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사냥꾼 136화
2천의 병사들.
해골 병사가 절대다수를 차지하여 구성은 간단하기 그지없다.
아주 얄팍한 사고만 가능하여 일일이 명령을 내려 줘야만 한다.
하지만 생각이 많은 것보단 낫다. 적어도 내 명령에 착실하게 따르긴 할 테니까.
요새를 빠져나온 병사는 3만가량이었다. 하루아침에 준비한 것치곤 상당한 숫자.
가장 선두에서 오스웬이 외쳤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움직인 것은 사령관 막달리의 부하인 서열 4위 고데우스가 ‘첩첩 마른 땅’에 있다는 첩보를 접수했기 때문이다. 놈을 잡으면 막달리의 사지 하나를 절단한 것과 같다. 남부의 영웅들이여! 본관과 함께 침입자를 몰아내고 남부를 지키자!”
“지키자!”
“지키자!!”
함성이 울려 퍼졌다.
출정식을 바라보며 요새에 남은 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충분히 대승을 거둘 수 있으리라.
동시에 오스웬이 뼈만 남은 지옥마를 타고 그 위에서 여섯 개의 검을 높이 추켜들었다.
“출정이다!”
* * *
당하기만 하던 남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첩보를 입수한 즉시 움직이는 놀라운 기동력을 보이며 바람과 같이 몰아쳐서 고데우스를 처벌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고데우스는 1만의 병력과 함께 산화했다. 남부의 피해는 고작 3천에 그쳤다.
대승!
남부의 기세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그리고…… 나 역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말 들었나? 파브름의 새로운 영주가 이번 출정에서 고데우스의 머리를 쪼갰다더군!”
“그뿐인가? 병력을 지휘하는 솜씨도 일품이라던데. 어디서 그런 이가 나타난 거지? 그만한 실력이었다면 진즉에 소문이 났을 텐데 말이야.”
“하늘이 남부를 돕고 있는 거지. 막달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상대가 아니야.”
가는 곳곳마다 이번 출정에서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 중심적인 이야기에는 항상 내가 출현했다.
고데우스의 목을 직접 친 공로자, 막대한 포상과 대대적인 선전. 오스웬은 나를 ‘남부의 영웅’으로 확실히 만들 셈인 것 같았다.
‘승승장구가 따로 없군.’
2천의 병사를 지휘할 권한이 있었지만 그 숫자가 단번에 3천으로 늘었다.
오스웬은 나를 굉장히 신경 썼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게 있는 것마냥. 아무래도 분노와 나태가 영향을 주는 게 아닌지…….
어쨌거나 내 권한이 올라가서 나쁠 건 없었다. 이대로 오스웬의 최측근이 되어 그에 대한 것들을 속속들이 캐낼 수 있다면 내가 나락 군주의 심장을 가지고 있고 황제의 검을 계승했음을 알려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의 재료가 될 것이었다.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그를 베어 내고 내가 사령관의 자리에 오르면 그만이다.
지저 세계는 실력주의인 것 같았다. 지금은 다소 부족하지만 나는 오스웬을 따라잡을 자신이 있었다.
마침 나를 영웅으로 만들려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고, 거기서 내가 더 강한 게 밝혀진다면 남부의 병력들도 나를 따르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그러기 위해선 확실한 실적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남부는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다.
“막달리도 별거 아니었군요. 남부가 칼을 빼 든 즉시 이렇게 당하기만 하는 걸 보니까…… 새삼 김이 빠집니다.”
벌써 다섯 번째.
요새를 벗어나며 토리엄이 중얼거렸다.
남부는 네 번의 습격을 감행했고, 모두 대승으로 이끌었다. 막달리는 서열 4위 고데우스를 시작으로 5, 6, 7위의 실력자 모두를 잃었다.
“첩자가 확실한 정보를 물어 준 덕분이겠지.”
앞서 네 번의 급습은 모두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첩보를 확인한 오스웬이 빠르게 출정을 가진 탓이다.
토리엄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말입니다. 영주님도 일약 남부의 영웅이 되었지요. 이제 남부 어디를 가던 영주님 이야기뿐입니다.”
“금방 식을 열기다.”
“글쎄요. 사령관 막달리를 이기면 남부 사령관의 위치는 급부상합니다. 이야기는 지저 세계 전체에 퍼지고, 곳곳에서 일당백의 전사들이 찾아올 겁니다. 그러면…… 과연 남부 사령관이 남부에만 머물러 있을지요? 거기서 영주님의 가치도 높아지리라 봅니다.”
순탄하게 흐른다면 그런 식으로 연계될 가능성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나는 지금의 자리에 계속해서 만족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사령관이 마지막으로 죽은 게 언제이지?”
내가 묻자 토리엄이 답했다.
“150년은 족히 지났습니다.”
과연…….
고개를 주억였다.
150년간 정체되어 있었고, 변화가 없었다면 이번 승리의 행방에 따라서 바람의 중심지가 결정 될 것이었다.
한 번 불기 시작한 바람은 걷잡을 수 없다.
‘이상하군.’
그러다가 주변의 분위기가 급변했음을 느꼈다.
이번 출정에 배정된 병사의 숫자는 4만.
4만 병력이 움직이건만 주위가 급속도로 조용해졌다.
두 개의 산을 넘고 황야를 가로지르자 지대가 무른 땅이 나타났는데, 잘못 발을 디디면 그대로 빠질 것만 같았다.
“원래 이곳은 메마른 땅이었는데…….”
토리엄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병사들이 위치하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다. 첩보가 잘못됐다.”
“주변을 정찰해 봐야 확실해질 것 같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땅.
초입에 불과했으니 정찰을 해 봐야 확실하다.
선두에 선 오스웬이 팔을 들었다. 막 주변의 정찰을 명하려고 할 그때였다.
스르륵.
손 하나가 진흙을 뚫고 나오더니 해골 병사 하나를 낚아채 갔다.
스륵!
스르르륵!
수백, 수천 개의 손이 일제히 솟았다.
“저주받은 망자들! 외지로 몰아낸 놈들이 왜 이곳에……!”
토리엄이 경악했다.
하지만 위험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멀리서 느껴지는 기척들.
이윽고 반대편에서 벌떼 같이 몰려오는 병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림잡아 8만 이상!
그만한 군세를 이끌고 이곳에 들이닥칠 이라면 뻔했다.
막달리.
이건 놈이 파 놓은…….
“함정이군.”
나는 분노를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듯싶었다.
진퇴양난.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숫자의 차이, 지리적 손해…… 그간 너무 쉽게 이겨 와서일까?
‘첩자가 잡혔거나, 원래부터 거짓 정보였거나.’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그간의 승리가 이때를 위한 포석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다.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에 움직이는 게 그나마 현명하다.
“제프, 병사들과 함께 뒤를 막아라.”
제프는 나를 따르는 부사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5천의 병력을 혼자 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영주님은요?”
그날, 토리엄과 다른 이들이 나를 영주로 인정한 날. 제프의 말투도 바뀌었다. 어색하기 그지없었지만 말투에 크게 구애받는 편이 아니라 내버려 두었다.
어쨌거나…… 나는 전방을 살폈다.
‘저게 막달리로군.’
쿠와아앙!
막달리는 무려 본 드래곤이었다. 이곳에서는 용을 보는 게 처음인지라 제법 놀랐다.
하늘에서 브레스를 쏘아 대며 병력을 녹이고 있었고, 그것을 보다 못한 오스웬이 나서서 격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하지만 저것을 돕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다.
“발이 빠른 병사들은 나를 따르라. 말을 탄 놈들을 먼저 없앨 것이다.”
내가 견제하고자 하는 건 기동력이 좋은 마수들이었다. 단순 병력의 질 자체는 이쪽이 우월했지만 가뜩이나 혼란인 상황에서 치고 빠지는 전술을 펼치는 놈들이 가세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나는 발이 빠른 500의 병사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쟁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다.
전장의 상황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코 뒤집을 수 없는 판 또한 존재한다.
기동대를 따로 움직여서 데스 나이트 둘과 리치 하나를 잡는 데 성공했다. 뼈로 만들어진 말을 탄 병사들도 상당수 제거할 수 있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아군의 상황은 나락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힘들겠군.’
빠르게 판단했다. 전투가 시작된 지 30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아군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럼에도 오스웬에게 희망을 걸었지만 주변의 도움 없이 홀로 막달리를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나는 빠르게 선회하여 오스웬을 향해 달려갔다.
“크아아아아! 이놈! 막달리!”
오스웬은 막달리의 왼쪽 날개를 잘라 냈다. 이에 지상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었지만 오스웬도 팔 두 개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네가 심어 놓은 첩자를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러니까 네놈이 내게 안 되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네가 자랑하던 요새도 쑥대밭이 되었을 터! 이제 흙으로 돌아가거라, 오스웬!”
콰르릉!
다시 한번 부딪혔다. 단순 힘 싸움이라면 둘 다 밀리지 않지만 해골 법사와 리치들의 연이은 마법 공격에 오스웬은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전신이 타고 피부가 녹았다.
쿠르르릉!
재차 브레스가 쏟아졌다.
이대로 있다간 오스웬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증발해 버릴 것이 자명했다.
그러나 브레스보다 조금 더 빠르게 내가 당도할 수 있었다.
‘인피니티 아머의 방어력을 믿을 수밖에!’
온전히 피해 내는 건 불가능하다. 오스웬을 들고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지만 오른쪽 가슴이 브레스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후욱!”
내 한계를 넘어서 적들을 상대했는지라 이미 지쳐 있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천둥새의 피가 소용이 없을 정도로 요란하게.
다행히 녹아내린 인피니티 아머가 빠르게 수복되었다. 잠시 고개를 숙여 그것을 확인하곤 있는 힘껏 달려 나갔다.
“영주님……!”
제프와 토리엄이 남은 병사 1천가량을 이끌고 다가왔다.
5천에 다다르던 숫자였건만.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제프, 토리엄. 남부 사령관을 끌고 전장을 이탈해야 한다.”
“제 말을 쓰십시오.”
토리엄이 쌩쌩한 말을 내주었다.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 옆에서 제프가 입을 열었다.
“뒤는 걱정하지 마세요. 일당백의 용사 제프가 한번 막아 보겠습니다.”
이들의 의도를 모를 내가 아니다.
“살지 못할 것이다.”
제프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죽었잖아요. 까짓, 한 번 더 죽는 게 대수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골 병사가 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곳을 빠져나가 다시 찾아가겠습니다. 영주님이라면 이곳 지저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이름을 떨칠 테지요. 자, 시간이 없습니다.”
내가 오스웬을 빼돌리자 적들의 추격이 바로 시작되었다. 그나마 막달리가 한쪽 날개를 잃었고, 기동력이 좋은 적들을 먼저 제거해 둬서 시간이 조금 생겼을 뿐이었다.
“나를 찾아라. 나는 이 세계의 주인이니 빠져만 나간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듣고 토리엄이 껄껄 웃었다.
“지저 세계의 주인이 되실 작정이군요! 알겠습니다. 반드시 찾아가겠습니다! 반드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 의지대로라면 언제고 다시금 만날 수 있으리라.
나는 말에 올랐다. 앞에 반쯤 쓰러진 오스웬을 얹고 말의 엉덩이를 찼다.
타악!
말을 타고 달리는 와중, 막달리와 오스웬이 나눴던 대화를 기억해 냈다. ‘이미 요새는 초토화되었을 터.’라는 내용.
그게 사실이라면 남부 요새로는 향할 수 없었다.
‘계획을 수정해야겠군.’
본래는 남부를 잡아먹고 막시움의 반응을 살피려고 했다. 그런데 남부 자체가 풍전등화에 놓였으니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오스웬을 살린다. 오랜 시간 남부를 통치했다면 숨겨 놓은 한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7대 죄악을 얻는다.’
장갑을 내려다봤다. 힘을 줘서 벗겨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인만이 벗길 수 있거나 다른 제약이 걸려 있는 게 분명했다.
쿠릉!
쿠르릉!
전장을 이탈한 지 채 30분이 지나지 않은 시점.
저 뒤에서 광음이 들려왔다.
‘추적자군.’
벌써 추적자가 붙었다는 것은 최악의 사태로 치달았다는 뜻.
다행히 숫자가 많아 보이진 않았다.
쯧!
작게 혀를 차며 말에서 내렸다. 혹을 달고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