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사냥꾼-134화 (134/242)

던전 사냥꾼 134화

성 내에서 대기하던 100명.

그들의 대부분은 승전보를 듣고 내게 편승했다.

이전의 영주는 잔뜩 굳을 표정을 짓고선 나의 가신을 자처하였다. 그밖에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승리를 이뤄 냄으로써 나는 훨훨 날고 있었다. 여기서 나를 적대라도 했다간 그나마 유지하던 모든 걸 잃게 될 공산이 컸다.

그 날 저녁, 파티가 벌어졌다. 언데드의 파티라고 해 봤자 별 게 없었다. 살아생전 인간이었기 때문인지 젤림의 나뭇가지를 먹으며 춤이나 대련 따위를 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지구에서의 파티보다는 재미가 있었다.

잠시의 휴식을 가진 뒤 나는 검술에 매진했다. 영주에겐 따로 마련된 넓은 방이 있었고, 그곳에서 전투를 떠올리며 복기를 하는 중이었다.

‘조금씩 각이 잡혀 가는 것 같군.’

초심을 되찾았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이엔달의 검술은…… 내 자신을 비워야 완성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이엔달의 검술은 사용자가 강할수록 완성하기가 어렵다. 흉내는 낼지언정 그 속에 담긴 진수를 알아볼 수 없는 것이다.

타락을 사용했을 때조차 1%가 비었다. 그 부족했던 부분을 나는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었다.

어쩌면 아리엘 디아블로는 그것을 알았기에 변형을 시도했을 수도 있었다. 약자의 입장이란 것을 그녀는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어차피 완성할 수 없다면 내 식대로 만들어 보자고.

하지만 나는 다르다.

그의 모든 걸, 온전히 있는 그대로 잡아먹고 싶었다.

‘이 검술에는 그의 생이 담겼다.’

이해.

그래, 그것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강한 자는 거의 없다.

하이엔달도 마찬가지였다. 강해지고자 평생을 연마한, 오직 하나의 검술.

매일 밤 쏟아지는 달빛만이 유일한 안식처가 아니었을지.

수악!

검을 휘둘렀다. 달은 보이지 않지만 하이엔달의 모습이 천천히 새겨진다.

불후의 검사. 검으로는 대적할 자가 없다고 전해지는 이. 그러나 그 이명을 얻기 이전은 어땠던가.

‘강해지고 싶었다.’

그의 삶을 나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전쟁 노예로 팔려 나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갔다. 아군의 시체를 방패 삼아 살아남았고, 필사적으로 적의 기술을 익히려고 애썼다.

나 자신과 닮지 않았나.

그는 전쟁터에서 배운 모든 걸 종합하여 하나의 검술을 만들어 냈고, 나는 끝내 안주했다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휘이잉-

사방이 꽉 막힌 방 안에 바람이 감돌았다.

그 바람은 검에서 흘러나왔으며…… 검은 미약하게나마 달빛을 머금고 있었다.

스킬을 사용할 때보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달빛을.

* * *

성 내의 공터.

그곳으로 향하자 토리엄과 해골 병사들 수십이 나열해 있었다.

“이건 다 뭐지?”

“좀비가 모든 기능 활동을 멈추면 피부가 빠르게 썩어 내리고 해골 병사가 됩니다. 뼈가 손상된 상태라면 사용이 불가능 합니다만…… 그나마 멀쩡한 뼈들을 모아서 50구 정도를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이곳 지저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일이다. 다른 곳에서 좀비가 죽는다고 해골 병사가 되는 일은 없다.

토리엄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이들은 안식을 찾는 데 실패한 겁니다. 혼은 뼈에 남아 영원히 이 세계에서 고통받습니다.”

“안식을 찾은 자와 찾지 못한 자를 구분할 수 있는 건가?”

호기심의 발로였다. 그러자 토리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잘은 모릅니다. 다만 간혹 아무런 형태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진정으로 안식을 찾은 게 아닐지 생각할 뿐입니다.”

확실한 건 없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헛된 희망이 될 수도 있는 일. 그럼에도 놓치지 않고 있는 건 그러지 않고선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리라.

“아,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토리엄이 가슴팍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오늘 새벽에 파발꾼이 도착했습니다. 남부 사령관의 인장이 찍힌 편지를 전해 주더군요. 불과 나흘 전에 영주의 교체 사실을 알렸는데 벌써 답을 보내온 걸 보면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드디어 올 게 왔다.

편지를 받아 들고 말했다.

“소식을 전하는 게 조금 늦었군.”

“파발꾼을 접한 즉시 찾아갔습니다만 검술에 매진 중이신 듯하여…… 죄송합니다.”

몇 날 며칠.

나는 미친 듯이 검만 휘둘렀다.

하이엔달의 검술을 익히며 깨달음을 얻은 탓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찾아왔는데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열중하고 있었다는 건가.’

작게 혀를 차며 편지를 뜯었다.

이윽고 구구절절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랜달프 브뤼시엘, 파브름 영지의 새로운 영주여. 그대가 듀라한 소믈렘과의 일전에서 승전보를 울렸음을 본관은 잘 알았다. 소믈렘이라면 막달리의 부하 서열 20위 안에 드는 자. 실로 대단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도다. 이에 본관은 정식으로 그대를 우리 남부의 요새에 초대하고자 한다. 남부의 영웅이여! 막달리의 야욕을 물리친 그대를 어찌 영웅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식어 버린 심장을 뜨겁게 만들어 줄 그대의 발걸음을 본관은 기대하고 있겠다.」

미사여구로 꾸며 놓긴 했지만 한마디로 ‘뭐 하는 놈인지 궁금하니 얼굴 좀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었다.

“토리엄, 남부 사령관의 이름이 뭐지?”

편지에도 ‘본관’이라 칭할 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토리엄도 계속해서 ‘남부 사령관’이라 말했으니 알 턱이 없었다.

그제야 깨달은 듯 토리엄이 입을 열었다.

“아아, 말씀을 안 드렸군요. 오스웬이라 합니다.

“오스웬?”

잠시 멈칫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설마 7대 죄악을 만든, 황혼의 대장장이 오스웬과 동명이인일까?

내 반응을 본 토리엄이 물었다.

“혹시 알고 계십니까?”

“아니…… 아니다. 그나저나 남부 사령관이 나를 좀 보자는군.”

“아아! 잘됐습니다. 이번 승리에 대해서 사령관도 궁금한 게 많을 겁니다. 막달리는 지는 싸움을 안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휘둘렸을 테니까요.”

“그럼 출발해야겠군.”

“지금 당장이요? 그 전에…… 그 모습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문제가 있나?”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분노와 나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인피니티 아머까지. 그래도 구색은 전부 갖췄다.

한데 토리엄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첫인상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도 상당히 눈길을 끌긴 하지만 사령관이 직접 초대했다면 필시 보는 이들도 많겠지요. 영주님은 역전의 용사이십니다. 그만한 품격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선 제게 맡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토리엄이 자신 있게 말했다.

굳이 번거롭게 일을 만들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준비를 해서 나쁠 건 없었다.

“어디 한번 해 보라.”

확인을 해 보고 그대로 가든가 내치든가 하면 될 일이었다.

50여 구의 해골 병사, 토리엄과 제프.

그 선두에 내가 섰다.

영지를 벗어나 남부의 요새로 향하는 길은 그다지 복잡할 것도 없었다. 사흘 밤낮을 이동하니 요새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요새는 거대했다. 하나의 도시라 칭할 수준. 오랜 시간을 두고 만들어진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성문으로 들어서자 여러 마리의 구울이 앞을 막았다.

그리고 토리엄이 나섰다.

“이분은 파브름 영지의 새 영주시다! 여기 남부 사령관께서 보내신 편지의 인장이 있으니 확인하고 길을 비켜라!”

품에서 편지를 건넸고, 그것을 확인한 구울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덜컹!

소리와 함께 거대한 성문이 열리자 여태껏 보아 온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진짜 인간들이 거주하는 듯 높은 2, 3층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가지만 엉성한 ‘젤림’도 사방에 놓여 있어서 나름 깨끗한 경관을 연출했다.

“젤림은 귀하다고 하지 않았나?”

“이곳은 말하자면 수도입니다. 허락받은 언데드만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젤림이 여러 그루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요. 그보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모두 영주님을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지 않습니까?”

토리엄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주변을 지나는 언데드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토리엄은 다재다능했고, 심지어 대장장이의 재능마저 가지고 있었다. 좋은 무구를 만든 다기보다는 ‘보기 좋은 액세서리’를 만드는 느낌이었지만 인피니티 아머 위에 뼈로 만든 전신 흉장을 입혔다.

마치 이야기 속에나 나올 법한 해골 전사의 위엄을 있는 그대로 뽐내고 있는 것이다.

어지간한 언데드는 명함도 못 내밀 만큼 흉흉한 기색이 전신에서 나타났다.

“으으. 저런 걸 입고 어떻게 움직이나 몰라. 그냥 갑옷만 입은 나도 답답해 죽겠구먼…….”

제프도 기사처럼 갑옷을 입었다. 여간 불편한지 걷는 모습도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토리엄은 요새의 중심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움직입시다. 오늘의 주인공은 영주님이십니다.”

요새의 중심부엔 더욱 커다란 성이 있었다. 고개를 쭉 들어야 겨우 정상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랬는데, 마계 공작의 성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뭘 좀 아는군.’

자고로 성이란 이래야 한다.

작고 볼품없는 성은 성이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보이는 언데드들도 제법 수준이 높았다.

성의 입구는 두 마리의 다크 워리어가 지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필시 리치나 데스 나이트도 있을 터. 그렇다면 이곳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중 하나의 안내를 받아서 남부 사령관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저도 남부 사령관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허례허식을 따지지 않는 분이라 합니다. 언행만 조심하면 크게 걸리는 건 없을 겁니다.”

그 옆에서 토리엄이 작게 조언하였다.

나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오스웬…….

비슷한 이름을 가진 자는 많다.

그러니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나선형 계단을 지나 성의 최상층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방이 하나뿐이었고, 여기가 바로 남부 사령관이 기거하는 장소인 듯했다.

“총공격을…….”

“당하기만 하는 것도 지긋지긋…….”

“아무리 막달리라도 한계가…….”

최상층에 오르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주변을 맴돌았다.

다크 워리어가 방의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사령관님, 파브름의 새 영주가 찾아왔습니다.”

“들라 해라.”

웅장한 목소리.

다크 워리어가 문을 열었고, 그러는 즉시 나는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너른 원탁과 그곳에 앉은 12명의 언데드들.

예상대로 리치와 데스 나이트도 시야에 들어왔다. 버그 베어마저 있는 걸 보아선 남부의 최강자들이 모여 있는 듯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내 눈길을 끈 건 가운데 자리한 마수다.

둠 나이트!

데스 나이트의 진화 형태라 칭해지지만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게 없는 최상급 2Lv의 마수다.

손이 여섯 개. 등을 비집고 튀어나온, 날개와 같은 뼈의 형태가 영락없는 둠 나이트였다.

그가 남부 사령관 오스웬이었다.

“그대가 파브름의 영주인가? 대단한 모습이군.”

오스웬이 고개를 돌리며 내게 말했다. 외견을 보곤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토리엄의 계획이 나름대로 먹혀든 것이다.

허나 나는 그가 손에 착용한 장갑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스킬이 작동하며 메시지창이 떠오르진 않지만 그래도 은연중 나는 심안을 사용할 줄 알았다. 적어도 저게 무엇이고,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보기만 해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7대 죄악……!’

그리고 오스웬이 착용한 장갑이 7대 죄악 중 하나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봤다.

정말로 황혼의 대장장이 오스웬이란 말인가?

아이템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미쳤다고 했다. 7대 죄악을 끝으로 아예 돌아 버렸다고. 그런 그가 왜 이 지저 세계에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확인이 필요했다.

채엥!

나는 검을 꺼냈다.

분노!

7대 죄악 중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는 이 검을 본 오스웬의 반응에 따라 내 행동이 갈릴 것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반응은 없다.

“뭐 하는 짓인가?”

눈살을 찌푸린 게 전부다.

이름이 오스웬이고, 7대 죄악이라 추정되는 장갑을 착용했을진대 본인이 아닌 걸까?

더욱 확실한 확인을 해 보고자 나는 입을 열었다.

“오스웬, 남부의 사령관이여. 나 랜달프 브뤼시엘이 대련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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