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33화
정적은 짧았다.
곧이어 주변의 언데드들 모두가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거 뭐 하는 놈이야?”
“선제공격? 자살 특공대라도 된대?”
“저놈 누가 데려왔어!”
반응은 좋지 않았다. 처음 보는 이가 마을의 회의에 참석한 것도 모자라 말도 안 되는 의견을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좋을 수가 없었다.
제프의 표정도 굳었다. 토리엄은 이마를 짚었고, 여기서 변호를 했다간 같이 치도곤을 당할 판이다.
“그만!”
그때 지켜만 보던 영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비보다 두 배는 커다래 보이는 몸집. 구울이다.
“오랜만에 패기가 넘치는 언데드로군. 선제공격이라. 실력에 그토록 자신이 있나? 보아하니…… 아직 일반 좀비인 것 같은데?”
나태한 얼굴. 의자에서 내려와 천천히 내게 다가온다.
나는 분장을 한 상태였다. 조금 사나운 인상이긴 하지만 기본 토대는 좀비였다.
“평범한 ‘격’의 상승과 모습의 변화에는 크게 관계가 없다.”
격의 상승이란 외부가 아니라 내부가 변화하는 것이다. 본질이 특화되며 강화되는 것이었다. 그 변화가 무척이나 크면 그때엔 외부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좀비에서 구울로 모습이 바뀌었대도 결국 크기만 조금 더 커졌을 따름이다. 두드러지는 변화조차 아니다. 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그 어떤 징표도 없었다.
예컨대 내가 타락을 사용하고 두 개의 뿔과 날개가 생긴 것이 진정한 ‘격’의 변화라 할 수 있겠다. 힘이 축약 되어 튀어나온 것들이니 크기가 조금 커진 것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그 말은 나를 이길 수도 있다는 뜻이로군.”
“진정으로 이곳을 지키고 싶다면 나를 따라라. 이곳을 지켜 주마.”
선심이라도 쓰는 양.
분노를 꺼내 들고 말했다.
그것을 본 해골 병사들이 움직이며 나를 감쌌다.
“허허허! 그 패기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겠구나. 어디 그럼, 그 잘난 실력을 좀 볼까? 만약 별거 아니라면 해골 병사들이 너의 사지를 찢어발길 것이다, 처음 보는 용병아.”
해골 병사의 숫자는 일곱.
정말 별거 아니었다.
고작해야 하급 마수였고…… 강해져 봤자 중급 하 레벨 수준이다.
나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 홀로 적진을 전멸시키고 승전보를 울리는 것은 힘들다. 어찌 됐든 이들의 도움이 필수다.
설령 돕고 싶지 않더라도, 필요에 의해 도울 수밖에 없도록.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을 확실하게 어필하는 게 먼저다.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습군.”
지난 20일 간 나는 하이엔달의 검술에 조금 더 익숙해질 수 있었다. 도리어 보정 능력치가 없고, 마력이 적은 지금에야 더욱 쉬워졌다. 달빛 낙하를 사용하진 못하지만 검술 자체에 깃든 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고작 이런 마수들을 위해 하이엔달의 검술을 사용하는 건 아깝다.
나는 분노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콰직!
주먹을 놀렸다.
콰드득!
애당초 해골 병사 따위가 내 속도를 잡는 건 무리다.
안면을 타격해서 확실하게 부쉈다. 주먹 한 방에 해골 병사 하나가 나자빠졌다. 일곱을 정리하는데 채 20초가 들어가지 않았다.
주먹에 묻은 뼛조각을 털어 내고 토리엄을 바라봤다.
“궁금한 게 있다. 영주는 어떤 식으로 선발되는 거지?”
“……본래는 남부 사령관의 부하들이 맡지만 이런 변방의 영지에 그들이 올 리가 없으니 우리는 가장 강한 자를 영주로 모셨소.”
토리엄의 표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하기야 제프와 대련하며 보여 준 건 빙산의 일각이다.
모든 걸 드러낼 정도의 상대도 아니었거니와, 적당히 몸 상태를 살필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던 탓이다.
물론 제프도 해골 병사 일곱쯤은 상대할 기력이 된다. 하지만 그것을 맨손으로, 20초 안에 해내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해냈다.
괜히 듀라한과 일전을 벌일 만하겠다고 판단했겠는가.
나름 자신이 있으니까 움직인 것이다.
“강자를 영주로 모신다. 마음에 드는군.”
“물론 50년간 영지를 돌본 공로는 크오. 그것을 뒤엎고 새 영주가 되려면 우리에게 그만한 힘을 보여 줘야 하오.”
토리엄이 말했다.
한마디로, 어중간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것도 마음에 든다.
얇게 웃었다. 싫어도 따르게 하려면 내가 영주의 자리를 차지하면 되지 않겠는가.
“무능한 자는 위에 서 있을 자격이 없지.”
“영주와 마을 최고 실력자 스물을 상대할 수 있겠소? 죽이지 않고서 말이오! 그렇다면 내 기꺼이 따르리다!”
내 생각을 눈치챈 토리엄이 판을 깔았다.
선수를 치며 언데드들이 판단할 시간을 뺏었다.
장구한 서사를 직접 보고 싶다더니, 그 바람은 꼭 이뤄 주리라.
“확실히 한가락 하는구나! 허나 해골 병사 일곱 잡은 정도로 우쭐하지 마라!”
당황한 영주가 거대한 검을 빼 들었다.
그 옆으로 눈치를 보던 최고 실력자 스물이 모였다.
제프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다른 이들과 달리 해맑아 보인다. 방금 전 내가 나설 때까지만 해도 죽을상이었지만…….
“20전 20패의 설욕을 드디어 갚겠어!”
과연. 이유가 있었다.
공터의 중심부가 빠르게 비워졌다. 나는 대치하며 일렬로 선 이들을 바라봤다.
21 대 1.
거기다 해골 병사보다 강한 자들이다. 그러나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죽이지 않는 게 더 힘들겠군.’
나는 분노를 꺼내고 잠시 멈칫했다.
죽이지 않고 이기는 게 과제였다.
이기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이지만…….
힘 조절이 잘될지 모르겠다.
* * *
듀라한.
3미터 크기의 거구이며 자신의 얼굴을 들고 다니는, 언데드 중에서도 상위의 종.
“이런 코딱지만 한 영지에 나를 투입하다니, 막달리 님의 의도를 모르겠어.”
그리고 소믈렘은 천에 달하는 병력을 이끄는 대장 듀라한이었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은 양 쉴 새 없이 투덜거렸다.
사령관 막달리의 전력이라면 남부를 깡그리 밀어 버리는 것쯤은 간단하다. 그러나 손실을 최소화하고자 넘치는 병력으로 급습만을 반복했다. 하여 남부는 막달리에게 이리저리 휘둘려 다니는 중이었다.
문제는 남부라고 다 같은 남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목표 지점에 다가갈수록 느는 건 한숨뿐이었다.
“변방 중에서도 변방이야. 후우…….”
보이는 거라곤 황무지가 전부였다. 며칠 내내 달려왔음에도 이 광경은 변할 줄을 몰랐다. 이제 고작 반나절 거리였지만 도착해 봤자 똑같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남부군에 포함된 영지이고, 사령관 막달리의 명령이다. 소믈렘으로선 거부할 권리가 없었다.
“항복 권유를 하고 올까요?”
해골 법사가 말했다.
소믈렘은 손에 든 자신의 얼굴을 올려 눈높이를 맞힌 뒤 말했다.
“권유? 필요 없다. 다 쓸어버려서 이 울분을 삭혀야겠다.”
적의 전멸!
그것만이 이 답답한 속을 조금이라도 풀어 줄 것 같았다.
소믈렘이 거대한 흙빛의 대도를 어깨에 두를 때였다.
“소믈렘 대장님. 무언가가 다가옵니다.”
“나도 봤다.”
누군가가 빠르게 이쪽을 향해서 달려오는 중이었다.
홀로 겁 없이 1천의 병사에게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미친놈인가?”
소믈렘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상대는 점점 가까워졌고,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해골 병사들이 활을 들었다.
이어 활시위를 당기자 강력한 독을 품은 화살이 일제히 쏟아졌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도리어 점점 빨라진다.
“미친놈이군.”
소믈렘이 웃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달려오는 놈은 결코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 *
콰앙!
부딪혔고, 그 순간 무언가 터지듯 커다란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쓸려 나갔다.
선을 그은 장소.
거기까지 홀로 뚫어 낼 작정이었다.
‘더 빠르게.’
신선한 기분이었다.
한 차례 격돌한 뒤 나는 순수한 검술만으로 적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아무런 스킬도, 보정 능력치도 없이. 오로지 육체적 능력과 검술만을 사용해서.
현재의 한계를 넘어 계속하여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가속하듯 속도가 붙었고, 근육이 비명을 내질렀다.
‘더 강하게.’
촤악!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놀린다. 이래선 오랫동안 싸울 수 없음을 알지만 개의치 않았다.
몰아붙이면 몰아붙일수록 나는 단련된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아슬아슬한 싸움! 목숨을 내건 투쟁만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원동력임을 잊고 있었다. 다시 약해진 다음에야 그것을 깨닫고 되찾은 것이다.
‘나는…….’
듀라한 소믈렘!
한 손에는 자신의 얼굴을, 다른 한 손에는 거대한 대검을 든 그가 무거운 몸을 움직였다.
“이노옴!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마라!”
홀로 200이 넘는 언데드들을 학살했다. 지정한 지점까지 이제 코앞인 상황. 그런데 소믈렘이 막아섰다.
이 역시 상관은 없다. 오히려 적절한 시기에 찾아왔다.
한참 힘이 빠지고 지칠 때 가장 강한 녀석을 처리한다. 질 수도 있지만 이기면 그만큼 나는 성장하며 달성감에 취할 수 있다.
‘더욱 강해지리라.’
채에엥!
검과 대검이 부딪혔다.
그 순간.
“와아아아!”
“다 죽여 버려!”
“영주님을 돕자!”
내가 뚫어 놓은 길 사이로, 응원군이 도착했다.
소믈렘은 일반적인 듀라한보다 1레벨가량 강했다.
이 수준이라면 충분히 상급 2Lv로 책정되어도 이상할 게 없을 듯싶었다.
하지만 예상 범위였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쾅!
힘과 힘의 대결에선 내가 다소 밀린다. 한 차례 크게 밀려 땅 위를 굴렀다. 근처의 해골 병사에게 허벅지를 꿰뚫렸고, 가슴에도 화살을 한 대 맞았다.
‘익숙하다.’
상처, 고통은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 것으로는 나를 멈춰 세울 수 없었다.
허벅지에 박힌 검과 가슴의 화살을 빼내고 분노를 들었다. 거동이 조금 불편해졌지만 아직 싸움이 한창이었다.
“막달리 님을 위하여!”
소믈렘은 자신이 승기를 확실하게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검을 번쩍 치켜 올렸다. 사령관 막달리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충성심을 재차 확인했다.
막시움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도 저와 비슷한 자세로 ‘황제 폐하를 위하여!’라 말했다. 나는 그가 애타게 부르던 황제는 아니었지만 황제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심장은 쉽사리 멈추지 않는다. 내 성향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질감이 없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더욱 강해지는 건 나나 심장이나 매한가지였다.
“그래 봤자 발악이다!”
승리를 확정 지었지만 결판이 나지 않자 소믈렘의 표정이 썩었다. 쓰러지지 않는 나를 바라보며 질린다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그 기색은 점점 변해 갔다.
시간이 지나자 썩은 표정은 놀라움으로, 놀라움은 경악으로 번졌다.
“이놈……!”
“후욱!”
크게 숨을 내쉬며 분노를 들었다.
그 끝에 소믈렘의 머리가 꽂혀 있었다.
듀라한을 죽이려면 심장과 머리를 전부 파괴해야 한다.
“이제 몸통만 제거하면 되겠군.”
“죽여 버리겠다!”
촤악!
대로한 소믈렘의 머리를 정확히 두 쪽으로 갈랐다.
이후 돌격하는 몸통의 발밑에 반쪽 난 얼굴을 던지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와아아아!”
“이겼어! 이겼다고!”
“영주님, 만세!”
“랜달프 브뤼시엘 님, 만세!”
투입된 400명.
그중 200명가량이 살아남았다.
반면 적은 전멸했다.
대승이다.
“진짜 혼자서 중심을 뚫어 버릴 줄이야…….”
“소믈렘과 싸우는 걸 봤나? 소름이 다 돋았어!”
분노를 집어넣고 내가 다가서자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토리엄이었다.
“승리를 축하합니다.”
“말투가 바뀌었군.”
“영주님에게 일반 언데드는 말을 높여야 합니다.”
기억이 난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에 들렀을 때 토리엄이 말한 적이 있었다.
“이제 진짜 영주가 된 건가?”
“홀로 적진의 중심까지 뚫어 내면 그때 도우라 하셨지요. 그렇지 못한다면 그냥 도망가도 된다고요. 우리는 참전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랜달프 님을 영주로 받아들였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곳에 모인 건 400명.
100명은 성에서 대기 중이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발을 빼고자 도망갈 준비를 해 놓은 것이다.
나도 허락한 부분이었다. 어차피 이 공격의 요점은 내가 적의 진열을 뚫느냐, 마느냐에 있었다. 뚫지 못한다면 공격해 봤자 다 전멸할 따름이었다.
“남부 사령관님께 전령을 보내겠습니다. 영주가 교체되었다는 걸 알려야 합니다. 어차피 알아서도 잘 돌아가던 마을이라 영주님께서 따로 할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전 영주를 따르던 100명이 아직 남았다.”
성 내에 남아 있는 100명.
구울을 따르던 이들이다. 내 힘을 봤으나 계획에는 찬동하지 못한 이들.
토리엄이 씁쓸하게 웃었다.
“대세는 막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보다…… 오늘은 축제가 벌어지겠군요. 다들 들떴습니다.”
남은 언데드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시선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아, 어쩌면 우리 영지가 막달리의 공격을 막아낸 최초 사례일지도 모릅니다. 남부 사령관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거든 영주님에게 따로 연락을 취할 수도 있으니 미리 알고 계십시오.”
“알겠다.”
대충 답했다.
나도 지쳤다.
쉬는 게 최우선이다.
다시 마을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그 뒤에서 토리엄이 작게 말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모두에게 안식을 가져다줄 바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