의 뿔이 솟고, 나의 전신보다 거대한 날개가 등을 꿰뚫으며 튀어나왔다. 마치 짐승처럼 털이 나며 손톱이 길어졌다. 하얗던 피부도 새까맣게 물들었다.

이후 이상한 문신 같은 것들이 빼곡하게 새겨졌다. 마치 상처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것들은 일제히 빛을 냈다.

그리고…… 인피니티 아머가 변형되었다.

보다 짙은 마력. 그것을 흡수하고 천천히 모습을 바꿔 나갔다. 날개와 뿔을 가리지 않는 선의 전신 갑주가 된 것이다.

이런 때 보통 메시지창이 떠오르며 변화한 사실을 알리지만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시스템을 벗어났다는 건가.’

혹시 몰라 상태창을 띄워 봤지만 역시나 묵묵부답.

그제야 시스템을 벗어났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천천히 주변을 둘렀다.

존재감 하나만으로도 주변 모두를 압도했다. 오쿨루스의 분신조차 잠시 나를 공격할 기색을 잃었다. 허무에서 온 콘테고놈도 마고를 상대하며 내 쪽을 바라볼 정도였다.

“기분이 묘하군.”

그렇다. 정말 묘했다. 이 기분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날개의 움직임도 원래 가지고 있었던 듯 자연스럽다. 변화한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진정한 자신을 찾은 그런 느낌.

동시에 나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이것이 마족의 본모습이다.”

아아!

전율이 일었다.

마족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법한 의문.

어째서 천족과 달리 마족은 날개가 없는 걸까?

어째서 마족은 인간과도 그토록 흡사하단 말인가.

간혹 아리엘 디아블로처럼 뿔이 달린 마족이 나왔지만 그것은 강대한 마력과 핏줄이 섞여야 나오는, 무척 희귀한 경우였다.

그래서 마족은 인간을 유독 미워한다. 너무 닮은 그 모습 때문에. 힘으로선 엄격하게 차이가 나지만 외견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나를 제외한 마족들 모두가 인간의 것을 아예 배척해 버리는 게 이와 같은 이유였다. 너무나도 증오해서 가까이 두기조차, 쳐다보는 것조차 혐오하는 것이었다.

한데…… 이젠 알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진짜 마족의 원형이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마족은 날개와 뿔을 잃었고,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갖게 되었다. 그 제약이 타락으로 인해 풀리며 나 홀로 원형을 찾았다.

‘타락이되 타락이 아닌.’

무한한 마력. 모든 걸 지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

이것은 확실히 타락이되 타락이 아니었다.

“마족의 본래 모습?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랜달프 브뤼시엘!”

오쿨루스의 본체가 이를 악물었다. 여유가 사라졌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무한한 ‘증오’가 깃들어 있었다.

“왜 흥분을 하지? 헛소리로 치부하면 그만 아닌가.”

대뜸 변신하고선 ‘이게 진짜다.’ 하면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쿨루스는 그럴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증오가 있었지만 동시에 보일 듯 말 듯 한 부러움 또한 섞여 있었다.

아는 것이다.

자연화한 그는 근원을 어느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고, 내 자체가 마족의 근원임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진짜가 아니라는 박탈감. 아무리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지만 그는 대공이다. 마족으로서의 자부심 자체를 잃지는 않았다. 아예 종 자체를 부정당한 겪이니 화가 날 수밖에.

“또…… 무슨 금기를 깬 것이냐!”

“금기를 깬 건 내가 아니라 너다, 오쿨루스.”

“그 모습. 대체…… 대체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 말해라. 진화한 거냐? 진정으로 선을 넘어 진화를 이룩했단 말이냐!!”

오쿨루스.

어찌하여 저리도 진화에 목을 매는가.

알 것 같긴 했다. 방금 전에도 느꼈듯이 오쿨루스는 자연화를 하며 이질감을 느꼈을 게 분명했다. 이게 진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변화를 해야 한다며……. 그래서 나를 본 직후 ‘진화’의 가능성을 손에 넣었다 생각하고 마구잡이로 선을 넘어 댔다.

나는 불가능을 넘어서 급속도로 발전했으니 그것이 진화의 발판이라 착각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영혼 동화, 마족 포식자. 어쩌면…… 조금씩 아닌 게 아니라 ‘틀린’ 것임을 깨달아 가는 찰나인지도 모른다. 반신격의 그림자를 소환한 것은 자신이 행한 행동의 ‘답’을 듣기 위해서다. 그러면 앞뒤가 맞다.

“불쌍하군.”

처음으로 오쿨루스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그냥 미친놈인 줄 알았다. 정신 이상자 이상이 아니었다. 재수가 없었고, 마계 옥션에서 이야기를 할 땐 조롱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해였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근원’을 찾고자 발버둥 쳤을 뿐이지 않은가.

마치 자아를 찾는 여행을 하듯 그저 과도기에 있었을 따름이다.

악을 쓰고, 난리를 부리면서까지 갈망한다.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절로 동정심이 생겨났다.

대공답지 않았지만 마족의 입장에선 약간의 존경심이 일어날 정도다.

전생에서 그는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다. 세계수를 최초로 세웠다는 게 전부다. 의욕이 없어 보였고, 마왕이 되는 일조차 등한시하는 듯했다.

그 염세적인 태도의 전환점이 바로 나였다.

내가 가능성을 보여 줬기 때문에 오쿨루스는 전생과 전혀 다른 노선을 탔다. 정녕 내가 아는 오쿨루스가 맞는지 의심이 되었건만.

애당초 진짜 모습을 전생에선 내보인 적이 없는 거다.

“그 눈빛은 뭐냐? 집어치워라. 알려 주지 않겠다면 억지로 뺏겠다. 그래도 불가능하다면 완전히 세상에서 지워 버리겠다!”

“여행은 끝났다, 오쿨루스.”

길고 긴 여행길.

오쿨루스는 지쳤다. 한계였다. 더 이상 갈망하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 전에 평안을 되찾아 주리라.

어쩌면 태어나서부터 계속된 오쿨루스의 고민. 그것을 내가 해결했으니 그의 최후도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닥쳐라!”

소리를 내지른 오쿨루스가 움직였다. 뇌신을 무시한 채 분신들과 함께 나를 합공했다. 그야말로 필사적인 몸부림. 기필코 나를 넘어서겠다는 절절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진정한 모습을 되찾은 내게는 닿지 않았다.

후웅!

날개를 펄럭였다.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이마에 솟아난 두 개의 뿔은 마력의 원천이다. 모든 성질의 마력으로 치환될 수 있었다.

한 차례 뿔을 쓸어내리자 모든 마력이 ‘달빛의 마력’으로 바뀌었다.

하이엔달. 지금이라면 그의 검술을 99%까지 펼쳐 내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촤아아!

분노와 황제의 검이 화려하게 움직인다. 단순히 적을 현혹하는 것만이 아니라 움직임 하나하나가 마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달빛 낙하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강해진다.

“내 눈은 세계를 꿰뚫는다! 그따위 움직임을 내가 읽지 못할 리가 없다!”

오쿨루스는 ‘세계의 눈(Epic)’이란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심안을 읽고 간파하여 역으로 받아친 그 스킬이라면 어쭙잖은 움직임 따위는 통하지 않을 터.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까?

수컹!

분신 하나가 제거되었다. 부분적으로 강화를 시도했지만 물을 베듯 훑고 지나갔다. 허물어진 분신을 내 날개가 품었다. 그리고 분신 자체가 날개에 녹아 마력이 되었다.

“읽지 못할 리가……!”

그를 본 오쿨루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오쿨루스, 모든 걸 안다는 건 불행한 것 같구나.”

알아도 어쩌지 못하는 게 있다. 많다.

그것을 오쿨루스도 알기에 스스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었다.

“닥쳐!!”

잔뜩 열이 오른 오쿨루스가 나머지 분신 하나를 불러들였다. 이윽고 그의 몸에서 무수히 많은 가지가 생겨나더니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

던전의 층 하나를 전부 삼킬 것만 같은 기세로 늘어나 뿌리와 가지를 채찍처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쾅! 쾅! 콰앙!

적아를 가리지 않았다.

나는 날개를 활짝 펼쳤다.

수천, 수만이 넘어가는 가지들을 뚫는 일. 예전의 나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날개를 얻은 지금은 가능하다.

날개를 펄럭이며 발이 허공에 뜬 순간.

채찍이 날아오는 속도보다 빠르게 오쿨루스의 심장부에 다다랐다.

“이제…… 편히 쉬어라.”

푸욱!

분노, 그리고 황제의 검을 심장부에 찔러 넣었다.

* * *

비틀!

오쿨루스를 처리하자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이에 기간테스를 상대하던 크리슬리가 빠르게 달려와 나를 부축했다.

탁!

크리슬리의 손을 쳐 냈다.

타락의 부작용인가?

누구도 신뢰가 되지 않았다. 크리슬리에게마저 적대감을 느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오로지 나 혼자서만 존재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괜찮습니까?”

크리슬리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고개를 돌려 콘테고놈을 바라봤다.

오쿨루스를 처리했다고 끝이 아니다. 저놈을 처리하고 빠져나가야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마족들의 움직임은 어떻지?”

“……거의 다다른 듯합니다. 오쿨루스가 죽었음에도 멈추지 않고.”

오쿨루스의 휘하 마족들.

본체가 죽으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마지막 명령을 끝까지 수행할 셈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이대로는 위험하다. 나 스스로 몸을 빼내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여기 있는 마수 대다수가 몰살당할 것이다.

이곳의 힘은 내 밑바탕이다. 3년간 어렵사리 쌓은 공든 탑이었다.

아니, 차라리 전부 죽여 버릴까?

어차피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그래, 혼자서도…….

‘젠장.’

머리를 흔들었다. 제정신과 거리가 멀다. 이대로 있다간 아군을 내 손으로 학살하게 될 공산이 컸다. 점점 버티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빠져나가라.”

“예?”

“콘테고놈은 내가 상대하겠다. 즉시 던전으로 발을 돌리도록.”

“그럴 수는 없습니다.”

“거치적거린다. 오쿨루스의 마수들이 혼란해하고 있을 지금이 적기다.”

“나의 던전 마스터시여!”

“크리슬리, 너희를 구하려고 내가 희생하려는 게 아님을 어찌 모르는 것이냐? 거짓이 아니라 정말로 거치적거린다!”

후웅!

날개를 펼쳤다.

강력한 살의를 가지고 크리슬리를 바라봤다.

애써 주먹을 쥔 채 인내하는 게 전부였다.

그것을 크리슬리도 읽었는지 숨을 크게 들이쉬며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저는 던전 마스터께서 빠져나오실 때까지 이곳을 지키겠습니다.”

“크리슬리……!”

“던전 마스터께서 돌아가시거든 저 역시 죽은 몸임을 어찌 모르십니까? 제발 그런 매정한 말씀은 마십시오.”

커다란 까마귀를 탄 채 크리슬리가 크라스라에게 날아갔다.

이어서 전권을 맡기고, 빠져나가기를 명했다.

크라스라는 나와 크리슬리를 바라보곤 한참을 망설이다가, 크리슬리의 단호한 태도에 하는 수 없이 마수들을 데리고 후퇴했다.

다행히 그때까지 나는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후퇴가 마무리되려는 그때 기어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크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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